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9호 김응구⁄ 2023.06.08 15:54:04
한국인이 유독 사랑하는 와인이 몇 있다. 비교적 오래된 것들이다. 칠레 ‘몬테스 알파’가 그렇고 미국 ‘캔달 잭슨’이 그렇다. 여기에 호주 ‘옐로우 테일’도 낀다. 와인 초심자도 대개 아는 아주 친숙한 와인이다.
한국에선 ‘신동빈 와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평소 즐긴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대기업 회장이 수백만 원대 컬트 와인이 아니라 일반인도 편의점에서 쉽게 사는 이 제품을 종종 마신다고 해 호감도가 더해진 와인이기도 하다. 신동빈 회장은 옐로우 테일 중에서도 카베르네 소비뇽 리저브를 주로 마신다고 한다. 리저브(reserve)는 숙성 기간이 조금 오래된 고급 와인이다.
옐로우 테일은 단어 그대로 ‘노란 꼬리’라는 뜻이다. 실제 호주에 사는 캥거루과(科) 왈라비의 애칭이다. 다리와 꼬리에 노란색 무늬가 있다. 원래 ‘옐로우 푸티드 록 왈라비(Yellow Footed Rock Wallaby)’라고 부르는데, 애칭으로 옐로우 테일이라고 하는 것에 착안해 와인 이름으로 지었다. 캥거루와 비슷한 왈라비가 와인 라벨에 그려져 있어 누가 봐도 호주 와인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옐로우 테일의 인기는 우리나라에서만 대단한 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졌고, 지금도 꾸준히 소비되고 있다.
‘세계 와인 파워 지수’(Global Wine Brand Power Index)라는 게 있다. 와인시장 분석기관인 와인 인텔리전스(Wine Intelligence)가 해마다 미국·영국 등 20여 개국에서 소비되는 와인 브랜드를 대상으로 소비자의 선호도나 구매 의도 등을 고려해 선정한다. 지난해까지 옐로우 테일은 세계 와인 파워 지수에서 5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대단한 기록이다.
롯데칠성음료가 수입하는 와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브랜드가 바로 옐로우 테일이다. 지난 2005년 5월 한국에 처음 선보였다. 한 해에도 수많은 브랜드가 생겼다가 사라지는 국내 주류시장에서 20년 가까운 세월이면 장수 브랜드에 속한다.
그럼, 얼마나 팔렸을까. 옐로우 테일은 한국 시장에서 2005년부터 2022년까지 18년간 누적 판매량 1000만 병을 기록했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한 달 평균 4만7000병, 하루 평균 1500병씩 팔렸다. 현실적으론 불가능하지만 재미를 섞어 비유하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해발 8848m)를 373개 정도 쌓을 수 있는 수량이다.
옐로우 테일은 호주 카셀라(Casella) 와이너리가 생산한다. ‘카셀라 패밀리 브랜드’라고도 한다. 1969년 이탈리아 출신의 필리포 카셀라(Filippo Casella)가 설립했다. 지금은 그의 아들인 존 카셀라(John Casella)가 운영을 맡고 있다. 2005년 ‘호주 수출 명예의 전당’, 2009~2010년 ‘호주 최고의 와인 가문’에 선정됐을 정도로 현재 호주를 대표하는 와이너리 중 한 곳이다.
카셀라 와이너리가 옐로우 테일을 출시한 건 2001년의 일이다. 당시 ‘누구나 쉽게 즐기는 와인’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전 세계 시장에 선보였다. 지금은 한국을 포함한 7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옐로우 테일은 호주 와인 전체 수출량 가운데 약 17%를 차지할 정도로 생산량이 어마어마하다. 롯데칠성음료에 따르면 1시간당 3만6000병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보유하고 있으며, 생산 물량의 약 84%를 수출하고 있다.
