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1호 김응구⁄ 2023.07.11 14:19:02
만드는 자가 있으면 파는 자가 있다. 그게 시장(市場)이다. 주류시장도 마찬가지다. 하이트진로·오비맥주·롯데칠성음료 같은 주류제조사가 있다면 ○○종합주류·○○주류상사 같은 주류유통사도 있기 마련이다. 제조사가 술을 만들면 유통사는 이를 음식점·술집에 납품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일’하는 것뿐이지만,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이들의 수고 덕분에 술집 등에서 제값을 내고 편하게 술을 마신다. 주류유통업이라고 썼으나 정확히 표현하면 종합주류도매업이다. 회사는 전국에 걸쳐 1100여 개에 이른다. 당연히 지역별로 묶은 단체가 존재한다. 서울의 종합주류도매사들로 구성한 서울지방종합주류도매업협회, 이런 식이다. 전국 시도별로 16개 협회로 나눴다. 이 모두를 대표하는 중앙회도 있다. ㈔한국종합주류도매업중앙회다.
지난 3월 21일 서울 63스퀘어에서 열린 한국종합주류도매업중앙회 정기총회에서 새로운 중앙회장이 뽑혔다. 이날 조영조 서울지방종합주류도매업협회장이 제9대 중앙회장으로 선출됐다. 이번 선거 결과는 나름의 의미도 있다. 한때 서울협회장은 중앙회장을 겸직했다. 하지만 근래 들어선 사정이 달라졌다. 그간 경기남부나 인천의 수장이 중앙회를 이끌었다. 서울협회장이 중앙회장직을 맡았던 건 2011년 3월까지다. 무려 12년 만에 다시 서울로 넘어왔다.
충분히 숨을 고른 후 중앙회의 변화와 혁신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는 조영조 중앙회장을 만났다. 새로운 환경과 체질을 만들어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지금 중앙회에는 오래 묵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 문제부터 파고들었다.
- 9대 중앙회장에 오르고 벌써 3개월이 지났습니다. 중앙회 업무는 어느 정도 파악하셨을 테고요, 현재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지난 4월 1일 자로 9대 중앙회장에 취임했죠. 사실 전 2021년부터 서울지방종합주류도매업협회 부회장 자격으로 중앙회 이사회에 참여했어요. 그러니까 전임인 중앙회 8대부터 집행부로 참여했던 거죠. 그 당시 여러 정책을 구상해보기도 하고 회원사들의 바람도 틈나는 대로 들었어요. 최근엔 그 기록을 바탕으로 우리 업계의 여러 난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그 방안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 주류제조사와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상생해야 할 대상이지만, 업무적으로 부딪히는 부분은 없나요?
“지난 시간 소원했거나 소통이 부족했던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를 만회하고자 주요 주류제조사 또 주류수입사와 개별적으로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 4월 시작해 상반기까지 모두 마무리했죠. 그런 대화와 소통으로 주류제조사·수입사와 교류의 폭을 넓히면 건전한 주류유통 환경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 곧바로 현실 문제로 넘어가 보죠. 먼저, 내구소비재 문제입니다. 종합주류도매사는 여전히 신규 거래업소에 쇼케이스(주류냉장고)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관련 고시(告示)가 개정됐음에도 제공 주체에 주류도매업이 포함됐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국세청 고시를 먼저 보죠. ‘주류거래질서 확립을 위한 명령위임 고시’ 가운데 제3조 제2항제3호를 보면, 소매업자에게 제공하는 내구소비재 즉 냉장 쇼케이스에 대해 ‘주류제조자 또는 주류 수입업자가 그 밖의 주류 판매업자와 공동으로 내구소비재를 제공할 경우…’라고 규정해놓고 있습니다. 주류제조자와 주류수입업자는 직전 연도 주류매출액(부가가치세·주세·교육세 제외)의 0.5% 한도 내에서 내구소비재 구매비를 일부 지원한다지만, 결국 주류도매업자가 냉장 쇼케이스를 100% 제공하는 게 현실이에요. 오래전 고시 이전에는 주류제조자가 소매업소에 간판이나 쇼케이스 같은 내구소비재를 직접 지원하는 게 관행이었어요. 내구소비재는 소비자가 마시기 좋은 최적의 상태로 상품을 보관하고, 특히 제품의 간접홍보 목적을 겸하고 있어 결코 주류제조자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 그러니까 현재 내구소비재는 주류도매업자가 100% 지원한다는 말씀이군요?
