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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미술관 특별전 ‘APMA, CHAPTER FOUR’, 소재와 기법의 부조화

소재와 기법이 만드는 제2의 담론… 라킵 쇼, 쩡판즈, 안드레아스 거스키 등 작품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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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52호 김예은⁄ 2023.07.19 16:26:09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대형 회화와 조각을 중심으로 한 현대미술 소장품 특별전 ‘APMA, CHAPTER FOUR’을 개최해, 최근 20년간 펼쳐진 동시대 미술의 다채로운 흐름을 조명했다. 사진=김예은 기자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주요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 중 2000년 이후 제작된 작품을 한데 모은 현대미술 소장품 특별전 'APMA, Chapter Four'를 개최했다. 7월 30일까지 진행되는 전시에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총 7개 전시실에서 회화, 설치, 조각, 미디어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37점을 선보인다.


문체가 글을 담는 그릇이듯, 미술 작가는 재료와 기법으로 작품을 담는다. 그리고 이는 부조화, 모순, 관념 파괴 등 작가의 제2의 의도를 표출하는 매개로 기능한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2023년 두 번째 전시로 선보이는 현대미술 소장품은 재료와 기법이 작품을 표현하는 매개물 차원에서 더 나아가, 작품 속에서 화자가 갖는 제2의 담론을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관람객이 이를 탐구하도록 유도한다.

라킵 쇼의 2013년 작품, 조지 스터브스를 따라서 ‘두 인도인과 치타와 수사슴’. 사진=김예은 기자

소재와 재료의 부조화로 비판적 시각을 심화시킨 작품으로는 라킵 쇼의 조지 스터브스를 따라서, 두 인도인과 치타와 수사슴’ 작품을 꼽을 수 있다. 맨체스터미술관 소장품 조지 스터브스의 ‘두 인도인과 치타와 수사슴’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작품이 담고 있는 폭력적 소재와 이를 표현한 크리스털 표면의 화려함의 대비가 특징이다. 라킵 쇼는 하늘을 나는 앵무새들이 원숭이 떼를 공격하며 물어뜯고, 원숭이들이 고통 속에서 폭력성을 드러내는 모습을 선명한 색채감과 구체적인 형태로 묘사했다. 하지만 이를 표현한 과정은 금색 도료의 밑그림에 에나멜 안료를 채우고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로 표면을 장식하는 노동집약적 과정을 거쳤다. 시선을 압도하는 화려함의 이면에 어둡고 폭력적인 내용을 담아 양자의 모순에서 오는 시각적 효과와 의미를 심화시키는 방식이 관람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도록 유도한 것이다.

쩡판즈의 2004년 작품, '위대한 인물'. 사진=김예은 기자

소재와 표현 기법의 모순이 그 의미를 심화시키는 작품은 쩡판즈의 ‘위대한 인물’이다. 이 작품은 마르크스주의 학자와 지도자들인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의 초상화를 담고 있다. 제목과 소재는 ‘위대한 인물’로 지칭했지만, 작가는 그들의 얼굴을 무채색의 화면 위에 무질서한 선들로 표현해 그들을 향한 작가의 비판적 시각을 표현했다. 작가는 중국이 자본주의 체제로 급격히 변화하며 드러난 두려움과 매혹의 이중적 감정을 이 같은 소재와 표현 기법 간의 부조화로 심화시켰다.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2018년 작품 ‘라인강 III’ 사진=김예은 기자

일반화된 소재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하며 작가가 의도한 논의를 담론화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작품도 있다.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라인강 III’이 대표적이다. 이는 거스키의 유명한 1999년 작 ‘라인강 II’의 연장선상에 위치한 작품으로 동일한 소재의 두 개의 작품이 거스키의 시선과 표현 기법에 따라 담론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두 사진 모두 여름에 촬영되었으며, 동일한 배경과 구성을 갖추고 있지만 두 사진은 전혀 다른 해석을 불러일으킨다. 푸르른 녹색과 생기있는 컬러감이 돋보인 ‘라인강 II’와 달리 ‘라인강 III’는 잿빛의 황량한 풍경으로 극적으로 바뀐 모습이 담겨있다. 2018년의 가뭄으로 강 수위가 최저 수준으로 내려감에 따라 가혹한 환경이 된 현실을 극적인 표현 기법으로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거스키는 사진의 전체 색조를 황색과 회색빛 조로 톤 다운시킴으로서 라인강의 황량함을 배가시켜 가혹한 환경이 된 현실의 디스토피아적인 모습을 표현하고 기후변화에 대한 최근 논의를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안네 임호프의 2022년 작품 ‘구름 III’. 사진=김예은 기자

안네 임호프의 ‘구름 III’는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구름이라는 소재에 독자적인 표현기법을 담아 풍경으로서의 자연물에 새로운 관념을 부여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최근에 도입한 기법을 적용한 작품으로 하나의 도상을 두 개의 색상으로 겹치게 배치함으로써, 여러 층의 경계가 공존하는 입체적인 이미지를 구축해 냈다. 평면의 회화 위에 청록색과 붉은색의 구름이 불안정하게 중첩되어 3차원적 효과를 창출해 낸 이 작품은 몽환적 분위기와 긴장감을 자아내, 관람객이 구름이라는 1차원적 소재의 일반화 된 관념에서 벗어나 자연과 비 자연의 경계를 탐구하도록 유도한다.


