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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세계 거리를 누비며 제이알이 주목한 키워드 세 가지

롯데뮤지엄, 제이알 국내 첫 대규모 개인전 ‘제이알: 크로니클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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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51호 김금영⁄ 2023.07.04 10:52:01

자신의 작업 속에서 뛰놀고 있는 제이알의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세상에 이렇게 거대한 캔버스에 작업하는 작가가 있을까. 발걸음을 딛는 길거리와 손을 뻗는 벽은 그대로 캔버스가 된다. 그런 그가 향한 모든 곳은 예술이 꽃피는 장이자, 동시에 논란의 장이 된다. 그럼에도 “나는 예술이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장소에 예술을 선보이고 싶다.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엄청난 프로젝트를 벌이고, 그들이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싶다”고 꿋꿋하게 말하는 그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사진작가이자 ‘거리 예술가’로 불리는 제이알(JR)이다.

롯데뮤지엄이 제이알의 국내 첫 대규모 개인전 ‘제이알: 크로니클스’를 8월 6일까지 연다. 1983년 프랑스 파리 외곽에서 동유럽과 튀니지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2001년 우연히 지하철에서 한 카메라를 습득하면서 예술가로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그가 주목한 건 소외되고, 때로는 너무 화려한 이면에 가려져 차마 보지 못했던 세상의 그림자 같은 존재들이다. 이를 위해 가깝게는 주변 동료들부터 넓게는 세계 곳곳의 지역사회 및 구성원의 모습을 카메라에 포착했다.

제이알은 2001년 우연히 지하철에서 한 카메라를 습득하면서 예술가로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사진=김금영 기자

어린 시절부터 거리에서 그래피티 작업을 해온 제이알에게 도시 건물 외벽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액자가 됐다. 촬영한 사진을 복제해 건물 외벽에 붙이고, 이미지 둘레에 액자처럼 프레임을 그려 넣은 일종의 야외 갤러리 전시인 ‘거리 전시회’ 시리즈는 전통적인 방식에 갇히지 않고 자유로운 그의 작업 방식을 제대로 보여준다. 다수의 대중과 소통하고자 한 제이알의 초기 예술세계를 대표하기도 한다.

세상의 편견·선입견에 저항하다

'세대의 초상'은 편향된 미디어가 묘사하고 주입한 편견을 전복시키는 시도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사진=김금영 기자

이번 전시에선 세계 거리를 누비며 제이알이 주목한 키워드 세 가지가 읽힌다. 첫 키워드는 세상 속 편견, 선입견이 가득한 시선에의 저항이다. 대표적으로 제이알의 첫 공공 프로젝트이자, 제이알이 처음 인물 초상 작업을 시작한 ‘세대의 초상’이 있다. 시작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제이알은 프랑스 파리 외곽에 위치한 몽페르메유 임대주택 단지 레부스케와 인접한 지역인 클리시수부아 지역에 있는 라포레스티에흐에 사는 사람들의 초상 사진을 찍은 뒤, 이를 확대 출력해 몽페르메유 거리에 붙여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약 1년의 시간이 흐른 2005년 10월, 제이알의 사진이 TV뉴스와 신문 기사에 실리며 유명세를 타게 된다. 파리와 주변 지역에서 노동자 계급 이민자들의 처우에 대한 반발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고, 해당 지역을 촬영해 보도하는 과정에서 제이알의 사진이 배경으로 등장한 것.

하지만 미디어에 비친 주민들의 모습은 거칠게 과장돼 있었고, 이에 반발심을 느낀 제이알은 다시 몽페르메유를 찾아가 미디어에 의해 변형된 모습이 아닌 주민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찍었다. 그의 사진 속 주민들은 익살맞은 장난꾸러기처럼 천진난만한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이를 통해 제이알은 편향된 미디어가 묘사하고 주입한 편견을 전복시키는 시도를 보여줬다.

