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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배종훈 서초교향악단 예술감독 “도산‧심산선생 정신 이어 봉사하는 삶 살겠다”

‘꿈의 무대’ 미국 뉴욕 카네기홀서 한국전쟁 종전 70주년 기념 음악회… 유엔 관계자 등 2500명 앞에서 소프라노 조수미 등과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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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62호 한원석⁄ 2023.12.26 08:17:25

지난 10월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한국전쟁 정전 및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하는 한국전쟁 기념 콘서트에서 서초교향악단이 소프라노 조수미씨와 협연하고 있다. 사진=서초문화재단

서울 서초구 서초문화재단 산하 서초교향악단은 기초지자체 소속이라는 핸디캡에도 지역 내에 예술의 전당이 위치해 있다는 이점 때문에 많은 수준 높은 음악인들이 소속돼 있다.

이를 이끄는 배종훈 서초교향악단 예술감독(60)은 매년 한국전쟁 유엔참전용사 추모 평화음악회를 감독 지휘하고 있다. 동시에 유엔 참전 22개국을 찾아가는 순회 연주회를 현재까지 7개국에서 열었다. 앞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국내 최초로 드라이브인 연주회를 열거나 유튜브 등을 통해 클래식 저변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초교향악단은 지난 10월 음악가에게 ‘꿈의 무대’라고 불리는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한국전쟁 종전 70주년을 맞아 유엔 관계자들을 초청한 음악회를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종훈 감독을 만나봤다.

- 뉴욕 카네기홀 공연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 것을 축하한다.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서초교향악단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한다면?

“2016년 서초구 산하 서초문화재단 상주예술단으로 창단됐다. 많은 음악가들이 자유롭고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통한 플랫폼 오케스트라 역할을 위해 열정을 다하고 있고 특히 오케스트라 아카데미의 정신을 담아 최고의 앙상블을 추구하고 있다.”

배종훈 서초교향악단 감독이 국군교향악단을 지휘하고 있는 모습. 사진=서초문화재단

-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 러시아 등에서 음악 활동을 해온 것으로 안다. 이후 2010년 한국에 정착하면서 국방부 소속 국군교향악단 초대 감독도 맡았는데 어떠한 계기 때문인가?

“강남 심포니와 예술의 전당에서 초청 객원지휘를 하게 됐는데 아는 지인들과 관계자들이 이 공연을 본 뒤 국군교향악단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 국방부에서 창군이래 최초로 오케스트라를 창단하려는 계획이 의논되던 시기였는데 추천된 것이다.

맡기로 하면서 두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첫째로 나라를 위한 순수한 봉사 차원에서 개런티를 전혀 안 받겠다는 것과, 교향악단을 군악대 소속에서 벗어나 독립 편제로 해달라는 것이었다. 군악대와 행사시 현악을 가미하는 국방 오케스트라를 만들겠다는 기존 계획을 바탕으로 명칭을 ‘국군교향악단’으로 하고 6개월 걸쳐 단독 96명의 편제를 법제화했다. 이는 세계 최초의 3군 연합 교향악단이다. 그리고 이듬해 미국 해군 기지가 있는 샌디에고에 정박한 항공모함 미드웨이호 선상에서 최초로 정규 교향악단이 연주하는 기획도 성사시켰다.

1년이 지나 당시 김관진 국방부장관이 연봉을 책정해 주려고 했지만 ‘장병들 데리고 회식할 때나 지원해주십시오’하고 거절했다. 이 악단을 3년간 맡으면서 무보수로 봉사했다. 내가 무보수로 한다는 말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후원자 그룹에서 많이 도와줬다. 2012년 말 물러날 때까지 국군교향악단을 이끄는 동안 60여 차례의 연주회를 열었다.”

- 그동안 매년 유엔참전용사 추모 평화음악회를 감독 지휘하고 있다. 또한 6‧25 참전국 공연을 시작한 이유와 이를 통해 느낀 점이 있다면?

“국군 교향악단을 맡은 뒤, 이름값에 어울리는 국군소속다운 공연이 뭘까를 고민하다가 ‘보훈’이라는 단어와 함께, ‘우리나라를 한국전쟁에서 도와준 참전국에 감사를 표시하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시작하게 됐다.

국군교향악단을 떠난 뒤인 2013년에도 ‘정전 60주년 기념 유엔 참전국 교향악단 평화음악회’를 지휘했다. 참전국 출신 연주자들에게 연락해 참여시켰다. 한국전쟁 유엔 참전국 22개국 찾아가는 순회 연주회를 현재까지 미국에서만 6차례 연 것을 비롯해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등에서도 열었다.

