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3호 김금영⁄ 2023.07.25 10:01:50
입구부터 사람들이 줄지어 선 그곳에 들어가자 순식간에 캐릭터들이 주인공인 세계가 펼쳐졌다. 아이를 위해 함께 온 가족단위 방문객을 비롯해 캐릭터를 사랑하는 키덜트(kid와 adult 합성어)족, 외국인 관광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현장을 찾았다. 7월 13~1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국내 캐릭터 축제의 장 ‘캐릭터 라이선싱 페어 2023(이하 캐릭터 페어)’ 이야기다.
그룹 BTS, 블랙핑크 등의 활약으로 K-팝이 세계를 휩쓸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더 글로리’ 등의 글로벌 흥행으로 K-콘텐츠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뜨겁다. 이에 발맞춰 K-캐릭터 산업 생태계 전반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뽀로로’, ‘아기상어’ 등 한국을 대표하는 캐릭터들은 글로벌 콘텐츠로 성장했다.
캐릭터 페어에서도 이 관심이 체감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는 캐릭터 페어는 매년 10만 명 이상 관람객이 찾았는데, 올해 6월 중순 이후 시작된 입장권 판매 또한 전년 대비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특히 기업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기업들을 대상으로 하는 부스 판매는 5월 12일 조기 완판됐고, 국내 104개사, 해외 7개사 기업이 참여한 올해 캐릭퍼 페어는 기획관을 포함, 총 576부스의 대규모로 마련됐다.
카카오, 오뚜기, BGF리테일 등 대기업의 캐릭터 부스도 등장했다. 오뚜기 부스의 주인공은 ‘옐로우즈’였다. 지난해 오뚜기가 심볼 마크인 웃는 얼굴의 어린이를 모티브로 개발한 자사 공식 캐릭터다. 옐로우즈는 오뚜기 로고를 닮은 행복한 미식가 ‘뚜기’, 길잡이 강아지 ‘마요’, 대식가 병아리 ‘챠비’ 등 세 캐릭터로 구성됐다.
붉은색 헤어스타일과 입맛을 다시는 표정이 특징인 뚜기는 맛집 탐방을 좋아한다는 설정이다. 뚜기의 반려견 마요는 오뚜기의 대표제품 ‘마요네스’에서 이름을 따왔다. 뛰어난 후각을 지녀 레시피 작업에 필요한 재료를 찾아주는 똑똑한 강아지다. 몸집은 작지만 대식가 병아리인 챠비는 오뚜기 심볼 마크 외곽 형태에서 착안한 외형을 갖췄고, 스테디셀러 ‘케챂’에서 착안해 이름 지었다. 캐릭퍼 페어엔 이 캐릭터들을 활용한 윷놀이, 가방, 슬리퍼, 컵 등을 전시했다. 오뚜기의 상징색인 노란색을 기본에 둔 알록달록한 부스는 상큼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오뚜기가 자사 캐릭터를 알렸다면,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CU는 연세대, 고려대, 인기 애니메이션 ‘코난’의 캐릭터를 활용한 제휴 상품들을 부스에 소개했다. CU에 따르면, 지난해 캐릭터 상품들의 매출은 전년 대비 12배나 올랐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에 CU는 꾸준히 캐릭터 컬래버레이션 라인업을 강화하고 있다.
LG유플러스, 대세로 떠오른 ‘무너’ 알리기 총력
기업들의 캐릭터 부스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곳은 LG유플러스와 롯데월드였다. 다른 기업들의 부스가 소규모로 마련된 반면, LG유플러스와 롯데월드는 상대적으로 큰 규모의 부스를 꾸리며 자체적으로 캐릭터 마케팅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다는 점이 느껴졌다.
특히 LG유플러스는 올해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에 이어 캐릭터 페어에도 참여하며 자사 캐릭터에 알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캐릭터 페어는 올해 첫 참여인데 공을 많이 들인 티가 났다. 노란빛깔이 인상적인 LG유플러스의 부스는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한 관람객의 줄이 길게 늘어선 것. LG유플러스는 오전 11시, 오후 2시·4시에 캐릭터 무드등, 에코백, 양말 등을 제공하는 ‘룰렛이벤트’를 진행했는데, 관람객의 참여열기가 뜨거웠다.
