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가르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약 4km에 걸친 DMZ(Demilitarized Zone, 비무장지대)는 현대예술작가들에게 관심의 대상이었다. 특히 이번 경기도 DMZ 오픈 페스티벌의 영역 중 하나인 현대미술 전시 ‘DMZ 전시: 체크포인트’에서 선보이는 미카엘 레빈과 토모코 요네다 두 사진작가의 기록은 우리가 여전히 전쟁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미카엘 레빈의 ‘지뢰 숭고’
프랑스의 소피 리스텔 휴버의 사진 ‘이라크’(2001)는 지금도 회자되는 작업이다. 너른 들판에 남아있는 불에 탄 나무등걸은 마치 고대문명의 열주처럼 보이기도 한다. 미군의 F-16 등 들판에 남아있는 전쟁 무기는 마치 식물처럼 증식하고 있다. 발칸 반도와 중동지역 등 전쟁이 지나간 자리를 기록한 그녀의 사진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그 장소에 남아있는 폐허, 지뢰밭, 잔해 속에 묻힌 시신 등을 파편적으로 기록했지만 재현적인 것은 아니다. 이 이미지들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지만 부재의 장소다. 거리를 두고, 물러서 기록한 이미지들은 그때 일어났던 사실을 넘어 다른 이미지로 전환된다.
분쟁과 전투, 희생자 등 역사의 현장은 보이지 않지만, 전투의 잔재들을 담은 이 사진들은 지나간 현장을 ‘증언’한다. 소피 리스텔휴버는 1991년 제1차 걸프전쟁이 발발한 후 쿠웨이트에서 폭격한 흔적과 군대의 이동장면, 전투의 잔재들을 담았다. 그녀는 이 프로젝트에 ‘페(Fait)’라는 제목을 붙였다. 페는 ‘사실, 저지른, 일어난’을 뜻하는 말이다.
경기도 DMZ 일대에서 8월 31일~11월 5일 진행되는 현대미술전시 DMZ 전시: 체크포인트에 선보이는 미카엘 레빈과 요네다 토모코도 남북한을 가르는 비무장지대의 역설과 아이러니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제시한다. 두 작가 모두 철원 인근 비무장지대 가장자리에 있는 양지리 마을에 있는 양지리레지던시에 참여한 바 있다.
미카엘 레빈은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하는 현대미술 프로젝트인 ‘리얼 DMZ 프로젝트’에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이 프로젝트에 초대받아 1차 답사를 다녀왔고, 그 후 철원 마을 인근 비무장지대 가장자리에 있는 양지리 마을에서 3주간 레지던시를 진행했다. 이번 DMZ 전시: 체크포인트에 선보인 미카엘 레빈의 흑백사진 작업 ‘지뢰 숭고’는 철원 근처에서 촬영한 것으로 수풀, 철책, 지뢰표지판 등 접경지역의 풍광을 기록한 것이다.
이 지역은 한반도를 가르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약 4km에 걸친 DMZ로 남한과 북한을 구분하는 곳이다. 정갈하게 정돈돼 경작된 논 사이에 설치된 촘촘한 철조망은 군요새 네트워크로 기능한다. 이곳은 지뢰밭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철조망으로 구획된 이 땅은 60여 년 전 전쟁 이후 훼손되지 않은 채 빽빽한 초목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캠프그리브스 체육관 복도에 설치된 미카엘의 사진속 풍경은 고요하지만 기이하며 낯선 아름다움을 유발한다.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 숭고함을 느끼다가 그 밑에 지뢰가 묻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이 적막한 풍경은 공포스러움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숲은 여전히 아름답다. 이 사진은 앞으로 전쟁의 흔적이 희미해지고, 숲으로 복원될 ‘회복’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토모코 요네다의 들꽃들
일본 사진작가 토모코 요네다는 장소와 관련된 기억과 역사에 관심을 두고 작업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담긴 장소에 주목한다. DMZ 전시: 체크포인트에서는 1990-2000년대 파주 접경지역과 파주시 내 관광지 주변 등에서 작업한 사진들을 선보인다. 도라전망대 야외에 설치된 ‘마을-남한과 북한 사이의 서부전선 전경’, ‘대한민국 파주시 비무장 지애 내 관광지 주변에 위치한 지뢰밭 전경’ 등은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전쟁의 중심에 있음을 상기시킨다.
DMZ는 한반도를 가르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약 4km에 걸친 지역을 말한다. 이곳엔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이후 민간인 출입이 금지됐다. 현재 DMZ는 야생동식물의 독자적인 생태계가 형성된 평화로운 낙원으로 남았지만, 땅 밑에는 언제 터질지 모를 다수의 지뢰가 매장돼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제강점기로부터 독립한 한반도는 한국전쟁으로 다시 초토화됐다. 인간이 그어놓은 DMZ의 식물들은 여전히 태양 아래 꽃을 피운다. 요네다는 이데올로기와 상관없이 자유를 누리는 공간의 풍경에 주목한다. 무심코 흐르는 강물과 평범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는 젊은이들의 일상을 포착했다.