어떠한 일을 맡았으면 자그마한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다. 이제는 이 일(추모 평화음악회)이 내 삶의 미션이 됐고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나라를 위해서 뭔가 보람찬 일을 할 수 있는 것 그 자체가 감사하다. 그동안 주로 음악회를 서울과 부산에서 개최했는데 이 음악회의 최종 결정판으로 준비한 것이 바로 미국 카네기홀 공연이다.”

지난 10월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한국전쟁 기념 콘서트에서 배종훈 감독과 서초교향악단이 공연하는 모습. 이날 2500석 규모의 카네기홀이 만석이 됐다. 사진=서초문화재단

- 뉴욕 카네기홀 공연을 준비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어떤 취지에서 시작하게 된 행사인가?

“올해가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이자 한미동맹 70주년이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이번에는 유엔본부가 있는 맨하탄에서 유엔 참전국 사람들을 모셔서 한 번 하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번에 알았는데 마침 서초구와 뉴욕 맨하탄구가 자매결연을 한 상태이기도 하다.

이왕이면 최고인 카네기홀에서 하려고 지난해 12월에 문의했다. 대관 예약이 2~3년 밀려있는 곳인데 다행히 원하는 날짜인 10월 23일에 대관 받는데 성공했다. 이날로 한 이유는 바로 다음날인 10월 24일이 (유엔이 창설된) ‘유엔의 날’이어서다. 카네기홀 측에서 행사 이유를 보내달라고 해서 ‘한국은 은혜를 잊지 않는다.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에 유엔 참전국 사람을 모시고 행사를 할테니 카네기홀도 동참해달라’고 보냈다. 나중에 들으니 카네기홀 관계자들이 모여서 회의를 열고 대관해주자고 결정했다고 한다.

막상 카네기홀에서 공연한다니까 도와준다던 사람들이 ‘과연 그걸 해낼까’라는 우려 때문에 발을 뺐다. 다행히 국가보훈부와 당시 박민식 장관이 8000만 원을 지원해줘서 예약을 확정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게 생각한다.”

- 뉴욕 카네기홀 공연의 자세한 사항을 말해 달라.

“이번에 (공연을 위해) 14년 만에 카네기홀에 갔다. 처음에 유엔에서 북한만 빼놓고 러시아‧중국도 초청하려고 했다. 왜냐면 유엔에서만큼은 서로 대화하고 지내야되고,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한때 싸웠어도 (이들을) 초청해야 전쟁이 좀 더 방지될 것 아니냐고 생각해서다. (두 나라가) 유엔 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기도 하다. 다행히 이러한 의견에 황준국 주유엔 대표부 대사와 참사관들이 호응해준 데다, 1000명 넘게 초청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정부에서 나를 신뢰해서 백업을 해준 것도 고맙게 생각한다.

우리 악단이 평상시 멤버가 30명이다. 플랫폼 오케스트라여서 핵심 멤버만 있으면 연주를 할 수 있다.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모든 면에서 부족함을 느꼈다. ‘내가 이런 일을 하는 게 과연 맞는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하나하나씩 마무리하며 끝내 카네기홀 2500석이 꽉 차자 가슴이 벅찼다. 현지 교민 중에서 문화예술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국가 행사를 카네기홀에서 음악적으로 승화시킨데 대해서 굉장히 자부심을 느낀다’면서 감동받았다고 말했을 때 뿌듯했다.

나도 LA사는 교민으로 미국 시민이 된 지 30년이 넘었다. 유학 시절에 ‘너 어느 나라 사람이냐’ 이런 얘기만 듣다가 K팝이나 드라마, 영화나 게임 등 문화 쪽의 힘으로 30년 만에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확 바뀌면서 이번 행사 추진에 힘이 됐다.

행사 마치고 귀국해서 외교부 보훈부 관계자하고 같이 밥 먹었는데, 종전음악회를 정례화하자는 얘기와 너무 감사하다는 소리를 들을 때 훈장 받는 것보다 기분이 좋았다. 뉴욕 교민들도 음악회를 매년 하자면서 내 후원회까지 만들었다. 내후년(2025년)부터 카네기홀 공연을 2년에 한 번씩 정례화할 예정이다. 언젠가 유엔 본부에서 연주회를 열 생각이다.”

지난 10월 23일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배종훈 감독과 소프라노 조수미씨가 관객들에 인사하고 있다. 사진=서초문화재단

- 소프라노 조수미씨와 같이 공연했는데 어땠나.

“조수미 선생과 리허설을 한 번 했다. 수십 번 수백 번 (연주)한 곡들이어서 그런지 굉장히 까다로웠다. 이렇게 해서 (조 선생이) 훌륭한 실력과 명성을 가지게 됐구나, 역시 조수미 선생은 다르구나 하는 존경심이 들었다.”

