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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실재-가상 넘나드는 수수께끼 생명체 ‘피어리’의 세 번째 여정

프로젝트 팀 펄, ‘PPP: 피어리 두드림(Pearys Do Dream)’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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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55호 김금영⁄ 2023.09.01 09:18:10

프로젝트 팀 펄의 'PPP: 피어리 두드림(Pearys Do Dream)'전 현장. 사진=김금영 기자

인간이 중심이 돼 모든 것을 분류, 정의하던 세계. 그 세계는 어느 날 갑자기 PT-뱅이 일어나면서 한순간에 사라졌다. PT-뱅을 기점으로 인간에 의해 조작되던 가상 현실은 인간으로부터 독립하고, 많은 생물이 가상 현실로 편입되며 실재와 가상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급격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생물종 중 약 80%가 멸종한 이 사건은 ‘7차 대멸종 사건’으로도 불린다.

이 혼돈 속 살아남은 ‘피어리(Peary)’. ‘프로젝트 팀 펄’이 자체 개발한 메타버스 애플리케이션 ‘피어리 온(PEARY ON)’에 살고 있는 가상 생명체로, PT-뱅 이전 조류였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심해에 위치한 진주아파트에서 군집을 이루고 독립적으로 생활한다. 피어리는 중력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부유할 수 있고, 물속에서도 호흡이 가능한 기관을 지녔다. 다리가 없이 머리와 몸통으로 나뉜 단순한 몸, 기능을 잃은 날개를 단 피어리는 그 존재 자체로 수수께끼다.

피어리를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적혀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피어리의 여정을 담은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이 모든 건 ‘프로젝트 팀 펄’이 구축한 세파퓨처리즘(Sepafuturism) 세계관 속 이야기다. 정혜주 기획자, 성수진 아트디렉터, 이찬희 디자이너, 위성환 개발자로 구성된 프로젝트 팀 펄은 과학적 사실이나 가설을 바탕으로 한 세계관을 다루는 사이파이(Sci-fi) 장르를 작업에 적극 활용해 왔다. 특히 실재와 가상 사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피어리를 통해 우리는 과연 어디에 존재하고, 지금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들을 과연 진정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인식의 한계에 끊임없이 질문하고 상상한다.

이들의 세계관을 처음 만난 건 서울문화재단 ‘언폴드(Unfold) X 기획자캠프’ 사업의 일환으로 예술청 아고라에서 지난해 12월 진행된 ‘당신의 현재 위치–더 도어(The Door)’전 현장이었다. 이곳에서는 ‘경계’ 이야기가 중심이 됐다. 특히 PT-뱅 이후 피어리와 더불어 살아남은 자연의 생명체, 그중에서도 첫 발견 당시 기존 학계에 내려져 있는 정의 속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하지 못해 식물 어느 분류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에 선 채 멸종 위기 야생 생물이 돼버린 제주고사리삼과의 만남이 이뤄졌다.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은 피어리의 존재들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 설치돼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휴대폰으로 작품 QR코드를 찍으면 평면 그림에 있던 피어리가 입체 작품으로 튀어 나온다. 사진=프로젝트 팀 펄

관람객은 전시장에 마련된 패스(path) 1, 2, 3를 지나면서 VR기기 오큘러스를 쓴 초입부에선 눈 앞에 펼쳐진 가상 현실을 마주하다가, 기기를 벗고 실제 식물인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즉 경계를 상징하는 제주고사리삼 설치물을 만난 뒤 마지막에 이르러서 전시장 문을 열고 자신이 사는 현실로 돌아오게 되는 형태였다. 가상 현실과 실재가 계속 뒤섞이는 모호한 전시 공간에서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나누기보다는 경계에서 더 많은 상상을 풀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안했다.

경계로 시작된 이야기는 이 세계관 속 살아남은 가상 생명체 ‘피어리’로 이어졌다. 신한은행 디지로그브랜치 서소문지점에서 4월 마련된 가상·증강 현실체험 디지털 전시 ‘PPP(POP-UP PEARY)’는 보다 피어리를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자리였다. 휴대폰으로 작품 QR코드를 찍으면, 평면 그림으로 설치돼 있던 피어리가 자신의 휴대폰 속으로 들어와 입체 작품으로 생명력을 부여받아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피어리의 모습도 다양해졌다. 케첩이 되고 싶은 욕망에 토마토 저글링을 하는 피어리, 유령처럼 부유하는 고스트 피어리, 여유만만한 포즈를 취한 해파리 피어리, 연분홍 벚꽃을 타고 나타나는 블랙 피어리 등이 등장해 사람들과 만났다.

KT&G상상마당 ‘상상 두:드림(Do Dream)’과 피어리의 만남

전시장에 피어리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설치돼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세 번째 이야기는 ‘피어리의 세계’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이 기발한 상상력은 이번엔 KT&G의 선택을 받았다. KT&G는 전시와 더불어 공연, 디자인, 교육, 영화 등 다양한 문화예술을 한곳에서 즐기는 복합문화예술공간 KT&G상상마당을 2007년 개관 후 현재까지 운영해 왔다. KT&G상상마당은 재능있는 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운영해 왔는데, 프로젝트 팀 펄의 기발한 상상력이 ‘2023 상상 두드림(DoDream)’에 선정됐다.

