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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규상 칼럼] 정치판·검찰 뒤흔든 ‘고관집 절도 사건’과 검찰의 정치적 중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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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49호 문규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2023.06.15 09:10:29

(문화경제 = 문규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1998년 9월 필자는 서울지검에서 인천지검으로 전보되었고, 1999년 3월 부부장검사로 승진되었습니다. 서울지검에서 특수부 검사로 2년, 공판부 검사로 6개월을 지내면서 피폐하였던 심신을, 서울에서 인천으로 동기생인 황보 검사와 함께 출퇴근하면서 많은 대화를 통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인천은 서울지검에 비해 사건 부담이 크지 않아 동료, 후배 검사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이 비교적 많았으나 승용차로 직접 운전하여 장거리를 출퇴근해야 하였고, 운전면허가 없는 황보 검사를 제 승용차로 모셔야 했기에 가급적 술은 입에 대지 않았고 피치 못할 경우에는 차를 두고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였습니다.

고관집 절도 사건 수사

꿈같은 세월을 보내고 있던 1999년 3월 중순경 경인일보를 보다가 사회면에 실린 절도 사건 관련 기사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집주인이 집 안에 있는데도 빈집 털이를 하려고 빠루로 현관문을 파손하고 아파트에 침입하려다가 발각되어 미수에 그치고 도주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아파트 경비원과 경찰에 의해 2명의 절도범이 검거되었는데 그들이 운전하던 승용차의 트렁크 안에서 각종 귀중품과 동양화, 서양화 등이 가득 차 있어 모두 장물로 의심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관할서인 인천부평경찰서가 주인들을 찾아주려면 고생 좀 하겠다’고 생각하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며칠 후 필자가 서울지검과 서울남부지청에 근무할 때 검사장과 지청장으로 직접 모셨던 안00 전 검사장(당시에는 변호사로 활동 중이었음)으로부터 전화가 와 “문 검사 잘 지내는가? 지인이 몇 달 전에 강도들에 의해 집에 걸려있던 그림들과 귀중품들을 강탈당했는데 뉴스를 보니 ‘인천 부평경찰서에서 수사 중인 절도 구속 사건의 피의자들이 검거되면서 타고 도주하던 승용차 트렁크 안에서 장물로 의심되는 그림 등 수많은 물품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인천부평경찰서에 전화를 해서 그 물품들 속에 강탈당한 피해품들이 있는지 직접 찾아볼 수 있도록 해 주면 좋겠다”고 하여 평소 안면이 있던 인천부평경찰서의 형사계장에게 전화하여 용건을 말했더니 “그렇지 않아도 뉴스가 나간 후 ‘장물을 보고 싶다’는 전화가 많이 옵니다. 어차피 장물의 주인을 찾아야 여죄를 수사할 수 있으니 얼마든지 환영합니다”며 흔쾌히 말하길래 형사계장의 말을 그대로 안00 검사장에게 전달하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구속 사건이 필자에게 배당되었는데 기록을 펼쳐 읽어보았더니 바로 그 부평경찰서 절도 사건이었습니다. 통상 부부장검사실에는 아무리 구속 사건이라 하더라도 절도 사건 같은 가벼운 사건은 배당이 되지 않는데 필자에게 배당된 것은 아마도 안00 전 검사장이 배당권자인 차장검사께 특별히 부탁을 하지 않았나 하고 가볍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피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이 현직 농림부 장관, 대통령 경제특보이자 전라북도지사, 안양경찰서장 등의 ‘정부 고위 관료들’로서 IMF 체제하의 엄혹한 경제 상황 하에서 힘들게 살아가던 국민 입장에서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거액의 달러, 수억 원 대의 미술품, 뇌물로 보이는 김치냉장고 속의 돈 봉투 등의 피해품이 절도 피의자들의 입을 통해 여과없이 발설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을 통해 거의 매일같이 정부·여당을 비난하는 기자회견과 성명이 발표되는 등 단순 절도 사건이 정국을 뒤흔드는 정치 사건으로 비화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범인 일당이 고관집에서 훔쳤다는 그림을 놓고 일어난 의혹을 당시 KBS 뉴스가 보도하고 있다. 

