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1호 김응구⁄ 2023.11.23 16:44:21
작가 이름이 ‘장난 짓’이다. 얼마나 짓궂길래 그렇게 지었을까.
대림미술관이 내년 3월 31일까지 작가 미스치프(MSCHF)의 전시 ‘MSCHF: NOTHING IS SACRED’를 선보인다.
미스치프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굉장히 유쾌하다. 심지어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시비를 건다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어보자. 자동차 경주대회 포뮬러원(F1)의 저지(스포츠 유니폼)가 있다. 여기에는 미스치프와 유명 브랜드의 로고가 함께 마킹돼 있다. 한 벌에 한 브랜드씩이다. 그렇게 여덟 개 브랜드를 만들었다. 서브웨이, 디즈니,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월마트, 스타벅스, 아마존, 코카콜라. 이름만 들어도 익히 아는 브랜드다. 문제는, 이 로고들을 사용 허가 없이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일종의 컬래버레이션이 아니라는 얘기다. 더 놀라운 건, 이 티셔츠를 실제로 돈을 받고 팔았다. 보란 듯이 세계 유명 브랜드들을 가지고 논 것이다. 어떻게 됐을까. 브랜드 당사자들은 재밌다고 쳐다보기만 했을까?
미국엔 ‘C&D’라는 게 있다. 기업이 자신의 저작권·상표권 침해 행위를 방지하고자, 이를 위반한 곳에 보내는 내용증명, 즉 법적 통지서다. 이게 미스치프 측에 안 왔을 리 없다. 아니, 미스치프는 오길 바랐다. 그것도 가능한 한 빨리. 고객은 저지를 구매할 때 ‘누가 가장 먼저 보낼까’를 예측하고, 그러면서 이 재미난 ‘경주’에 참여하게 된다.
궁금하다. 어느 브랜드가 가장 먼저 보냈을지. 상표권에 엄청 민감한 디즈니? 코카콜라? 일론 머스크가 ‘X’(옛 트위터)로 선전포고할 것 같은 테슬라? 정답은 서브웨이다. 그래서 지금 미스치프 웹사이트에는 서브웨이 저지에만 브랜드 로고가 가려져 있다. 이 결과를 맞힌 고객들에겐 F1 챔피언 모자를 본뜬 우승자 모자를 선물로 줬다. 함께 놀아준 것에 대한 보답이다.
전시회에는 서브웨이가 미스치프에 실제로 보낸 C&D도 아크릴판에 담아 걸어놓았다. 그 밑엔 여덟 개 서랍에 각각 한 브랜드씩 저지를 넣어 관람객들이 열어볼 수 있도록 했다. 정말 유쾌한 전시가 아닐 수 없다. 이 전시의 이름은 ‘C&D Grand Prix(그랑프리)’다.
재밌다. 그러니 하나 더 예를 들어본다.
벽에 큰 그림 세 개가 걸려있다. 풍경이나 정물, 인물이 아니다. 실제 어떤 청구서를 보고 그린 그림이다. 어지러운 도표에 ‘메디슨(medicine)’이라는 영어가 보이고 숫자도 빼곡히 적혀 있다. 예상이 맞았다. 의료비 청구서를 그린 ‘메디컬 빌 아트(Medical Bill Art)’다. 그림 세 개는 각각 다른 사람의 실제 의료비 청구서를 모델로 했다.
미국의 의료비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비싸다. 어떤 진찰·치료·수술이냐에 따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 되기도 한다. 전시된 그림의 청구비는 모두 합쳐 우리 돈으로 9700만 원 정도. 아파서 병원에 갔을 뿐인데, 이만큼의 ‘빚’이 생긴 것이다.
미스치프가 이 금액을 상환하기 위해 나섰다. 당연히 그들 방식대로 미술 시장을 활용했다. 이 그림을 그린 후 미술품 경매 시장에 내걸었다. 그리곤 세 개의 그림을 똑같은 가격인 9700만 원에 팔았다. 물론, 이 돈은 힘겨워하는 당사자들의 ‘빚’을 갚는 데 모두 사용했다.
그래서 미스치프는 미술품 시장을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더불어 그런 가치를 창출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판매된 예술품의 가치와 의료 행위로 생겨난 빚의 가치를 대조해서 보여주고, 미국의 의료 시스템에 문제는 없는지 고민해 보자는 취지로 이해했다.
작품에 숨겨진 의미·성격 따라 5가지 섹션으로 나눠
대림미술관은 미스치프의 전시를 다섯 가지 섹션으로 나눠 선보인다. 그들의 작품에 숨겨진 의미와 성격에 따른 구분이다.
첫 번째 ‘Archive(아카이브)’ 섹션에선 미스치프가 한정판으로 발표한 작품들과 그들의 핵심 가치가 담긴 아카이브용 형태의 매거진 8권을 디지털 버전으로 공개해 놓았다. 소셜미디어·매스미디어 등 주류(主流)문화에 대항하는 미스치프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두 번째는 ‘Multiplayer’ 말그대로 ‘멀티플레이어’ 섹션이다. 블랙유머를 가미한 게임 형태의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세 번째 섹션은 ‘Fraud For All, Fraud For One’이다. ‘모두를 위한 사기, 하나를 위한 사기’쯤으로 해석된다. 현대사회의 비합리적인 구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작품들이 소개돼있다. 앞서 예를 든 의료비 청구서 작품을 여기서 볼 수 있다.