'브라카쥐, 래드 리'는 유색인종이 들고 있다는 이유로 카메라가 한순간 무기로 변모한 편향된 미디어가 우리에게 어떤 인식을 심어주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사진=김금영 기자

‘브라카쥐, 래드 리’에서도 편견을 꼬집는다. 아무런 정보 없이 사진을 봤을 땐 인물이 취한 포즈와 표정으로 인해 마치 무기를 들고 상대방을 위협하는 상황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찬찬히 다시 사진을 살펴보면 인물이 들고 있는 건 총이 아닌 카메라이고, 뒤에 서 있는 아이들도 해맑게 장난을 치는 등 오히려 희화화된 순간이라는 걸 발견한다. 사진 속 카메라를 든 주인공은 제이알의 친구이자 영화 ‘레미제라블’ 감독인 래드 리다. 제이알이 렌즈 초점을 맞추는 순간 같이 사진을 찍고 싶다고 다가온 동네 아이들과의 만남의 순간을 우연히 담은 것이다.

오늘날 디즈니가 ‘PC주의(정치적 올바름)’를 내세우고, 세계 곳곳에서 인종 평등을 이야기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편견은 존재한다. 유색인종이 들고 있다는 이유로 카메라가 한순간 무기로 변모한 이 사진은, 편향된 미디어가 우리에게 어떤 인식을 심어주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제이알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가르는 국경 벽 양쪽에 두 국가 사람들의 대형 초상사진 '페이스 투 페이스'를 전시했다. 사진=김금영 기자

세대의 초상에 영감을 얻어 진행된 ‘페이스 투 페이스’ 또한 편견, 선입견에 저항한 대표적인 작업이다. 이번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배경이 됐다. 2006년 가자지구를 둘러싼 극도의 긴장 속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제이알은 교사, 의사, 운동선수 등 같은 직업을 지닌 사람들의 사진을 각각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서 촬영했다. 당시 미디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의 심각성, 이로 인해 폭력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주로 비췄지만, 페이스 투 페이스 속 인물들은 유머러스하고 즐거운 모습으로 극명한 차이를 보여줘 눈길을 끌었다. 제이알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가르는 국경 벽 양쪽에 두 국가 사람들의 대형 초상사진을 나란히 전시했다.

이후 베들레헴, 텔아비브, 라말라, 예루살렘 등 8곳이 넘는 도시에도 전시하며 ‘사상 최대 규모의 불법 사진전’으로 알려졌지만, 그만큼 주는 울림도 컸다. 페이스 투 페이스 촬영에 참여한 팔레스타인 배우이자 여행가이드였던 아이만 아부 알줄로프는 “이 사진들을 보면 양쪽의 사람들이 같은 인간으로서 서로 닮았다는 걸 알 수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을 얼굴로 구분하기는 어렵다”며 “많은 사람이 이 일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라며 비춰지는 현상에만 주목하지 않고, 그 안의 진실과 이야기를 들여다보기를 바랐다.

이처럼 거침없는 작업 스타일을 진행해 온 제이알은 계속해서 레부르케의 방치된 건물 외벽에 사진을 붙여 레부르케 시장에게 고소당하는 일도 있었다. 시장은 제이알에게 벌금을 부과했지만,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신출귀몰한 제이알을 찾기는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처럼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에 제이알의 사진을 모두 철거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지만, 제이알의 작업에 이미 깊이 감명 받은 주민들의 반발로 인해 이 또한 무산됐다. 전시는 이처럼 어떤 기준이나 편견에 현혹되지 않고, 아티스트로서 무엇을 기록하고, 어떤 것을 전시할지 스스로 결정하겠다고 다짐하고 이를 실천해나간 제이알의 여정을 따라간다.

