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경제 = 문규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윤석열 대통령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이른바 ‘킬러(초고난도) 문항’을 언급하며 “공교육 교과 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분야의 문제는 수능에서 배제하라”고 지시하자마자 지난 6월의 모의평가에서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교육부의 대입 담당 국장이 경질되고, 수능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원장이 전격적으로 사임하는 등 교육계가 들썩였습니다.
이어 정부와 여권에서 수능에서 킬러 문항이 계속 출제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사교육 이권 카르텔’을 지목하며 이에 대한 척결을 외치자, 국세청에서는 대형 입시 학원들과 유명 강사에 대해 동시다발적으로 특별 세무조사에 착수하였고, 교육부에서는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신고센터를 가동하여 사교육·수능 유착 의심 신고, 교재 구매 강요, 교습비 초과 징수, 허위·과장 광고 등에 대한 집중적인 신고를 받기 시작했다는 언론 보도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수능을 불과 5개월 앞둔 시점에서 이러한 움직임을 지켜보는 수십만 명의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은 불안감으로 큰 혼란에 휩싸였고, 학원가와 야당에서는 물수능이 예상되고 변별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데 입시에 문외한인 대통령이 나설 것은 아니라고 일제히 비난하면서 ‘사교육비 절감 문제’와 ‘수능의 난이도 문제’가 정치권의 중심 쟁점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교육열, 특히 수능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
대한민국 학부모들의 교육열은 거의 세계적일 뿐만 아니라 교육 정책에 대한 이해도 또한 전문가에 못지않은 수준이며 특히 대입 수능과 관련해서는 정시와 수시 입학에 관한 변화무쌍한 정책과 복잡한 기준도 술술 꿰고 있을 정도입니다. 따라서 입시 정책의 변화에 매우 민감하여 이와 관련된 잘못된 언급은 항상 큰 파장을 가져왔습니다. 더구나 그 기준의 공정성과 관련해서는 손톱만큼의 불공정도 용납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혹시 내 자식에게 어떠한 불이익의 불똥이 튀지 않을까 노심초사할 정도입니다. 이는 지난 ‘조국 장관 사태’에서 문제되었던 ‘표창장 위조’ 문제에서 보였던 전국민적 관심이 대표적인 예일 것입니다.
이처럼 대입 수능과 사교육의 문제는 항상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관심사가 되어 왔으나 공교육 현장이 무너진 틈새를 사교육이 파고드는 과정에서 수많은 문제점이 야기되었고 우리 국민 거의 모두가 그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으나 어느 정권에서도 이를 제대로 파헤쳐 그 대책이 수립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역대 정권을 거치면서 ‘중학교 평준화’, ‘고교 평준화’, ‘과외 금지’, 과학고와 외국어 고등학교 등의 ‘특목고와 자사고(자율형 사립 고등학교) 설치’ 등의 비상조치가 있긴 했으나 신군부 시절의 ‘과외 금지 조치’ 말고는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킨 정책은 없었고, 특목고와 자사고는 그 설립 취지와는 달리 입시 위주의 교육을 펴는 탓에 오히려 교육의 불공정성과 의과대학 편중의 공교육 시장의 왜곡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2000년에 ‘사교육 제한은 위헌’이라고 결정한 이후부터는 ‘과외 금지’, ‘학원 수강료 규제’, ‘학원 수업 밤 11시까지로 제한’, ‘선행학습 금지’ 등의 불법 과외와 관련된 수사마저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비록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이전이긴 하지만 사교육과 관련된 비리 문제가 전면적으로 다루어진 것은 제가 서울지검 특수2부(당시 부장검사 안대희 전 대법관)에 근무하면서 1997년 3월부터 7월까지 대대적으로 기획하여 수사했던 대형 대입학원 및 보습학원의 불법 과외 관련 비리 수사가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으로 생각되어 이 시점에서 당시 수사를 회고해 봅니다.
