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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게 타올랐다 쉬 꺼진 불꽃, 이제 다시 핀다… 한국 위스키史

日 본뜬 ‘도라지위스키’ 興亡 이어 1970~1980년대 국산 위스키 쏟아져나와… 최근엔 김창수위스키·쓰리소사이어티스 등 국산 몰트위스키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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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60호 김응구⁄ 2023.11.24 15:06:44

김창수위스키증류소는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싱글몰트위스키 ‘김창수위스키’를 선보였다. 각각 ‘1·2·3호 캐스크’로 이름 붙였다. 사진=GS리테일

올 한 해 한국인의 위스키 소비는 무척 활발했다.

11월 23일 관세청 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1~10월 위스키 수입량은 2만6937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8% 늘었다. 11월에다 연말 수요가 많은 12월까지 고려하면 올해는 사상 첫 3만 톤 돌파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위스키 수입량은 2021년 1만5662톤에서 2022년 2만7038톤으로 급증(72.6%)했다.

그런 만큼 우리의 위상도 많이 달라졌다. 글로벌 위스키 명장들이 한국을 찾는 횟수가 늘고 있다. 10~11월 두 달에만 세 명이 한국 땅을 밟았다. 10월엔 ‘발베니’의 전 몰트마스터(malt master) 데이비드 스튜어트가 자신의 60년 경력을 기념하는 ‘발베니 60년’ 두 병과 함께 방한했다. 11월엔 페르노리카의 아이리시 위스키 증류소를 총괄하는 빌리 레이튼 마스터 블렌더(master blender)와 케빈 오고먼 마스터 디스틸러(master distiller)가 ‘레드브레스트 15년’ 한국 출시를 기념해 한국을 찾았다. 이어 마스터 블렌더 50년 경력의 마이크 콜링스는 본인의 위스키 커리어 50년을 기념하는 ‘펄킨 위스키 코리아 에디션’ 론칭 행사에 참여하고자 한국에 왔다.

이제 위스키 수입량은 와인을 한참 앞선다. 혼술·홈술 트렌드에 편의점이 주요 판매처로 부상하면서 일어난 ‘사건’이다. 여기서 궁금한 것 한 가지. 우린 외국산 위스키를 이처럼 많이 마시는데, 국산 위스키는 없을까?

대개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위스키를 만들었다. 인기도 꽤 얻었다. 하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이참에 대한민국 위스키 역사를 정리해봤다.

1977년 12월 25일자 〈주간조선〉에 실린 해태주조 광고. ‘드슈’ 위스키가 보인다. 사진=문화경제 DB

위스키도 아니고 도라지도 없었던 ‘도라지 위스키’

흔히 한국 위스키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브랜드가 있다. 가수 최백호의 노래 ‘낭만에 대하여’(1995)에도 나오는 ‘도라지 위스키’다. 하지만 위스키는 아니다. 게다가 도라지도 들어있지 않다. 물론, 사연이 있다.

8·15광복과 6·25 한국전쟁을 겪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든 위스키는 아주 소수지만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급기야 흉내만 낸 위스키도 등장했다. ‘고래표 위스키’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이 위스키를 마시고 죽는 일까지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1950년대 한국에 주둔했던 미군 부대의 배급품 중에는 일본 산토리가 만든 ‘토리스 위스키(トリスウイスキー)’도 들어있었다. 위스키 원액에 주정(酒精)과 색소를 첨가해 만든 저가(低價) 위스키다. 일본에선 지금도 생산하고 있는데, 주로 저렴한 칵테일을 만들 때 사용한다. 제품명은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 산토리 창업주 토리이 신지로(鳥井信治郎)가 만든 위스키라는 뜻이다. 이게 자연스럽게 한국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1956년 부산 토성동의 국제양조장이 토리스 위스키와 비슷한 ‘도리스 위스키’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이후 높은 인기를 끌었지만, 그 아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1960년 부산의 한 신문사가 “도리스 위스키라는 이름은 왜색 불법 상표 도용”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고, 결국 국제양조장 사장이 구속되며 판매가 중단됐다. 그러나 곧바로 위스키 이름을 ‘도라지(Torage)’로 바꾸고 다시 판매했다. 공교롭게도 인기는 더욱 올랐고, 당시 재무부 장관상까지 받았다.