“처음엔 주류제조사가 내구소비재를 업소에 무상으로 공급했어요. 그러다 1990년대 중반에 그 부담액의 절반을 주류도매사에 넘겼고요. 1997년 3월엔 국세청 고시로 둘 다 공급을 중단했어요. 하지만 거래업소에 직접 술을 납품하는 주류도매사 입장에선 업소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모두 부담하기 시작했죠. 이후 2012년까지 주류도매사만 제공했어요. 그러다 고시가 개정되면서 2013년부터 주류도매사는 물론 주류제조사도 제공할 수 있게 됐죠. 내구소비재는 주류도매사 입장에선 경영악화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류제조사와 주류수입사도 적절한 고통 분담이 있어야 하는 만큼, 현행 내구소비재 구매비용을 직전 연도 주류매출액의 0.5%에서 2%로 상향되도록 관련 고시를 개정해 주류도매사의 이익을 높이고, 궁극적으론 주류제조사와 주류수입사가 100% 공급하도록 해야 합니다.”
- 주류의 통신판매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죠? 시대 흐름에 따른 판매 방식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그것을 위해 감수해야 할 문제점도 여럿 있기 때문인데요. 중앙회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현재 주류 통신판매는 전통주를 제외하곤 금지하고 있죠. 한국은 나이와 통신판매 제한 이외에 별다른 규제가 없어요. 다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보다 알코올 제품의 판매·소비 규제가 약합니다. 그 때문에 통신판매를 허용하면 국민 건강이 저해되는 것뿐만 아니라 청소년의 주류 구매 가능성도 훨씬 커지죠. 통신판매를 허용하는 국가는 판매 시간과 장소를 제한하고 있어요. 만약, 통신판매를 허용한다면 주류도·소매업자는 큰 타격을 입습니다. 특히, 자본력이 탄탄한 대형 주류도매사가 시장을 잠식하는 건 불 보듯 빤한 일입니다. 더구나 무면허자의 무자료 거래 등 염가로 공급된 주류가 비정상적인 시장에서 불법 거래되면 탈세나 주류유통질서 문란 같은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더 이상 허용해선 안 됩니다.”
- 이와 더불어 편의점을 중심으로 한 ‘주류 스마트 오더’ 방식도 종합주류도매업 입장에선 지적 대상입니다. 앞서 통신판매도 그렇지만 이 경우 역시 청소년 구매 문제가 예상돼요.
“주류 스마트 오더는 ‘부분 통신판매’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주류를 주문·결제하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상품을 받는 방식이잖아요. 스마트 오더가 허용된 후 ‘주류 정기구독’ 등 주류유통 플랫폼이 무분별하게 확산해 우리 업계가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주류 정기 배달 같은 법규 위반에 대해 엄격한 제재가 없으면 향후 온라인 통신판매로까지 확대될 경우 현 주류면허제도와 주류유통질서에 악영향을 끼칠 겁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부분은 청소년들이 성인 인증을 도용해 구매하는 경우예요. 상품을 받을 때도 성인 확인 여부가 제대로 되지 않을 염려도 크고요. 한마디로 청소년들이 손쉽게 주류를 접하는 루트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 최근에는 무알코올 맥주 문제까지 겹쳤습니다. 현행법상 주류도매사가 팔 수 없기 때문인데요. 분명 풀어내야 할 숙제 같습니다.
