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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남선희 전통주갤러리 관장, "지금 전통주갤러리는 시음공간에서 사랑방으로 변신 중"

‘전통주 사랑방지기’ 남선희 관장 "단순한 시음이나 판매 장소보다 놀이터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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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50호 김응구⁄ 2023.06.22 11:43:59

전통주갤러리 남선희 관장이 우리술과 연을 잇고 있는 세월만 25년이다. 북촌문화센터 전통주 강좌를 시작으로 전통주갤러리 관장까지 그 연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진=김응구 기자

술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유명 위스키 한 병 사려고 오픈런을 감수한다. 얼마 전엔 일본에서 건너온 캔 생맥주가 품귀현상을 빚었다. 세계 유명 와이너리들은 경쟁하듯 한국을 찾는다. 우리 전통주라고 다르지 않다. 트로트 가수 송가인을 모델로 한 막걸리는 초도 물량이 완판됐다. 유명 힙합 가수가 만들었다고 해서 화제를 모은 증류식소주는 해가 바뀌어도 여전히 인기다.

애주가들에겐 요즘이 천국이다. ‘부어라, 마셔라’는 전설이 된 지 오래. 최근엔 마시고 싶은 술을 마시고 싶은 만큼만 즐긴다. 이 같은 소비 트렌드 덕에 그간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만 보던 ‘고귀’한 술들을 집 앞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도 살 수 있게 됐다.

‘전통주갤러리’도 바빠졌다. 작년에 위치를 지금의 재동으로 옮기고 나선 더욱 그렇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전통주갤러리는 우리나라 전통주를 내외국인에게 알리는 공간이다. 전시품 수는 나날이 늘어가고, 높아진 관람객 눈높이에 맞춰 공부도 더해야 한다. 최근 늘고 있는 소규모 양조장 챙기기도 게을리해선 안 된다.

전통주갤러리는 2015년 2월 11일 문을 열었다. 농림축산식품부(당시 농림수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합작품이다. 처음엔 서울 인사동에 둥지를 텄다. 2년 후엔 강남역 부근으로 옮겼다가 지난해 지금의 자리에 새 보금자리를 얻었다. 한국인이든 외국 관광객이든 호기심에 들렀다가 눈과 입이 동그래져서 나가는 곳이 바로 전통주갤러리다.

이곳 관장(館長)은 1년 직이다. 매년 8월 1일 시작해 다음 해 7월 31일까지 맡는다. 공개 모집 방식이다. 1년으로 부족하다 싶으면 또 도전하면 된다. 알고 보면 전통주갤러리에선 관장이 가장 바쁘다. 쉴 틈 없고 머리도 아프다. 찾아오는 관람객들만 잘 맞이하면 될 거라는 생각은 큰 오산. 매일 열리는 상설 시음회에 매달 여는 특별 시음회, 때마다 선보이는 이벤트성 전시회나 아이디어 빛나는 프로그램도 짜야 한다. 농식품부·aT와의 지속적인 소통은 덤. 이래서 전통주 경험과 지식이 없으면 쉽사리 덤벼들지 못하는 직업이 바로 이곳 관장이다.

남선희 관장이 그렇다. 전통주 업계에서만 25년 세월을 보내고 있다. 전통주갤러리 관장직만 세 번째다. 듣고 싶은 얘기가 많아선지 그와 이틀을 만났다.

남선희 관장은 전통주갤러리를 ‘전통주 놀이터’ 혹은 ‘전통주 사랑방’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사진=김응구 기자

- 술과의 인연이 꽤 깊습니다. 처음 어떻게 만났을까요.
“아버지 덕이에요. 정성 듬뿍 담긴 맛있는 음식에 관심이 많았던 아버지는 늘 할머니의 맛을 그리워하셨어요. 어느 날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싶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직접 빚어보기로 했죠. 누룩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고, 곧장 시장으로 달려갔어요. 주인아줌마가 술 만들 걸 알고선 대충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죠. 호기롭게 만든 제 인생 첫 막걸리는, 보기 좋게 망쳤어요(웃음). 그런데 그 이후에 묘한 오기가 발동하기 시작하더라고요.”

