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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30조 원 규모 중고차 시장에 진출한 ‘진짜 이유’

‘중고차 판매수익 목적 No’… “리셀 밸류 방어 통한 신차 판매 촉진, 미래 모빌리티 서비스 플랫폼 확장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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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59호 김예은⁄ 2023.11.02 17:04:15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사옥 전경. 사진=현대자동차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국내 중고차 시장은 2020년 기준 판매량 약 252만 대로 신차 판매량보다 약 1.32배 많고, 거래 금액은 약 30조 원에 육박하는 거대한 시장이다. 하지만 대표적인 ‘레몬 마켓(정보 불균형 시장)’으로 분류돼 왔다. ‘레몬 마켓’이란 소비자는 정보 부족으로 구매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적은 가격만을 지불하려 하고, 판매자는 수익성 확보를 위해 저급 상품만을 판매하려고 하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시장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중고차 판매업은 생계형 적합 업종으로 지정돼 대기업의 시장 진출이 제한된 데다, 영세 업체에 의존하는 파편화된 시장과 시스템 미비에 따른 한계로 사업화가 미흡한 시장으로 평가돼 왔다. 특히 낮은 거래 투명성과 품질에 대한 신뢰성 부족에서 비롯된 분쟁이 지속되며 한국소비자원은 신뢰성과 비교 용이성 평가점수가 낮아졌다며 중고차 시장의 소비자 지향성을 2017년 ‘미흡 시장’에서 2020년 ‘경고 시장’으로 떨어뜨려 분류하는 등 악화 일로를 걷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17일 ‘생계형 적합 업종 심의위원회’가 중고차판매업을 생계형 적합 업종으로 지정하지 않으면서 완성차 업계를 포함한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가능해졌다.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는 생계형 업종 제외 사유에 대해 “중고차 사업 규모가 생계형 적합 업종 분류 기준에 비해 크고 향후에도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되는 산업이기 때문”이라며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업계에 미치는 소상공인의 피해 대비 소비자의 후생 증진 효과가 더 클 것으로 예상해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중고차 시장 개방이 공식화됨에 따라 현대자동차 그룹을 비롯한 완성차 업체와 롯데렌탈 등 대형 렌터카 업계는 중고차 소매업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먼저 현대차그룹이 10월 19일 ‘현대/제네시스 인증중고차’ 미디어데이 행사를 열고 인증중고차 사업 공식 출범을 알렸다.

현대차, 하이랩‧AI 프라이싱 엔진 앞세워 중고차 시장 진출

현대차가 품질을 보증하는 인증 중고차가 10월 24일부터 판매를 개시했다. 고객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현대·제네시스 인증 중고차’와 전용 웹사이트에서 인증 중고차를 구매하면 경남 양산시 하북면과 경기 용인시 기흥구에 있는 ‘인증 중고차 전용 상품화센터’ 2곳에서 출고된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소비자연맹이 2022년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소비자들은 중고차 구매 시 불만 사항으로 ▲중고차 성능·상태 불량(47.4%) ▲사고 이력 미고지(11.4%) ▲가격(7.2%) ▲허위‧미끼 매물(4.5%) 등을 꼽았다.

이에 현대차는 인증중고차 사업 방향성으로 ▲투명 ▲신뢰 ▲고객가치를 제시하고, 그간 중고차 업계에서 지적돼 온 ‘레몬 마켓’에서 탈피해 건강한 생태계 조성에 기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중고차 거래 투명화 서비스를 도입해 소비자의 정보 부족으로 인한 구매 리스크를 줄이고, 자체 성능 검사와 품질인증 시스템으로 상품성을 높이는 방안을 시장 개선 전략으로 내세웠다.

현대차는 판매자가 차량 주행거리나 성능·상태 등의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판매자와 소비자 간 정보의 비대칭이 상대적으로 심해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것을 개선하기 위해,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 ‘하이랩’과 내차팔기 이용 고객에게 객관적인 차량 가격을 산정해 제시하는 ‘AI 프라이싱 엔진’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먼저 ‘하이랩’에서는 ‘중고차 성능·상태 통합 이력(history)’뿐만 아니라 ▲국산/수입차 전 모델 현재 시세 및 추이 ▲실거래 대수 통계를 통해 브랜드별/성별/연령별/지역별/가격대별/연료 타입별 등 다양한 카테고리별 인기 모델 순위를 제시해 최신 중고차 시장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중고차 성능·상태 통합 이력’은 현대차가 자체 보유한 정기 점검 및 수리 이력은 물론 국토교통부와 보험개발원 등의 공공데이터까지 활용해 분산돼 있던 다양한 차량 이력 정보를 고객이 편리하게 조회할 수 있도록 통합했다.

