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3호 김응구⁄ 2023.07.03 15:11:04
위스키를 마실까 참을까 고민하던 시절에서 ‘무슨 위스키를 마셔볼까’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위스키의 인기가 대단하다. 주로 젊은이들이 주도한다. 이에 뒤질세라 기성세대도 덩달아 구매 대열에 동참한다.
이마트24는 최근 주류 관련 보도자료에 ‘근거리 주류 창고’라는 꾸밈말을 붙여서 보내준다. “근거리 주류 창고로 거듭나고 있는 이마트24는…” 이런 식이다. 모든 주종(酒種)이 다 준비됐다는 자신감, 원하는 술을 가까운 곳에서 살 수 있는 편리함, 그러면서 신뢰를 쌓는 이미지. 이 모두를 세 단어로 간결하게 표현해냈다.
최근 위스키 소비가 크게 늘자 이마트24는 참신한 제품을 쏟아내는 중이다. 얼마 전엔 얼려 마시는 위스키까지 선보였다. 앞서선 플레이버(flavor) 위스키도 내놨다. 이렇듯 소비자의 호기심과 기대에 즉각 반응하고 부응한 탓인지 이마트24의 위스키 판매 실적도 덩달아 뛰고 있다. 이마트24에 따르면 지난 4월의 위스키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27% 증가했고, 5월 역시 34%가 늘어 신장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이마트24에서 위스키를 담당하는 김경선 MD(상품기획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궁금했던 모든 질문을 쏟아냈다. 거침없이 답해줬다.
- 이마트24를 ‘근거리 주류 창고’라고 이름 붙였어요. 장점을 특화한 아주 좋은 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가 더욱 주목됩니다. 국내 위스키 시장을 어떻게 전망하나요.
“예전에는 편의점에서 다양한 종류의 와인이나 위스키를 구매하는 일이 흔치 않았잖아요. 지금은 맥주, 소주는 물론 와인, 위스키까지 다양한 주류를 팔고 사는 모습이 일상화됐죠. 특히, 코로나19를 기점으로 홈술·혼술족이 편의점에서 주류를 구매하는 일이 꽤 늘었어요. 무엇보다 맥주·소주 말고 색다른 주류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와인·위스키 같은 술로 소비 트렌드가 이어지고 있어요. 최근에는 아저씨들만 마시는 비싼 술로 인식했던 위스키에 젊은 층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죠. 와인과는 또 다른 독특한 향과 맛, 더불어 다양한 방법으로 마시는 점에 매력을 느끼는 거예요. 이 같은 트렌드는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으로 봐요.”
- 그럼, 최근 위스키 애호가 또는 위스키 소비가 늘어나는 이유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젊은이들 사이에서 위스키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비싸고 독한 술, 아저씨들이 마시는 술이라는 생각에서 많이 벗어났어요. 위스키의 독특한 향을 느끼기 위해 스트레이트로 즐기기도 하고, 하이볼도 많이 마셔요. 자신의 취향에 맞춰 즐기는 술로써 매력을 느끼는 듯 보여요. 더구나 MZ세대는 가성비 좋은 상품을 찾는 동시에 자신에게 만족을 주는 소비에도 아낌없이 지갑을 열어요. 밥은 가성비 있게 먹어도 자신들이 좋아하고 가치를 두는 것엔 아낌없이 지출하는 소비 패턴을 보이죠. 이런 게 최근의 위스키 인기와 맞닿아 있는 듯해요.”
- 얼마 전 선보인 ‘섀클턴’ 이야기도 해보죠. 얼려 마시는 위스키 말이에요. 아직 마셔보기 전이라 맛을 평가하진 못하지만, 그보다 제품의 스토리텔링에 관심이 더욱 쏠립니다. MZ세대에 잘 들어맞는 전략인 것 같아요.