론칭된 지 18년이 넘었어도 한국 시장에선 여전히 매력 있는 와인으로 평가받는다. 3년여의 팬데믹 기간에 혼술·홈술 등으로 국내 와인시장은 더 성장했고, 그 같은 성장세에 옐로우 테일의 인기는 더욱 가속이 붙었다. 롯데칠성음료 측은 “최근 5년간 옐로우 테일의 연평균 판매량이 12.1%씩 증가하고 있어, 한국 시장에서 호주 와인의 입지가 더욱 넓어지고 있다”고 했다.
“다가올 론칭 20주년 위해 마케팅 더욱 강화할 것”
카셀라 와이너리의 존 카셀라 회장과 제임스 윌슨 아시아태평양 총괄이 한국을 찾았다. 옐로우 테일 18주년을 기념하고, 카셀라 와이너리의 향후 계획을 알리기 위해서다. 5월 17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가진 간담회에는 주한호주대사관 알렉산드라 씨들(Alexandra Siddall) 부대사도 참석했다. 존 카셀라 회장은 지난 2014년 3월에도 한국을 방문했다. 그때는 옐로우 테일 론칭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자리였다. 하고 싶은 얘기는 모두 많은 듯 보였지만 정해진 시간에 따라 간략한 질문과 대답 몇 가지만 주고받았다.
- 한국 시장에서 옐로우 테일의 인기가 꾸준하다. 그 원인을 어떻게 분석할 수 있을까.
(존 카셀라 회장) “우선, 품질이 매우 뛰어난 점이 가장 크다. 옐로우 테일은 한 번도 저렴한 와인인 적이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옐로우 테일이 밸류 포 머니(value for money·가격 대비 효용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밸류 포 머니는 단순히 저렴하다는 뜻이 아니다. 소비자가 특정 가격을 지불했을 때는 충분한 가치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것은 지표로도 확인할 수 있다. 옐로우 테일은 모든 와인을 통틀어 재구매율이 가장 높은 와인이라고 본다. 재구매율이 높다는 것은 결국 품질과 가치를 모두 만족시켰다는 것이다. 이 같은 요인이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시장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 이제 곧 20주년이 다가온다. 특별한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존 카셀라 회장) “지난 2005년 첫 론칭 후 18년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인 한국 시장은 옐로우 테일과 호주 와인 입장에선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지난 시간 동안 한·호주 FTA(자유무역협정) 등으로 호주 와인에 대한 한국 소비자의 관심이 많이 높아져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우리는 최근 5년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인 한국 와인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다가오는 론칭 20주년을 위해서도 파트너사인 롯데칠성음료와 함께 한국 시장의 마케팅 활동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롯데칠성음료는 시장·소비자·제품의 이해도와 능력, 마인드셋(사고방식)이 굉장히 좋다.”
- 카셀라 아시아태평양 총괄 입장에서 봤을 때 한국 시장의 잠재력은 어느 정도인가.
(제임스 윌슨 총괄) “한국의 경제 수준과 평균 음주량을 고려했을 때 성장 가능성이 깨나 큰 시장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기존 소주·맥주 위주의 음주 소비가 다양한 주종으로 확대되고 있고, 팬데믹 기간의 와인 시장 성장세는 매력적일 정도다. 물론, 코로나19 이후의 한국 시장 주류소비 패턴이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어 확답할 순 없지만, 현재 관점에서 봤을 때 한국 시장은 충분히 매력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또 한국의 음식·문화·취향의 다양성을 고려해볼 때 다양한 품종과 특색으로 대표되는 호주 와인은 한국 시장에 적합한 주종이라고 생각한다.”
- 그럼, 한국 음식과 잘 어울릴 것 같은 호주 와인 품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제임스 윌슨 총괄) “한국 음식은 한국의 소주·맥주와 잘 어울리지만 풀바디(full-bodied)의 묵직한 시라즈와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밖에도 다양한 맛과 매력의 한국 음식을 더욱 돋보이게 할 만한 여러 품종의 와인이 호주엔 준비돼 있다.”
