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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림의 현대사진산책+] 그러니까, 당신은 누구세요?

에스파스 루이비통 서울 ‘신디 셔먼 온 스테이지–파트 II’, 소현문 ‘성지연 개인전-빈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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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53호 천수림(사진비평)⁄ 2023.08.03 16:53:01

(왼쪽)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신디 셔먼 '온 스테이지 - 파트 II' 전시 전경. / 성지연, '빗자루를 든 사람'. 2005. 사진=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컬렉션 Courtesy of Fondation Louis Vuitton, Paris © 2023 Cindy Sherman Courtesy of the artist and Metro Pictures, New York / 소현문

회화에서 연극화의 문제는 사진의 영역 안에서도 흥미로운 방식으로 작동해왔다. 영화배우에서 역사적 인물, 남성으로 다양한 캐릭터로 분장하며 셀프 포트레이트 사진을 찍는 신디 셔먼과 자신의 친구를 비롯한 주변 인물의 초상사진을 찍는 성지연은 ‘정체성’과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모호한 시선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신디 셔먼(CINDY SHERMAN) 온 스테이지 – 파트 II(ON STAGE – PART II)’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신디 셔먼 '온 스테이지 - 파트 II' 전시 전경. 사진=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컬렉션 / Courtesy of Fondation Louis Vuitton, Paris © 2023 Cindy Sherman Courtesy of the artist and Metro Pictures, New York

“매일을 할로윈처럼, 차려입고 세상에 나가고 싶어요.” FT 위켄드 매거진 인터뷰에서 신디 셔먼은 이렇게 말했다. ‘매일을 할로윈으로 여기고, 분장을 하고 괴짜 캐릭터가 돼 세상에 나가고 싶었다’는 그녀는 항상 다양한 정체성을 실험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40여 년 동안 다양한 환경에서 변장을 하고 자신을 촬영한 셀프 포트레이트 작업을 진행해왔지만, 그 중 어느 캐릭터도 그 자신은 아니다. 그녀 역시 스스로의 작업을 ‘자화상’이라고 지칭하지 않듯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늘 위장한 ‘그 누군가’의 정체성을 탐했지만, 진정 타인이 되기도 어려웠다. 미술평론가 캘리 그로비에는 “오랜 시간 동안 가면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자아상(像)으로 사용해온 셔먼의 거짓은 진실에 가까워진다. 더 이상 가면은 원래의 자아를 잠시 보류하는 수단이 아니다. 가면 그 자체가 자아가 됐다”(세계 100대 작품으로 만나는 현대미술강의 295쪽)고 썼다.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신디 셔먼 '온 스테이지 - 파트 II' 전시 전경. 사진=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컬렉션 / Courtesy of Fondation Louis Vuitton, Paris © 2023 Cindy Sherman Courtesy of the artist and Metro Pictures, New York

이제 우리는 그녀가 쏟아낸 위장 캐릭터를 보면서도(그럼에도 불구하고), 괴기스럽고, 때때로 우스꽝스럽기도 한 인위적 요소들 때문에 ‘아! 신디 셔먼이다!’라고 눈치 챌 만큼 강렬한 이미지로 각인됐다.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셔먼은 광고와 잡지, 영화, 텔레비전, 예술 등 매스미디어 환경에 대응한 픽처스 제너레이션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이번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에서 진행되는 신디 셔먼 온 스테이지 – 파트 II 컬렉션 소장품 전시(6월 30일-9월 17일)는 루이비통재단미술관의 컬렉션 소장품을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도쿄, 뮌헨, 베네치아, 베이징, 오사카에 소개하는 ‘미술관 벽 너머(Hors-les-murs)’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신디 셔먼 '온 스테이지 - 파트 II' 전시 전경. 사진=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컬렉션 / Courtesy of Fondation Louis Vuitton, Paris © 2023 Cindy Sherman Courtesy of the artist and Metro Pictures, New York

이번 전시에는 할리우드 여성 영화배우 캐릭터로 변장한 무제 필름 스틸(Untitled Film Stills, 1977-1980)부터 센터폴드(1981), 카라바조와 라파엘로, 와토, 티치아노, 고야 등 거장의 작품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역사 인물화, History Portraits, 1989-1990), 광대분장으로 스스로를 감춘 광대(광대, Clown, 2003-2004), 남장 변복과 인스타그램 및 얼굴 보정 필터를 활용한 남성(남성, Men, 2019-2020) 등의 연작을 선보였다.