예술에 대한 정의와 관념에 대해 재료와 기법으로 반문을 제기한 작품도 눈에 띈다. 로즈마리 트로켈의 ‘덤불은 곰이다’와 조셉 코쿠스의 ‘유제’가 대표적이다.


트로켈은 양모, 섬유, 유리, 금속, 도자기 등의 다양한 매체로 전통적 예술 형식에 도전하며 사회, 젠더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작가다. 작가는 1985년에 시작한 ‘직조 회화’ 연작을 통해 오랜 기간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패브릭 직조로 남성 작가들이 포진해 있던 추상회화의 영역을 확장한 상징적인 작업을 수행해 왔다. 그 일환으로 제작된 ‘덤불은 곰이다’는 울을 사용한 뜨개질로 단색 추상 회화로 보이는 작품을 완성한 것이 특징이다. 작품의 표면은 붓의 획을 연상시키며 불규칙적 질감을 드러내고, 사방은 나무틀로 감싸져 있어 작품의 경계를 드러낸다. 작가는 재료의 특성에서 나타나는 따듯하고 감성적인 느낌과 남성 주도로 흘러온 추상회화의 흐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라는 내용 사이의 모순을 작품에 담아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조셉 코쿠스의 ‘유제(개념으로서의 예술이라는 개념)’ 작품 2종. 상단은 색상의 정의를 사전에서 잘라낸 작품 6점. 하단은 'Nothing'의 사전적 정의 열 개를 확대 복사하여 전시한 작품 10점. 사진=김예은 기자

조셉 코쿠스의 작품 ‘유제’는 예술의 중요한 요소인 색채를 배제하고, 텍스트를 소재로 차용한 작품을 통해 시각 예술의 범주에 의문을 제기하고 예술의 지위와 관습적 개념들을 해체하는 시도를 담고 있다. 첫 번째 ‘유제’ 작품은 6개의 사진으로 구성돼 색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blue, red 등 각 색깔의 사전적 정의를 검은색 바탕의 흰 텍스트로 제시해 일렬로 배치했다. 작품에 색상을 배제하고, 색상 텍스트의 사전적 의미를 복사 붙여넣기 한 방식으로 제시한 본 작품은 예술과 색채의 역할에 대한 통념적 지위와 역할을 해체하는 작가의 의도를 담고 있다.

 

그 하단에는 또 다른 유제 작품은 ‘nothing’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사전에서 잘라낸 뒤 확대 복사하여 10개의 사진으로 전시했다. 전시장에 ‘color’와 ‘nothing’이 각각 수평으로 2열로 배치되어 마치 “color is nothing”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 보였다. 이처럼 작가는 색채의 표현기법과 같은 시각 예술 범주의 기존 관습적 개념들을 해체하고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 역시 미술의 중요한 범주 중 하나임을 표현하고 있다.

엘름그린&드라그셋의 2022년 작품 ‘화가, 도판 2'. 사진=김예은 기자

재료와 기법의 변형으로 전시 공간에 대한 시각과 차원을 변형시킨 작품은 본 전시 공간의 메인 중앙부에 자리 잡고 있다. 1995년부터 듀오로 활동한 마이클 엘름그린과 잉가 드라그셋의 작품 ‘화가, 도판 2’가 그것이다. 듀오는 전시관 중앙에 청동을 사용해 역동적인 실물 크기의 사람 조각을 세웠다. 조각상은 앞으로 몸을 숙인 채 팔을 뻗어 큰 획을 긋는 듯한 회화적 행위를 구현하고, 그 회화의 대상이 되는 그림은 다름 아닌 그 작품이 전시되는 공간 그 자체가 된다. 작가는 스테인리스 스틸을 조각상 전면에 배치해 후면에 자리잡은 전시 공간이 거울과 같은 스테인리스 스틸에 반사되어 비추도록 했으며, 조각상은 그 공간 내에 래커로 하나의 큰 획을 그어 전시관이라는 캔버스에 예술 행위를 구사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들은 97년에 시작한 대표 연작 ‘무력한 구조물’과 같이 전시 공간 자체를 예기치 못한 환경으로 탈바꿈시켜 전복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이 작품 역시 보이는 각도에 따라 미술관 공간 내부가 작품의 캔버스가 되는 경험을 부여함으로써 관객이 새로운 맥락에서 작품을 관람하도록 유도한다.


이처럼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담고 있는 현대미술전의 작품은 예술품이 그려내고 있는 소재와 주제에 대한 감상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기법과 재료에 따라 변화하는 예술의 확장성을 대변한다. 이를 통해 관람객들이 일반적인 예술에 대한 의식과 관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기존 예술의 범주에 대한 전복적 의식을 탐닉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예술에 대한 일반론적 관념을 확장시키는 계기를 제공한다.


본 전시를 기획한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현문필 학예팀장은 “다채로운 동시대 미술을 한자리에서 조명하는 전시를 통해 미의 정의를 확장하여 세상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탐구하고, 새로운 감각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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