재밌는 건, 일본 위스키의 유사품인 도라지 위스키를 배낀 제품도 잇따라 출시됐다. 서울에만 영등포 천양주조의 ‘백양 위스키’, 왕십리 쌍무주조의 ‘쌍마 위스키’, 성수동 신우실업의 ‘오스카 위스키’ 등 우후죽순 들어섰다. 그러는 가운데 국제양조장은 경기도 안양의 태진물산과 합병하며 공장을 부산에서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으로 옮겼다. 태진물산은 경기도 안양에서 포도원을 운영하며 와인도 생산하는 회사였다. 1973년에는 회사 이름을 아예 도라지양조주식회사로 바꿨다. 이후 1976년 보해양조에 면허를 매각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백화양조의 위스키 ‘베리나인 골드 킹’ 광고. 100% 스카치위스키로 소개하고 있다. 사진=문화경제 DB

‘베리나인’ ‘길벗’ ‘패스포트’…화려했던 1970~80년대

1970년대 들어선 그나마 위스키에 가까운 제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1971년 청양산업은 위스키 원액 10~20%에 주정을 섞어 만든 ‘그렌알바’를 내놓았다. 엄밀히 말하면 주종(酒種)은 기타재제주다.

이어 백화양조가 ‘죠지드레이크’, 진로가 ‘JR’을 출시했다. 하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당시 〈주세법〉에 따르면 위스키 원액을 20% 넣어야 했지만, 이 두 제품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고가(高價)의 세금을 피하려 수를 쓴 건데, 결국 생산중단에까지 이르렀다.

이후 정부는 위스키 원액을 20%에서 25%로 높였다. 그때 나온 위스키가 백화주조의 ‘베리나인’, 진로의 ‘길벗’, 해태주조의 ‘드슈’다. 이 제품들은 시장에서 즉각 반응을 보였다. 생각보다 높은 인기를 얻자 정부는 다시 위스키 원액을 30%까지 끌어올렸다. 그런 만큼 각 회사는 기존 위스키를 업그레이드해 각각 ‘베리나인 골드’와 ‘길벗 로얄’로 선보였고, OB씨그램은 ‘블랙스톤’을 출시했다. 이 3강 체제는 꽤 오래갔다.

정부는 욕심을 더 냈다. 곧바로 국산 위스키 개발 계획을 수립했다. 몰트위스키 원액 제조시설을 1983년까지 세우고, 그레인위스키 원액을 국내산 곡물로 만드는 방법을 1984년까지 개발토록 했다. 1983년 11월 백화양조는 전북 군산, 진로는 경기도 이천에 원액 생산공장을 짓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위스키 원액 100% 시대도 열렸다. 그리고 한 차례 더 업그레이드됐다. 베리나인 골드는 ‘베리나인 골드 킹’으로 바뀌었고, 진로는 아예 이름을 ‘VIP’로 달고 나왔다. OB씨그램은 ‘패스포트’를 출시하며 최강자로 우뚝 섰다. 여담이지만 훗날 백화양조는 OB씨그램에 인수됐다.

1984년에는 국산 위스키 원액으로 만든 제품이 출시됐다. 진로는 ‘다크호스’, OB씨그램은 ‘디프로매트’를 냈는데, 너무도 비싼 가격 때문에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고 조용히 물러났다.

