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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앞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는 인물들이 이면에 품은 사연은

더페이지갤러리, 독일 작가 안드레 부처 국내 첫 개인전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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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61호 김금영⁄ 2023.11.27 10:40:32

안드레 부처의 작품 속 인물들의 시선이 모두 바깥을 향해 있는 것이 발견된다. 사진=김금영 기자

마치 만화 캐릭터처럼 보이는 인물들이 눈에 띈다. 이들은 하나같이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자신들을 바라보는 관람객과 절대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이들의 눈동자는 어디를 향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캐릭터들은 독일 작가 안드레 부처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는 일찌감치 세계적 아트페어 프리즈, 키아프 등을 통해 미술계에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켜 왔다. 그리고 이번엔 개인전을 통해 관람객들과 만난다.

더페이지갤러리가 안드레 부처의 개인전을 12월 30일까지 연다. 이번 개인전은 2020년 상하이 유즈 미술관 이후 아시아에서는 3년 만이며,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개인전이다. 더페이지갤러리 이스트관에 마련된 이번 전시는 신작 15점으로 구성됐다.

안드레 부처가 만든 대표적 캐릭터 중 하나인 '방랑자(Wanderer)'. 사진=김금영 기자

전체적으로 알록달록한 색감과 밝은 캐릭터의 표정이 눈길을 끌지만, 그 이면은 밝지만은 않다. 바로 작가가 태어나고 자란 독일의 어두운 과거사가 스며들어 있는 것. 이건 그의 작품의 대표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공존하기 어려울 법한 양극단의 조화가 자연스럽게 화면에서 이뤄진다.

예컨대 그가 만든 대표적 캐릭터 중 하나인 ‘방랑자(Wanderer)’는 해골을 닮은 형태가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듯 귀엽게 보이지만, 독일 나치의 ‘SS친위대’ 로고에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대표작 ‘절규하는 사람’ 이미지를 섞은 결과물이다. 독일의 무거운 역사를 신랄하게 풀어내기보다는 알록달록한 캐릭터로 그려내며 아름다움과 추악함이 공존하도록 화면을 구성했다.

머리와 눈 모두 과장되게 큰 캐릭터는 스스로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소리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작가는 “방랑자는 어느 곳에도 안착하지 못하면서도 여전히 꿈을 좇는 인류 또는 또 다른 나를 대변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체적으로 알록달록한 색감이 눈에 띈다. 사진=김금영 기자

또 다른 화면에서도 대립의 공존이 보인다. 앞선 방랑자가 다소 속내를 읽기 힘든 모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면 동그란 형태의 ‘프리덴-지멘스(Friedens-Simens)’는 입꼬리가 쓱 올라가 있다. 그런데 이름이 심상치 않다. 독일에서 냉전 이후 산업화를 이끌었지만, 강제노동 등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대기업 이름인 지멘스와, 평화를 뜻하는 단어 프리덴이 붙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양극단을 접한 작가의 태도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바로 균형이다.

작가는 “양극단을 작품에 도입하는 이유는 부정적인 것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균형을 맞추고, 진정한 탈피를 하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를 뭉개지 않고 제대로 기억하면서 고통을 포용하고 화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품 속 여인 캐릭터들은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더페이지갤러리 측은 “작가는 1990년대부터 독일의 표현주의와 미국 대중문화의 융합을 통해 삶과 죽음, 산업화와 대량소비 등 20세기의 예술, 정치 및 사회적 극단의 초월을 시도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회화 언어를 구축해 왔다”며 “방랑자와 프리덴-지멘스 모두 미국의 대중문화 그리고 독일의 전후 역사와 전통을 동시에 목격하며 성장한 작가의 융합된 세계에서 탄생했으며 서로 모여 총체적 균형 상태를 구현한다”고 설명했다.


양극단을 한 화면에 구성하며 찾는 ‘균형’

안드레 부처의 작품이 설치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여인’ 캐릭터들도 눈에 띈다. 이들 또한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제각각 화면 바깥을 쳐다보고 있다. 현실에서 도피하려고 눈을 돌리는 것일까? 작가에 따르면 이들이 바라보는 건 과거와 미래다. 실제로는 함께 있을 수 없는 양극단에 선 ‘과거’와 ‘미래’는, 함께 이 세계를 경험하며 살아온 목격자로서 ‘현재’에 서 있는 관람객이 작품을 바라보는 순간 한 공간에 공존하게 된다.

과거를 바라보는 시선은 과거를 후회할 수도, 자랑스러워할 수도,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은 절망으로 가득 차기도, 희망으로 가득 차기도 할 것이다. 작가는 이를 대립시키지 않고 각각이 바라는 유토피아로 향하게끔 유도한다. 작가가 만든 가상의 유토피아는 ‘나사하임(NASAHEIM)’으로, 미국 항공 우주국(NASA)과 디즈니 월드가 위치한 캘리포니아의 도시 애너하임(Anaheim)의 이름을 합성한 것이다.

안드레 부처가 전시장을 찾았다. 사진=김금영 기자

여기로 가기 위해서 또한 앞선 작품들과 같이 양극단을 동시에 경험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작가는 “유토피아는 숨겨진 이세계와도 같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 번에 유토피아로 점프해 갈 수는 없다”고 짚었다. 더페이지갤러리 측은 “나사하임은 우주보다도 멀리 있는 동시에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며 모든 극단, 갈망, 기쁨, 그리고 역사의 공포들이 평등함에 도달해 균형을 이루는 이상적 영역”이라며 “또한 작가의 작업세계를 이해하는 데 주요한 요소가 된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에서 또 눈에 띄는 게 색감이다. 빨강, 파랑, 노랑 등 순수한 원색을 풍부하게 사용하면서 중간에 살색을 드러내며 인간의 존재성을 부각했다. 마치 앙리 마티스의 작품처럼 다양한 빛과 강렬한 색으로 가득 찬 작품들은 조화를 이루며 작가의 색, 빛, 비율, 회화적 표현의 잠재력에 대한 탐구를 드러낸다. 작가는 “이번 전시 작품들 모두 앙리 마티스를 기리기 위한 것”이라며 “과거의 앙리 마티스가 해 온 일들을 현재의 우리가 반복하고 있고, 결국 우리 모두가 앙리 마티스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드레 부처의 개인전이 열리는 전시장 전경. 사진=김금영 기자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자신에게 영감을 준 존재로 앙리 마티스와 월트 디즈니를 꼽기도 했다. 하이아트(순수예술)를 상징하는 앙리 마티스와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월트 디즈니, 즉 양극단의 존재에서 받은 영감이 현재의 독특한 화면을 구성하는 데 이르렀다.

전시 현장에 등장한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다만 오롯이 화면을 마주하길 바랐다. 더페이지갤러리 측은 “작가는 인간의 실존적 의미와 회화의 유효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며, 고유의 회화언어로 자신만의 확고한 작업세계를 구축했다”며 “진정한 세계는 감춰져 있을 때 들여다보게 된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이 작가의 회화 속 숨겨진 진실을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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