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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옷’ 이어 이번엔 ‘신발’이다…세종미술관에 등장한 ‘사탄 신발’

런던 디자인 뮤지엄 월드투어 전시 ‘스니커브 언박스드’ 서울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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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50호 김금영⁄ 2023.06.20 11:23:56

예술가 집단 미스치프가 미국 래퍼 릴 나스엑스와 공동제작한 '사탄' 스니커즈(왼쪽)와 요르단강에서 끌어온 성수를 넣은 '지저스' 스니커즈. 사진=김금영 기자

실제 사람의 피 한 방울이 담긴 운동화가 등장했다. ‘사탄 신발’이라 불린 이 제품은 666족 한정판으로 판매됐는데, 약 115만 원의 고가에도 불구하고 1분 만에 완판되는 등 많은 관심을 받았다.

2021년 예술가 집단 MSCHF(미스치프)가 선보인 신발 이야기다. 미스치프는 미국 래퍼 릴 나스엑스와 손잡고 ‘나이키 에어맥스 97’ 에어쿠션 부분에 사람의 혈액이 한 방울 섞인 잉크를 넣은 개조 제품을 판매했고, 이 제품은 화제와 동시에 논란의 대상이 됐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나이키에 항의 전화를 했고, 불매운동까지 일어났다. 놀란 나이키는 미스치프에 적극 항의하며 상표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전량 회수 조치에 들어갔다.

나이키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니커즈 모델 중 하나인 '에어포스 1'이 전시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이 논란의 운동화가 전시장에 등장했다. ‘스니커즈 언박스드 서울’전은 단지 신발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삶의 일부가 돼 여러 세대의 정체성을 대변해 온 스니커즈의 역사를 따라간다. 사탄 신발 또한 이 중 하나다.

이번 전시를 공동주최한 UNQP 김현석 대표는 “본래 스니커즈는 운동선수를 위해 기능성을 강화한 신발의 한 종류였지만, 그 사회가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지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했다”며 “사탄 신발 또한 예술적 가치와 표현의 자유가 이슈가 되며, 과연 표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 미신적 이슈보다 평범한 일상소품 중 하나가 사회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고, 때로는 논란에 휩싸이며,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지 바라보는 매개 차원에서 사탄 신발을 이번 전시에 선보였다”고 말했다.

1985년 첫 발매 이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단순한 신발을 넘어 문화적 아이콘으로 떠오른 '나이키 에어 조던'의 컬렉션이 전시됐다. 사진=김금영 기자

스니커즈 언박스드 서울은 1989년 설립돼 디자인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보유한 런던 디자인 뮤지엄의 월드투어 전시다. 2021년 영국 런던에서 포문을 열었고, 네덜란드 덴보쉬, 대만 타이페이를 거쳐 이번엔 서울에 역대 가장 큰 규모로 마련됐다.

 

전시는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열리는데, 앞서 세종미술관은 이랜드그룹과 손잡고 마이클 잭슨, 마가렛 대처, 찰리 채플린, 마이클 조던 등 다양한 분야의 유명인사가 직접 착용한 패션 소장품을 대거 선보이는 ‘셀럽이 사랑한 백&슈즈’전을 연 바 있다. 이번엔 스니커즈를 전시하며 그 맥락을 이어간다. 패션이나 문화에 관심이 많은 젊은 층 사이 소위 대표적인 ‘힙 플레이스’로 꼽히는 성수동, 홍대가 아닌 클래식함의 상징인 광화문에서 이 전시를 마련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관련해 세종문화회관 측은 “스트리트 패션과 관련한 전시를 선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글로벌 뷰티·패션 도시를 표방하는 서울의 중심에 위치한 세종문화회관은 실험적이며 동시대적인 트렌드를 지닌 이번 전시를 공동 주최하며 예술의 영역을 넓히고 대중과 보다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고자 했다”고 밝혔다.

사람의 혈액이 들어가 논란이 된 '사탄' 스니커즈가 전시된 모습. 현재는 혈액이 말라서 사라진 상태다. 사진=김금영 기자

사탄 신발을 비롯해 스니커즈 문화 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사진과 영상, 각종 카탈로그 및 드로잉 등 약 700~800여 점의 오브제를 전시한다. 나이키, 아디다스, 슈프림, 뉴발란스, 반스, 컨버스, 리복, 푸마 등 스니커즈 브랜드뿐 아니라 루이비통, 프라다, 베르사체, 발렌시아가 등 하이패션 브랜드의 스니커즈도 함께 선보인다.

단순히 규모만 큰 게 아니라 역사상 가장 많이 거래된 스니커즈, 기술 도핑 등의 문제로 육상경기에서 착용이 금지된 스니커즈, 화성 탐사선 에어백에 사용한 섬유로 만든 스니커즈, 커피가루를 재활용해 만든 스니커즈 등 역사와 의미를 지닌 스니커즈들을 선별했다.