“편의점이 기존에 시도해보지 않았던 상품들을 소싱(sourcing)하려고 해요. 섀클턴 이전에 선보인 위스키 ‘올레 스모키’도 그런 상품 중 하나죠. 언젠가 위스키 상품을 소싱하려고 이것저것 찾아보던 중에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플레이버 위스키가 인기라는 걸 알게 됐어요. 한국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았지만, 위스키 트렌드가 확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플레이버 위스키를 먼저 들여와 트렌드를 선도하고자 했죠. 특히, MZ세대는 새로운 경험에 큰 가치를 두기 때문에 이들이 관심 있어 할 만한 히스토리나 스토리가 있는 상품, 차별화된 맛을 지닌 상품을 선보이려고 해요. 위스키는 알고 마시면 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어요. 깊은 역사의 증류소에서 오랜 시간 숙성해 대중에 알려지는 술이고, 상품마다 탄생 배경이 특색 있죠. 그래서 알면 알수록 공부하게 되고, 그러면서 더 빠져드는 매력이 있는 술이에요.”
- 섀클턴이 그런 술이라는 얘기군요?
“이번에 선보인 섀클턴은 위대한 탐험가 어니시트 섀클턴이 남극에 두고 온 위스키를 재현해낸 것이에요. 소비자들이 이를 상상하면서 마시면 더 깊은 맛과 재미를 느낄 것으로 생각해, 얼려 마시는 위스키로 셀링포인트(selling point)를 잡았죠. 고객들에게 실제 스토리와 다양한 음용법의 위스키를 알려주려는 전략을 짠 거예요.”
* 영국의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Sir Ernest Shackleton)은 남극 탐험 당시 위스키를 두고 떠났고, 100년 후인 2007년 남극유산보존재단이 이를 남극에서 회수해 왔다. 100년이 지났어도 아무런 훼손 없이 돌아온 위스키에 영감을 받은 화이트 앤 맥케이의 마스트 블렌더 리차드 패터슨이 몰트위스키들을 블렌딩해 이 위스키를 만들었다.
- 얼마 전에는 하이볼 제품인 ‘레디(READY)’ 시리즈도 선보였어요. 국내 수제맥주 1세대인 카브루와 손잡았죠? 이 제품의 경쟁력은 무엇일까요.
“먼저 ‘카브루 레디 클래식’은 기본에 충실한 맛에 중점을 뒀어요. 인위적인 과일 향이 아니라 위스키 향이 더 돋보이면서 살짝 달콤하기도 하고 진한 맛의 하이볼이죠.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 가장 하이볼스러운 맛을 내고자 했어요. ‘카브루 레디 핑크’는 카브루 브루어리가 직접 양조한 원주(原酒)를 기반으로 적절한 밸런스의 부재료를 넣어 하이볼 특유의 맛과 향을 구현해냈죠.”
- 하이볼의 경우 주류제조사들이 경쟁적으로 출시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에게 피로감을 주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국내 하이볼 시장을 어떻게 전망하나요. 당분간 그 인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시나요?
“RTD(Ready to Drink) 하이볼은 고객들이 간편하게 즐기도록 만든 상품이죠. 사실 하이볼 맛을 더 제대로 즐기려면 위스키와 탄산수·토닉워터 등을 직접 섞어 마시는 게 가장 좋아요. 요즘엔 알코올도수가 높은 술을 즐기거나 무리해서 술을 많이 마시는 추세가 아니어서, 탄산수 또는 토닉워터와 섞어 가볍게 즐기는 하이볼의 인기는 계속될 것으로 봐요.”
- 지난 2월에는 일본 위스키 ‘코슈 니라사키(甲州 韮崎)’ 2종도 국내에 들여왔어요. 일본 위스키에 대한 한국 소비자의 관심이 만만찮은 점을 주목한 듯싶은데, 일본 위스키만의 특징이랄 게 있을까요?
“위스키는 스코틀랜드가 가장 많이 알려졌지만, 아시아권에선 일본이 품질 좋기로 유명하잖아요. 그래서 일본 쪽 위스키를 찾아봤죠. ‘코슈 니라사키’는 그 결과물입니다.”
