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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욕망은 탐욕 아닌 희망으로 영원히 반짝 빛난다

가나 포럼스페이스, 김지희 개인전 ‘이터널 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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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51호 김금영⁄ 2023.07.05 10:54:44

김지희 작가. 사진=김금영 기자

안경은 더 반짝반짝 화려하게 빛을 내고, 교정기를 껴 어색하면서도 다소 냉소적이었던 미소는 살짝 따뜻함을 머금었다. 차가워 보이기만 했던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영원한 희망의 빛을 발견한 것처럼.

프린트베이커리가 김지희 작가의 개인전 ‘이터널 골든(Eternal Golden)’을 가나 포럼스페이스에서 7월 14일까지 연다. 뉴욕, 파리, LA, 홍콩, 워싱턴, 런던, 도쿄, 베이징, 타이페이, 상하이, 두바이, 대만 등 세계 곳곳을 누비며 활약해온 작가가 오랜만에 갖는 국내 개인전이다.

김지희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 전시장 전경. 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를 대표하는 시리즈는 ‘실드 스마일(Sealed Smile)’이다. 안경을 쓰고 교정기를 착용한 인물이 등장하는 실드 스마일은 2008년 작가의 손을 통해 탄생했다. 성별이 정확하지 않고, 눈이 안경에 가려져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은 분명히 웃고 있지만, 묘하게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이빨엔 교정기까지 씌워져 미소에 어색함을 한층 더했다.

초장기 작업에서 작가는 늘 더 나은 삶을 바라는 사람들이 진정 자신이 원해서 그것을 욕망하는지, 사회에서 소위 성공했다고 일컬어지는 기준에 맞춰 욕망을 억지로 부여받는 것은 아닌지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졌다. 삐뚤빼뚤한 치열에 억지로 힘을 가해 가지런하게 만들어 어설픈 미소를 짓게 하는 교정기처럼 실드 스마일은 아름답기도, 또 서글프기도 했다.

이후 실드 스마일은 다양한 소주제로 이야기를 확장시켜 왔다. 2011년엔 브랜드와 관련된 욕망의 키워드를 읽는 ‘욕망의 컬렉션’을 선보였고, 전통 민화 속 욕망을 탐구하는 작업 또한 선보였다.

김지희 작가의 작품. 화려한 금박을 배경으로 이보다 더 화려한 보석과 안경으로 치장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사진=김금영 기자

또, 주목할 만한 변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작가가 바라보는 욕망에 희망이 깃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19년 개인전 ‘트윙클 트윙클’ 때 만났던 작가는 욕망과 희망의 경계에 서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일반적으로 욕망은 부정적, 희망은 긍정적인 이미지로 경계 짓듯 이야기될 때가 많은데, 무언가를 원하고 바란다는 점에서 욕망과 희망의 공통점을 발견한 작가는 이를 이분법적으로 나누기보다 함께 포용하는 방향을 택했다.

이번 전시에선 화려한 소비재로 점철된 욕망에 더 집중한 인물 작업 ‘이터널 골든’ 시리즈 연작을 선보인다. 과거보다 더 휘황찬란해진 화면은 눈을 휘둥그레 만들기도 하지만, 그 화려함에 눈이 멀기보다는 무언가 희망에 가득 찬 듯한 느낌이 가슴을 두근두근 뛰게 한다.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지희 작가. 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처음 실드 스마일로 작업을 시작했을 당시엔 인물의 내면에 관심을 갖고 포장된 미소를 집중적으로 그렸다. 이후 15년 동안 인물 작업을 이어오면서 인물에 대한 관심은 그 인물의 욕망으로 이어졌고, 이야기는 이터널 골든 시리즈로 확장됐다”며 “더 나은 삶을 향한 사람의 욕망을 탐욕이 아닌 희망으로 바라봤다. 이에 따라 화면엔 장식적인 요소도 더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의 말인즉슨 태어나서 걸음마를 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꾼다. 어제보다 더 잘 걷기를 바라고, 걷기 시작하면 뛰는 순간을 꿈꾼다. 이 과정에서 수없이 넘어지고 상처도 생기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일어나 더 큰 세상으로 달려 나가고자 한다. 이렇듯 무언가를 욕망, 희망하는 우리 모두의 존재가 빛나 보였다는 작가다.

더 화려해진 안경 속 욕망의 존재들

120호 화면에 8마리의 부엉이가 등장하는 신작. 사진=김금영 기자

반짝반짝 빛나는 안경 속엔 범선, 신화의 명화 등이 그려져 눈길을 끈다. 안경은 작품 속 존재하는 또 하나의 레이어로, 안경 속 화면을 통해 작가는 우리의 욕망에 좀 더 세밀하게 접근한다. 작가는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범선은 서양과 동양의 패권이 바뀐 계기이자, 당장 내일을 알 수 없어도 거침없이 파도를 가르며 나아가는 상징적인 존재였다. 이 점이 우리의 욕망과 맞닿는다고 느꼈다”며 “신화에서도 아름다움, 지혜, 기회를 욕망하는 이야기가 많다. 이 욕망들을 우회적으로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꽃과 보석의 대치도 눈에 띈다. 꽃은 화려하지만 찰나의 삶을 살고, 보석은 영원하다 여겨지는 존재다. 찰나와 영원을 한 화면에 공존시켰는데, 그렇다고 소멸을 전제로 살아가는 존재의 의미를 허무하다고 규정짓지 않는다. 오히려 희망하고 욕망하며 찬란하게 빛나는 모든 순간을 따뜻하게 바라본다. 그렇기에 꽃도 보석도 모두 화면에서 아름답게 빛난다.

