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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경욱 동대문문화재단 대표이사 “문화예술은 삶의 이유 알려주고 용기를 선사”

예술경영 전문가, 선농대제 성공적으로 개최... 문화 관련 공간 제약 문제 해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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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48호 김응구⁄ 2023.05.11 17:37:55

김경욱 대표이사는 “문화예술은 당장에 물질·경제적 혜택을 주진 않지만, 삶을 살아가는 이유와 용기를 주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사진=김응구 기자

동대문문화재단이 할 일이 많아 보인다. 아직 영글지 못해서다. 설립 5년 차니 해온 것보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한가득이다. 그리고 이를 보여줘야 한다. 더불어 동대문구민들이 알게 해야 한다. 시작은 늘 이래서 힘들다.

지난 2월 10일 김경욱 대표이사가 취임했다. 문화예술과 예술경영 전문가다. 누구든 대놓고 얘긴 못하지만,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그도 이를 모를 리 없다. 아직 부족하고 모자란 것투성이지만, 그렇다고 핑계 대진 않는다. 스스로 채우고 뜯어고치는 수밖에. 그런 일이라면 누구보다 잘할 자신 있다.

동대문구의 가장 큰 문화행사 중 하나인 ‘선농대제’가 4월 22일 열렸다. 취임 후 첫 행사로 땀 한 바가지를 흘렸을 김경욱 대표이사를 5월 첫째 주에 만났다.

- 대우재단을 시작으로 서울문화재단, 서울시의회 등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오셨어요. 지난 2월 동대문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새로 부임해오면서, 또 다른 시작을 앞두고 마음가짐이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여기 오기 전 1년 정도 열심히 쉬었어요.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이나 세상 따라잡는 공부를 하면서 보냈죠. 쉬지 않으면 못할 것을 많이 해봤어요. 특히, 유튜브 제작이나 코딩을 배운 경험은 요즘 들어 핫한 인공지능(AI)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 동대문문화재단이 2018년 6월 출범했으니 이제 5년 차입니다. 어떤 방향으로 만들어갈지 구체적인 그림은 그려져 있겠죠?
“저는 대표이사가 새로 와서 자신의 실적을 위해 기존 사업을 깡그리 무시하고 여러 사업을 새롭게 계획하는 건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5년간 나름대로 여러 사업을 펼치면서 이런저런 관계나 노하우가 축적됐을 텐데, 그 같은 과정을 모두 무시하는 건 올바르지 않아요. 자신의 성과를 위해 무리하게 기획할 가능성도 있고요. 사업의 틀은 그대로 놔두고, 제 경험을 살려서 나름의 방법으로 기존 사업을 고도화(高度化)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 그래도 사업예산이라든지 신경 쓸 일이 무척 많아 보입니다.
“올해 사업예산은 제가 오기 전에 이미 짜여 있었어요. 그 틀을 깰 순 없어요. 대신 기존 사업을 조금 보완하고자 추경(추가경정예산)으로 일부 사업예산을 신청했어요.”

- 일부 사업이라면 어떤 걸 얘기하는 걸까요.
“예를 들어 관내 문화예술단체가 몇 있는데, 현재 그들이 활동할 만한 공간이 많이 부족해요. 재단이 나서서 마련해줄 상황은 안 되고요. 그래서 관내 문화예술인과 민간 장소를 연결해주는 지원사업을 구상했죠. 문화예술인들이 연습·창작 공간이 필요하면 그에 맞는 장소를 연결해주는 거예요.”

김경욱 대표이사는 대우재단, 서울문화재단, 서울시의회 등에서 익힌 문화예술과 예술경영의 모든 경험을 동대문문화재단에 아낌없이 쏟아낼 작정이다. 사진=김응구 기자

- 프로필을 보니 첫 직장이 대우재단이었어요. 대우그룹의 그 대우재단 맞죠?
“대학 졸업하고 처음 입사한 직장이 대우그룹이었어요. 당시 국내 대기업 중에서 대우그룹이 여성 대졸자를 처음 채용했어요. 인문계 100명, 자연계 100명을 공채로 뽑았죠. 면접도 김우중 회장이 직접 봤어요. 당시 제가 많이 말랐거든요. 절 보더니 ‘그렇게 깡말라서 열심히 일할 수 있겠냐’고 웃으며 물었던 게 생각나요. 처음 발령받은 부서는 대우통신 수출부였어요. 그때 ‘하모니전화기’라고 싱가포르에서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으로 만들어온 걸 수출하는 업무였죠. 바이어들 만나고 선적 서류 꾸미고 전화기 내보내는 일이었어요. 아침 8시 출근, 아주 빨라야 저녁 8시, 보통 10시 퇴근, 이 생활을 몇 개월 하다 보니 여긴 내 자리가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옮긴 곳이 대우재단입니다. 대우학술총서 만드는 곳이었어요. 대학교수들 상대로 일하는 거죠.”