- 처음의 실패가 술과의 연을 본격적으로 맺게 해준 순간이군요?
“당장 수소문했어요. 그렇게 해서 전통주 교육기관을 하나 찾았죠. 그때가 1999년쯤의 일인데, 당시만 해도 전통주 교육기관은 거의 없었어요. 딱 한 군데를 찾은 거죠. 그때부턴 재밌게 배웠고요. 써먹을 수 있을 만큼 배웠죠. 그러고 나니 뭐라도 해야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엔 아버지에게 맛있는 막걸리 한 잔 만들어드리고 싶어서 배운 건데, 어느 정도 배우고 나니 취미생활로만 썩히기엔 너무 아까웠어요. 주부 입장이었지만 결국 뭔가 해보자 결심했죠.”

- 그때 환경은 지금과 아주 달랐죠? 요새야 프리미엄 증류식소주까지 인기가 대단하지만, 당시만 해도 막걸리는 ‘아저씨 술’로 인식하던 때였잖아요.
“그랬죠. 인기가 없었죠. 그래도 막연히 뭔가 해보고 싶었던 거예요. 2002년쯤 서울 계동 쪽을 지나는데 ‘북촌문화센터’라는 간판이 보여요. 들어가 봤더니 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더라고요. 여러 전통 강좌 프로그램을 모집 중이었고요. 여기서 일반인 대상으로 전통 강좌를 진행할 사람을 구하는 거예요. 번뜩 ‘이거다!’ 싶더라고요. 부랴부랴 관련 서류를 작성해 제출했죠. 그리곤 다음 해인 2003년부터 전통주 강좌를 시작했어요”

- 지금 와서 보면 ‘새내기 선생님’ 시절인데, 많은 걸 경험했겠어요.
“저는 ‘두드리면 열린다’는 말을 믿어요. 제가 직접 경험했으니까요. 전 그때 많이 성장했어요. 공부한 것도 많고요. 내가 배울 땐 시키는 것만 하면 됐는데, 반대로 가르치는 입장이 되니 생각보다 걸리는 게 무척 많았죠. 독자적으로 모든 걸 나 혼자서 해결해야 했으니까요. 그래도 행복했어요. 늦게라도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고 있으니 정말 행복했죠. 예전에는 내가 하는 일에 행복이라는 걸 느껴본 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 누군가에게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어렵진 않나요?
“가르치는 일은 물론 어려워요. 하지만 이 일을 통해 조금씩 성숙해지죠. 이건 ‘기분 좋은 스트레스’예요. 수강생들보다 조금 먼저 술을 안 것일 뿐, 오히려 가르치면서 그들에게 더 많은 걸 배우기도 해요. 그 어느 것도 제 것인 게 없어요. 아는 건 모두 공유하면 돼요. 제 마음과 교육 공간은 늘 열려 있어야 한다고 믿어요. 갑자기 생각난 건데, 수강생들에게 들었던 말 중 가장 기분 좋았던 건 ‘남편이 이제 밖에서 술을 마시지 않아요’였어요. 제가 다 고맙더라고요.”

남선희 관장은 전통주갤러리를 MZ세대가 많이 찾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그래서 젊은 프로그램을 많이 기획한다. 사진=김응구 기자

- 북촌문화센터에서 전통주를 가르쳤던 건 언제까지였나요.
“2012년까지요. 이후에는 제게 배웠던 사람들이 그 자리를 이어 계속해서 가르쳤어요. 물론 전 그 이후에도 가르치는 일은 계속 진행 중이에요. 개인적으로 ㈔북촌전통주문화연구원이라는 전통주 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있기도 해서요. 외부 강의도 많이 나가요. 정기적으로 맡은 곳도 몇 돼요. 전북 완주의 대한민국술테마박물관이나 서울시 동작50플러스센터, 배화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 동대문구 한방진흥센터 같은 곳 말이죠.”

- 각종 전통주 대회 심사위원으로도 오래 활동하셨죠?
“오래됐죠. 아직도 불러주시고요. 가장 유명한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는 처음 시작한 2011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참석하고 있어요. 나름 많이 알려진 ‘가양주 발굴대회’, ‘주인(酒人)선발대회’, ‘궁중술 빚기 대회’는 2012년부터 꾸준히 참석 중이죠.”

