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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규상 칼럼] 검사와 피의자 만남이 ‘악연’ 안 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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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47호 문규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2023.05.12 09:27:50

(문화경제 = 문규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사람의 인연

한자로 ‘사람 인(人)’ 자는 두 사람이 서로 등을 맞대고 의지하고 있는 형상이고, 인간(人間)이란 글자 그대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무수히 많은 다른 사람들과 필연이든 우연이든, 좋은 관계든 나쁜 관계든 많은 인연을 맺고 살아갑니다.

그중에는 운동선수나, 연예인들과 같이 많은 팬들로부터 열렬한 환호를 받고, 의사처럼 환자에게 의술을 베풀고, 환자로부터 감사의 인사를 받는 것처럼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경우도 있지만 법조인들은 대개의 경우 좋은 일이 아닌 나쁜 일을 매개로 우연한 인연이 맺어집니다. 물론 변호사의 경우에는 계약관계로 맺어진 인연이므로 우연히 맺어진 인연이라 보기는 어렵지만 판사나 검사의 경우 피고인이나 피의자와의 인연은 그야말로 우연히 맺어진 인연입니다. 따라서 판사나 검사의 입장에서 평생동안 어느 한 사람을 피의자나 피고인으로 만날 기회는 확률상 대단히 희박할 것으로 생각되며, 더구나 같은 사람을 2번, 3번 피의자나 피고인으로 만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초임 검사 시절 춘천지검에 재직할 때 2년 6개월의 짧은 근무기간 동안 같은 사람에 대해 3번이나 구속영장을 제 이름으로 법원에 청구하여 발부받은 사례가 있었고, 그 사람과 맺은 인연이 평생 동안 뇌리에 깊게 박혀 있어 이를 소개하려 합니다.

‘목상 문 씨’와 맺은 첫 번째 인연

첫 번째는 제가 1987년 3월 검사 발령을 받고 3~4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영장 당직을 하는 날 관할 인제경찰서에서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죄로 목상(木商: 나무 상인) 1명에 대해서 구속영장을 신청하였는데, 내용을 보니 인제 읍내에 있는 다방 여종업원에 대해서 폭력을 행사하여 전치 2주의 상해를 가한 사안이었습니다.

내용상으로는 중한 사안이 아니었지만 피의자에게 같은 죄명의 벌금 전과가 있었고, 피의자가 커피 1잔을 시켜놓고 하루종일 다방에 앉아 여종업원들에게 물 심부름을 시키고 성희롱에 가까운 농담을 하고 이를 싫어하는 여종업원에게 욕설을 하고 주먹으로 얼굴 부위를 때려 상해를 가한 것으로서 사건의 발단이 전적으로 피의자로부터 비롯되었으며, 피해자가 피의자에게 치료비를 요구하자 피의자가 “경찰서의 모 간부를 잘 안다”, “검찰청의 차장검사를 잘 알고 있다”, “네까짓게 아무리 떠들어도 소용없다”면서 거드럼을 피우며 합의를 거부하고 오히려 욕설을 퍼붓는 등으로 죄질이 매우 나쁘게 보였습니다.

혹시나 해서 차장검사께 보고하면서 피의자를 알고 있는지 확인했더니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하여, 피해 정도가 중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죄질이 나쁘고 합의도 되지 않는 데다가 피해자가 강력한 처벌을 원하고 있어 일단 피의자에 대하여 구속영장을 청구하여 발부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제가 배당받아 보완 수사를 한 후 기소하였는데 조사받는 과정에서 피의자가 저와 같은 종씨(문 씨)이기도 하고, 사안도 비교적 중하지 않은 점을 감안하여 피의자에게 향후 피해자와 합의가 되고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등으로 반성의 뜻을 표시하면 선처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후 피의자는 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동안 제가 알려준 대로 피해자에게 치료비와 위자료 등을 지급하고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하여 벌금형의 선처를 받고 출소한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춘천지검 청사. 사진=연합뉴스