 

120호 화면에 8마리의 부엉이가 등장하는 신작, 금박으로 가득한 부엉이 그림도 눈길을 끈다. 작가가 2020년부터 시작한 ‘더 팬시 스피릿(The Fancy Spirit)’ 시리즈의 연장선상이다. 인간처럼 망토를 두른 부엉이가 금박을 배경으로 근엄하게 포즈를 취한 신작은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가장 애착을 가진 작품이기도 하다.

정선의 '여산초당도'를 차용한 100호 작업. 사진=김금영 기자

과거 어느 날 작가는 인사동에 재료를 사러 갔다가 진열대에 놓인 작은 부엉이 조각에 승진, 건강 등 저마다의 복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영감을 받아 작업과 연결 짓게 됐다고 한다. 부엉이뿐 아니라 호랑이, 이번 전시에선 두꺼비까지 화면을 누빈다. 이처럼 작가는 우리가 희망을 의탁하는 기복 소품들을 판타지적인 거대한 화면으로 바라보게 하면서 우리 안의 욕망과 희망까지 반추하게 한다.

 

작가 개인의 상징적 요소를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예컨대 한 작품에 그려진 시계 바늘은 2시 10분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실제로 작가가 태어난 시각이라 한다. 작가 또한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됐을 욕망이 작업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사람들과 만난다.

이번 전시는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의 매력을 한껏 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특히 정선의 ‘여산초당도’를 차용한 100호 작업이 눈길을 끈다. 작가의 작업은 데뷔 당시 강렬한 색채와 톡톡 튀는 캐릭터로 인해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서양화라는 오해를 종종 받곤 했다. 하지만 작가는 이에 부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며 동양화 작업을 묵묵하게 이어왔다. 이로 인해 현재 작가의 작업은 ‘동양적 팝아트’로 불리게 됐다.

아크릴 물감을 사용한 '트렁크 시리즈'는 19세기 유럽 기차여행에서 사용됐던 트렁크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한 그림과 오브제 사이 경계 작업이다. 사진=김금영 기자

한지를 여러 겹 덧붙인 장지 위에 아교를 칠하고, 호분(조개껍질에서 얻어낸 흰 물감)을 올리고 분채로 채색하며 물감을 4~10번 걸쳐 올려나가는 과정을 거쳐 탄생한 화면은 여산이라는 이상의 산을 배경으로 한다. 배경은 매우 동양적인데,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쓴 안경엔 예술사업에 수천억 원을 후원하며 서양 미술사 발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메디치 가문의 번영을 위해 제작됐던 작품 이미지를 그려 넣었다. 이로 인해 한 화면에 동서양의 이상과 욕망이 조화를 이룬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작가는 끊임없이 도전을 욕망하는 듯하다. 동양화라는 근간은 지키면서도 디아섹, 부조, 오브제, 영상작업 등 다양한 매체를 연구, 사용하는 행보를 동시에 이어왔다. 이번 전시에서도 이런 특별한 도전을 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메인 전시장 옆 분리된 공간에서 트렁크 시리즈와 다양한 오브제를 선보인다. 아크릴 물감을 사용한 '트렁크 시리즈'는 19세기 유럽 기차여행에서 사용됐던 트렁크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한 그림과 오브제 사이 경계 작업이다. 이 시리즈에서 작가는 작품 크기를 설명할 때 ‘호’ 단위 이해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대중적인 S, M, L 사이즈로 작품을 선보이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김지희 작가는 그림뿐 아니라 디아섹, 부조, 오브제, 영상작업  등 다양한 매체를 연구, 사용하는 행보를 이어왔다. 사진=김금영 기자

4년 전 개인전 때 만났던 작가는 “현재 나는 건강하게 꾸준히 좋은 작업을 이어나가고 싶은 욕망이 크다”며 “매체적으로도, 주제적으로도 게을러지지 않고 작가로서 좋은 작업을 계속 해나가는 것, 그것이 내 욕망이자 희망”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작가의 이 욕망은 지금 현실이 돼 또 새로운 욕망의 원천이 되고 있다.

작가는 “빛나는 삶을 향한 여정은 때로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노력보다 넘어졌을 때 일어나는 노력에 달린 것이라 생각한다. 각자의 무게로 품고 가야 하는 좌절감을 달래며 수없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남을 행하고, 스스로를 향한 긍지를 갖게 되는 것이야말로 유한한 삶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좌절에 빠져 흘리는 눈물은 희망으로 인도하는 빛나는 보석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작가는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욕망하며, 또 희망한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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