주범 K의 거래 제안과 마약 검사 의뢰

주범 K를 구치감에서 불러 신문을 해보니 자신이 절도미수 범행 현장에서 발각되어 도주하다 검거·구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절도미수 사건에 대해서는 범행을 완강히 부인한 반면에 장관, 도지사, 경찰서장, 국회의원 등 고관과 정치인들의 집에서 수억 원 대의 그림과 귀중품들을 훔친 사실에 대해서는 범행을 털어놓겠다고 하면서 “제게 선처를 베풀어주면 검사님이 공을 세울 수 있도록 해 드리겠다”며 황당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선처를 바라느냐”고 하였더니 “나는 절도 전과 12범이고 15세부터 교도소를 들락거려 32세가 된 지금까지 모두 11년 6개월 동안 감옥에서 보내 보호감호처분 대상이기 때문에 구형을 할 때 보호감호처분을 빼준다면 틀림없이 고관집 절도 범행을 확실히 털어놓고 숨겨놓은 증거들도 제출하겠다”며 필자에게 딜을 하자고 제의를 하였습니다.

하도 거침없고 황당한 이야기를 하길래 저희 검사실의 수사관(당시는 계장이라고 호칭하였음)에게 주범 K의 모발 30여 개를 뽑아 대검찰청에 마약 검사 의뢰를 하라고 지시하였고, 공범 K에 대해서도 역시 모발 30여 개를 뽑아 대검찰청에 마약 검사를 의뢰토록 하였습니다.

주범 K의 진정서

그런데 다음날 아침 조간에 주범 K가 경찰 유치장에 있을 때 자신의 주거지 소재 안양 만안구의 한나라당 소속 지구당위원장에게 ‘내가 농림부 장관, 전라북도 도지사, 안양경찰서장 등의 관사에서도 절도 범행을 하였다고 폭로했더니 경찰에서 이를 은폐·축소하려 하여 진정서를 보내니 이를 터트려 달라’는 취지의 진정서를 보냈고, 한나라당에서는 이 진정서를 근거로 기자회견을 여는 등으로 단순 절도 사건이 정치 사건으로 비화될 조짐이 보였습니다.

그 기자회견 후 여러 언론사에서 기자회견 내용을 근거로 검사실로 전화가 빗발치고 직접 찾아오는 등 도저히 수사를 하지 못할 정도로 시끄러워졌습니다. 그 이후 상부에 보고하여 기자들의 검사실 출입을 통제하고, 일체 외부의 전화를 받지 않고 수사에만 몰두하였습니다.

주범 K와의 약속

피의자들은 자신들의 의도와는 달리 대검에 마약 검사를 의뢰하는 등 타협할 기미가 전혀 엿보이지 않고 오히려 수사의 강도가 점차 세어지자 수사에 심한 반감을 가지고 구치감에서 검사실로 소환되는 과정에서 검사와 수사관에게 큰 소리로 욕설을 퍼붓고 검사실에 와서는 벽에 머리를 처박는 자해행위를 하는 등 도저히 수사를 진행하지 못할 정도의 행패를 부렸습니다.

그러나 구속 기간은 점점 흘러가고 있어 그들을 달래보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주범 K를 상대로 “그렇게 수사에 비협조적이면 당신에게 불리하지 않느냐. 당신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더욱 수사에 협조하여 당신의 주장을 입증해 봐라. 먼저 승용차에서 발견된 장물 의심 물건들의 출처를 밝힐 수 있도록 노력하고 그것이 밝혀지면 당신의 주장에 신빙성을 얻을 수 있으니 당신을 믿고 농림부장관, 전라북도 도지사, 안양경찰서장 관사 절도 사건에 대해서 철저히 조사를 하겠다”며 약속을 하고 동거녀와 면회도 허락해 주었습니다.