- 전통주갤러리 관장직은 언제 처음 맡았나요.
“좀 복잡해요. 처음 맡았을 때가 2018년 8월 1일이에요. 그러곤 2019년 7월 31일까지 있었죠. 이 자리가 1년 직이에요. 공모에 응해 다시 도전하고, 뽑히면 1년을 또 맡는 거죠. 그러고선 2년의 공백 기간을 가졌어요. 다시 응모해 2021년 8월부터 2022년 7월까지 했죠. 다행히 지난해 8월부터 올해 7월까지 2년 연속 맡고 있고요. 제가 ‘다행’이라고 한 건, 어차피 전통주갤러리 일을 하려면 1년 가지고는 좀 부족해요. 하고 싶고 해야 할 일이 워낙 많죠. 하지만 다음 달에는 또 어찌 될지 몰라요. 그냥 운에 맡기는 거죠(웃음).”

- 전통주갤러리 위치도 몇 번 이전한 걸로 알아요.
“시작이었던 2015년엔 인사동에 자리했어요. 그러다 강남 역삼동으로 자리를 옮긴 게 2017년의 일이죠. 지금의 재동 헌법재판소 맞은편으로 온 건 작년이고요.”

- 전통주갤러리의 가장 큰 역할은 아무래도 전통주 시음이겠죠. 우리술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겐 아주 좋은 시간일 겁니다. 어떻게 진행하나요.
“가장 대표적인 업무예요. 그래서 매일 진행합니다. 시간은 낮 12시에서 6시까지고요. 12시, 1시, 2시… 이렇게 시작해요. 그래서 모두 일곱 차례입니다. 그중 3시와 4시는 영어로 진행해요.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거든요. 시음회 시간은 대략 20분 정도예요. 우리 직원들이 시음 술을 소개하고 시음하도록 도와주죠. 요새 들어 전통주 인기가 높아지면서 더 많이 찾아오고 있어요. 신청 방법은 네이버에서 예약하면 됩니다.”

- ‘양조장 주말 부스’라는 것도 만들었어요. 궁금합니다.
“내가 내 술을 만들면 나는 잘 알죠. 그런데 사람들 반응은 잘 몰라요. 만든 사람은 마실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자랑도 해야 하는데, 사실 그런 시간을 만들긴 쉽지 않잖아요. 물론 박람회나 전시회 같은 자리도 있죠. 하지만 이런 공간은 정신이 없잖아요. 업체 부스는 엄청 많고, 관람객들은 시음만 후딱 하고 가버리고, 뭔 얘길 해도 잘 안 들리고…. 내 상품을 제대로 소개할 기회가 부족해요. 그래서 양조장이 소비자들과 서로 얘기 주고받는 자리를 마련한 거예요.”

- 판매도 할 수 있는 거죠?
“그럼요. 자신의 제품을 충분히 설명하고 판매하면 자신감도 생기죠. 올해부터 시작했는데, 매달 예약이 꽉 찰 정도로 반응이 좋아요. 그만큼 목말라 있는 양조장이 많다는 증거겠죠. 소규모 양조장은 이런 기회가 절실하잖아요. 전통주갤러리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에겐 얼마든 기회를 드려야죠. 매주 토요일에 하는데,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계속 진행할 예정입니다.”

전통주갤러리는 지난해 10월 27일부터 30일까지 4일간 ‘막걸리의 날’ 기념 이벤트를 진행했다. 오른쪽 세 번째가 남선희 관장. 사진=전통주갤러리

- 만날 똑같은 프로그램만 진행할 것 같진 않아요. 간혹 재밌는 이벤트도 펼치나요? 좀 차분한 공간이라 무리일 것도 같은데 말이죠.
“생각보다 자주 해요(웃음). 사람들이 아는지 모르겠는데, 농림축산식품부가 2011년에 매년 10월 31일을 ‘막걸리의 날’로 지정했어요. 그래서 우리도 지난해 10월 27일부터 30일까지 4일간 자체적으로 막걸리의 날 행사를 했어요. 더구나 2021년에는 ‘막걸리 빚기’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이를 기념하려는 목적도 있었고요. 경기도 안성의 대한민국술박물관과 함께 진행한 거여서 여러 술 도구를 여기저기 배치하고 갤러리 안을 온통 막걸리로만 채웠어요.”