유원하 현대자동차 부사장이 10월 19일 오전 경남 양산시 하북면 현대자동차 인증 중고차센터에서 열린 ‘현대·제네시스 인증 중고차 미디어 데이’에서 하이랩 서비스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이 자신이 구매하려는 중고차의 기본 정보는 물론 ▲전손‧도난‧침수 등의 특수사고 및 보험사고 이력 ▲중고차 성능점검 및 자동차 검사 이력 ▲정비 이력 ▲리콜 이력 등 차량의 현재 성능·상태와 이력을 한눈에 조회할 수 있고, 정상 매물 여부를 확인해 허위·미끼 매물을 스크리닝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현대차는 머신러닝 및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중고차 가격을 투명하게 산정하는 ‘AI 프라이싱 엔진’을 자체 개발했다. 현대차는 가격 산정의 객관성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최근 3년간 국내 중고차 거래 약 80%의 실거래 가격을 확보해 데이터베이스화했으며, 거래 데이터는 15일마다 자동으로 업데이트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하이랩이 보유한 차량 성능·상태 이력 등의 정보와 모델별 옵션가격 등 상세 정보까지 반영해 시세를 정교하게 도출한다.

특히 현대차는 자사 모델의 제조사로서 옵션 판매 정보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차량에 장착된 옵션 가격까지 반영된 세부 시세를 제시함으로써 차량의 가치를 더욱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사람의 주관적 개입 없이 자체 개발한 가격산정 엔진과 전문인력이 확인한 차량 상태 정보만으로 매입 가격을 산출한다고 밝혔다. 매각 신청 시 전문인력이 차량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고객을 방문하지만, 사고 유무 및 파손 상태 등 단순 차량 상태만 확인하고 가격흥정이나 감정평가(valuation)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10월 19일 미디어데이에서 공개된 경남 양산시 현대자동차 인증 중고차센터 내부 모습. 사진=연합뉴스

현대차는 소비자의 가장 큰 불만 사유로 꼽힌 중고차 성능 불량 문제와 관련해 중고차 품질 확보를 위해 270여 개 항목의 엄격한 성능 검사와 품질인증 시스템을 도입했다. 판매 대상 차량도 5년 10만km 이내 무사고 현대차, 제네시스 브랜드 차량으로 한정했다.

현대차는 자사가 보유한 제조 및 서비스 기술을 적극 활용해 ▲인증중고차센터 입고점검 ▲정밀진단(차량 선별) ▲품질개선(판금·도장 등) ▲최종 점검 ▲품질인증 ▲배송 전 출고점검 ▲출고 세차 등 7단계에 걸친 ‘상품화 프로세스’를 마련했다.

상품화센터 입고 점검 후 진행되는 정밀진단은 차량 외관과 실내는 물론 주행 성능, 엔진룸, 타이어 등을 대상으로 현대차 272개 항목, 제네시스 287개 항목에 걸쳐 진행되며, 정확한 진단을 위해 스마트 진단 장비가 사용된다.

현대차 양산 인증 중고차센터 내부에 설치된 중고차 하부 스캔 화면. 사진=연합뉴스

정밀진단 결과에 따라 기능 정비와 판금·도장 등의 품질개선이 이뤄지며, 수리 과정에서 사용되는 부품 역시 신차와 동일하게 현대차가 인증한 부품들만 투입된다. 이후 최종 점검을 추가로 진행하는 등 모든 검사 항목을 통과한 차량에 대해서만 공식 인증 마크를 부여한다.

마지막으로 현대차는 중고차 판매채널을 모바일 앱과 웹 등 온라인 중심으로 통합했다. 오프라인에서 차량 상태를 확인하는 대신 온라인 채널을 통한 정보를 오감 영역으로 다각화했다. 차량 내외부 360도 VR 콘텐츠 및 누유·누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차량 하부 사진 등의 시각 정보를 비롯해 ▲최대 6배까지 확대할 수 있는 초고화질 이미지를 통한 시트 질감 등의 촉감 정보 ▲실내 공기 쾌적도를 수치화한 후각 정보 ▲‘엔진 점검 AI’가 녹음한 차량 엔진소리 등의 청각 정보 ▲타이어 마모 정도와 주행 보조와 같은 차량의 첨단기능 상태를 보여주는 초감각 정보를 제공한다.