주범 K에 대한 여죄 수사

주범 K는 동거녀와 면회를 한 이후 장물 의심 물건들의 출처에 대해 대체로 입을 열었는데 그의 진술에 의하면 안00 전 검사장의 지인이 살고 있던 한강변의 모 아파트 강도 사건, 부산 광안리 인근의 모 아파트 강도 사건 등과 당시 범행의 공범들을 털어놓았습니다.

그 즉시 부평경찰서 형사계장을 불러 주범 K로부터 들은 내용을 알려주면서 추가 수사를 지시하였고 필자는 구속 기간(연장하여 20일) 내에는 의견서 범행 사실 중 절도미수 사건 이외의 다른 범행 사실에 대해서는 도저히 수사가 미진하여 결론을 낼 수 없는 상황이라 상부에 보고를 한 후 일단 절도미수 사건에 대해서만 분리하여 기소하고 나머지 의견서 범행 사실에 대해서는 추가 수사를 한 후 기소 여부를 결정하기로 하고 먼저 증거가 확보된 절도미수 범행에 대해서만 기소를 하였습니다.

고관집 절도 사건에 대한 본격 수사

그 후 피의자들을 매일같이 불러 그들이 주장하는 장관집, 도지사, 경찰서장 관사 절도 범행에 대해서 세밀하게 조사를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지역 신문에 인천지검에서 고관집 절도 사건을 수사하면서 절도미수 사건 1건에 대해서만 기소를 하고 나머지 여러 건의 고관집 절도 사건에 대해서는 덮어버리고 축소·은폐 수사를 하였다는 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이러한 보도가 난 데는 기자로부터 ‘기소된 절도미수 이외의 나머지 범행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문의 전화가 왔을 때 필자의 입장에서는 부평경찰서에 추가 수사 지휘를 한 사실을 알려줄 수 없었고, 고관집 절도 사건에 대해서도 미주알 고주알 수사 진행 상황을 밝힐 수가 없었기에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변한 것을 기자가 사실확인도 없이 절도미수 사건 1건에 대해서만 분리기소를 하였다는 이유로 지레짐작하여 사건을 축소·은폐 수사한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억측보도를 한 것이었습니다.

그 보도 이후 다시 언론은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일방적으로 검찰을 비난하였고,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도 검찰과 여당인 민주당의 유착설을 퍼뜨리며 대놓고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축소·은폐수사라는 의심을 받다

사실 주범 K의 일방적인 폭로 내용에는 장관, 도지사, 경찰서장뿐만 아니라 사회저명인사와 국회의원들도 포함되어 있었고 정치인들도 주로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이름이 많이 거명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모 국회의원의 집에 들어갔더니 화장실 변기 덮개가 순금이라서 이를 떼 내려고 용을 쓰다 시간이 촉박하여 실패했다는 등의 황당한 말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거명한 국회의원의 이름과 집의 위치도 그때그때마다 바뀌어 도저히 신빙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이를 수사 대상으로 삼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언론과 야당에서는 검찰과 여당을 싸잡아 유착설 등을 퍼뜨리며 비난하였고, 여당은 악화되는 여론 때문에 검찰에 대해서 빨리 수사를 진행하여 여론을 뒤집어 달라는 요구를 하며 압박을 가해 왔습니다.

검찰총장의 주임검사 교체 지시와 검사장의 격려

이러한 사실은 당시 필자가 검사장실에 보고하러 들어갔을 때 검사장이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던 중이라 다시 밖으로 나가려고 하니 검사장이 그대로 있으라며 손짓을 하여 본의 아니게 옆에서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상대방은 당시 검찰총장이던 김00 씨로 훗날 옷 로비 사건 등으로 낙마하셨던 분입니다.