당시의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광고를 보면 어느 정도 시대상이 읽힌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밌다. 백화양조는 ‘죠지드레이크’에서 ‘베리나인’으로 바꾸며 “이제 베리나인은 세계 9大 위스키에 드는 것이 목표입니다”라는 문구를 달아 광고했다. 해태주조는 ‘드슈’의 판매 개시를 알리는 광고에서 세계 일류 위스키와 비교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진로는 마스터 블렌더까지 소환했다. “스코틀랜드에서 31년간 스카치위스키를 블렌딩해 온 사람 맥클레멘트 씨, 그는 말합니다. VIP는 키스처럼 부드럽다.” OB씨그램은 ‘패스포트’를 광고하며 “세계 114개국에서 즐기는”이라는 문구로 품질의 자신감을 나타냈다.

1991년 국산 위스키 원액 생산은 없던 일이 돼버렸다. 그즈음 수입주류 개방도 이뤄졌다. 그러면서 외국산 위스키가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1994년 진로위스키는 프리미엄급 12년 ‘임페리얼 클래식’을 등장시켰다. 이후 OB씨그램에서 바뀐 두산씨그램이 2000년대를 열며 ‘윈저 17년’을 출시했다. 이후 옥신각신하며 두 제품은 시장을 장악해나갔다. 그러는 중 진로는 페르노리카에, 두산씨그램은 디아지오에 합병됐다.

유흥업소에서의 판매 호조에 힘입어 ‘임페리얼’과 ‘윈저’는 더욱 날개를 달았다. 해외 공급사들은 그들에겐 있지도 않은 500㎖ 용량까지 새로 만들었다.

쓰리소사이어티스증류소는 한국판 싱글몰트위스키 ‘기원’ 시리즈를 지금까지 세 차례(호랑이·유니콘·독수리) 출시했다. 사진=GS리테일

한국판 싱글몰트위스키 기지개… 역사는 다시 시작된다

이젠 우리나라도 싱글몰트위스키를 만든다. 젊은 양조인들이 힘을 내고 있다. 국내 위스키 마니아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고 있는 김창수위스키증류소와 쓰리소사이어티스가 그 중심에 있다. 애호가들은 김창수위스키를 ‘창스키’, 쓰리소사이어티스를 ‘삼사회’로 부른다.

쓰리소사이어티스는 경기도 남양주 증류소를 수호하는 호랑이·유니콘·독수리 셋을 이미지화한 ‘기원’ 시리즈를 선보였다. 2021년 9월 첫 위스키로 호랑이 에디션을 출시한 데 이어 올해 4월 유니콘 에디션, 9월 독수리 에디션을 차례로 내놓았다.

김창수위스키는 지난해 4월 ‘1호 캐스크’를 출시하며 이 땅에 김창수라는 이름을 알렸다. 이어 9월에는 ‘2호 캐스크’, 올해 2월에는 ‘3호 캐스크’를 선보였다. 특히, 3호 출시일이었던 2월 10일 서울 역삼동 GS25 DX랩점에는 이틀 전부터 진을 치고 기다리는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증류소는 경기도 김포에 자리하고 있다.

화요가 2013년 선보인 ‘엑스트라 프리미엄(X.Premium)’은 한국 최초로 EU(유럽연합)의 공인을 받은 ‘위스키’다. 국내에선 증류식소주로 분류된다. ‘화요 41’ 원액을 아메리칸 버진 오크통에 담아 오랜 시간 숙성시켰다. 2020년에는 유럽 시장에서 위스키라는 이름으로 수출하도록 허용해, 그해 9월부터 유럽 판매를 시작했다. 현지에선 ‘순수 한국산 싱글 라이스 위스키’로 소개한다. 현재 미국·캐나다·프랑스 등 전 세계 24개국에 이 제품을 보내고 있다.

문세희 화요 대표는 “위스키의 정의는 나라마다 다른데, 일단 유럽에선 영국을 제외하고 엑스트라 프리미엄을 위스키로 분류한다”며 “이 제품의 유럽 진출은 위스키 본고장에 한국산 위스키를 수출한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원액을 수입해 병입하는 게 아니라 원재료부터 원액까지 순수 한국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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