‘스니커즈의 제왕’ 에어 조던부터 지드래곤 한정판 신발까지

'패션계의 르네상스 맨'으로 불렸던 고(故) 버질 아블로가 나이키의 상징적인 스니커즈 10개를 다시 만들어내 화제가 됐던 '더 텐' 시리즈. 사진=김금영 기자

전시는 크게 4가지 섹션으로 구성됐다. 첫 섹션은 ‘스타일’로, 사람들의 인식 속 대표적인 스니커즈로 이른바 ‘스니커즈의 제왕’이라 불리는 ‘에어 조던’이 화려하게 장식한다.

 

2005년 출시 당시 매장에서 단 30족(전 세계로는 150족)만 한정 판매해 신발을 사려는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켜 경찰까지 출동하는 등 사회적으로도 파장을 일으켰던 ‘나이키x제프 스테이플 나이키 덩크 SB 로우 스테이플 NYC 피죤’을 비롯해, 스트리트 패션계에서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되며 ‘패션계의 르네상스 맨’으로 불렸던 고(故) 버질 아블로가 나이키의 상징적인 스니커즈 10개를 다시 만들어내 화제가 됐던 ‘더 텐’ 시리즈 등을 볼 수 있다.

지드래곤의 '피스마이너스원' 시리즈 중 '피스마이너스원X나이키 에어포스1 파라노이즈', '피스마이너스원X나이키 퀀도1'. 사진=김금영 기자

전시 큐레이터 리가야 살라자르는 “1970년대 주로 운동선수들에게 유통되던 스니커즈는 스포츠와 대중음악의 인기에 힘입어 젊은 세대의 욕구를 자극하는 상징적인 아이템이 됐다”며 “대표적으로 나이키를 비롯해 아디다스, 컨버스, 리복 등 유명 제조사들이 뮤지션과 스포츠 스타들을 앞세운 마케팅을 시작했고, 에어 조던의 탄생을 계기로 스니커즈는 단순한 신발을 넘어서 아이콘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1990년대는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열망이 널리 퍼지던 시기로, 스포츠 브랜드와 패션 디자이너의 독특한 컬래버레이션과 한정판 출시 등 스니커즈 특유의 문화가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전례 없는 인기를 얻은 스니커즈는 패션 아이템 중 가장 실험적인 장르로 자리 잡았다”고 덧붙였다.

전시장 한켠에 마련된 ‘아워월’은 364개의 스니커즈가 모여 거대한 벽을 이뤘는데, 다양한 컬렉터와의 협업을 통해 이뤄낸 결과물이다. 사진=김금영 기자

오늘날 스니커즈는 MZ세대를 중심으로 재테크 열풍의 주역으로도 떠올랐다. 국내에서 그 시작점이라 볼 수 있는 지드래곤의 ‘피스마이너스원’ 시리즈 중 ‘피스마이너스원X나이키 에어포스1 파라노이즈’(이하 에어포스1 파라노이즈), ‘피스마이너스원X나이키 퀀도1’를 볼 수 있다.

피스마이너스원은 지드래곤이 운영하는 브랜드로, 2019년 나이키와 손잡고 처음으로 한정판 에어포스1 파라노이즈를 선보였다. 당시 국내에선 스니커즈 리셀 열풍이 현재만큼 뜨겁진 않았는데, 에포스1 파라노이즈의 리셀가가 국내 최고가를 갈아치우면서 화제가 됐다.

 

당시 에어포스1 파라노이즈는 지드래곤 생일인 8월 18일을 기념해 818켤레를 만들어 출고가 21만 9000원에 한정 판매했는데, 리셀 시장에서는 300만 원부터 최고 2000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며 “웬만한 주식투자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지누션 멤버 션의 '에어포스1 커스텀 모델'(왼쪽)과1988년 마이클 조던의 슬램 덩크 콘테스트 우승과 서울 올림픽을 기념해 나왓던 '나이키 에어조던 3 서울' 이미지. 사진=김금영 기자

이로 인해 국내에도 스니커즈 컬렉터층이 본격 형성되기 시작했다. 전시장 한켠에 마련된 ‘아워월’은 364개의 스니커즈가 모여 거대한 벽을 이뤘는데, 다양한 컬렉터와의 협업을 통해 이뤄낸 결과물로, 서울 전시에서만 볼 수 있는 콘텐츠이기도 하다. 거대한 벽면이 스니커즈로만 채워졌는데, 일부 스니커즈엔 소장자의 이름과 사인 등도 적혀 있어 눈길을 끈다. 즉, 스니커즈 수집가가 살아있는 박물관으로서의 역할을 한 것이다.