- 매우 볼만했겠어요. 관람객도 많이 와서 구경하던가요?
“날이 좋을 때니 많이 찾아왔죠. 평소처럼 지나다 들어온 거지만 ‘이런 날도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됐겠죠.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봐요. 지난해 12월 30일에는 송년 파티를 열었는데, 클럽 분위기를 한껏 냈어요. 천장에 싸이키 조명 달고 신나는 힙합 음악도 틀어놓고요. MZ세대에 전통주를 좀 더 새롭고 재밌게 알리고 싶었거든요. 며칠 전인 5월 27일에는 플리마켓도 열었어요. 신청받은 12개 양조장의 전통주를 맘껏 소개한 날이에요. 무엇보다 젊은이들의 관심이 대단했어요. 이들에겐 플리마켓이 자연스러운 이벤트잖아요.”

- 또 소개할 이벤트가 있나요?
“얼마든요. 지난 2월 10~20일 10일간은 ‘흐름: 우리들의 시간’이라는 제목의 한국전통공예전을 열었어요. 일부러 젊은 작가들을 초청했죠. MZ세대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였기 때문에요. 술도 좋지만 젊은 친구들에게 술잔이나 각종 주기(酒器)를 보여주고, 이를 직접 만드는 또 다른 젊은이들과 연결해주고 싶었어요. 6월 20~25일까지는 ‘하늘이 내린 술’이라는 행사도 해요. 호서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친구들이 준비한 전통주 패키지 디자인전(展)이에요.”

- 이제 전통주갤러리도 8년 차예요. 10년은 아직 안 됐어도 분명 처음과 지금의 차이는 있을 거예요.
“그때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는 전통주 마시는 사람이 꽤 젊어졌다는 거예요. 거기에 맞춰서 전통주갤러리도 바뀌어야죠. 시음 프로그램이나 각종 이벤트를 젊은 세대에 맞춰야 해요. 방금 말씀드린 송년 파티나 한국전통공예전 같은 거 말이에요.”

- 최근 전통주가 한껏 인기를 얻으면서 전통주갤러리는 더욱 신나 보입니다. 어떤 공간이 됐으면 싶은가요.
“몇 년 되진 않았지만, 그간 전통주갤러리는 꾸준히 진화해 왔어요. 앞으론 우리 쪽에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갤러리가 돼야 할 것으로 봐요. 찾아오는 전통주갤러리에서 찾아가는 전통주갤러리가 돼야죠. 전 우리 공간이 단순한 시음이나 판매 장소보다 일종의 놀이터가 됐으면 해요. 전통주 놀이터, 내지는 전통주 사랑방, 그렇게 만들었으면 싶어요.”

전통주갤러리는 2015년 2월 처음 문을 열었다. 2023년인 올해로 8년 차다. 내외국인에게 한국의 전통주를 알리는 공간이며, 늘 재미난 프로그램들이 펼쳐진다. 사진=김응구 기자

우리 전통주 글을 쓸 때마다 늘 고민한다. 관심을 가져달라고 조르는 모양새는 아닌지, 혹은 이리도 좋은 술을 왜 몰라주느냐고 떼쓰는 건 아닌지, 항상 걱정한다. 어쩌면 습관성일 수도 있다. 늘 그래 왔으니.

쓸데없는 고민과 걱정을 하는 동안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 나이 좀 찬 전통주 애호가도 아닌 젊은 애주가의 위시리스트에 신생 전통주업체의 저도(低度) 증류식소주가 자리하는 세상이다. 2009~2010년에 불어닥친 막걸리 열풍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때와 지금이 다른 건 주 소비층이다. 그 당시는 특정 세대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MZ세대 주도로 전통주 인기가 퍼지고 있다.

그래서 전통주갤러리가 늘 바쁘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허나, 쉬지 못한다. 그 시간에 모자란 건 채워야 하고 남는 건 쳐내야 한다. 그래도 순간순간 웃는다. 예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관심이어서. 그러니 힘들어도 힘들 수 없다. 지금이 정말 좋다. 남선희 관장은 “스무 해 넘도록 우리술만 쳐다보며 살았지만, 요즘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세상 가장 부러운 말이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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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갤러리  남선희  막걸리  북촌  농림축산식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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