- 업무 환경이 확 달라졌군요.
“한 번은 사무국장이 가야 할 해외 출장을 제가 대신 가게 됐어요. 홍콩하고 하와이 두 번요. 전공이 영문과여서 그랬나 봐요. 그중 하와이에서 열린 세미나가 눈에 들어왔어요. ‘문화예술로 하와이 도심지 우범지대를 어떻게 밝게 변화시켰는가’라는 주제였는데, 그 당시가 예술경영 분야가 한창 뜰 때였어요. 그걸 들으면서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국제무대에 나가보니 예술경영이라는 게 참 좋은 테마라는 걸 알게 된 거예요. 그즈음 유학을 해야겠다고 맘먹었어요. 재단에서 안 보내주면 사비로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얼마 후 대우재단 10년 근속상을 받았을 때 이사장에게 유학을 보내 달라 얘기했죠. 마침내 1997년 대우재단 지원으로 영국 유학을 갔어요. 덕분에 예술경영과 문화정책을 공부했죠.”

- 이제 슬슬 문화예술 쪽과 가까워지고 있네요.
“근데, 그 당시 대우그룹이 망했잖아요. 영국에서 해고통지를 받았어요. 유학 간 사이에 직장을 잃게 된 거죠. 어쨌든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그즈음 예술경영 쪽이 관심받기 시작하면서 여러 대학에 예술경영학과가 생기기 시작하더라고요. 문제는 초창기니까 아직 제대로 강의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자연스럽게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많이 했죠.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지대학교, 조선대학교, 추계예술대학교 등 7~8곳 정도요.”

- 그래도 할 일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졌네요.
“그러다가 2004년 서울문화재단이 생겼어요. 문을 두드려 중간관리자로 들어갔죠. 그러면서 비로소 문화현장을 보게 됐어요. 그간 현장을 너무 몰랐더라고요. 공부만 했으니까요. 원 없이 일하면서 제대로 된 문화 행정을 경험했죠. 기부금 모금이라든지 예술교육, 축제, 정책연구 등 여러 업무를 두루 거쳤는데, 이때의 경험이 엄청난 자산이 됐어요. 당시에는 서울문화재단 초창기여서 조직개편이 자주 이뤄지고 분위기가 혼란스러워 불만이 많았는데, 지나고 보니 여러 분야의 업무 경험이 제겐 큰 장점이 됐습니다.”


- 이후에는 서울시의회에서도 일하셨군요.
“어느 날 일간지에 아주 작게 난 구인광고를 봤어요.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 전문위원실에서 전문위원을 뽑는다는 거예요. 마침 영국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가 런던시의원으로 활동하는 걸 쭉 봐왔거든요. 재밌겠다 싶었죠. 곧바로 지원해보자고 결심했어요. 여기선 문화본부사업을 분석하거나 예·결산과 조례(條例)를 변경할 때 검토보고서 쓰는 업무를 맡았어요. 행감(행정사무감사) 때 시의원들 질의서 작성 보조 역할도 했고요. 모두 골치 아픈 일인데 저와는 잘 맞았어요. 수석전문위원까지 하면서 14년 6개월 정도 근무했죠.”

선농단역사문화관은 현재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올 하반기에는 주민들이 참여하는 작은 공연이나 인문학·역사 강좌 등이 열릴 예정이다. 사진=김응구 기자

- 그러곤 1년 정도 쉰 후 동대문문화재단 대표이사 자리에 앉으셨는데, 아무래도 직원일 때와는 많은 차이가 있죠?
“임기가 2년인데,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는 데만 1년은 걸릴 것으로 보여요. 물론 서류상 업무 파악은 이미 끝났죠. 하지만 실제 진행 상황을 함께해 봐야 업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잖아요. 동대문구의 속살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이해해야 사업의 방향도 제대로 설정할 수 있죠. 정책결정자, 리더, 또는 선량한 관리자가 대표이사의 역할인데, 때론 결재할 때 고민을 많이 하게 만드는 사업이 있어요. 예를 들면 답십리영화미디어아트센터의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정체성에 맞는 게 우선이냐, 아니면 그렇진 않아도 대중적인 것으로 센터를 더 알리느냐 같은 문제 말예요.”