“현행 주세법상 알코올 1% 이상이면 주류로 구분하고, 그 미만일 땐 탄산음료나 혼합음료로 분류해요. 맥주 대용으로 즐겨 마시는 맥주 맛 음료는 알코올이 1% 미만이어도 ‘성인이 먹는 식품’임을 표시해 미성년자에게 판매하면 안 됩니다. 청소년들이 호기심으로라도 이를 구매하는 일이 없도록 말이죠. 무알코올 맥주의 매출은 지난해 약 250억 원으로, 전년과 비교했을 때 40%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앞으로도 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이고요. 하지만 주류 면허 관련법 시행령에 보면 주류도매사의 무알코올 맥주 취급·판매가 금지돼 있어요. 그래서 주류도매사가 판매하는 주류 면허요건에 ‘일반 탁주와 주정을 제외한 전주류’ 외에 ‘비알콜·무알코올 주류’를 추가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 ‘주류도매업 TO 면허제 사수’도 민감한 문제입니다. 이는 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필요가 있겠습니다. 종합주류도매업계 입장에선 생존이 달린 문제잖아요.
“한마디로 주류산업은 ‘경쟁 자유화로 인한 시장성장’을 목표로 하면 안 되는 규제산업입니다. 주류도매업 TO 제도를 폐지하고 시장진입을 자유화할 경우, 세원 관리 문제뿐만 아니라 과당경쟁으로 인한 중소업체 도산, 불법 주류유통 양산, 불공정 거래 확산, 환경문제 확대에 가격 인하로 인한 청소년문제나 과음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어요. 더불어 면허제는 주류도매업자의 생존권인 만큼 반드시 사수해야 하죠. 그럼에도 내외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기존 사업장은 무너지고 새로운 면허권은 매년 나오는 실정입니다. 중앙회는 주류도매업 TO 제도를 정확히 진단한 후 국세청이나 관계기관에 건의하고, 이에 대한 문제점을 백서(白書)로 출간하려 합니다. 다시는 대한민국에서 주류도매업 TO 제도 문제가 제기되지 않도록 강력히 대응할 겁니다.”
- 최근 말씀하신 것 중 ‘주류판매 구역 권역화’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지금의 시도(市道) 권역과는 다른 개념인 건지, 아울러 왜 필요한 건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현재 주류도매업은 주류판매 권역 상호 침범으로 인해 제 살 깎아 먹기식 경쟁을 벌이면서 스스로 설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이에 중앙회는 주류도매업 판매구역의 문제점을 찾고 외국 사례를 조사할 계획입니다. 그런 후 주류의 특수성을 고려해 관련 부처와 지방협회 간 협의를 거쳐 수도권, 충청권, 강원권, 영남권, 호남권, 제주권 등으로 광역시·도 중심의 판매구역 권역화를 추진할 겁니다. 각 시도협회 간 자체 규약을 통해 위반 업체에 대한 위약금과 손해배상 등의 제재도 가할 방침입니다.”
- 얼마 전에는 중소기업중앙회에 가입하겠다고 공언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중앙회를 한국경제 4개 단체 중 하나인 중소기업중앙회에 가입시킬 계획입니다. 그럴 경우 정부자금 저리 대출 같은 각종 혜택이 생겨요. 아울러 지자체로부터 유휴부지를 불하(拂下)받아 주류도매사 하치장으로 사용할 수도 있죠. 특히, 정부의 정책자금으로 공동 물류센터를 설치하는 등 많은 혜택을 회원사에 제공할 겁니다.”