부스의 주인공은 ‘무너’, ‘홀맨’, ‘아지’ 등으로 구성된 이른바 ‘무너크루’였다. 크루의 결성 스토리부터 흥미롭다. 본래 크루의 중심은 홀맨이었다. 우주복을 입은 듯 미래적인 모습이 인상적인 홀맨은 2002년 탄생한 LG유플러스의 터줏대감이다. 당시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 마스코트로 TV 광고를 비롯해 인기 걸그룹 뮤직비디오에 출연할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점차 사람들의 관심에서 잊히며 사라진 비운의 시기가 있었다. 그러던 중 복고를 기반에 둔 뉴트로(New와 Retro의 합성어) 열풍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불며 다시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2020년 8월 복귀에 성공했다.
그런 홀맨의 인기를 넘보는 이가 등장했으니, 바로 무너다. 홀맨 복귀 당시 ‘홀맨크루’의 일원으로 탄생한 무너는 본래 거대한 용궁에서 유복한 삶을 살던 금수저였으나, 육지로 올라와 사회에 첫 발을 디딘 사회 초년생 콘셉트의 캐릭터다.
눈치 보지 않고 할 말은 하면서 꿈을 키워 나가는 ‘질풍노도 무너 사원’이 모티브로, 밀레니얼 세대의 속마음을 대변하는 성격과 세계관은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2021년 ‘무너지지마’ 캠페인 광고가 대박이 나고, 중독성 있는 ‘문어의 꿈’ 이른바 무너송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무너의 시대가 노래했다. 당시 인스타그램, 틱톡 등 SNS에서 무너송을 따라 부르는 챌린지에 약 4만여 회의 자발적인 고객 참여가 이어졌고, 무너는 스타가 됐다.
그리고 마침내 무너는 올해 캐릭터 페어에 마련된 LG유플러스 부스의 메인 주인공이 되는 데 성공하며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회 초년생에게 대리만족감을 선사했다. 부스 또한 이런 무너의 성공스토리를 엿볼 수 있게 부스 초입에 연표처럼 장식해 놓았다.
단순히 캐릭터 상품을 진열하는 방식으로 부스를 꾸리지 않고, 사회 초년생이라는 무너 캐릭터의 세계관, 성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사무실 공간처럼 꾸몄다. 부스 한켠엔 무너가 일하는 책상이 마련됐고, 직장인의 중대 고민으로 꼽히는 점심 메뉴를 함께 고민하고 투표하는 게시물도 부착했다. 무너의 인기에 여타 캐릭터들에도 관심을 보였다. LG유플러스 부스를 찾은 대우건설의 만년과장 캐릭터 ‘정대우’는 점심 메뉴 후보 중 ‘내장탕’에 투표해 웃음을 자아냈다.
결재가 반려된 안건들이 승인받을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보태달라는 무너의 호소 공간도 마련됐고, 일러스트 작가들이 그린 무너 관련 작품들도 전시하며 상생의 의미도 살렸다. 이렇게 다양한 콘텐츠가 마련된 데엔 무너의 팬 커뮤니티와의 소통도 있었다. 무너의 팬덤 이름은 ‘무말랭이’, 그 중 3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적극 활동한 찐 팬은 ‘무짱아찌’(서포터즈)라 명명됐는데, 이들은 무너 팬 커뮤니티 ‘무너41(사원)닷컴’을 통해 무너와 관련된 콘텐츠 아이디어 제안 및 홍보에도 적극 참여 중이다.