전화기에서 들려오던 소리는 ‘빨리 수사를 진행하여 여론을 전환시키라’고 하는 것 같았고 ‘주임검사를 자르고 다른 검사로 교체해라’고 하는 것으로 들렸습니다. 그러자 당시 검사장이던 강00 전 대법관은 의외로 총장에게 “아무리 급박해도 그렇게 할 수 없다. 주임검사를 그대로 믿고 쓰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필자가 바로 옆에서 그 소리를 듣고 하도 민망하여 ‘죄송하다’고 하였더니 강 검사장은 “총장이 지금 이성을 잃은 것 같다”고 하시면서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끝까지 저를 믿고 격려해 주셨던 강00 전 대법관님께 늦었지만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고관집 도둑’ 사건이 절정을 향해 치닫던 시점인 1999년 4월 19일 한겨레신문의 사회면 전체가 관련 기사로 뒤덮여 있다. 김대중 정권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의혹 제기로 사건이 일대 사회 문제화됐음을 보여준다.

여죄 수사의 개가와 마약 검출

그 무렵 부평경찰서로부터 추가 수사 결과를 보고받았는데 추가 범행의 공범들을 검거하러 갔을 때 마침 그들이 한 곳에 모여 전국을 돌면서 절도 범행을 하여 취득한 장물을 모아놓고 논공행상을 하던 중이라 부평경찰서 형사들은 공범 여러 명을 일망타진 검거, 구속하고, 여러 건의 절도와 강도 범행을 밝혀내는 개가를 올릴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그 무렵 대검찰청으로부터 피의자들에 대한 마약 검사 결과 ‘두 사람의 모발에서 모두 히로뽕이 검출되었다’는 통보가 왔는데 주범 K는 통상의 히로뽕 상습 투약자보다 약 5~10배의 양이, 공범 K는 약 2~3배의 양이 검출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두 사람에게 히로뽕 검출 사실을 알려주고 언제부터 투약하였는지 신문을 하였더니 주범 K의 말로는 빈집털이를 하면서 아파트 현관문에 우유 투입구가 있는 경우에는 긴 막대 끝에 모터를 부착하여 자체 제작한 열쇠를 우유 투입구를 통하여 밀어넣고 이를 이용하여 현관의 자물쇠를 열고, 우유 투입구가 없는 경우에는 빠루 같은 기구를 현관문의 틈새에 넣어 제치는 방법으로 문짝을 파손하고 안으로 침입하여 대담하게 절도 범행을 하였는데 통상 우유 투입구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약 10분 이내의 시간이, 빠루를 이용하여 문을 여는 경우에는 약 15분 전후의 시간이 소요되므로 그 시간 동안에는 극도의 긴장감과 불안감 때문에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히로뽕을 미리 주사로 투약하거나 분말을 커피나 음료수에 타서 마신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습절도범도 범행을 할 때는 극도의 긴장감을 느끼고 불안감에 휩싸인다는 사실을 범인들의 입을 통하여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유 투입구를 통한 절도 범행

그리고 그들은 자체 제작한 막대 열쇠나 빠루 같은 기구들은 바이올린 케이스나 대형 007 가방 같은 것에 넣어 다녔다고 하였는데 피의자들이 검거된 날도 그들은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진술에 의하면 우유 투입구를 이용한 절도 범행 수법은 그들 조직이 대한민국에서 처음 사용하였다고 하여 수사를 종결하고 수사 결과를 발표할 때 그 같은 사실을 언론을 통하여 알렸더니 그 이후부터는 대한민국의 아파트 출입문에서 우유 투입구가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범 K의 추가 범행이 밝혀진 후 더욱 고관집 절도 범행에 대해서 수사에 박차를 가하였습니다. 우선 주범 K를 앞장세워 범행 현장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확인해 보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세밀하게 수사를 하였습니다.