목상 문 씨와의 두 번째 인연

두 번째는 그 사건이 있은 지 약 1년여 정도 지났을 무렵 관내에서 동향 보고가 올라왔는데 한 민원인이 술에 취하여 인제군청 산림과에 찾아와 벌목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담당 공무원에게 거의 1시간 동안 쌍스러운 욕설과 협박을 하여 공무집행을 방해하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부장검사께 보고한 후 담당 공무원을 소환하여 조사해 보았더니 그 민원인은 1년 전에 제가 구속기소하였다가 법원의 선처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출소하였던 그 목상이었습니다. 그는 평소에도 걸핏하면 군청을 찾아와 각종 민원을 제기하면서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공무원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행패를 부려 공무원들의 기피 대상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공무원들이 그를 피하기만 할 뿐 법적 조치를 취하지 못한 이유는 “경찰서의 모 간부를 잘 안다”, “검찰청의 차장검사를 잘 안다”는 등으로 위세를 부려 군청 공무원들이 보복이 두려워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벌목 허가를 내주지 못하는 이유를 조사해 보니 그 소유의 임야 위치가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 군부대의 동의가 필요한 곳이라서 담당 공무원이 그러한 사실을 누차 알려주고 군부대장으로부터 벌목 허가 동의서를 받아오라고 하였으나 군부대장의 동의서를 받지 못하자 그는 술만 마시면 담당 공무원을 찾아와 벌목 허가를 강요하며 욕설과 협박을 하는 등으로 심하게 괴롭힌다는 하소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상대로 그의 평소 행실에 대해 조사해 보았더니 목상이란 직업은 개인 사무실을 둘 정도는 아니나 작은 시골 마을에서는 제법 재력이 있는 편에 속하고 군청 산림과에 대한 민원이 많아 하루종일 다방을 사무실 삼아 군청을 들락거리고, 새로 부임하는 군부대장과 경찰 간부들을 상대로 밥을 사는 등으로 로비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처음 구속되었다가 출소한 이후에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려면 그를 사회와 격리시키고 반성할 기회를 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그를 상대로 직접 공무집행방해죄로 구속영장을 청구하여 발부받았습니다.

그를 두 번씩이나 구속하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았으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가 마음을 고쳐먹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저에게 “같은 종씨임에도 봐주지는 못할망정 두 번씩이나 구속하느냐”며 저에게 원망을 하여 저 또한 마음이 불편하여 그에게 술을 끊고 처신을 신중하게 할 것을 당부하며 다시는 이런 일로 만나지 말고 향후 사업이 크게 번창하여 성공하기를 기원한다고 덕담을 해 준 기억이 납니다. 그 사건은 기소된 후 그가 담당 공무원에게 싹싹 빌어 합의서를 받아 제출하여 법원으로부터 가벼운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출소한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검사 사칭 범죄를 보도한 동아일보의 1996년 5월 9일자 지면.

목상 문씨와 맺은 세 번째 인연

세 번째는 또 그로부터 약 1년 정도 지날 즈음 정기 인사를 앞두고 인제경찰서로 마지막 유치장 감찰을 가서 유치장의 유치인들을 상대로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인권 침해 사례가 있었는지 여부를 확인하던 중 목상 문 씨가 유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았더니 그는 음주운전 중 치사 후 도주한 사건으로 구속영장이 신청되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어차피 검찰청으로 복귀하면 제가 영장을 검토할 것이므로 그를 상대로 현장에서 신문을 해보았더니 그는 억울하다면서 음주운전은 사실이나 피해자를 충격한 사실은 알지 못하였다면서 도주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였습니다.

의문을 품고 검찰청으로 복귀한 후 목상 문 씨에 대한 구속영장 기록을 세밀히 검토하였더니 목격자의 진술에 의하면 당시 야간이고 시골의 지방도로라서 가로등도 없는 컴컴한 상태였고, 문 씨도 음주한 상태에서 운전하면서 당시 교통사고 피해자가 술에 취하여 도로 갓길에 누워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피해자를 타고 넘어간 후 멈칫멈칫하다가 그대로 도망간 사실이 인정되었고, 문 씨가 운전하던 차량의 바닥 부분에서 피해자를 역과한 흔적이 발견되어, 문씨 입장에서는 피해자의 과실도 큰 사고였기 때문에 약간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음주운전에 치사 후 도주한 사건이라 사안이 무겁고,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하여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제가 처리할 수도 있었지만 같은 사람을 3번씩이나 기소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차장검사께 경위를 보고드렸더니 다른 검사에게 배당을 하여 저를 수사에서 제외시키는 배려를 해 주었습니다. 그 후 사건을 배당받은 검사실에 확인을 해 보았더니 도주한 사실도 미필적 고의 정도로 자백하여 기소에 문제가 없다고 하여 안심을 하였고 그로부터 며칠 후 저는 다른 검찰청으로 전보되었습니다.

불발된 목상 문씨와 네 번째 인연

세월이 많이 흘러 3~4년 후쯤이라 기억되는데 어느 날 제가 근무하는 서울남부검찰청(당시는 서울지검 남부지청)으로 전화가 걸려와 여직원이 ‘문 모’라는 사람인데 춘천지검 근무할 때 알던 사람이란다고 하면서 전화를 바꿔주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전화라서 얼떨결에 전화를 받았더니 목상을 하던 그 문 씨였습니다.