리가야 살라자르는 “스니커즈의 가치가 상승하며 오늘날 재테크 관점에서도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며 “하지만 애초에 사람들이 왜 스니커즈를 모으게 됐는지, 즉 스트리트 문화를 기반에 둔 스니커즈의 매력을 알아가는 새 관점으로 이번 전시를 바라봐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스니커즈의 다양한 역사도 함께 살핀다. 사진=김금영 기자

전시장 2층과 1층을 연결하는 ‘서울’ 섹션 또한 이번 전시에서 첫 공개되는 콘텐츠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진 다양한 뮤지션, 아티스트, 디자이너의 협업 작품과 함께 한국의 스니커즈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에어 조던이 등장한다. 1985년 NBA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의 첫 번째 에어 조던은 한국에서 만들어졌다. 이처럼 한국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스니커즈 산업의 중심에 있었음을 짚는다. 또, 제조사의 디자인을 받아서 만들던 신발공장 역할에서 수만 명이 열광하는 스니커즈 씬이 탄생하기까지, 스니커즈 문화 전반에 중요한 목소리를 가지게 된 현상을 다룬다.

일상의 스니커즈가 예술이 될 때

스니커즈의 기능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도 다방면으로 이뤄져 왔다. 사진=김금영 기자

전시는 스니커즈의 스타일리시한 면모만 다루지 않는다. ‘퍼포먼스’와 ‘지속가능성’ 섹션은 기능적으로 최고의 신발을 만들기 위한 스니커즈 디자이너의 노력, 현 시대 전 분야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지속 가능한 방안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를 스니커즈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다룬다.

먼저 퍼포먼스 섹션은 스타일 이면에 담긴 혁신적인 소재와 기술 연구의 영역을 살피면서 흥미로운 사례를 보여준다. 리가야 살라자르는 “사람들이 스니커즈를 사랑하는 이유는 단지 멋진 외형 때문만이 아니라, 혁신적인 디자인을 과감하게 선택하고 실험하는 디자이너와 제조사, 그리고 그런 신발을 신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소비자가 존재하는 덕분”이라고 짚었다.

스니커즈는 스타일에만 비중을 두지 않고, 지속가능성 등 현 시대의 과제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지속 가능성 섹션은 업사이클링(재활용의 상위개념), 리메이크 및 리퍼브(소비자가 반품한 것을 다시 고쳐 소비자에게 정품보다 싸게 파는 일)를 통해 스니커즈의 수명을 연장하는 다양한 사례를 보여준다. 이뿐 아니라 재료의 혁신, 실험적인 제조 기술 및 공급망의 투명성 증대를 통해 스니커즈 생산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해결하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도 다룬다.

이번 전시엔 피스마이너스원, 라이카 등 유명 브랜드와 파트너십으로 주목받은 IPX(구 라인프렌즈)의 디지털 아티스트 웨이드가 앰버서더로 참여한다. 웨이드는 현실과 디지털 세상,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잇는 커넥터로 관람객과 소통한다. 세종문화회관 외벽의 대형 미디어 파사드에 ‘드림 워커: 디지털과 현실, 꿈을 걷다’를 테마로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세계관을 담은 영상을 상영하고, 4m 크기의 조형물 ‘잠자는 웨이드’를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에 전시한다. 전시장 안에선 도슨트의 역할을 하는 한편,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반응하며 웨이드와 교감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스니커즈 언박스드 서울' 전시장 일부. 사진=김금영 기자

김현석 대표는 “한 자리에서 보기 힘든 여러 가치 있는 스니커즈가 이번 전시에 모였다. 이를 통해 40여 년의 시간 동안 스니커즈의 문화와 역사가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엿볼 수 있다. 폭동이 일어날 정도로 이슈가 되고, 투자 아이템으로도 인기를 끄는 등 스니커즈의 다양한 사회적 이야기를 같이 즐기기를 바란다. ‘신발 보는 게 뭐가 재미있어?’ 라는 의문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리가야 살라자르는 “누구나 스니커즈 한 켤레씩은 기본으로 갖고 있고, 거기에 딸린 개개인의 스토리도 있다. 이처럼 스니커즈는 누구에게나 친숙한 아이템이기에 공감대를 형성해 이번 전시가 월드 투어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한국에서도 스니커즈 문화를 경험하고 함께 소통하며 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스니커즈 언박스드 서울' 전시를 둘러보는 사람들. 사진=김금영 기자

세종문화회관 안호상 사장은 “전 세계적으로 1년에 약 12억 개가 팔려나간다고 알려진 스니커즈는 지역과 나이를 불문하고 지구상의 남녀노소가 모두 착용하는 아이템이다. 패션산업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스니커즈는 실용 목적 이상의 가치가 부여되면서 수집가 집단과 그들이 만들어낸 문화를 토대로 수십 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대중적 영향력을 넓혀 왔다”며 “이번 전시 공간이 꾸려지는 공간을 직접 지켜보며 매우 기대됐다. 생활필수품인 신발이 예술이 된 과정을 직접 지켜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9월 10일까지.

(왼쪽부터) UNQP 김현석 대표, 세종문화회관 안호상 사장, 전시 큐레이터 리가야 살라자르. 사진=김금영 기자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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