지난해 3월 오픈해 약 28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는 무너41닷컴은 디지털 굿즈를 내려받을 수 있는 ‘별다꾸(별걸다꾸미기)’ 카테고리 외에도 ▲무너의 일상을 웹툰 형식으로 감상할 수 있는 ‘무너툰’ ▲무너 관련 실물 굿즈를 구매할 수 있는 ‘잡화점’ 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LG유플러스 캐릭터마케팅팀 IMC담당 조민정 책임은 “커뮤니티를 통해 무너 팬들과의 소통이 적극 이뤄지는 편이다. ‘이런 무너 굿즈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이런 무너 이벤트 재미있겠다’ 등 다채로운 아이디어를 댓글로 자유롭게 공유한다”며 “부스에 선보인 무너 일러스트레이션의 경우 ‘무너아트를 보고 싶다’는 무짱아찌의 바람에서 시작됐다. 이후 커뮤니티에서 팬들이 다양한 작가를 추천했고, 이중 사회 초년생이라는 무너의 세계관에 맞춰 함께 성장하자는 뜻을 담아 젊고 재능 있는 신진작가들과 협업했다. 이들의 작품은 캐릭터 페어에 앞서 열렸던 서울일러스트레이션 페어에도 소개됐는데, 전시 중 작품 판매도 일부 이뤄져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팬 커뮤니티의 든든한 지원 속 성장한 무너는 LG유플러스를 알리는 공신으로도 성장 중이다. 기존에 LG유플러스는 무너를 선보일 당시 복합문화공간 ‘일상비일상의틈’처럼 기업 이름을 앞세우기보다는 캐릭터의 성격과 세계관을 알리는 데 더 중점을 뒀다. 그리고 어느 정도 무너의 인지도가 쌓인 현재, 캐릭터 페어에서 무너의 성장 스토리에 LG유플러스라는 캐릭터 근간의 정체성을 살짝 드러내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스며들고 있다.
LG유플러스 캐릭터마케팅팀 홍두철 책임은 “과거 캐릭터는 영유아 콘텐츠가 위주였는데, 현재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캐릭터들이 사랑받는 시대다. 홀맨은 30대 후반 옛 감성을 기억하는 층에게 인기가 많고, 무너는 사회 초년생을 중심으로 두루 인기가 있는 편”이라며 “현장에서도 어린 아이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관람객이 방문하며 캐릭터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LG유플러스는 캐릭터 페어 기간에 맞춰 강남 일상비일상의틈엔 ‘무너의 아무너케 팝업스토어’를 여는 등 무너 캐릭터 알리기 총력에 나섰다. 홍 책임은 “팝업스토어가 인형, 피규어, 양말, 에코백 등 50개 이상의 무너 굿즈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라면, 캐릭터 페어 부스에서는 무너의 세계관과 스토리를 중심에 둔 구성으로 각각의 공간에 차별점을 두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LG유플러스 내부에서도 캐릭터 마케팅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본래 고객경험마케팅팀으로 통합돼 운영됐던 조직은 지난해 캐릭터마케팅팀으로 세분화됐다. LG유플러스는 8월엔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리는 ‘2023 물총축제 - 워터건 페스티벌’에 크래프톤사의 ‘배틀그라운드’와 함께 참여해 대형 무너 조형물을 설치하고 홍보 부스를 운영한다. 9월엔 e스포츠 게임단 ‘젠지 이스포츠’와 함께 리그오브레전드 게임 대회를 개최하는 한편 무너 컬래버 콘텐츠 및 상품 제작도 추진하며 캐릭터 마케팅에 불을 붙인다는 계획이다.
LG유플러스 김다림 마케팅전략담당은 “고객이 직접 캐릭터를 경험하면서 LG유플러스 브랜드에 대한 긍정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오프라인 소통 공간을 마련했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오프라인 행사를 통해 고객과 직접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롯데월드, 고전 캐릭터 ‘로티·로리’의 깜짝 변신
캐릭터 페어에 올해로 세 번째 참여한, 베테랑 기업 중 하나인 롯데월드 부스엔 가족단위 방문객과 외국인 관람객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대표 테마파크 중 하나로 꼽히는 롯데월드의 전통 있는 대표 캐릭터들이 부스를 채웠기 때문. 부스 또한 ‘모험과 신비의 나라’를 주요 콘셉트로 마치 잠실 테마파크의 일부를 가져온 듯 다채롭게 꾸몄다.