- 이제 회장님 개인사를 잠깐 언급해보죠. 처음, 어떻게 주류업계와 인연을 맺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강원도 강릉에서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마치고, 1980년대 초반부터 서울에서 개인사업을 운영했어요. 그러다 1987년에 양주(洋酒) 대리점들을 종합주류도매사와 통합하라는 국세청 행정명령이 떨어졌죠. 당시 집안 형님이 양주 대리점을 운영 중이었는데, 통합과 합병 과정에서 제게 사업을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이후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양주 전문 도매사 운영을 함께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양주판매라는 게 그 특성상 심야 영업활동이 불가피하잖아요. 그러니 업종 스타일이 터프할 수밖에 없죠. 예상치 못한 부실채권 발생, 치열한 거래업소 확보 경쟁 등 온갖 어려움과 시련을 현장에서만 20년 넘게 겪은 듯해요.”
- 주류업계와 연을 맺긴 했는데, 처음부터 순조롭진 않았군요.
“그래도 그런 과정을 통해 많은 걸 깨달았어요. 회사경영을 위해 대표가 직접 현장에서 진두지휘하지 않으면 직원들은 절대 따라오지 않습니다. 몸소 현장에서 새벽까지 뛰어다니다 보니 직원들 스스로 변화하는 게 보여요. 제 뜻도 잘 따라주고요. 어느 시점에 와서 보니 안정적인 회사가 돼 있더군요. 모든 비즈니스의 성공담은 무용담이 아닙니다. 하루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고요. 경영자의 건강하고 확고한 의지가 정말 중요해요. 회사경영자이자 현장 영업사원을 30년 넘게 하다 보니, 이제 겨우 시장을 보는 눈이 생긴 것 같습니다.”
- 오랜 시간 한 사업체를 운영하며 지금의 자리까지 오르셨습니다. 경영철학이 없을 수 없습니다. 업계의 후배들이라든지 아니면 예비창업자라든지,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을 듯합니다.
“제가 얼마 전 한 매체에 기고한 컬럼에 ‘Acta Non Verba’(악토 논 베르바)라는 라틴어를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말보다는 행동하라’는 뜻이죠. 주류유통 비즈니스에 뛰어든 지 30년이 지났어요. 그러면서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죠. 처음이나 지금이나 모든 문제의 해답은 현장에 있고, 그 현장의 사람들에게 해법이 있다는 겁니다. 문제해결은 머리가 해주지 않아요. 해결의 아이디어나 단초는 제공해주겠지만 궁극적으로 해결하고 마무리하는 건 결국 ‘현장’에서 ‘사람’이 한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막연한 지레짐작이나 선입견에 의한 판단은 문제해결에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책상에 앉아서 방향과 전략을 수립할 순 있겠지만 해법과 결과는 말이 아닌 행동과 현장에서의 실천이 가능케 하죠. 현재 창업을 구상하고 있거나 아니면 힘든 상황에서도 경영에 매진하는 사업자라면 항상 현장에 답이 있고, 오로지 행동만이 문제해결의 열쇠가 된다는 생각을 가져보기 바랍니다.”
- 국내 종합주류도매업계 종사자들에겐 여러 창구를 통해 기대와 부탁과 동참을 말씀하셨겠지만, 여러 일반인은 잘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이분들에게 어필할 만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종합주류도매업은 기본적으로 약 63만 개에 이르는 음식점·주점에 술을 납품하는, 오로지 주류유통만을 영위하는 사업입니다. 주류유통 비즈니스는 술을 도매하고 취급하는 게 기본이지만, 사실 술은 국가가 제조·유통·소비 등 모든 단계를 매우 엄격하게 통제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술로 인해 연간 16조 원이 넘는 직·간접적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잖아요. 한국처럼 술에 관대하고 접근성이 쉬운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 같은 술을 취급하도록 국가로부터 면허를 받은 사업자가 주류도매사입니다. 그런 만큼 면허사업자로서 취급제품에 대한 기본 윤리와 업종의 책무는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술의 긍정적인 기능은 소비자와 사회를 위한 재충전의 에너지가 됩니다. 그 긍정적인 기능을 위해 종합주류도매업이 사회적 책임과 목표를 다 한다면 긍정의 해피 비즈니스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