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9호 김예은⁄ 2023.06.07 17:17:10
비트코인이 쏘아 올린 암호화폐 혁명을 투기적 자산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에는 비트코인의 기반에 놓여있는 블록체인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온라인 거래 형태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으며, 우리에게 익숙한 주식 및 채권 등 증권거래 형태에도 블록체인 기반의 변혁이 예고된다. 바로 금융권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STO(Security Token Offering, 토큰증권 발행)를 통해서다.
블록체인이란 거래 정보를 담은 장부를 중앙 서버 한 곳에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대등한 관계의 컴퓨터 그룹이 상호 간 직접 통신을 수행하는 P2P(Peer to Peer, 개인 대 개인)네트워크를 통해 여러 컴퓨터에 저장하고 보관하는 기술이다. 이는 거래 정보를 기록한 원장 데이터를 여러 참가자들이 공동으로 기록 및 관리하도록 해 분산원장 기술이라고도 불린다.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에 의해 설계된 블록체인 기술은 중앙 기관의 개입 없이 사용자 간 직접 거래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 탈중앙화된 디지털 화폐 시스템으로 개발됐다.
비트코인이라는 이름 아래 화폐 기능에 중점을 둔 거래 프로토콜(거래 데이터의 교환 방식을 정의하는 규칙 체계)로 시작된 블록체인 시스템은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되고 발전돼 왔다.
그 중 대표적인 응용 형태가 이더리움이다. 이더리움은 비트코인과 다른 블록체인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스마트 계약을 실행하기 위한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플랫폼으로 설계됐다. 이로써 이더리움은 화폐의 역할 외에도 블록체인 네트워크 위에서 스마트 계약을 실행하는 탈중앙화된 스마트 계약 플랫폼을 가능케 했다. STO(Security Token Offering, 토큰증권 발행)는 이러한 스마트 계약 기능의 기반 위에 탄생했다.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토큰증권으로 다양한 권리 증권화
스마트 계약 기술 기반으로 탄생한 토큰증권(Security Token)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증권의 새로운 발행 형태다. ‘토큰증권’은 자산의 권리를 대표하는 증권으로서 효력을 갖지만 실물 증서에 의해 거래 정보가 기재되는 ‘실물 증권’과 달리 디지털 형태로 발행된다. 또한 디지털화된 ‘전자 증권’이 중앙집중식 계좌부에 의해 거래 정보가 관리되는 것과 달리 분산된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거래 정보를 기재 및 관리되는 방식을 따른다.
이러한 토큰 증권을 형성케 하는 스마트 계약은 토큰에 프로그래밍 된 조건과 기능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기존의 형태와 다른 방식의 혁신적 거래 시스템을 가능케 한다.
먼저, 토큰의 총공급량, 최소·최대 투자 금액, 토큰 분배 비율, 토큰 홀더에 대한 권리 등의 스마트 계약이 정의되면 STO 발행자는 블록체인 시스템에 따라 중앙 기관의 개입 없이도 투자 제한과 규칙을 자동으로 시행할 수 있게 된다. 스마트 계약은 규정된 알고리즘에 따라 거래 과정에서 투자자의 신원 확인과 법적 규정 준수 여부를 확인하며, 투자자가 지정한 금액 또는 조건을 충족하면 토큰을 투자자에게 자동으로 배포함으로써 효율적이고 신속한 토큰 분배가 가능하도록 만든다. 이로써 제3자 중개에 따른 과정에서 소모되는 비용과 시간이 절약된다.
STO에서 발생하는 투자와 거래는 블록체인상에서 다수의 노드(Node, 블록체인은 중앙 집중형 서버에 거래 기록을 보관, 관리하지 않고 거래에 참여하는 개개인의 서버들이 모여 네트워크를 유지 및 관리하는데 이 개개인의 서버, 즉 참여자를 노드라고 한다)에 의해 투명하게 기록 및 관리되어, 보안과 신뢰성 역시 강화된다. 중앙 집중 방식 대신 네트워크에 참여한 여러 참가자의 노드를 통해 상호 검증을 거치기 때문에 위변조가 어려워 데이터 원본의 무결성과 신뢰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은 또한 소수점 이하의 작은 단위 거래를 가능케 한다. 블록체인으로 형성된 토큰은 일반적으로 무한히 나눌 수 있는 단위로 표현될 수 있으며, 소수점 단위로 매우 정밀한 분할이 가능하다. 이러한 유연성은 토큰을 미세한 단위로 나누어 거래나 소유권 이전을 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 밖에도, 블록체인은 지리적 제약 없이 전 세계의 참여자들과 상호 작용할 수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에 기반함에 따라 다양한 국가와 화폐 체계 간의 환전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고, 글로벌 거래에서 편의성을 제공한다.
이러한 거래상에 부여하는 혁신성이 주식, 채권 등과 같은 증권 거래 시스템에 블록체인 기술의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어 온 이유이자, 자본시장법 규율 내에 STO가 허용된 계기이다.
현대사회에서 기술의 발전에 따라 정형화된 증권의 범주를 넘어서 다양한 권리의 증권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기존의 정형적인 증권과 거래소 상장 시장 중심의 제도가 이러한 비정형적이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는 거래 형태를 모두 중앙 기관의 통제 속에서 법제화하고 규정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블록체인 방식은 특정 자산을 소수점 이하의 작은 단위로 나누어 거래나 소유권 이전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조각 투자 형태 등의 소액 투자에도 더욱 범용적인 확장성을 갖게 한다.