소외된 존재들에 보내는 찬사

'도시의 주름'은 스페인의 항구 도시 카르타헤나에서 2008년 시작한 프로젝트다. 사진=김금영 기자

제이알이 주목한 두 번째 키워드는 소외된 존재다. 이번 전시에 마련된 ‘도시의 주름’과 ‘여성은 영웅이다’, ‘카사 아말렐라’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도시의 주름’은 스페인의 항구 도시 카르타헤나에서 2008년 시작한 프로젝트다. 제이알은 지역 주민과 협업해 대형 초상사진을 제작했는데, 주인공은 해당 도시에서 가장 연로한 노년층이었다. 카르타헤나는 스페인 내전(1936~1939) 중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에게 마지막까지 항거하며 반란을 일으킨 도시로, 이 도시의 사회, 경제적 발전과 변화의 중심엔 당시 청년이었던 현재의 노인들이 있었다. 가장 열정적으로 이 도시를 살아 왔음에도 어느덧 나이가 들어 뒤에 숨은 노인들의 이야기를 제이알은 전면에 끌어냈다.

'여성은 영웅이다' 프로젝트는 2008~2010년 캄보디아, 인도, 케냐 등 세계 도시 곳곳에서 진행됐다. 사진=김금영 기자

‘여성은 영웅이다’ 프로젝트는 2008년 브라질의 도시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가 모로다 프로비덴시아에서 군인의 불심검문을 거부하던 무고한 젊은 청년 세 명이 잔인하게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시작됐다. 현지 주민과 만난 제이알은 빈민가의 언덕을 따라 늘어선 40채의 건물 외벽에 주민들의 얼굴과 눈 사진을 확대해 붙였는데, 사건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경고하는 듯 뚫어지게 응시하는 듯한 모습이 연출됐다.

특히 이 눈들의 주인공은 해당 지역들의 여성들로, 사망한 남성과 관련이 있는 여성도 있었다. 이 작업은 약자로 여겨졌던 대상들이 힘을 합쳐 모였을 때 커지는 힘을 느끼게 했다. 이 설치 작업은 2008~2010년 캄보디아, 인도, 케냐 등 세계 도시 곳곳에서 진행됐는데, 각 국가의 여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보여줬다. 그러나 어떤 여성도 자신이 겪은 부당한 경험과 비극에 의해 정의되지 않았고, 제이알은 동정보다 그들이 카메라 앞에서 한 개인으로 주체성을 갖고 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할 권리를 가질 수 있게 유도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빈민가 언덕 꼭대기의 집은 ‘카사 아마렐라’로 새 생명을 얻었다. 학교도 지역 커뮤니티도 없는 리우데자네이루 빈민가 ‘모로 다 프로비덴시아’에서 제이알은 새 프로젝트를 위해 한 집을 샀는데, 이 집은 경찰과 마약상이 총격전을 벌일 때마다 총알이 주변에서 날아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잊힌 집이었다. 제이알이 노란색 페인트로 칠한 이 집은 포르투갈어로 '노란 집'이라는 뜻인 카사 아마렐라는 이름을 얻었다. 제이알은 ‘이곳은 문화센터도 학교도 아닌, 이 지역사회를 위한 장소’라고 써 붙였는데 이후 미국, 일본 등 다양한 지역 아티스트와 교사가 방문해 창작활동, 워크숍을 진행하는 공간이 됐다.

불협화음의 조화가 보여주는 역설과 재치

제이알은 '연대기' 시리즈를 통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불협화음의 조화에 주목했다. 사진=김금영 기자

제이알이 포착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불협화음의 조화도 인상적이다. ‘샌프란시스코 연대기’부터 ‘클리시-몽페르메유 연대기’, ‘총기 연대기: 미국의 이야기’, ‘뉴욕 연대기’까지 이른바 연대기 시리즈는 서로의 의견이 극명하게 부딪히는 사람들을 한 화면에 모아 놓았는데, 그 안에서 대립하는 것 같으면서도 한데 어우러지는 모습이 매우 역설적이면서도 재치 있다.

‘샌프란시스코 연대기’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그리고 거리에 마약상이 넘쳐나면서도 전 세계에 영감을 주는 최신 트렌드와 에너지가 가득 찬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겼다.