부스 입구는 롯데월드 놀이공원 입구처럼 꾸몄고, 안쪽엔 롯데월드의 대표적 놀이기구 중 하나인 ‘풍선비행’을 연상케 하는 설치물이 보였는데 캐릭터 인형들을 가득 채워 놓았다. 부스의 주인공은 롯데월드 공식 마스코트인 ‘로티’와 ‘로리’를 중심으로 ‘초록이’ 등 롯데월드의 여타 캐릭터들도 만나볼 수 있게 했다. 롯데월드가 지난해 새롭게 선보인 영유아 타깃의 ‘로티프렌즈’ 캐릭터들도 눈에 띄었다.
전시 공간을 꾸린 롯데월드 디자인 미디어팀 관계자는 “그간 롯데월드 안에서 주로 만날 수 있었던 캐릭터들의 다양한 상품, 콘텐츠를 외부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특히 기존 잠실 롯데월드에서는 볼 수 없는 MZ세대 타깃으로 변신한 캐릭터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놀이공원 안에서 로티와 로리는 각각 빨간색 자켓과 원피스를 입고 있다. 사람들 또한 대부분 이 모습이 익숙하다. 부스 한켠에 마련된 포토존엔 흰 셔츠와 반바지 차림에 불금(불타는 금요일)에 맥주를 마시거나, 주말에 놀러가고 집안에서 여유를 즐기는 로티, 로리의 모습이 공개됐다. 평소 롯데월드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퇴근 뒤 긴장이 풀린 모습으로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로티, 로리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며 공감을 줬다.
롯데월드 관계자는 “잠실 롯데월드에서는 볼 수 없는, 오로지 밖에서만 볼 수 있는 MZ세대 타깃의 ‘더 굿 바이브(The good vibe)’ 로티 캐릭터”라며 “편안하고 감각적인 모습으로 젊은 세대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월드는 앞서 2021년 성수동에 마련한 팝업 스토어에도 이 캐릭터들을 소개한 바 있다. 롯데월드에서 일하는 1989년생인 로티, 로리의 일상에 접근하는 방식의 캐릭터 리브랜딩 프로젝트는 고전 캐릭터의 현대적 재해석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당시 2주간 운영된 팝업스토어엔 약 5000명의 방문객이 다녀갔고, 롯데월드는 꾸준히 캐릭터 IP를 활용한 사업 다각화를 이어가고 있다.
캐릭터 페어에서 테마파크 콘셉트의 부스가 일반 관람객들과의 만남을 위주로 꾸려졌다면, B2B(기업간거래) 차원에서 캐릭터 사업 종사자와의 만남을 위한 비즈니스 부스도 따로 꾸렸다. 이 공간엔 그간 롯데월드가 중소기업, 작가들과 손잡고 진행한 다양한 컬래버레이션 상품들을 전시해 놓았다. 롯데월드 관계자는 “캐릭터 페어가 캐릭터 비즈니스도 이뤄지는 장인만큼 롯데월드가 그간 국내 중소기업과 협업해 개발한 우수 콘텐츠도 소개했다”며 “이는 동반성장, 상생경영의 성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과거 아이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캐릭터는 이제 그 영향력과 상품성을 인정받으며 기업들의 주요 사업 중 하나로 성장하고 있다. 브랜드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도 친근한 캐릭터를 활용해 보다 폭넓은 소비자와 소통하는 효과도 있다.
전망도 밝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캐릭터 시장 규모는 2005년 2조 700억 원에서 2011년 7조 2000억 원, 2019년 12조 5000억 원으로 급성장했다. 올해는 2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캐릭터 마케팅도 더 활발해질 전망이다. 캐릭터 페어에서는 IP(지식 재산권) 라이선싱 빌드업 업무 협약이 진행됐다. 롯데마트, 카카오, 에스오일은 향후 중소콘텐츠기업과 함께 협업 캐릭터 IP 콘텐츠를 공동 기획하거나 제작 지원, 비즈니스 컨설팅 등에 참여할 예정이다.
코엑스와 캐릭터 페어를 공동 주관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조현래 원장은 “K-콘텐츠의 판로 개척과 육성을 위해서는 제작 유통과 사업화를 돕는 생태계 조성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번 업무협약을 바탕으로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협력해 전 세계를 사로잡을 우수한 콘텐츠를 발굴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