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대한민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게 자리하고 있는데다 14억 인구를 앞세운 경제대국이라는 점에서 경제, 정치 등 다방면에서 한국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중국 정부가 문화공정, 사드(THAAD) 도입 보복인 ‘한한령(限韓令)’ 등 상식 밖의 행태를 보이면서 점진적으로 중국의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국내에서 힘을 얻고 있다.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을 비롯해 유럽연합(EU) 등 서방세계도 2019년 홍콩 우산시위와 코로나19 팬데믹에 이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국의 전 방위적 위협에 대비한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미국 vs 중국 무역전쟁… EU 등 서방세계도 뛰어들어
지난 2018년 7월, 당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총 340억 달러 규모 818종의 물품에 대해 25%의 보복관세를 부과하며 미중 무역전쟁의 신호탄을 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트럼프 행정부는 화웨이, ZTE 등 중국 기업에 주요 부품 수출을 금지하는 법안을 내놓은데 이어, 화웨이와 70개 계열사에 대한 거래를 제한시켰고 슈퍼컴퓨터와 관련된 중국 기업들과 국영연구소에 대해 거래제한 조치도 내렸다.
2021년 1월 민주당 바이든 행정부로 정권 교체가 이뤄졌지만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공화‧민주 양당을 가리지 않고 초당적으로 대중 무역전쟁에 나서며 이러한 기조가 오히려 더욱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미국 정부는 중국이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소수민족 인권을 탄압한다는 이유로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면화와 토마토 가공품의 수입을 전면 금지했고, 미국 의회는 ‘위구르족 강제노동 금지법’을 초당적으로 의결해 완제품뿐만 아니라 신장산 원료·반제품·노동력을 부분적으로 활용한 제품도 수입금지 대상으로 규정했다.
2022년 미국 상무부는 엔비디아와 AMD가 제조한 최첨단 인공지능(AI)칩의 중국 수출을 제한했고, 올해 8월 조 바이든 대통령은 사모펀드와 벤처 캐피탈 등 미국의 자본이 중국 첨단 반도체와 양자 컴퓨팅, AI 등 3개 분야에 대한 투자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여기에 호주도 가세했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의 화웨이에 대한 제재 요청에 동참한 호주 정부는 2020년 4월 신임 수상 스콧 모리슨이 코로나19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국제적인 조사를 주장하며 중국의 가장 아픈 곳을 건드렸다.
최근 유럽연합(EU)도 미국의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다. 10월 2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EU와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국가들이 반도체, AI, 양자, 바이오 등 4대 첨단기술을 무기화할 위험성을 평가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른 국가는 인권, 법치, 민주주의 등 서방의 국가운영 지향점과 거리를 두는 권위주의 국가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이에 중국 정부도 반격에 나섰다. 미국이 보복관세를 부과하자마자 즉시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340억 달러 규모의 자동차, 농산품 등에 보복관세 조치를 내렸다. 올해 5월 중국 내 주요 기업들에게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의 제품 구매를 중지시켰고, 차세대 반도체 등의 주요 원료로 쓰이는 희귀 금속인 갈륨(Ga)과 게르마늄(Ge) 등의 수출 통제령을 발효했다. 세계 광물 시장에서 두 금속에 대한 중국의 점유율은 80~90%에 이른다.
이 밖에도 중국정부는 자국 내에서 영업중인 미국계 컨설팅 회사들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에 들어갔다. 중국 공안당국은 지난 3월 미국 기업실사업체 민츠그룹 베이징 사무소에 이어 4월에는 미국 컨설팅업체 베인앤컴퍼니 사무소를 급습했다. 리서치업체 캡비전도 공안당국의 압수수색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호주의 코로나19 중국 기원 의혹 제기에 격노한 중국은 호주에 대해 전면전 수준의 대규모 경제 보복을 단행했다. 2020년 5월 호주 육가공업체 4곳에 대한 대중 수출 면허 취소를 시작으로 보리, 와인, 면화, 목재, 석탄, 랍스터, 구리 등 호주의 대중 수출 비중이 20% 이상인 품목에 대해 수입 제한 혹은 금지 조치가 시행됐다. 특히 2020년 10월 호주 전체 수출량의 22%를 차지하는 4200만t의 호주산 석탄에 대한 전면 수입 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에 따라 미중 양국의 무역 규모도 줄어들고 있다. 지난 8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미국 인구조사국이 발표한 무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상반기 미국 상품 수입에서 중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13.3%로 최고치를 기록했던 2017년(21.6%)보다 3분의 1 이상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中 내부 요인 영향… 글로벌 기업, ‘차이나 엑소더스(China Exodus)’ 나서
미중 무역전쟁을 계기로 중국 내 생산라인을 둔 글로벌 기업들은 생산 공장을 중국 이외의 국가로 이전하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최근 2년간 글로벌 기업의 63% 정도가 중국 내 생산 기지의 40% 이상을 인도와 베트남으로 이전했다. 특히 중국과 비슷한 규모의 인구를 가져 풍부한 노동력과 거대 내수 시장을 보유한 인도가 주목받고 있다.