유00 전라북도 도지사의 서울관사 절도 범행 수사

맨 처음 현장을 직접 확인한 곳은 서울 강서구 염창동에 있던 유00 전라북도 도지사의 서울관사입니다. 유 지사는 당시 IMF 상황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특보를 겸하고 있어 그의 정치적 영향력이 대단하였는데 주범 K는 그곳에서 미화 신권 12만 달러가 들어있는 007 가방을 절취했다고 하여 더욱 언론의 관심과 사회적 이목을 끌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서울관사에는 이태리에서 수입한 화려한 가구와 침대가 놓여있었다고 하였으나 현장에 가서 직접 확인해 보니 진짜 이태리 수입품은 아니었고, 이를 모방하여 국내에서 제작한 모조품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그의 진술에 비추어 피의자들이 그곳에 침입하였던 것은 사실로 보였지만 그곳에서 12만 달러를 절취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주범 K가 안양 유흥업소의 모 종업원에게 007 가방에 들어있는 12만 달러를 자랑삼아 보여주었다고 하여 그를 수소문하여 조사를 하였으나 그는 007 가방에 달러가 들어있는 것을 본 것이 아니라 1만원권 지폐가 들어있는 것을 보았을 뿐이라고 진술하였고, 명동 암달러상 미미 엄마에게 훔친 달러를 환전하였다고 하여 명동 암달러 시장을 샅샅이 뒤졌으나 미미 엄마를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고, 주범 K가 훔친 달러를 흥청망청 쓰고 다녔다는 음식점과 유흥업소를 상대로 조사하였으나 헌 달러 지폐 몇백 달러 정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이 있을 뿐이었고, 공범 K의 부인 나 모 씨도 주범 K가 달러를 소지하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없고 주범 K로부터 달러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주범 K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하였으며, 유 지사와 그의 비서실장을 소환조사하였으나 12만 달러의 존재 자체를 완강하게 부인하여 도저히 그 실체를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안양경찰서장 관사 절도 범행 수사

또한 배00 경찰서장 관사의 김치냉장고 안에서 설과 추석 명절에 받은 것으로 보이는 800만 원이 들어있는 돈 봉투 수십 장을 절취하였다고 하면서 봉투의 겉면에는 돈 봉투를 준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회사대표들과 세무서장 등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 하면서 자신이 돈을 꺼내고 남은 빈 봉투 20여 장을 증거로 숨겨두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배 서장을 소환하여 조사한 결과 김치냉장고에 넣어둔 돈 봉투는 자신이 관내 파출소를 지도방문하거나 부하 직원들을 격려할 때 주려고 소액의 격려금을 넣어두었던 돈 봉투 몇 장과 업무추진비 봉투와 빈 봉투 몇 장이 들어있었던 것으로, 격려금 봉투 겉면에는 모두 한자로 ‘激勵(격려)’라고 쓰여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주범 K를 상대로 배 서장이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숨겨두었다는 빈 봉투를 제출하면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 금방 해결될 수 있지 않느냐고 설득하는 한편 주범 K의 집을 압수·수색할 듯한 태도를 보였더니 자신의 동거녀 김 씨를 면회시켜 주면 자신이 김 씨를 통해 숨겨둔 돈 봉투를 증거로 제출하겠다고 하여 동거녀 김 씨를 면회시켜 주고 김 씨가 돈 봉투를 찾으러 주범 K의 집으로 갈 때 수사관 2명을 동행토록 조치하였습니다.

몇 시간 후 김 씨와 동행하였던 수사관으로부터 급한 전화 연락이 와서 받아보니 동거녀 김 씨가 자신들이 밖에서 기다리는 사이에 숨겨둔 돈 봉투를 안방에서 몰래 불태우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급히 이를 제지하였으나 현장에는 타다 남은 재와 불에 거슬린 상태로 남아있는 봉투밖에 없다는 보고였습니다. <다음 회에 계속>

- 필자 소개

법무법인 대륙아주 문규상 변호사는 1978년 서울법대 졸업, 1987년 검사로 임용되어 ‘특수통’으로서, 변인호 주가 조작 및 대형 사기 사건, 고위 공직자 상대 절도범 사건, 부산 다대/만덕 사건, 강호순 연쇄 살인 사건 등을 맡아 성과를 냈고, 2003년의 대선 자금 수사에서도 역할을 했다. 2009~2014년 대우조선해양의 기업윤리경영실장(부사장)을 역임하며 민간 부패에 대한 경험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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