- 이렇게 보면 전 세계 위스키 4대 산지(스코틀랜드·아일랜드·미국·캐나다) 혹은 일본까지 넣어 5대 산지로 확장해 국내 소비자에게 선보이려는 계획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국내 소비자들이 위스키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견문도 넓어졌어요. 그에 따라 우리 역시 더 다양한 위스키를 접하도록 품질 좋은 위스키를 선보이고 싶어요. 편의점에선 다양한 위스키를 접하지 못한다는 편견을 뒤집고 폭넓은 라인업을 완성해, 국내 편의점 시장에서 위스키 트렌드를 선도해나갈 계획도 있었고요. 그리고 4대 산지 위스키는 이미 준비돼 있었어요. 여기에 새로운 위스키를 더 선보이려고 계획하던 중 일본산 위스키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추세고, 알아보니 일본에선 현재 하이볼의 인기에 더해 위스키 시장이 급성장하며 신생 증류소가 생기는 트렌드를 파악했어요. 그런 이유로 일본에서 인정받는 위스키를 들여와 세계 5대 산지 라인업을 완성해보자, 그래서 더 다양한 상품을 제공하며 주류 트렌드를 선도해보자, 이런 전략을 세운 거죠.”
- 한국의 위스키 산업은 이제 막 걸음마 수준입니다. 최근 남양주나 김포의 증류소가 조금씩 주목받고 있기도 하죠. 국내 위스키와의 협업은 계획에 없나요?
“우리나라는 좋은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몇 년 뒤에는 잘 익은 위스키들로 분명 한국의 존재감을 나타낼 수 있을 겁니다. 위스키 소비자들도 한국 위스키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저 역시 국내 위스키 회사와의 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현재 이마트24가 취급하는 위스키 종류는 대략 어느 정도인가요. 혹 앞으로 들여올 제품에 대해서도 귀띔해줄 수 있을까요?
“예전 편의점은 위스키 종류가 몇 안 됐고, 그나마 소용량 상품이 대부분이었죠. 요새는 소용량보다 대용량으로, 무엇보다 다양하게 구색을 갖추고 있어요. 더불어 진열대를 ‘발렌타인’, ‘조니워커’, ‘골든블루’ 등 유명 위스키로 채웠던 것에서, 최근에는 버번·싱글몰트 위스키나 리큐르까지 오르며 정말 다양해졌어요. 실제로 이마트24는 현재 120종의 위스키를 선보이고 있어요. 이는 지난해 95종에 비하면 26% 정도 증가한 수치죠. 이마트24는 올 하반기에도 이색적인 상품을 선보임과 동시에 ‘이달의 위스키’ 행사로 할인된 가격이나 차별화한 패키지 상품을 매달 선보일 계획입니다.”
출근하자마자 어젯자 매출, 신상품 반응, 업계 동향을 동시에 파악한다. 이어 상품점포와 일·월·연간 매출을 분석해 더 짜임새 있는 매출 계획을 세운다. 조금 쉬었다가 정기행사나 큰 행사 기획을 짜고 상품 출시 프로모션도 준비한다. 이건 유관부서와 함께해야 한다. 부리나케 점심을 먹고 나선 협력업체들과 미팅하며 신제품 트렌드를 파악하고, 더 좋은 조건과 행사를 위해 협의한다. 더불어 출시상품 운영방향과 매출 확대 방안도 논의한다. 차 한 잔 마신 후엔 열심히 준비한 전략 상품을 시음하고, 의견 수렴 후 도입 여부를 검토한다. 최종 완성된 상품은 여러 유관부서와 협의하면서 출시를 진행한다.
김경선 MD의 하루는 빡빡하다. 일주일은 더 빡빡하다. 생각해보니 억지로 맡긴다고 할 일들이 아니다. 술도 좋아해야 하고 기획 업무도 잘해야 한다. 말장난 같지만, 술을 잘하고 기획 업무를 좋아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원래 술을 즐겼어요. 주류 트렌드에도 관심이 많았고요. 특히 위스키가 흥미로웠죠. 우리나라 전통주처럼 오래된 데다 그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있잖아요. 이마트24와 연을 맺었을 당시는 와인을 시작으로 주류를 확대할 때였어요. 그래서 주류에 특화된 편의점으로 생각했죠. 위스키와 전통주가 뜨면서 이 상품군도 확대하기 시작했죠. 그걸 보니 주류 트렌드를 선도하는 편의점으로 만들고 싶더라고요.”
깨알 같은 회사 자랑에 본인의 장점과 포부를 엮은 것만 봐도 김경선 MD는 확실히 타고났다. 어느 날 이마트24 여기저기서 소비자들이 “어! 이 위스키가 들어왔네?”라고 외치는 순간, 김경선 MD에겐 또 하나의 날개가 달릴 게 분명하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