저와 예사롭지 않은 인연임에도 전화를 주었기에 제 입장에서는 그의 태도가 어떨지 궁금하여 언제 출소하였는지, 잘 지내는지, 하던 사업은 잘 되는지 등의 안부를 물은 다음 전화를 한 용건이 있는지 물었더니 자신이 현재 남부지청(당시는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 근처에 있는 영등포구청에 와 있는데 나를 찾아와 직접 말씀드리면 좋겠다고 하길래 찾아올 필요는 없고 내가 도울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도와드리겠다고 하면서 전화상으로 말씀을 해 보라고 하였더니 자신이 영등포구청에 민원이 있는데 담당 공무원에게 전화로 직접 자신을 도와주라는 말씀을 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을 3번씩이나 구속한 악연이라면 악연을 가진 검사에게 그것도 4~5년이나 지난 상황에서 오죽하면 전화로 로비를 부탁하려 했을까 하며 좋은 쪽으로 이해를 해 보려고도 하였으나 자신이 3번씩이나 구속된 이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반성하지 않은 것 같아 정말 씁쓰레한 생각이 들어 단호하게 거절했던 기억이 지금도 뚜렷합니다.
 

5월 1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신임 검사 임관식’. 사진=법무부 제공

불교에서의 인연

불교에서는 옷깃만 스치는 인연(因緣)도 전생에서 500겁(劫)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불교에서 1겁이란 천지가 한번 개벽한 때부터 다음 번에 개벽할 때까지의 오랜 동안을 말하며 통상 ‘개자겁(芥子劫)’과 ‘반석겁(磐石劫)’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개자겁’이란 사방 40리의 성 안에 개자(겨자 씨)를 가득 채우고 백 년마다 한 알씩 집어내어 그 개자가 다 없어져도 겁은 다하지 않는다고 하며, ‘반석겁’이란 둘레가 사방 40리나 되는 너럭바위를 백 년마다 한 번씩 엷은 옷으로 스쳐서 마침내 그 바위가 닳아 없어지더라도 겁은 다하지 않는다는 설명입니다.

목상 문 씨와의 인연은 어떤 인연일까요? 남들은 평생 동안 한 번도 맺기 어렵다는 검사와 피의자로서의 인연을 세 번씩이나 맺었는데, 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인연이라기보다는 전생에 나쁜 인연, 즉 악연, 그것도 깊은 악연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검사와 피의자 사이는 사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전적으로 공적으로 맺어진 관계이지요. 따라서 검사는 사건에 대한 명예욕 등 사적인 욕심을 부려 피의자에게 무리한 수사를 해서는 안 되며 비록 피의자가 범행을 부인하더라도 피의자의 변명을 충실하게 귀담아 들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수사의 목적은 유죄입증, 공소제기보다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 즉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검사와 피의자와의 관계는 악연이라 할 수 없고 검사가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 열심히 노력할 때는 그 관계는 악연이 아니라 좋은 인연을 맺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사람 사이의 관계이므로 아무리 범죄자라 하더라도 피의자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가 있다면 악연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세 번의 인연이 좋게 귀결되었기를

검사였던 저와 목상 문 씨와의 관계는 30년도 더 지난 옛날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저도 퇴직한 지 10년 이상 지났고, 목상 문 씨도 생존해 있다면 거의 80세 중후반에 가까울 것으로 짐작되어 두 사람 모두 인생을 회고하며 정리해야 할 단계가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제 입장에서 본다면 당시의 구속 기준(1987년 당시의 구속 점유율은 15%에 달해 대검찰청으로부터 ‘1988년 서울올림픽 때까지는 12%로 낮출 수 있도록 하라’는 공문이 하달되었던 것으로 기억함)과 현재의 구속 기준(현재의 구속 점유율은 1% 미만)이 달라 현재의 잣대로 당시를 가늠할 수 없지만, 당시의 구속 기준에는 사건의 동기와 죄질 등이 중요한 잣대 중의 하나였으므로 문 씨에 대한 3번의 구속이 가혹하고 무리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디 저와 맺은 세 번의 인연이 그보다 더욱 나쁜 상황(뇌물 공여 등으로 처벌받는 상황 등)으로 가는 것을 막아주었길, 악연이 아닌 좋은 인연으로 귀결되었길, 아무쪼록 풍진 세상 더 이상의 풍파 없이 잘 지내셨길 기원하며 저와의 인연을 훌훌 털어버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필자 소개

법무법인 대륙아주 문규상 변호사는 1978년 서울법대 졸업, 1987년 검사로 임용되어 ‘특수통’으로서, 변인호 주가 조작 및 대형 사기 사건, 고위 공직자 상대 절도범 사건, 부산 다대/만덕 사건, 강호순 연쇄 살인 사건 등을 맡아 성과를 냈고, 2003년의 대선 자금 수사에서도 역할을 했다. 2009~2014년 대우조선해양의 기업윤리경영실장(부사장)을 역임하며 민간 부패에 대한 경험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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