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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림의 현대사진산책+] 어디로 가세요?, 리턴 그리고 홈

김옥선 개인전 ‘평평한 것들’, 마이클 라코위츠 ‘보이지 않는 적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칼후의 북서 궁전, F실(室), 남동쪽 입구; S실, 남서쪽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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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51호 천수림(사진비평)⁄ 2023.07.03 15:12:26

(왼쪽부터) 김옥선, '신부들, 사라(Brides, Sara)'. 디지털 C-프린트.  2023. / 마이클 라코위츠, '보이지 않는 적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칼후의 북서 궁전, S실, 패널 S-10)'. 아랍어-영어 신문지, 식료품 포장지, 나무 판넬에 하드보드 부조 조각, 뮤지엄 레이블, 224.6x203x9cm.  2023. 사진=바라캇 컨템포러리

“1911년 ‘캘리포니아 대추야자 산업의 아버지’ 버나드 G. 존슨은 캘리포니아주 메카시 근처에 미국 농무부 시험장을 설립하고 이라크에서 들여온 대추야자 종자를 심었다.” - 마이클 라코위츠‘리턴’ 연대표 중에서.

현재 이라크 토착종 대추야자는 25만 그루 이상 재배되고 있다. 대추야자는 어떻게 이라크에서 머나먼 미국까지 왔을까. 마이클 라코위츠는 대추야자의 여정을 따라가며 이주와 이라크 전쟁 그 후 이야기를 들려준다. 결혼 이주 여성들의 초상작업과, 이주 여성을 닮은 이주식물 작업을 진행해 온 김옥선도 마이클 라코위츠처럼 오랫동안 이주로 인해 경계의 삶에 놓여 있는 이들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주는 현재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김옥선 개인전 ‘평평한 것들(Flatness of Things)’

김옥선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 모습. 사진=정효섭, 이미지 제공=성곡미술관

김옥선은 20여 년 동안 결혼, 이주, 경계에 선 외국인의 초상사진을 찍었다. 1960년대 베를린으로 이주한 재독 여성 간호사들을 찍은 ‘베를린 초상’(2018)은 한국현대사를 추적한 강렬한 초상작업이었다. 그 전에 진행했던 ‘해피투게더’(2004)가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외국인을 찍은 무표정한 독일식 초상이었다면, ‘베를린 초상’은 김옥선식 스타일을 각인시킨 작업이었다. 성곡미술관에서 7월 13일까지 선보이는 김옥선 개인전 ‘평평한 것들’은 20여 년간 이어온 김옥선 포트레이트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로, 성곡미술관의 ‘한국 중견작가 초대전’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환경 속에서 함께 사는 커플들을 담은 ‘해피투게더’(2002~2004/2023), 한국 근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주체적 삶을 선택한 베를린 한인 간호사를 담은 ‘베를린 초상’을 거치면서 좀 더 과거로 눈을 돌린다. 이번에 선보이는 신작 ‘신부들 사라’(2023)는 20세기 초 사진 교환만으로 결혼해 미국 하와이로 이주한 최초의 사진신부 ‘최사라’에서 빌려온 이름이다. 김옥선은 “결혼과 함께 이주한 이들은 대체로 외화벌이, 가족을 위해 선택한 희생, 혹은 독립운동 등 거시적인 목적 외에 가려진 개별적인 주체들에 주목하고 싶었다”고 한다.