네 번째는 ‘For Everything Else, There’s Mastercard’ 섹션이다. 이 타이틀은 1997년 마스터카드의 브랜드 캠페인 문구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 외 다른 모든 것은 마스터카드로’에서 빌려온 것이다. 명품, 식·의약품, 도서 등 장르를 넘나들며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선보인 작품들을 통해 상업성과 희소성의 이중적 특성을 들여다볼 수 있다.
마지막 섹션은 ‘Nothing is Sacred’, 즉 ‘신성한 건 아무것도 없다’다. “우리에게 논란은 오히려 각 작품에 담긴 메시지를 단단하게 만들고 더 많은 관심을 받게 하는 수단일 뿐”이라는 미스치프의 메시지가 담긴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미스치프는 글로벌 첫 전시로 한국을 선택했다. 대림미술관은 팬데믹 이후 처음 갖는 전시회다. 둘의 시너지는 더없이 빛난다.
전시는 매주 화·수·목·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다. 입장 마감은 6시. 금·토요일은 오후 8시까지며, 7시까지 입장해야 한다. 월요일은 휴관.
‘미스치프’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버리는 괴짜 집단
2019년 가브리엘 웨일리(Gabriel Whaley), 케빈 위즈너(Kevin Wiesner), 루카스 벤텔(Lucas Bentel), 스테픈 테트롤트(Stephen Tetreault)가 설립한 아티스트 콜렉티브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이들의 한정판 작품은 2주에 한 번꼴로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한다.
미스치프는 겁이 없다. 대개 생각만으로 즐기는 상상을 거침없이 현실로 만들어 버린다.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영국)의 스팟 페인팅(spot paintings) 중 하나인 ‘L-Isoleucine T-Butyl Ester’(2018)를 구매한 후, 작품 속 점들을 하나씩 오려내 88개 작품으로 만들고, 그 프레임(틀)까지 판매해 일곱 배 넘는 수익을 올렸다. 작품 이름은 ‘Severed Spots’다.
이 정도는 얌전한 편. 미스치프는 예수와 컬래버레이션한다며 나이키 운동화의 에어솔(air sole)에 성수(聖水)를 넣은 ‘예수 신발(Jesus Shoes)’을 내놓기도 했고, 유명 래퍼 릴 나스 엑스(Lil Nas X)와 함께 나이키 에어솔에 진짜 사람 피 한 방울을 넣어 만든 ‘사탄 신발(Satan Shoes)’ 666켤레를 선보이기도 했다. 나이키와의 법정 분쟁은 당연지사다.
이들은 앤디 워홀(Andy Warhol)도 소환했다. 그의 드로잉 작품 중 ‘Fairies’(1954)를 2만 달러에 산 다음 이의 복제품 999개를 만들었다. 그리곤 원작과 복제품을 섞어버렸다. 보증서까지 정교하게 복제해 어느 게 진짜인지 구분하지 못하도록 했다. 결과적으론 이 역시 미스치프의 승리다. 작품 한 점당 250달러씩 팔았고, 원본+복제품 1000개는 모두 팔렸다. 조금 비꼬아서 보면 10배 훨씬 넘는 장사다. 물론, 미스치프 측은 “미술 시장에서 비싸게 팔리는 진품의 가치와 미적 가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프로젝트”라는 설명을 달았다.
그들의 작업 대상엔 한국도 포함됐다. BTS(방탄소년단) 멤버의 입대를 소재로 게임 프로그램 ‘BTS IN BATTLE’을 선보였고, ‘블러(Blur)’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제목처럼 흐릿하게 처리한 한국의 5만 원권 지폐뭉치를 출시하기도 했다.
뭐니뭐니해도 미스치프를 유명하게 만든 건 ‘빅 레드 부츠(Big Red Boot)’다. 일명 ‘아톰슈즈’로 알려져 있다. 애니메이션 ‘우주소년 아톰’에서 아톰이 신은 신발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은 애칭이다. 처음 350달러에 출시했는데 품절 대란을 일으키더니 리셀(resell) 시장에서도 구하기 힘든 ‘희귀템’이 돼버렸다. 래퍼 릴 웨인(Lil Wayne)이나 프로듀서 디플로(Diplo) 같은 유명 셀럽들이 SNS에 인증샷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시장에선 관람객이 이를 직접 신어볼 수도 있다.
미스치프는 그들의 전시가 시작되기 이틀 전인 11월 8일 대림미술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가브리엘 웨일리, 케빈 위즈너, 루카스 벤텔과 이여운 전시 디렉터가 함께했다.
가브리엘 웨일리는 “우리의 다양한 예술 작업은 모두 현실과 맞닿아 있다”며 “이렇듯 회고전 형식의 전시회를 통해 과거의 우리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기회를 갖는다는 건 무척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예술의 가치는 대체로 얼마만큼 주목받느냐에 달려있다.” 케빈 위즈너의 말이다.
어쩜 미스치프는 ‘관종’이 아닐까 싶다. 그것도 중증이 아닐까 싶다. 근데, 보기 싫지 않다. 기분이 언짢지도 않다. 무슨 감정일까, 한참을 생각했다. 조금 불편한 시각으로 보면, 유명 브랜드를 이용해 큰 관심을 얻은 후 더 큰 유·무형의 가치로 되돌아오게 한다. 허나, 대중은 이에 환호한다. 마음이 들썩인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들뜨고 보니 알겠다. 그들은 예술을 가지고 논다. 그것도 모두와 함께 논다. 그러니 밉지 않다. 이해가 쉬워졌다. 우린 미스치프의 장난 짓에 놀아나고 있다. 아주 기분 좋게.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