애플은 지난해부터 아이폰14 모델을 인도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아이패드 역시 중국에서 인도로 생산 이전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의 최대 협력 업체인 대만 폭스콘사(社)도 내년 4월부터 인도 신규 공장에서 아이폰을 본격 생산할 예정이며 5억 달러(약 6500억 원)를 투자해 에어팟 생산 공장을 추가 건설 중에 있다.
자동차 업계에선 일본 닛산과 프랑스 르노는 신차 공동 개발을 위해 인도 공장에 6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고, 현대차·도요타·폭스바겐 등도 인도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의류나 신발 등의 경우 이미 베트남·인도네시아 등의 생산량이 중국을 앞질렀다. 중국 현지 매체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아디다스의 신발 생산 비중은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이 각각 36%, 30%로 중국(15%)을 크게 앞질렀고, 나이키도 이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기업의 경우 삼성전자는 이미 대부분의 생산공장을 인도와 베트남으로 이전했다. 중국에 마지막으로 남은 후이저우 삼성 스마트폰 공장도 지난 2019년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삼성중공업도 2021년 저장성 닝보조선소에서 철수를 결정하고 올해 8월 법인을 청산했다.
이처럼 글로벌 기업들이 ‘차이나 엑소더스’에 나서는 이유로 중국을 중심으로 미국의 압박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사업환경의 악화 등 중국 내부에 있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국의 성장률이 둔화하고 값싼 인건비를 기대할 수 없는데다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재편이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 중국 정부는 한국을 포함한 외국계 기업을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중국 기업에게만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중국 정부는 CATL이나 BYD 등 자국 기업이 만든 배터리가 탑재된 전기차 구매 시에만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조금 수혜를 받을 수 없는 외국계 기업은 구태여 중국에서 사업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도 ‘탈중국’ 영향… 글로벌 기업 유치 나서야
이러한 ‘탈중국’ 현상에서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6월 한국무역협회(무협)가 발간한 ‘대중국 수출부진과 수출시장 다변화 추이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대중국 수출의존도가 19.5%로 집계돼 마침내 20% 선이 깨졌다. 이 같은 현상은 특정 업종만이 아닌 산업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2021년부터 지난 1분기까지 이차전지, 석유제품,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부품, 디스플레이, 플라스틱제품 등의 분야에서 중국향(向) 수출 의존도가 3%p 이상 하락한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공급망 재편에 드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 세계 최대 소비시장이자 노동력과 제조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중국을 떠나는 것이 과연 실효성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한국과 일본, 아세안이 중국을 완전히 대체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의견이다.
‘화수분’과 같았던 중국 시장 진출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이러한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한 방안으로 ‘탈중국’한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유치에 나서야 된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말 발표한 ‘글로벌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 국내 투자유치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소부장 업체들의 탈중국 움직임이 활발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는 “이는 한국에는 큰 기회 요인”이라며 “일본을 포함한 경쟁국들보다 더 빨리, 더 획기적인 방법으로 글로벌 기업 유치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는 ▲외국기업들의 비자‧세제‧환경‧입지 문의에 원스톱 지원 서비스 확대 보강 ▲소부장 핵심전략기술·장비 및 공급망 안정품목 보유 외국기업 생산·연구시설 이전에 세액공제 및 규제완화 특례 ▲해외기업 인센티브 투자기간에 비례 ▲전문지식과 기술을 가진 해외인력에 대한 비자(E7) 발급 및 체류여건 완화 등이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아직 중국의 정치 시스템이 선진화 되지 못한 부분이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어 국내 대기업이 중국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 기업 입장에서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동남아를 비롯해 시장 다변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오 소장은 이어 “경제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고, 단지 이익을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하다”면서 “언젠가는 다시 중국 시장을 공략할 수도 있기 때문에 상황이 달라질 것에 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문화경제 한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