2023 상상 두드림은 과거 한시적으로 운영됐던 KT&G상상마당 창작 지원 프로그램 ‘상상 두:드림(Do Dream)’을 개편, 확장한 것이다. 과거 운영 당시 상반기에 공모를 진행하고, 하반기에 프로젝트를 구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2007년 홍대희망시장 드로잉팀의 드로잉 초상화 이벤트부터 2008년 패션단체 a.a.a.a의 전시 및 런웨이, 2010년 스튜디오 세미의 음악 창작 디지털 기술 관련 전시, 2011년 후인 마이의 편지의 다문화 사회를 주제로 한 전시 및 퍼포먼스까지 다양한 장르를 지원했다.

전시공간 곳곳에서 피어리를 만날 수 있다. 탁자 위에도 피어리를 불러낼 수 있는 QR 코드가 눈에 띈다. 사진=김금영 기자

KT&G 관계자는 “장르 제한 없는 예술 아이디어 공모전 ‘자유제안 상상 두:드림’을 2007~2011년 운영했다. 그 취지를 되살려 예술가에겐 예술적 상상을 실현하고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대중에겐 다양하고 새로운 경험을 통해 예술의 폭과 층위를 확장시키고자 현 시점에 맞게 다시 진행하게 됐다”며 “젊은 예술가들의 장르적 구분을 넘은 자유롭고 실험적인 전시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상상마당 홍대의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고, 신진 아티스트들의 새로운 시도를 장려하고자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7월 4~10일 프로젝트 공모를 진행했고,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부 심사위원단이 프로젝트 장소 특성과 지원 사업 취지인 참신성 및 실현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심사해 최종 작가로 프로젝트 팀 펄을 선정했다. 최종 선정팀에게는 지원금 120만 원, KT&G 상상마당 홍대 3층 라운지 전시 공간, 홍보물 제작, 온·오프라인 홍보를 지원한다.

다양한 피어리를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이 설치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작품에 다가가 QR코드를 찍자 케첩이 되고 싶었던 피어리가 저글링을 하는 모습, 벚꽃과 함께 나타난 피어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손을 내밀어 함께 사진을 찍을 수도 있었다. 사진=김금영 기자

KTG& 상상마당 홍대 3층 라운지에서 9월 16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명은 ‘PPP: 피어리 두드림(Pearys Do Dream)’으로, 지원 프로그램 ‘상상 두드림’ 이름과의 연관성도 살렸다. 이번 전시 역시 증강현실(AR)을 활용한 관객 참여형 형태로, 상상마당의 로고 이미지를 활용해 제작한 신작 2점을 만나볼 수 있다.

프로젝트 팀 펄의 첫 전시 ‘더 도어’에서 문을 열고 나가 현재 자신의 위치를 확인했던 관람객은 이번엔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른 차원을 넘나드는 두 존재의 피어리를 마주하게 된다. 피어리 각각의 이름은 ‘두(Do)’와 ‘드림(Dream)’.

피어리 관련 아트상품을 만날 수 있는 공간. 사진=김금영 기자

전시장에 설치된 그림의 QR코드를 휴대폰으로 찍으면 회색 눈의 피어리 ‘두’가 튀어나와 열쇠가 꽂힌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른 차원으로 날아간다. 이후 옆에 설치된 그림의 QR코드를 찍으면 행동대장격인 피어리 ‘드림’이 등장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다른 또 다른 차원에서 발견한 데이터들을 수집한다. 이 데이터들은 무의식에 숨겨진 정보(data)로, KT&G상상마당의 씨앗 로고를 상징하는 형태에서 따 왔다. 핑크빛 데이터를 모은 드림은 이를 머릿속에 심은 듯 두 눈이 핑크빛으로 밝게 빛난다.

피어리는 첫 전시에선 ‘인간과 자연’, 두 번째 전시에선 ‘디지털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었는데, 이번엔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든다. 두 존재의 피어리가 등장하지만, 이들은 눈 색깔만 다를 뿐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똑같다. 이들 앞에는 거울도 설치됐는데 서로의 모습이 동시에 비치면서 꿈과 현실을 분간할 수 없는 화면을 보여주고, 결국 또 경계는 희미해진다.

프로젝트 팀 펄의 정혜주 기획자(왼쪽), 성수진 아트디렉터가 거울을 통해 피어리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프로젝트 팀 펄

경계에서 프로젝트 팀 펄은 다시 인식의 한계에 대한 의문을 풀어놓는다. 관람객은 휴대폰으로 작품을 찍어 피어리를 휴대폰 화면에 소환할 수도, 함께 사진을 찍어 집으로 데려갈 수도 있지만, 결국 피어리는 만질 수도 없고 우리와는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즉 꿈과도 같은 존재다. 눈앞엔 분명 움직이는 피어리가 존재하지만, 그 너머 피어리가 존재하는 세상에 무엇이 있을지는 결코 눈만 통해서는 인식할 수 없는 것. 여기서 인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상상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프로젝트 팀 펄의 정혜주 기획자, 성수진 아트디렉터는 “우리는 눈에 보이는 존재들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곤 하지만, 때로는 언어의 한계,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 범위의 한계에 갇혀 일부만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며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세계도 있고, 세계의 모든 것들을 극단적으로, 이분법적으로 분리해 바라보기엔 그 경계에 있는 이야기들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경계의 세상을 함께 상상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세 번째 이야기까지 진행됐고, 피어리의 또 다른 여정은 10월 전시에 이어질 예정이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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