셔먼은 뉴욕으로 이주한 후, 20세기 중반 B급 영화와 비슷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영화적 문법을 사용했다. 1970년대 후반, 히치콕이나 안토니오니 영화에 등장하는 헤어진 연인과 낡은 스타들의 사진을 찍은 70점의 무제 필름 스틸은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논의할 수 있는 도화선 역할을 했다. 현재에도 여전히 셔먼의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남아 있다. 셔먼은 다양한 역할을 구현하기 위해 혼자 작업하며 정교하게 분장하고 의상, 가발, 보철물, 가짜 치아 등을 제작한 세트에서 자신을 촬영한다. 셔먼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방식에 역겨움을 느낀다. 나는 그 반대편에 훨씬 더 매료된다”고 밝혔다.

최근 셔먼은 2010년부터 2023년까지 13년 동안 촬영한 자신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후 디지털 방식으로 왜곡, 재배치, 콜라주한 사진을 결합한 사진을 선보였다. 셔먼이 믿었듯 카메라는 결코 진실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소현문, 성지연 개인전 ‘빈곳’

소현문, 성지연 개인전 '빈곳' 전시 전경. 사진=소현문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의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1882)’은 쿠르툴드 갤러리의 영구 소장품 중 하나다. 폴리베르는 발레, 오페라, 코미디, 서커스를 공연하는 음악당이었다. 프랑스의 폴리 베르제르의 바는 마치 사진을 보는 것처럼 당시 풍경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샴페인 병과, 꽃병, 맥주 병, 클레멘타인이 담긴 그릇이 있는 대리석 카운터에 젊은 여성 바텐더(바메이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거대한 거울 덕분에 당시 드레스를 화려하게 차려입은 남성과 여성과 바텐더의 앞모습뿐만 아니라 낯선 뒷모습도 함께 볼 수 있다. 이외에도 공중그네에 서 있는 연주자의 다리뿐만 아니라 거울에 비친 노신사를 볼 수 있다. 거울에 반사되는 모습은 우리에게 모호함을 불러일으킨다.

미지의 바텐더는 신사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것일까. 하지만 정면에 배치한 이 인물의 눈빛을 보면 그 누군가와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것 같다. 그녀의 시선은 우리(고객)에게 향해 있지만, 우리가 아닐 수도 있다. 바메이드의 표정 역시 모호하다. 슬프거나 우울한 것인지,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바텐더 외에 또 하나의 주인공은 쌍안경을 들고 있는 여성이다. 그녀는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에 누가 있는지 관찰하고 있다.

성지연, '아그리파'. 2016. 사진=소현문

성지연은 마네의 이 그림처럼 ‘보고, 보여주기(see and be seen)’에 대한 관심으로 2005년부터 최근까지 꾸준히 초상작업과 정물사진을 찍었다. 수원에 위치한 소현문 개관전으로 선보이는 성지연 개인전 ‘빈곳’(7월 14일~8월 22일)은 그동안 진행해왔던 초기연작인 ‘A Distance;거리를 두고 바라보는’부터 근작인 ‘(UN)familiar;친숙하거나 낯설거나’, ‘홈 스위트 홈(Home sweet home)’, ‘유보된 초상(Portrait suspendu)’, 정물사진 ‘드로잉-포토(Drawing-photo)’, ‘액트 오디네르(Acte ordinaire)’ 등 다양한 연작 중 주요작품을 선보인다.