요네다의 사진 속 꽃들은 철조망을 경계로 피어있다. 분명히 한 뿌리에서 나왔을 법한 꽃 한가지는 철조망 이편과 저편으로 나뉘어 피어났다. 철조망이 경계임을 알려주는 것은 빨강색 표지판에 쓰인 ‘지뢰’라는 표식뿐이다. 이 표식과 철조망만 없다면 이 장소는 남한이든 북한이든 어느 지역에서도 보았을 법한 들판일 것이다.
요네다는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일본 제국주의의 흔적이 남아있는 한반도, 일본, 대만, 러시아의 건물과 지역을 집중적으로 촬영했고, DMZ는 마지막 프로젝트다. 그녀의 작업은 과거의 기억으로 가득찬 장소, 전쟁과 자연재해, 정치적 갈등의 장소를 촬영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고요한 사진은 그 흔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요네다는 전쟁뿐 아니라 개인의 일상에 존재하는 과거의 흔적에 대해서도 기록해왔다. 1996년 런던의 버려진 아파트 벽지에 남아있는 흔적을 지록한 ‘지형적 유추’ 흑백 연작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이 흑백 사진에는 한때 지금은 부재한 어떤 이의 흔적은 존재하지만 객관적인 정보는 알 수 없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 시리즈에서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베르톨트 브레히트, 제임스 조이스 등 20세기 지식인의 안경을 촬영했다. ‘트로츠키의 안경’에서는 트로츠키의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을 추적할 수 있다.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2015 노벨문학상 수상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중에 나오는 한 사연이다. 작가는 전쟁에 직접 참전했거나 전쟁을 목격한 여인 200여 명을 인터뷰했다. ‘목소리 소설’이라 불리는 이 이야기는 여전히 전쟁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른 아침에 엄마가 나를 깨우더라고. ‘딸아, 네 짐은 내가 싸놨다. 집에서 나가주렴…. 제발 떠나…. 너한텐 아직 어린 여동생이 둘이나 있잖아. 네 동생들을 누가 며느리로 데려가겠니? 네가 4년이나 전쟁터에서 남자들이랑 있었던 걸 온 마을이 다 아는데…. 내 영혼을 위로할 생각은 마.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내가 받은 포상에 대해서만 써….”
한국전쟁 이후, 경계지역으로 분류된 DMZ의 풍경은 이제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무심코 불어오는 바람에 누군가의 이야기가 실려 있을 것이다. 마치 목소리 소설처럼.
글: 천수림(사진비평)
이미지 제공: ‘디엠지(DMZ)전시: 체크포인트’
<작가소개>
미카엘 레빈(Mikael Levin, 1954년 출생)은 장소와 정체성 그리고 일시적인 우리의 개념을 탐구한다. 그의 사진 속 장소는 일상적인 공간이지만 역사적인 사건과 동시대의 개연성을 탐구한다. 그리고 그곳들을 촬영하며 그의 사진에 장소가 가진 사회구조와 영향력 그리고 기억의 지형을 형성한다. 마이클 레빈은 미국과 유럽에서 주로 활동하며 2010년 파리 유대인 박물관, 2009년 리스본 베라르도 미술관, 2003년 파리 국립도서관, 1997년 뉴욕 국제사진센터, 1980년 카라카스 멘도사 재단에서의 개인전을 비롯해 유럽과 미국에서 폭넓게 전시에 참여해왔다.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했으며 뉴욕 휘트니 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파리 국립현대미술기금 등에 소장돼 있다.
토모코 요네다(Tomoko Yoneda, 1965년 출생)는 현재 런던에 거주하며 작업을 하고 있다. 그녀의 작업은 사람들의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는 장소들에서 시작한다. 그녀는 사진을 통해 역사적인 사실이 내재된 특정한 장소와 사물들을 탐구하고, 각 장면 이면의 기억들을 상기시킨다. 대표 전시로는 ‘세계 교실’(모리 미술관, 도쿄, 2023), ‘에코-부서지는 파도’(슈고아츠, 도쿄, 2022), ‘토모코 요네다’(마프레 재단, 마드리드, 2021), 제21회 상하이 비엔날레(상하이, 중국, 2018-2019),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서울, 2014), 제10회 광주비엔날레(광주, 한국, 2014), ‘우리는 어둠이 없는 곳에서 만날 것이오’(히메지 시립미술관, 효고, 일본, 2014/도쿄 사진 미술관, 도쿄, 2013), 제52회 베니스비엔날레(베니스, 이탈리아, 200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