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0호 김예은⁄ 2023.06.22 17:45:58
300조의 전세 자금이 주택 시장의 리스크로 전환되고 있다. 현재의 위기를 촉발한 무자본 갭투자와 전세 시장의 구조적 한계를 점검하고 정책적 수단부터 구조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란 지적이 나온다.
2019년부터 2021년은 주택 가격의 급등기이자 높은 전세가를 바탕으로 한 전세 레버리지 매입, 즉 '갭투자' 열풍이 몰아쳤던 시기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패닉 바잉’ 등 당시 등장한 부동산 관련 신조어가 반증하듯, 너도나도 주택 매수 대열에 동참하며 주택가격 상승에 불을 지폈다.
KB국민은행 월간 주택 매매가격 시계열 통계에 따르면 전국 주택 가격은 2021년 한 해에만 15%가 올랐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직후인 지난 2002년 16%가 상승한 이래 19년 만의 최고 상승 폭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이후 2021년까지 전국 주택 가격 상승률은 30%에 달했다.
그 막바지에서 영끌과 패닉 바잉에 동참했던 주택 매수세는 2년 후인 2023년, 주택시장의 시한폭탄이 되어 눈앞에 놓여있다. 전세 레버리지 매입에 따른 전세 레버리지 리스크에 의해서다.
향후 1년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 전세보증금 총액이 약 300조 원 이상으로 역대 최대 규모가 될 것이란 조사 결과가 나왔다. 19일 부동산 플랫폼 직방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3년 하반기 계약이 만료되는 2021년 하반기 전국 주택전세거래총액은 149조 800억 원으로, 2024년 상반기 계약이 만료되는 2022년 상반기 전세거래총액 153조 900억 원을 합산하면 향후 1년간 만기가 도래하는 전세 보증금 총액은 302조1700억 원에 육박한다. 2011년 실거래가 공개 이후 집계된 거래액 중 최고치다.
이는 주택담보대출 750조2000억 원의 40.3%에 달하며, 2023년 1분기 기준 가계신용 1853조9000억 원의 16.3%를 차지하는 규모다.
반면, 최근 주택 경기가 빠르게 위축되며 전세거래보증금 거래총액은 줄어들고 있다. 전국 아파트 전셋값도 올해 5월을 기준으로 2년 전에 비해 13.5%가 하락했다. 이는 역(逆)전세난으로 인한 전세보증금 미반환 리스크가 가중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역전세는 전셋값이 하락해 전세를 갱신하거나 새로운 세입자와 계약할 때 이전 계약보다 보증금이 낮아지는 경우를 말한다. 즉, 집주인은 전세 보증금을 돌려줄 목돈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낮아진 전세가만큼의 추가 재원이 확보돼야 주택을 지속적으로 보유 및 운용할 수 있다. 전세시장의 위축으로 전세 계약이 불발될 경우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줄 재원이 미비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거나 해당 주택이 법원 경매로 넘어가 보증금의 상당 부분을 반환받지 못할 위험성이 존재한다.
계약종료 전세보증금이 아직 최대 수준이 아닌 2023년 상반기에도 보증금 미반환 규모는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부동산테크에 따르면 올해 5월 보증사고율은 연초 5.8% 대비 1.4% 증가한 7.2%를 기록했다. 작년 9월 기록한 2.8% 대비로는 2배 넘게 증가한 수치다. 수도권은 작년 9월 3.3%에서 당해 5월 8.4%로 치솟았다.
전세제도 하에서 갭투자를 기반으로 한 부동산 매매는 레버리지를 활용한 대표적인 투자 전략으로 꼽힌다. 전세라는 레버리지를 기반으로 한 특성에 의해 주택가격 변동에 따른 수익과 손실 변화가 크게 나타나는 특징을 갖는다. 특히, 매매전세비가 높은 주택일수록, 수익률 변화가 매우 크다. KB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주택가격 10% 상승 시 매매전세비 70% 주택의 경우 26.6% 수익이 발생하는 데 반해, 매매전세비 90% 주택의 경우 72.5%의 수익이 발생한다. 이러한 갭투자는 주택가격 상승기에 높은 변동성을 활용한 양도 차익을 기대하는 리스크 선호 현상에 따라 심화하며, 지난 2021년까지 이어진 주택가격 상승장에서 갭투자 증대를 양산한 요인이 되었다.