사교육 관련 비리 수사 착수
안대희 부장검사가 지휘하는 서울지검 특수 2부(소속 검사 5명)는 당시 서울의 서초, 강남, 송파, 강동구(이를 통틀어 소위 강남 지역)를 무대로 우후죽순처럼 번지고 있던 보습학원(보충학습학원의 준말)에서의 불법 운영을 사교육 비리 현장의 첫 수사 단서로 삼았습니다.
보습학원은 1996년 6월 학원 규제 완화 조처로 처음 생긴 이래 급속도로 번지고 있던 학원의 형태로서, 당시 속셈학원이나 외국어학원 형태로 이루어지던 소규모 과외 학원을 양성화하기 위한 조처였으나, 20평 이상의 강의실만 있으면 설립이 가능하도록 시설 기준이 완화되면서 난립하게 되었는데 1996년 5월에 학원 설립이 인가제에서 신고제로 변경된 것도 난립의 큰 원인이 되었던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수사에 착수할 당시 보습학원은 서울에만 3700여 군데가 운영 중이었고 그 중 3분의 1가량이 강남 지역에 몰려있었는데 그 가운데 80% 이상이 수강료 초과 징수 등 불법 운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고, 신문 간지 광고 등을 통해 무차별적인 광고를 함으로써 학부모들의 불안한 심리를 부추겨 고액 과외를 유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더구나 보습학원의 난립을 단속할 감독 인원은 30명 정도에 그쳐 역부족이었을 뿐만 아니라 일부 교육청 직원은 관할 보습학원의 불법을 약점 삼아 뇌물을 뜯어내는 먹이사슬의 역학 구조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보습학원 수사에서 드러난 비리
보습학원 수사에서 드러난 비리는 수강료 초과 징수, 무등록 무자격 강사 채용, 강의실 임대를 통한 불법 과외 장소 제공, 초등학생 교습, 수강료 수입에 대한 탈세 등 온갖 유형의 비리가 성행하고 있었습니다.
단과반의 경우 1인당 5만 4000원, 종합반의 경우 23만 5000원의 수강료가 책정되어 있음에도 과목당 100만 원 이상을 받고 1대1 과외 교습을 시키거나(부유층 자제들을 ‘돼지’에 비유하여 학원가에서는 이를 ‘돼지 키우기’로 지칭), 부동산임대업자처럼 한 달에 200~300만 원의 대실료를 받고 강사들에게 강의실을 임대해 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강사들은 학생 집을 찾아가 교습하는 ‘방문 과외’ 대신 강의실을 빌려 고액 과외 장소로 이용하기도 했는데 이를 ‘스탠드바 식 분양’으로 통하는 운영 방식이라고 하였습니다.
소위 ‘소수 정예반’은 고액 과외의 창구로 이용되었고 고액 수강생을 모아 데려오면 학원에서는 소개료로 수백만 원을 지급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초등학생은 교습의 대상이 아닌데도 ‘중1 예비반’이라는 이름 아래 수학과 영어를 가르쳐 온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일부 보습학원의 경우, 수강료를 비싸게 받고서도 가짜 영수증을 만들어 법정 수강료만 받은 것처럼 조작하거나 수강 인원의 약 30%를 줄여 신고하여 95년도분 소득세 약 4억여 원을 탈루한 사실과 학생들을 소개해 준 현직 교사에게 1인당 10만 원의 소개비를 지급하고 향응을 제공하는 등으로 한달에 700여만 원을 지출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보습학원 수사를 통하여 학원 내에서 ‘1대1’ 과외를 한 보습학원장 4명과 고액 방문 과외를 한 불법 과외 강사 5명을 구속기소하였습니다.
유명 대입학원 수사 결과
보습학원에 대한 수사가 탄력을 받자 서울의 유명한 대형 대입학원에 대해서도 수많은 제보가 쏟아져 들어왔는데 “수강 인원을 실제 인원보다 줄여 수강생 장부를 꾸며 매출을 누락시키는 방법으로 탈세를 했다”, “모의고사와 교재 채택비를 일선 학교 교사들에게 제공했다”는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이러한 제보를 근거로 당시 대학입시 학원가에서 속칭 황제 반열에 속하는 K, D, J 등 대표적인 대형 대입학원 10여 곳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통하여 수많은 비리를 포착할 수 있었고 유명 대형 대입학원 원장 7명을 탈세 및 교재 채택비를 제공한 혐의(배임증재) 등으로 구속기소하였습니다.