- 답십리영화미디어아트센터를 먼저 말씀해주셨네요. 지난해 6월 들어서서 아직 1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보여줄 게 많겠죠?
“현재 센터장이 새로 부임해 와서 활성화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어요. 주말에는 가족 단위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직장인을 위한 평일 저녁 강좌도 개설했고요. 이렇게 조금씩 새로운 방문객이 찾도록 하면 센터의 존재감도 커질 겁니다. 이와 더불어 1인 미디어 메카로 키워 전문 교육기관이 되게끔 하는 계획도 있어요. 그러려면 질 좋은, 수준 높은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이 우선이겠죠.”

- 그러고 보니 4월 22일에 동대문구의 가장 크고 의미 있는 행사인 ‘선농대제’가 열렸어요. 취임하자마자 큰 행사를 치렀는데….
“실제로 경험해보니 비로소 행사의 성격과 참여자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어요. 사실 재단이 설립된 지 5년밖에 안 돼 경험 많은 직원이 거의 없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가·무(樂·歌·舞) 같은 건 아주 멋있게 잘 됐어요. 특히, 설렁탕 나눔 행사에 지역주민이 많이 몰려 인상 깊었어요. 그날따라 설렁탕이 아주 맛있기도 했고요. 밥 한 끼라도 따뜻하게 먹고 잘 끝냈으니 참 다행이에요.”

선농제(先農祭)는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선농단(壇)에서 농사의 신인 신농(神農)과 후직(后稷)에게 올렸던 제사다. 일제강점기 시절 중단됐지만 1979년 지역민들이 결성한 선농단보존회를 중심으로 복원한 후, 현재 동대문문화재단이 매년 열고 있다. 펜데믹으로 최근 3년간 제례봉행(奉行)만 진행했으나, 엔데믹 상황이 되면서 올해엔 제례뿐만 아니라 진설 체험, 사생대회, 설렁탕 나눔까지 열렸다. 동대문구 제기동엔 선농단역사문화관도 들어서 있다.

- 새로 부임하고 맞은 첫 행사였기도 하고, 특히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오랜만에 열린 것이라 고생 좀 하셨을 것 같은데요.
“무엇보다 지난해 용산 참사 이후 안전이 무척 강조됐어요. 그래서 안전심의를 받는데 신경을 많이 썼죠. 힘들기도 했고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설렁탕은 뜨거운 화구를 다뤄야 하잖아요. 행사가 종암초등학교에서 열렸는데, 아이들도 있으니 그 화구들을 학교 안으론 들일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학교 밖에 설치하기로 하고 안전심의를 받았는데, 이번엔 경찰서에서 안 된다는 거예요. 초등학교 앞이 약간 비탈길인데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거죠. 결국, 경찰서가 학교장을 설득해서 학교 안으로 들어갔어요. 그래도 학교 안은 평평하니까요.”

- 행사 하나 여는데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군요.
“그뿐만이 아녜요. 학교 측이 화장실을 개방할 수 없다고 해서 또 한 번 비상이 걸렸죠. 행사 날이 토요일이었어도 학교에 오는 학생이 일부 있고, 아이들 안전을 생각해서 학교 화장실을 개방할 수 없다는 거예요. 행사가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니 아무래도 조심해야 하잖아요. 바로 앞 선농단역사문화관 화장실은 몇 개 안 되고요. 또 학교장을 설득했죠. 결국엔 학교 한쪽 화장실만 개방하는 것으로 하고, 주변엔 자원봉사자들을 배치해 안내하면서 쓰레기도 치우도록 했어요. 행사 하나 하려면 챙겨야 할 게 100가지가 넘어요.”

- 그래도 동대문구에선 가장 큰 행사를 잘 마무리했습니다.
“그날 2000명은 넘게 온 듯해요.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2시 사이에요. 설렁탕은 2500인분을 준비했는데 약간 남았어요. 그래도 선농대제는 자리 잡은 것 같아요. 확실히 행사에 먹거리가 있다는 건 큰 장점입니다. 거기다 맛까지 있으니 말 다했죠.”(웃음)

김경욱 대표이사는 올 9월과 10월에 ‘월하홍릉’과 ‘세계거리춤축제’가 열린다고 알려줬다. 사진=김응구 기자

- 요 몇 개월이어도 동대문문화재단을 이끌면서 든 생각은 무엇입니까. 예를 들어, 가장 시급한 문화예술사업이라든지.
“재단 사업 자체보다 문화공간에 대한 결핍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현재 재단 사무실이 문예회관이나 아트홀이 아니라 선농단역사문화관에 있는 게 가장 단적인 예죠. 구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여럿 기획하고 싶어도 이를 담을 그릇이 없다는 얘긴데, 앞으로 해결해야 할 큰 과제입니다. 좋은 공간이 있으면 그곳에 좋은 프로그램을 채우는 건 시간문제예요.”