'총기 연대기: 미국의 이야기'엔 총기 수집가, 사냥꾼, 사법당국, 총격 희생자, 총기 난사 사건의 피해자를 치료하는 응급실의 의료진, 총기 산업의 로비스트 등 미국의 총기에 대해 각자의 관점이 극명한 시민 245명이 등장한다. 사진=김금영 기자

‘총기 연대기: 미국의 이야기’엔 총기 수집가, 사냥꾼, 사법당국, 총격 희생자, 총기 난사 사건의 피해자를 치료하는 응급실의 의료진, 총기 산업의 로비스트 등 미국의 총기에 대해 각자의 관점이 극명한 시민 245명이 등장한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 에미상의 뉴스·다큐멘터리 에미상, 뉴어프로치: 시사 뉴스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제이알은 연대기 시리즈를 비롯해 루브르 박물관, 팔레 드 도쿄, 에펠탑이 있는 트로카데로 광장 등 세계 곳곳의 명소 또한 배경으로 작업해 왔는데, 이번 전시엔 서울도 깜짝 등장한다. 서울에서의 전시를 기념해 ‘무제, 아나모포시스, 서울’을 작업했다. 롯데뮤지엄이 연상되는 공간의 한 지점에 서면 마치 전시장 바깥의 공간을 끌어들여 펼쳐놓은 것처럼 재치 있는 눈속임이 인상적인 작업이다.

서울에서의 전시를 기념해 제이알이 작업한 '무제, 아나모포시스, 서울'. 사진=김금영 기자

롯데뮤지엄 측은 “이 공간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균열을 통해 외부 세계와 연결돼 있는 것 같은 환상을 느끼게 한다”며 “제이알은 건물의 내부와 외부를 넘나들며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여주고, 공간과 경계를 활용해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하이브리드 세계를 구축한다”고 밝혔다.

이 모든 키워드들은 제이알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소통으로 점철된다. 전시 말미를 장식하는 ‘인사이드 아웃’은 개인이나 단체가 자신의 사진을 이용해 지역사회의 문제에 목소리를 높일 기회를 주는 프로젝트다.

'인사이드 아웃'은 개인이나 단체가 자신의 사진을 이용해 지역사회의 문제에 목소리를 높일 기회를 주는 프로젝트다. 사진=김금영 기자

참가자들은 웹사이트 플랫폼을 통해 사진을 제출하고, 제이알은 해당 사진과 사연을 검토한 뒤 그 사진을 포스터로 프린트해 참가자가 직접 부착할 수 있도록 보내준다. 이 모든 활동들은 기록돼 온라인상에서 전시된다. 2011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를 통해 벨기에에 있는 아프가니스탄 이주민이 처한 곤경, UN이 연루된 아이티 콜레라 사태 등이 알려지기도 했다.

멕시코 국경의 피크닉 사진 또한 예술로 인한 소통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업이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따라 설치된 이 작업은, 위에서 보면 국경의 울타리 너머를 응시하는 듯한 한 아이의 눈빛을 마주하게 된다. 이 눈의 주인공은 불법 이민자 출신의 젊은이인 마이라다.

 

불법 체류자 문제로 극한의 대립을 겪어 온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설치된 이 작품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국경의 양쪽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라이브 음악을 즐기며 피크닉 시간을 가졌다. 이를 통해 예술로서 대립을 뛰어넘어 소통을 통한 상호작용이 이뤄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멕시코 국경의 피크닉 사진은 예술로 인한 소통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업이다. 사진=김금영 기자

이밖에 2019년 루브르 피라미드의 30주년을 기념해 미술관의 나폴레옹 광장 전체를 사진으로 덮은 ‘아나모포시스’ 작업, 같은해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테하차피 교도소에서 재소자들과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도 소개된다. 전시 처음부터 끝까지, 늘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예술을 펼치고, 이로 인해 변화하는 세상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롯데뮤지엄 측은 “제이알은 ‘예술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단순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대변해 시대의 편견과 맞서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이끌며 사회 전체의 변화를 예술을 통해 실천하고 있다”며 “이번 전시는 국경을 넘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동시대의 주요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과 대화를 이끌어내는 장이자, 제이알의 독창적인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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