K학원의 경우, 원장이 당시 대통령 자문기구인 교육개혁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 중이었음에도 실제 수강 인원의 30% 가량을 미등록한 것처럼 장부를 조작하고 세무서 신고용 가짜 영수증을 비치하는 등으로 95년도분 소득세 약 10억 원을 포탈한 것으로 밝혀졌고, J학원의 경우는 유명 강사들에게 비공식 급여를 지급하기 위해 50쪽 짜리 교재를 매월 2만 3000원에 파는 방법으로 교재비 및 진학 지도비를 추가 징수하고 이를 위장 교재 업체에 분산 입금하는 수법으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해 온 사실도 드러났는데 특히 이 학원의 운영업체가 위장 업체에 지고 있는 가짜 채무가 96년 말 기준으로 99억 원에 달해 비자금의 규모를 짐작케 하였으며, D학원의 경우는 학원장 개인업체에 이중장부를 작성하여 95년도분 세금 8억여 원을 포탈하고 현직 교사들에게 약 5억 원의 모의고사 채택비를 건네준 것으로 드러나기도 하였습니다.
그 외의 대형 입시학원의 원장 중에는 교육 행정을 감시하는 서울시 교육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던 사람도 2명이나 있어 서로 상대방의 불법을 눈감아 주고 있었던 것이 아닌지 짙은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이처럼 조성한 비자금을 유명 강사 스카우트비와 수강생 유치비, 공무원 로비 자금 등으로 사용하였다고 하였는데 특히 경악을 금치 못한 것은 대형 입시학원의 경우 자사의 모의수능 논술고사 문제나 부교재를 채택해 주는 대가로 각 고교의 연구주임, 학년주임 등에게 응시료의 13~20%에 해당하는 돈을 리베이트로 제공한 사실이었습니다.
고교 교사 약 1천여 명의 비리 적발
대형 입시학원 수사를 통해 학원들이 일선 학교에서 자신들이 출제한 모의시험을 채택할 경우 학생 1인당 수험료 3000원의 13~20%씩 연 30억~40억 원, 수년에 걸쳐 100억 원 이상의 돈을 1000명을 훨씬 넘는 고교 교사들에게 채택료로 제공한 사실을 밝혀내었으나 교육 문제를 단속과 처벌로만 해결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며 현실적으로도 1000여 명의 비리 교사를 모두 소환조사할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보다도 가장 심사숙고했던 점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참 스승의 길을 걷고 있는 대다수의 교사들의 명예를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었기에 그 처리에 신중하고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리베이트 금액의 규모, 개인 용도로 사용했는지, 학교의 과학 기자재 등을 구입하는 불법 찬조금 등으로 사용하였는지 등을 감안하여 개인적으로 100만 원 이상을 챙긴 교사 약 160여 명의 명단을 관할 교육청에 통보하여 선별 징계토록 조처하고, 500만 원 이상의 리베이트를 받아 개인적으로 착복한 교사 약 10명에 대해서는 불구속 기소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국교육방송원(EBS)의 수능 방송 관련 비리의 쳇바퀴
대형 입시학원에 대한 수사에서 드러난 교재 채택 관련 리베이트 제공 비리는 당시 EBS(당시는 공사로 전환되기 전인 한국교육방송원 체제였음)에서 성황리에 실시되고 있던 수능 방송 관련 교재 채택과 방송 강사 선정과 관련해서 리베이트가 제공되었다는 제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교재 출판 업체로 선정되면 주요 과목의 경우 한 해에 200만 부 가량 팔리는 등 출판사 별로 40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이권 사업으로 학기마다 계약이 다시 이뤄져 치열한 로비의 대상이 되어 왔고, 일부 학원 강사들이 교육방송에 강사로 출연하면 몸값이 억대로 높아지는 점을 이용하여 출연자로 선정되기 위해 프로듀서 등 방송 관계자에게 뇌물을 주고 있고, 유명 대입학원에서는 그들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탈세로 마련한 수억 