- 봄이 한창입니다. 자연스럽게 축제가 생각납니다. 올 한 해 계획된 축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우선, 9월 15일과 16일에 열리는 ‘월하홍릉’이 준비돼 있어요. 문화재 야행(夜行) 프로그램인데, 밤이 되면 또 다른 멋이 나는 지역 문화재를 배경으로 가볍게 산책하며 역사문화를 체험해보는 시간이에요. 재작년에 처음 시작했는데, 그때는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으로 열었어요. 지난해는 오프라인 행사로 전환해 영휘원 숭인원(永徽園 崇仁園), 청량리 홍릉주택, 홍릉숲 등을 배경으로 진행했습니다. 10월 7일과 8일에는 ‘세계거리춤축제’가 장안동 일대에서 펼쳐져요. 2012년에 시작했으니 이제 10년을 넘긴 거죠. 그만큼 찾아오는 사람도 꽤 많아요. 약 2㎞ 구간을 차 없는 거리로 조성해 댄스 경연대회나 거리 퍼레이드 같은 걸 선보여요. 프로그램만 좀 더 잘 기획하면 꽤 재밌는 축제로 자리 잡을 겁니다. 이외에도 야외공연과 관련해 추경으로 올린 사업이 있는데, 이게 통과되면 8월과 11월에도 선보일 수 있어요.”

- 올해 서울시향 공연도 준비돼 있다고 들었어요.
“서울시향(서울시립교향악단)의 공연 중에 ‘우리동네 음악회’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자치구마다 순회하면서 공연하거든요. 그걸 이번에 동대문구에선 처음 여는 거죠. 이 공연을 동대문구민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물어봤더니 동대문구에는 공연할 만한 공간이 마땅찮다고 해요. 어떻게든 마련해보겠다고 해서 물색한 곳이 서울시립대 음악홀이에요. 9월 25일 저녁 7시로 예정돼 있습니다.”

- 문화예술 분야와 오랜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런 만큼 느낀 점도 많을 거고요. 평소 가지고 있는 분명한 생각도 있을 테지요?
“문화예술은 우리 삶 속에 스며들어야 그 가치가 제대로 구현되는 분야예요. 문화예술이라는 분야가 당장에 어떤 물질적·경제적 혜택을 주는 건 아녜요. 그렇지만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알려주고 용기를 주는 것만은 확실해요. 언젠가 프랑스팀으로부터 ‘코메디아 델 아르떼(Commedia dell’Arte)’라는 즉흥극 연기 수업을 받은 적이 있어요.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평소의 감정을 표출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심리적인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는데, 특히 사춘기 청소년들이 이 교육을 받으면 질풍노도 시기의 감정 기복을 극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독서를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운다면, 문화예술 경험을 통해선 보다 풍부하게 인생을 느끼고 음미하는 마음의 바탕이 형성될 것이라고 확신해요.”

- 질문 한 가지만 더하고 마무리할게요. 어쨌든 동대문문화재단은 동대문구민을 위한 기관입니다. 그런 만큼 구민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문화예술 공간이 돼야겠죠. 이를 기다리는 동대문구민에게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사실 구민들과 함께하는 문화프로그램이 야외 축제 외에는 무척 적어요. 앞서 말했듯 가장 큰 문제는 공간의 제약입니다. 그래서 생각 끝에 올 하반기에 선농단역사문화관을 활용한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어요. 주민들이 참여하는 작은 공연이나 인문학·역사 강좌, 야외공연 프로그램 등을 이번에 추경으로 편성해 추가로 진행할 계획이에요. 구민 여러분도 관심 가지고 지켜봐 주시고, 참여도 많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답십리영화미디어아트센터는 지난해 6월 개관했다. 앞으로 동대문구민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사진=김응구 기자

계속 얘기하지만, 김경욱 대표이사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본인에겐 아주 큰 부담이다. 기대가 크니 부담이 큰 건 당연지사. 일일이 쓰지 않았지만, 그는 이렇다 할 배경도 없었고 먼저 손을 내민 조력자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혼자 묵묵히 할 일만 해왔다. 그러면서 이겨왔다. 그러면서 인정도 받았다. 과정과 결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동대문구는 그걸 바랄지도 모른다. 화려하거나 눈에 띄게 보여주기보다 있는 그대로, 서툴러도 천천히, 그렇게 뚜벅뚜벅 나아가길 바랄지도 모른다. 모자란 걸 채워주는 도움도 좋지만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스스로 채워나가길 원할지도 모른다. 문화라는 건 그렇게 만들어지는 거니까.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자리에 앉았다. 그러니 이제 빛 볼 일만 남았다. 김경욱 대표이사는 늘 그래왔다. 필요한 자리를 스스로 찾았고 그 자리를 빛냈다. 이제 동대문구가 문화예술로 환하게 빛날 차례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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