- 옐로우 테일은 어떤 한국 음식과 어울릴 듯 보이나.
(제임스 윌슨 총괄)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삼겹살과 잘 어울릴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한국의 삼겹살집에도 옐로우 테일이 판매됐으면 한다.”
- 옐로우 테일 수출국 가운데 한국 시장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또 옐로우 테일 말고도 카셀라 와이너리가 한국에 유통하는 브랜드는 무엇이 있나.
(제임스 윌슨 총괄) “한국 시장 규모는 일곱 번째다. 그리고 옐로우 테일 외에 ‘피터르만’이 있다. 이밖에도 상황에 따라 적절한 브랜드를 추가로 론칭하고 싶다.”
롯데칠성음료는 5월 17일 ‘피터르만 마스터스 시리즈’를 국내 출시했다. 피터르만은 카셀라 와이너리가 2014년 인수한 남호주 바로사(Barossa) 지역의 프리미엄 와인이다. 이미 국내에 소개된 ‘피터르만 멘토’를 포함해 ‘에잇송즈 쉬라즈’, ‘마가렛 세미용’ 등 라인업을 보강해 5종으로 출시됐다.
- 전 세계 시장에서 호주 와인의 선전이 대단하다. 한국에서의 인기도 만만치 않고.
(알렉산드라 씨들 부대사) “호주는 와인 양조용 포도를 재배하는데 아주 적합한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2500여 개에 이르는 와이너리에서 시라즈·샤도네이 등 100여 개 품종의 와인을 연간 400억 호주달러 규모로 생산하고 있다. 한국은 최근 2년간 수입량이 크게 늘면서 10번째 호주 와인 수입국으로 급부상했다. 이 자리를 빌려 한국의 와인 소비자들과 존 카셀라 회장을 비롯한 옐로우 테일의 노력에 깊이 감사드린다.”
호주 와인 수입액, 최근 5년간 큰 폭 신장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해 와인 수입액은 전년보다 3.8% 증가한 5억8128만2000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013년부터 10년 연속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와인 수입은 팬데믹 시기에 더욱 크게 늘었다. 2019년 2억5926만 달러에서 2020년 3억3200만 달러로 27.3% 증가했으며, 2021년에는 5억5981만 달러로 69.6%나 급증했다. 지난해 수입액은 20년 전인 2002년과 비교하면 20배가량에 늘었다.
지난해 와인 수입액을 국가별로 살펴보면 프랑스가 2억335만 달러로 가장 많았고, 미국은 1억267만 달러, 칠레는 6672만 달러, 스페인은 3627만 달러, 호주는 3232만 달러였다. 이중 호주는 프랑스·미국 등에 비하면 적은 액수지만 신장률로 보면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 호주 와인 수입액은 최근 5년간 큰 폭으로 신장했다. 지난해 기준 수입량은 5059톤으로 5년 전의 2653톤보다 약 90% 늘었다. 수입액 역시 같은 기간 1298만1000달러(약 173억6727만 원)에서 3232만3000달러(약 432억4494만 원)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 실적발표(IR) 자료에서 “올해 중 국내외 신규 와이너리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해 6월 아일랜드 출장 중 비공식 일정으로 프랑스 보르도 등을 방문하며 와이너리를 물색했다. 롯데칠성음료의 광폭 행보는 이미 예견됐다. 지난해에는 와인 복합공간 ‘오비노미오’를 오픈하고 점포를 3곳으로 늘렸다. 앞서 2021년에는 롯데마트를 통해 주류 전문 매장 ‘보틀벙커’를 선보였다. 소비자의 뜨거운 반응에 올해는 4호점인 서울역점까지 문을 연다.
이 가운데 ‘안정적’인 옐로우 테일과 ‘도전적’인 피터르만을 앞세운 호주 와인의 ‘진격’은 올해에도 뜨겁게 이어질 전망이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