김옥선, '신부들, 사라(Brides, Sara)'. 디지털 C-프린트.  2023. 사진=성곡미술관

‘신부들 사라’를 오마주한 이번 작업은 베트남, 몽골, 중국 등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결혼이주여성들의 초상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7년에서 20년 가까이 살고 있는 이들이다. 작가는 개개인이 내린 선택한 삶에 주목하기 위해 마치 나무처럼 뿌리내리는 장소에 주목했다. 실물 크기로 확대된 사진 속 인물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그전의 초상작업은 가정집 실내 공간, 혹은 야외공간을 배경으로 대체로 무표정한 표정으로 찍었다면 신작 ‘신부들 사라’는 황학동의 한 사진관을 섭외해 촬영했다. 사진관 촬영방식은 최초의 사진 신부들도 한복을 곱게 입고 사진관에서 찍었음을 상기시킨다. 레트로한 배경에 신부들 국적을 짐작케 하는 전통옷을 입고 과거와 같은 전통적인 사진관 촬영방식으로 세 방향에서 조명을 비춰 빛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인물에 입체감을 부여했다. 우리와 다른 얼굴을 지닌 그들이지만 오늘날 다문화 사회인 한국의 또 다른 얼굴과 대면하게 된다.

김옥선, '아다치 초상(Adachi Portraits)'. 디지털 C-프린트. 2023. 사진=성곡미술관

제목으로 사용한 ‘평평함’이란 ‘2차원 평면에 인화된 사진매체의 고유한 평면성을 넘어서, 인간, 자연, 사물의 구분과 인종과 젠더 등 각종 위계에서 자유로운 평평한 세계에 놓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밖에 신작 ’아다치 초상‘ 연작은 재일교포 2세, 일본인-미국인 부부와 그들의 자녀 등 재일외국인의 초상사진이다. 아다치 지역의 집과 근무지, 주변 동네와 자연 등 그들이 몸담고 있는 장소를 배경으로 했다. 온전한 일본이 되지도 못한 한국인 소수집단인 이들의 시선은 아래를 보거나, 허공을 본다. 이 먼 시선은 다른 연작이 정면을 바라보는 것과는 다르다.

신작 영상 ‘홈’은 야자수 옷을 입은 ‘야자수 인간’이 제주 이곳저곳을 탐험하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서사를 보여준다. 이식식물인 야자수가 이제는 마치 제주의 상징인 것처럼 인식되듯 제주의 이국적인 식물을 촬영한 ‘빛나는 것들’처럼. 이들은 ‘홈’을 찾았을까. 아니면 여전히 배회중일까.

마이클 라코위츠 ‘보이지 않는 적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칼후의 북서 궁전, F실(室), 남동쪽 입구; S실, 남서쪽 입구)’

마이클 라코위츠의 작품이 설치된 전시장 전경. 사진=바라캇컨템포러리

이라크계 미국인 작가 마이클 라코위츠는 이라크계 유대인 배경으로 인해 이라크를 떠나 미국으로 망명해야만 했던 가족의 이주사와 전쟁으로 인해 소실된 메소포타미아 문화유적을 되돌리는 작업을 해왔다. 바라캇컨템포러리에서 6월 30일까지 열린 그의 개인전에서 선보인 영상설치 ‘리턴(RETURN, 2004~진행 중)’은 작가 가족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직접적인 계기이자, 이라크를 떠난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송가와 같은 작품이다.

미국 뉴욕 주 그레이트넥에서 태어난 작가는 외조부모의 집에서 자랐다. 이곳은 이라크의 물건, 음악, 음식으로 둘러싸인 살아있는 박물관 같은 곳이었다. 그의 외조부 니심 아이작 다우드(1899~1975)는 유대계 이라크인으로, 독일 나치당과 이라크 민족주의자들이 협력해 촉발한 유대인 탄압을 피해 가족과 함께 이라크를 떠나 미국 롱아일랜드에 정착했다. 작가 본인은 한 번도 이라크에 간 적이 없지만 가족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고국에 대한 기억은 예술적 자산이 됐다.