현대차는 온라인 판매채널 외에도 향후 고객이 직접 방문할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도 마련해 고객 경험을 확장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현대차의 속내와 중고차 시장 진출 여파

유원하 현대자동차 부사장이 10월 19일 오전 경남 양산시 하북면 현대자동차 인증 중고차센터에서 열린 ‘현대·제네시스 인증 중고차 미디어데이’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과연 현대차그룹은 30조 원 규모의 중고차 시장에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 이에 대해 이재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은 중고차 시장의 신뢰도 문제를 해결해 사업화를 촉진하고, 모빌리티 서비스 결합으로 중고차 시장의 플랫폼 비즈니스화를 촉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함께 이재일 연구원은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중고차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중고차 시장에서 매입은 제조업의 생산에 해당하기 때문에, 매출을 일으키고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매입처 확보가 필수적이다. 현재 중고차 시장 매물의 절반가량은 완성차, 대형 렌터카, 카-쉐어링 업체로부터 공급되고 있다. 이에 따라 대기업의 B2C 시장 진출은 중고차 시장에 공급되는 물량 축소로 이어져 중고차 매입 경쟁 심화가 중고차 가격 상승을 이끌 것이란 분석이다.

또한 기존 온라인‧모바일 기반의 중고차 플랫폼 사업자는 매입 경쟁에서 매입 가격을 높여 고객을 유치하고 규모의 경제를 통해 판관비 등 공통 비용을 낮춰 수익성을 확보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중고차 매매상의 경우에도 매물 감소로 인한 외형 축소를 감수하거나 출혈을 감수하고 물량 확보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돼, 거래 가격 상승 압력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형 렌터카 업체들 역시 중고차 판매 수익성 방어를 시도함으로써 중고차 가격의 하방 경직성이 더욱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 연구원은 “중고차 시장이 과거 다수의 영세업자가 자유롭게 거래하던 시장에 비해 가격의 하방 경직성이 강해지고 상승 압력이 큰 시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대자동차는 정밀진단 및 품질개선 통해 중고차 상품성을 신차 수준으로 높이는 ‘상품화’ 작업을 수행한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다만 현대차가 정보의 투명성과 상품성 개선을 주요 전략으로 내세운 만큼 기존의 업체들 역시 정보의 투명한 공개와 고품질의 상품을 기반으로 한 비교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경쟁우위에 설 수 없게 됐다. 그만큼 대기업의 등장이 중고차 상품의 전반적인 상품성 개선과 소비자 신뢰성 개선 측면에서 시장 전반에 메기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런데 현대차가 중고차 시장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과연 30조 원 규모의 시장에서 창출하는 신규 수입원에 불과할까.

이에 대해 이 연구원은 “완성차 업체는 중고차 판매 수익이 주목적이 아닌 리셀 밸류 상승을 통한 신차 판매를 원활하게 할 목적으로 중고차 시장에 진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완성차 기업들이 시장 지배력을 통해 리셀 밸류의 하락을 막고, 신차 판매를 증진하는 전략을 도모할 것이란 분석이다.

또한 현대차가 온라인 플랫폼 중심의 중고차 판매 전략을 내세운 것 역시 시사하는 바가 있다. 현대차가 장기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는 ‘모빌리티 서비스 플랫폼’ 확장의 발판으로 이 시장과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고차 시장은 차량 정보와 시세 정보를 비교하기가 쉽고 간편하게 거래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점차 ‘온라인 플랫폼 중심’의 성장을 거듭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한 중고차 판매는 중장기적으로 차량 구독 서비스, 전기차 정비/배터리 재활용, 배터리 렌탈 등 신규 사업 기회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30조 원 규모에 육박하는 중고차 시장에서 본 서비스를 기반으로 1차 고객 확보가 가능하다는 이점을 갖는다.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기존 시장에 만연해 있던 레몬 마켓 문제를 해소하고 현대차가 그리는 모빌리티 서비스의 시작점으로 유효하게 작용할 수 있을지 향후 중고차 시장을 중심으로 일어날 지각 변동과 그 방향에 귀추가 주목된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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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중고차  렌트카  인증중고차  롯데렌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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