역으로 갭투자가 가진 함정은 주택가격 하락 시 수익률 낙폭 역시 배가된다는 점에 있다. 주택가격 10% 하락 시 매매전세비 70% 주택은 -37%의 손실을 보는 반면, 매매전세비 90% 주택의 경우 -100%의 손실을 떠안는다. 또한 갭투자에 있어 주택가격 상승분은 오롯이 매입자에게 귀속되는 반면, 주택가격이 하락하는 경우 그 손실분은 매입자뿐만 아니라 임차인에게도 전가되는 특성을 갖는다.
KB경영연구소는 이러한 갭투자를 양산케 한 주택시장의 구조적 한계를 현 시장 위기의 시발점으로 적시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단편적인 세입자 보호 정책에 치중되는 것에서 벗어나 임대차 관련 정책과 계약제도 등 근본에서부터 위기의 시발점을 찾고 전세제도의 구조적 변경을 촉구했다.
전세제도의 리스크를 양산한 구조적 문제로 KB경영연구소는 매매가격에 근접한 전세가 가능한 구조와 전세자금 대출에 대한 규제 미비, 임대차 계약상 제도상의 허점 등을 꼽았다.
금융 시스템과 보증보험 강화를 통한 위험 차단
먼저, KB경영연구소는 전세보증금이 대출과 유사한 형태임에도 전세보증금 대출과 관련한 규제가 전무해 과잉 대출금과 같은 형태의 과잉 보증금 문제를 양산한다고 보았다. 주택 구입의 경우 LTV(주택담보대출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과도한 대출을 억제하고 있지만, 매매전세비 90% 주택의 경우 LTV 90% 대출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음에도 전세 관련 규제가 전무해 주택경기 과열 시 높아지는 전세가에 대한 규제가 어렵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KB경영연구소는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금융 시스템상에서 구조적 변경이 필요함을 지적했다. 특히 전세자금대출로 인한 유동성 증가가 주택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축소하기 위해 전세자금대출을 DSR 산정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DSR 산정 시 예적금담보대출, 보험약관대출처럼 상환자금이 별도로 존재하는 대출은 제외되고 있다. 전세자금대출도 만기 시 돌려받는 전세보증금으로 상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DSR 산정에서 제외하고 있다. 그러나 건당 대출 규모가 크고 과도한 대출로 인한 주택시장의 부정적인 영향을 감안해 DSR 산정에 포함하는 것에 대해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금융 시스템 구조의 변경으로 매매전세비에 대한 간접 개입이 필요함을 지적했다.
투자자가 전세를 활용해 매매가격 대비 전셋값 비율이 높은 고(高) LTV로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에 대한 규제를 위해 DSR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3주택 이상 주택 보유자가 70% 이상의 고 LTV로 전세를 포함해 주택을 구입한 경우 DSR 산정에 전세보증금을 포함하는 방안이 활용될 수 있다.