이를 기반으로 한 토큰증권은 증권사 등 금융기관 중심의 전자증권 제도하에서는 발행이 어려웠던 다양한 권리를 증권화하고, 이러한 비정형적 증권들이 디지털화됨에 따라 편리하게 발행 및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제공한다.
따라서 STO 도입과 함께 다양한 자산들의 토큰화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월 'ST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 방안'을 발표했다. 이론적으로는 모든 증권은 토큰화가 가능해, 부동산뿐만 아니라 비상장주식, 금, 미술품 및 수집품, 각종 지적재산권을 비롯해 한우와 선박과 항공 등도 STO의 투자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또한 블록체인 시스템의 형태 하에서 일정 요건을 갖춘 발행인은 발행인 계좌관리기관이 되어 증권사 등을 통하지 않고도 직접 토큰 증권을 발행할 수 있게 됨으로써, 상장 주식시장 중심인 증권 유통제도가 확대되어 다양한 소규모 장외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STO는 이 모든 형태의 증권 발행, 유통에 기존 전자 증권과 동일한 전자증권법상의 투자자 보호 장치를 적용함으로써 투자자 보호의 공백 없이 다변화된 증권 거래 수요가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
블록체인 시스템은 새로운 형태의 비정형적 증권뿐만 아니라 기존의 증권의 발행과 거래도 더 효율적이고 편리한 관리를 가능케 할 것으로 전망된다. 비상장주식의 주주 파악과 비상장채권의 소액 단위 발행과 거래의 편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다양한 형태의 증권을 음식으로 칭하고, 실물증권, 전자증권, 토큰증권 등과 같은 발행형태를 그릇이라 빗대며 증권의 발행 방식을 특정한 방식으로 규정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음식 종류에 따라 적합한 그릇을 발행인의 선택에 따라 선택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식‧채권 등 정형적인 증권을 토큰 증권이라는 형태의 새로운 그릇에 담는 것도 가능하며, 비금전신탁 수익증권‧투자계약증권 등의 비정형적 증권도 기존 전자 증권 형태로 발행하는 것 역시 제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토큰증권 시장에서 증권사·은행의 역할
관련해 NH투자증권은 STO 시장의 확대와 함께 중장기적으로 전통 금융사 중 증권사의 수혜가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했다. STO 밸류체인은 크게 발행·유통·보관·솔루션으로 나눌 수 있는데, 발행을 주로 담당하는 스타트업보다는 유통을 담당하는 전통 금융사의 역할이 주목받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는 금융권과 디지털산업 융합 과정에서 증권사가 기존 인프라 및 금융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으며, 강력한 플랫폼(MTS)을 통해 토큰 증권의 유통을 담당하며 초기 시장 선점이 가능하다고 짚었다.
STO를 기반으로 한 증권사의 단기 매매수수료 수익은 크지 않겠지만, 플랫폼(MTS) 사용자 수 증가를 통한 역량 강화의 수단으로 기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토스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플랫폼 기반 사업은 다방면으로 확장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증권사를 중심으로 STO 신규 시장 선점을 위한 토큰 증권 협의체 확장 움직임이 나타났다. 키움증권이 발간한 2분기 국내 토큰 증권 시장 동향에 따르면 2월 6일 금융위원회가 토큰 증권 시장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이후 증권사를 중심으로 조각투자 관련 회사, 블록체인 관련 기술 기업 간 협의체가 구성되는 모습을 보였다.
NH투자증권의 ‘STO비전그룹’은 참여사가 8개 사에서 12개 사로 늘어났고, KB증권도 최근 신재생 에너지 관련 토큰 증권 발행 및 유통 서비스 제공을 위해 관련 회사와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키움증권은 1분기 대비 2분기의 주요한 변화로 은행권의 높은 관심을 꼽기도 했다. 1분기 말 한국투자증권이 카카오뱅크, 토스은행과 ‘ST프렌즈’를 형성한 것이 은행권의 유일한 참여 사례였던 반면, 2분기 중 은행을 중심으로 구성된 토큰 증권 컨소시엄이나, 기존 증권사 협의체에 은행이 참여하는 사례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은행이 주축이 되어 구성한 토큰증권 컨소시엄은 NH농협은행, SH수협은행, 전북은행이 주도하고 있으며, 미술품, 한우 조각투자 회사, 비상장주식 거래 플랫폼 등 6개 회사가 참여하고 있다. 이 외에 하나은행은 미래에셋증권과 업무 협약을 진행했고, 케이뱅크와 NH농협은행은 NH투자증권의 ST비전그룹에 참가한다.
이 같은 은행권의 적극적 움직임의 배경으로 키움증권은 토큰증권 시장에서의 은행의 역할을 짚었다. 토큰 증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은행은 토큰 증권 시장에서 계좌관리기관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아직 토큰 증권 직접 발행과 관련된 자기자본 기준이 공개된 것은 아니나 조각투자 업체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직접 토큰 증권 발행도 가능하다.
키움증권은 은행의 컨소시엄 구성이나 증권사 협의체 참여가 유통보다는 발행에 무게를 둔 생태계 구축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대표적으로 Sh수협은행은 지난 4월 20일, 갤럭시아머니트리‧한국해양대학교‧마리나체인과 ‘해양 탄소배출권 토큰증권(Security Token) 발행’ 사업 공동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개인이 참여하기 어려웠던 탄소배출권 투자 프로젝트에 거래 주체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추후 토큰증권을 통한 금융상품 발굴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