원 대의 비자금을 들여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비리의 쳇바퀴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보에 근거해 리베이트 제공 의심 대상 업체를 압수수색하고 업체 대표를 소환조사한 결과 EBS의 원장과 부원장, 실장급 간부, 교재개발부 연구원, 심의위원, 일부 프로듀서가 리베이트를 받은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당시 교수 출신의 원장은 3군데의 유수한 교재 출판 업체로부터 교재 출판사 선정 청탁과 함께 합계금 4600만 원을 받았고, 교육부 출신의 부원장은 영어 교재 출판 업체로부터 선정 부탁과 함께 현금 2000만 원과 골프채 세트(시가 450만 원 상당)를 받는 등 6개의 출판사로부터 합계 8000만 원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고, 실장급 간부는 사업국장으로 재직 시 10개의 출판사로부터 합계 2200만 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고, 교재개발부 연구원은 방송 출연 강사진으로 선정해 준 대가로 거액을 받은 혐의를 밝혀내고 모두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기소하였고, 그 외 일부 프로듀서들도 교재 집필자 선정 대가로 금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였습니다.
이들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한 출판 업체는 약 20개에 달하는데 그 업체의 대표 중에는 유명 출판 업체 사장, 언론사 사주, 유명 대입학원 부설 출판사의 대표, 생활 영어 강사로 유명한 분, 전직 국회의원도 있었는데 선별하여 약 10명 정도는 기소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교육청 비리 – ‘한푼두푼’ 공무원
보습학원과 감독기관인 관할 교육청의 담당 직원이 유착되어 서로 공생하는 관계에 있는 것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강동구에 위치한 모 보습학원장은 감독기관인 관할 교육청의 담당 공무원이 시도 때도 없이 걸핏하면 찾아와 단속할 것처럼 행세하며 눈감아 주는 대가로 용돈 정도의 뇌물을 수시로 요구하며 하도 괴롭혀 그 등쌀에 견디지 못하고 제보하였다면서 수첩에 적힌 그 공무원의 전화번호를 보여주었는데, 뒷자리 번호가 ‘1212’인 점에 착안하여 그의 별명을 ‘한푼두푼’으로 불렀다고 하였습니다. 그 담당 공무원은 소환 조사 후 자백을 받고 구속 기소하였습니다.
서울방송(SBS)에 대한 로비 시도
EBS 수능방송에서 교재 채택비 등의 로비가 있었던 사실이 드러난 것처럼 그 전 해에 있었던 SBS 수능 방송에서도 교재 채택과 관련하여 로비가 시도되었던 사실이 대형 입시학원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습니다.
그 무렵 대형 입시학원 반열에 신흥 세력으로 혜성처럼 등장했던 KY학원에서는 당시 집권 여당의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에 출마하였다가 낙선한 전력이 있는 정치권의 인물을 로비스트로 스카우트하여 그에게 로비 자금으로 2억 원을 건넸고, 그 중 1억 원은 그가 중간에서 가로채고, 나머지 1억 원은 SBS의 광고대행업체 대표에게 알선료 명목으로 건넸으나 그 또한 실제로는 로비에 사용하지 않고 중간에서 이를 착복한 것으로 밝혀져 광고대행업체 대표만 구속하는 데 그쳤고 결국 SBS에 대한 로비는 실패한 로비로 남게 되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필자 소개
법무법인 대륙아주 문규상 변호사는 1978년 서울법대 졸업, 1987년 검사로 임용되어 ‘특수통’으로서, 변인호 주가 조작 및 대형 사기 사건, 고위 공직자 상대 절도범 사건, 부산 다대/만덕 사건, 강호순 연쇄 살인 사건 등을 맡아 성과를 냈고, 2003년의 대선 자금 수사에서도 역할을 했다. 2009~2014년 대우조선해양의 기업윤리경영실장(부사장)을 역임하며 민간 부패에 대한 경험도 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