사진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전문모델이 아닌 대부분 친구들이거나 그들의 가족, 지인들이다. 성지연의 초상은 전통적 개념의 초상사진이 아닌 연출사진이다. 작가는 작업노트에 “내가 만든 가상 인물을 나의 모델에게 투영해 재현하는 개념의 연출사진”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회색 혹은 푸른색의 다소 차갑게 느껴질 공간에 놓여있다.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이렇게 밝힌다. “이 비어있는 존재는 거울처럼 작가인 나를 투영하기도 하고 모델을 관찰하는 관객을 담아내기도 한다. 이 과정은 나의 사진적 태도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성지연, '뜨개질하는 사람'. 2006. 사진=소현문

공통된 이 공간을 통해 등장인물에 대한 정보는 배제되고 오로지 인물에 집중하게 된다. 사진 속 인물들의 시선은 마네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에 등장하는 바텐더처럼 알 수 없는 시선과 모호한 표정을 짓고 있다. 대부분 그들의 시선은 정면을 향하기보다 비켜나 있다.

그러다보니 시선은 사진 밖으로 향한다. 이 점은 마치 폴리 베르제르의 거울 속에 비친 노신사처럼 사진 밖에 누군가 있음을 암시한다. 게다가 뜨개질을 한다거나 비질을 하는 박제된 일상의 한 순간은 언제 끝날지 모를 지속의 순간, 유보된 시간을 포착한다. 이 낯설고 모호한 순간, 어긋난 시선을 포착한 덕분에 성지연의 사진은 늘 모호하고, 유보된 감정 속으로 우리를 밀어 넣는다.

 

성지연 전시 ‘모호함의 초상’ 미술비평을 한 필립 피게는 “이미지들은 사진들을 구성하고 있는 그 사진의 물성(마티에르)으로만 존재한다. 이러한 요소들이 성지연 작품들이 힘이 있게 하는 것들이고 또한, 그 이미지들은 지속되는 현존에서 자신들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성지연, '정'. 2021. 사진=소현문

그녀가 밝힌 연출태도에서 유추해 보면 성지연의 초상사진에 등장하는 인물은 흥미롭게도 모두 성지연이다. 타인에게서 ‘껍데기’를 빌려온 이 사진적 행위는 매우 흥미롭다. 분장과 위장을 해서 타인이 되고 싶어 한 셔먼의 사진에서도 여전히 모두 셔먼인 반면, 모두 다른 얼굴로 타인을 기록했지만, 결국 모두 성지연이 보인다.

AI(인공지능)로 생성된 이미지가 등장한 시대, 모바일과 카메라, 소셜미디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위장’과 ‘모호함’은 어떤 의미일까. 포스트 트루스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인물의 초상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글: 천수림(사진비평)
이미지 제공: 에스파스 루이비통, 소현문

<작가 소개>

신디 셔먼은 1954년 미국 뉴저지주 글렌 리지 출생으로, 현재 뉴욕에 거주하며 활동 중이다. 작가는 1972년, 미국 뉴욕 버팔로 주립대학교에서 유명 아티스트 셰리 레빈, 리처드 프린스, 루이스 롤러와 함께 사진을 수학했다. 셔먼의 작품은 1997년 시카고 현대미술관, 2003년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과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스코틀랜드 국립현대미술관, 2006년 파리 주 드 폼 국립미술관, 2006-2007년 사이 오스트리아 쿤스트하우스 브레겐츠와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 베를린 마틴-그로피우스-바우를 비롯해 다수의 해외 전시를 통해 선보였다. 2012년 뉴욕 현대미술관과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2016년 로스앤젤레스 더 브로드 미술관, 2019년 영국 국립 초상화 미술관과 밴쿠버 아트 갤러리에서는 그녀의 회고전이 열리기도 했다.

성지연은 프랑스 파리8대학 조형 예술학 석사 마스터, 프랑스 파리 8 대학 사진학 MST 석사 마스터, 프랑스 사진 학교 EFET를 마쳤다. ‘A distance’(주불 한국 문화원, 파리, 프랑스, 2006), ‘Acte ordinaire’(Marie Cini 갤러리, 파리, 프랑스. 2012), ‘친숙하거나 낯설거나 / (un)familiar’(KP갤러리, 서울. 2020), ‘유보된 순간’(BMW Photo Space, 부산, 2022) 등에서 개인전을 선보였다. 14회 다음 작가상(박건희문화재단, 한국)을 수상했고,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문화재단/미술은행, 부산시립미술관, 코리아나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미술은행, 한미사진미술관, 시안미술관, Société Générale(파리, 프랑스), FRAC Haute Normandie(후앙, 프랑스), 고은사진미술관에 주요작품이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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