마이클 라코위츠, '리턴(영상 스틸)'. 영상 설치, 연대표 월 텍스트, 대추야자 나무, 대추야자 시럽 캔, 이라크산 대추야자 박스, 선반. 2004~진행 중. 사진=바라캇컨템포러리

2004년 작가는 외조부가 1960년대까지 경영했던 무역회사 데이비슨 앤 컴퍼니를 다시 열어 무료로 이라크까지 소포를 보내주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처음엔 우편함의 형태로 시작했지만 점차 일개 센터 규모로 확장됐고, 2006년에는 브루클린 애틀랜틱 애비뉴 529번지에 공식적으로 점포를 열었다. 작가는 이라크산 대추야자 열매가 UN의 대이라크 제재(1990~2003)가 해제된 이후에도 레바논산 제품으로 둔갑해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안 후 이라크 대추야자를 미국으로 수입하기로 한다.

‘리턴’ 프로젝트의 영상 파트는 이렇게 이라크로부터 미국까지 제품을 수입해 오는 긴 과정을 보여준다. 관료주의적 행태부터 수많은 검역소를 하나하나 거칠 때마다 벌였던 논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건들을 상세히 기록했다. 대추야자는 이라크에서 석유를 잇는 제2의 수출 품목이자, 이라크인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먹는 소울푸드였다.

마이클 라코위츠, '리턴(영상 스틸)'. 영상 설치, 연대표 월 텍스트, 대추야자 나무, 대추야자 시럽 캔, 이라크산 대추야자 박스, 선반. 2004~진행 중. 사진=바라캇컨템포러리

전시장 벽면에 설치된 벽면의 연대표는 5만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라크 대추야자의 역사를 추적한다. 이 연대표는 대추야자에 관한 고대의 역사 기록에서 석유에 이은 제2의 수출 품목이었지만 경제재재를 당하기까지의 여정을 기록했다.

 

“5만여 년 전 이라크 북부 샤니다르 동굴에서 발견된 야생 대추야자 씨앗은 이 연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대추야자 열매는 선사시대 혈거인의 주식이었다.”(‘리턴’ 연대표 중에서).

마이클 라코위츠, '특수부대원 코디의 발라드(영상 스틸)'.  1채널 영상, 14분 42초. 2017. 사진=바라캇컨템포러리

2003년 UN안보리가 대이라크 제재를 해제한 후에는 전쟁 이전 1600만 그루였던 대추나무가 겨우 300만으로 살아남았지만 대목역병에 시달렸다. 푸사륨 균의 원인은 다국적군의 열화우라늄탄 폭격이었다고 한다. ‘리턴’ 영상 속 인물들은 오랜 여정을 거쳐 이 작은 가게에 도착한 대추야자를 사들고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들의 얼굴은 어쩌면 5만 년 전 선사시대의 여정과 동행하고 있다.

작가는 ‘보이지 않는 적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프로젝트를 통해 자긍심을 불어넣어주던 유물과 그 기원을 재현한다. “어떤 사물이든 오랫동안 마주고 있다 보면 그것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된다고 믿는다”고 말하는 작가는 이것들을 복원이 아닌 서구를 떠도는 유령(haunting)이라고 지칭한다. 이 유령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글: 천수림(사진비평)

이미지 제공: 바라캇컨템포러리, 성곡미술관

<작가소개>

김옥선(1967년 출생, 서울과 제주에서 활동)은 이주와 정착, 차이의 공존 등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 사회의 주변적 존재와 자연 및 사물 등을 사진으로 담는다. 최근엔 근현대 역사 속 이산의 경험을 안고 타국에서 뿌리를 내린 인물들과 함께 이주식물로 관심을 확장한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다. 실재성과 명료함을 특징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사진 초상의 방식을 활용하는 그의 사진은 대상의 존재를 증거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이면의 맥락과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마이클 라코위츠(1973년 출생, 뉴욕)는 올해 샤르자 비엔날레 15와 지난해 프랑스 메츠의 프락 로레인에서 주최한 개인전에 참여했다. 2019~2020년 진행한 라코위츠의 주요 회고전은 토리노의 카스텔로 디 리볼리 미술관, 런던의 화이트채플 갤러리, 두바이의 자밀 아트 센터를 순회하며 전세계적으로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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