또한 매매전세비가 과도하게 높은 경우 전세자금대출을 제한함으로써 전세보증금 손실을 방지하는 대안도 가능하다. 매매전세비 70% 이상 주택의 경우 임차인의 전세자금대출을 제한해 매매가격에 근접한 비용을 담보로 주택을 임차하는 전세계약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그뿐만 아니라 KB금융연구소는 장기적으로 전세 계약 시 보증보험의 가입 주체를 임차인에서 임대인으로 전환하도록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통상적인 경우 채무자(임대인)가 보증보험에 가입해야 하나, 전세보증금 관련해서는 채권자(임차인)가 보증보험에 가입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특히 임차인의 보증금 미반환 리스크는 채무자인 임대인으로부터 발생함에도 임차인에게 보험 가입과 비용을 부담케 하는 형태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임대인이 보험 계약자로서 직접 보증보험에 가입하고, 보증수수료까지 부담하는 구조를 채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중개업소 공제증서의 실효성 개선을 위해 매매 및 임대차 물건 하자 시 중개업소 공제증서의 보증 범위를 확대해 중개업소의 역할과 책임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임대차 물건 하자 시 중개업소의 공제증서에서 일정 부분 보증금을 부담하거나, 일정 금액 이상 보증금의 경우 계약 건별 공제 가입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임대차 계약상 제도적 허점 보완 필요
한편, 임대차 계약 시 제도상 허점으로 전세 계약 시 구입과 동시에 임대차계약이 가능함에 따라 임대인은 자기자본 없이도 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현 제도하에서 임대인은 세입자가 있는 경우 보증금을 승계하여 주택을 구입함에 따라 소액으로도 주택 구입이 가능하다. 또한 신축 주택이거나 세입자가 없는 경우에는 신규 세입자를 모집해 전세 계약 당일에 매매거래를 진행함으로써 전세보증금으로 매매대금을 지불할 수 있다.
임차인은 임대인의 세금 체납 이력, 보유 주택 수 등의 정보 부족으로 계약 후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리스크를 사전에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제도상의 문제도 갖고 있다.
또한 세입자 권리를 보장하는 대항력은 확정일자, 전입신고, 거주의 3가지 요건을 갖추었을 때 효력이 발생하는데, 전입신고의 경우 다음 날 0시부터 효력이 발생함에 따라 임대차계약 당일 근저당이 설정되면 세입자는 우선권을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제도상 허점은 무자본 갭투자를 기반으로 한 조직적인 전세 사기가 가능한 구조로서 최근 양산된 빌라왕, 동탄 오피스텔 전세 피해 등 전세 사기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에 대해 KB경영연구소는 거래 체결 과정에서 전세 거래의 불확실성 제거를 통한 안전성 확보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중개업소의 임대인 관련 정보 확인을 의무화해 세입자에게 고지하는 과정을 계약서에 명시함으로써 안전한 계약 체결 여건을 조성할 것을 권했다.
최근 정부에서 임차인의 정보열람권을 강화하면서 4월 3일부터 보증금 1천만 원 이상 전월세 계약 시 임대인 동의 없이도 전국 세무서에서 미납 국세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단, 동의 없이 정보를 열람한 사실은 임대인에게 통보된다. 또한 임차인은 계약 후 임대 기간이 시작하는 날까지 임대인 동의를 받아 소유 주택 수의 열람 신청이 가능하다. 다만, 임차인의 임대인 정보 확인 사실이 알려지면 임대인과 불편한 관계로 이어질 수 있기에, 이를 중개인의 의무 사항으로 규정함으로써 계약 체결 여건의 안전성을 강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한 중개인은 전세 계약 시 해당 물건의 매매전세비를 산정하여 임차인에게 고지하고 사전에 잠재적 위험을 인지시킬 필요가 있다.
이 밖에도 세입자의 전입신고 효력을 당일부터 인정해 사적 금융으로서의 전세보증금 선순위권을 보호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임차인이 대항력 요건 3가지를 계약 당일 갖추어도 같은 날 임대인이 대출받을 경우 전세보증금은 후순위로 밀려날 수 있는 허점을 미연에 없애기 위한 조처다.
대출을 실행하는 금융권에도 전입신고 및 확정일자 조회와 활용을 허용케 함으로써, 임차인이 대항력 요건을 갖추기 전에 임대인이 대출을 실행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 장치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KB경영연구소는 전세시장 리스크는 전세값 하락기마다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역설했다. 과거에도 전세값 하락기에 전세보증금 미반환과 역전세 등 전세 관련 이슈가 발생했는데 1998년 외환위기, 2002년 카드 사태, 2008년 금융위기 직후가 대표적이다. 다만, 현재 전세시장은 단기간 가격 하락 폭이 크고 거래 위축도 심각한 상황이기에 2000년대 초반 상황보다 더 심각한 상황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빌라왕 등 전세 사기 문제로 촉발되고, 하반기 역전세난의 위험성을 앞둔 현시점에서 전세제도의 구조적 리스크를 이해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응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란 지적이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