- 2021년부터 하이든 탄생 300주년을 기념해 하이든 교향곡 전곡(107곡)을 녹음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굉장히 방대한 작업인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2020년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든 공연에 관중이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공연을 안 할 수도 없고 여기서 무너질 수도 없으니 ‘팬데믹을 음악으로 극복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팬데믹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장기화에 대비해 일상적으로 할 수 없는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 연주를 하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이 계획을 서초구청과 서초문화재단에서 받아들였다.

우리 악단은 일반적인 음반 녹음작업이 아니라 라이브 공연을 하고 그 공연을 녹화해 TV 클래식 채널에서 정기적으로 방송을 하고 있다. 지난 200년 동안 6명의 지휘자가 (전곡을 녹음해) 음반을 냈지만 우리처럼 관중이 함께하며 한 단체, 한 오케스트라, 그리고 한 지휘자가 라이브와 방송을 하며 전곡을 하는 것은 세계 최초이다.

저명한 지휘자이자 리코더 연주자인 조반니 안토니니(Giovanni Antonini)가 우리처럼 2032년까지 전곡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그쪽은 오케스트라 2곳이 나눠서 하고 있다. 그만큼 한 단체와 한 오케스트라가 감당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악단은 이미 63번까지 했는데 하이든 교향곡 1‧2‧3‧4번 등의 경우에는 국내에서 연주된 적이 없다. 이제 3년 안에 끝날 예정으로 그야말로 세계최초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하이든 교향곡의 진수를 느끼며 많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고무되고 있다. 대한민국 클래식에 누구도 연주하지 않았던 수많은 하이든 초기 교향곡들을 들려 드리게 된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 우리나라 기초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몇 안되는 교향악단이다. 서초구 소속인 만큼 서리풀 축제 등 서초구 행사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는데 구청 차원의 지원은 어떤가?

“상주 예술단이라는 점으로 인해 일단 안정감이 있다는 점과 자체 연주 홀에서 1년 계획을 준비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다른 시립교향악단처럼 월급제는 아니기에 자유로운 활동을 하지만 연주에 대한 보상은 이뤄지고 있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번 카네기홀 행사에도 서초구청과 서초문화재단에서 각각 3명씩 6명이나 지원와줬다.”

- 오랫동안 서초교향악단과 함께 해오셨는데 그동안의 느낀 점이나 소감이 있다면?

“한음 한음 음의 예술을 함께 논하고 공부하며 리허설이 마치 세미나 강좌처럼 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오케스트라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학구적인 분위기와 신선한 프로그램, 그리고 무대에서는 역동성과 열정이 넘치게 연주해 오고 있다는 점에 음악가로서 보람을 느낀다.”

- 미국에서 한국 일정을 위해 왕복하는 강행군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행히 내년 1월 미국 국방부 소속 문관(약사)인 아내가 평택 미 8군기지(캠프 험프리스)로 이사를 온다. 원래 아내가 용산 미8군 등 한국 근무를 두 차례나 해 내부 규정상 3번 올 수는 없었다.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미군 내부에서) 리더십 있는 사람을 추천 받았는데 관계자의 80%가 아내를 추천해 정당성이 인정돼 다시 아내가 오게 됐다.”

12월 14일 서울 서초구 심산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2023 송년음악회에서 배종훈 감독이 관객들에게 연주할 곡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원석 기자

-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먼저 하이든 교향곡 전곡 영상화를 3년 안에 마무리 짓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카네기홀 공연이 잘 되면서 유엔 참전 및 지원국 모두 63개국에서 공연하는 뜻을 세웠다.

또한 장기 계획으로 심산 김창숙 선생을 주제로 한 뮤지컬을 기획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 악단이 있는 장소가 심산기념문화센터 건물이다. 먼저 부분적인 스토리로 콘서트를 이어가다가 뮤지컬로 이어가기로 했다.

심산 선생 일화 중에 감동받은 것 중 하나가 ‘내가 떳떳하고 나라를 위해서 독립운동을 했는데 굳이 일본 사람한테 구차한 변명을 하면서 변론할 마음이 없다’며 변호사를 거부한 일화다(편집자 주- 김창숙 선생은 1927년 5월 임시정부가 있던 중국 상하이에서 일본인 밀정에 의해 체포돼 국내로 압송된 뒤 재판에서 14년형을 선고받고 대전 형무소에서 복역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일화를 들었는데 리버사이드 교민들에게 옷도 깨끗이 입고 청소도 깨끗이 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야 한국의 이미지가 좋아져 독립에 도움이 된다는 취지로 이해했다.

독립운동하다 이름도 없이 돌아가신 분들이 많다. 그런 분들과 비교하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이바지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심산 선생이나 미국에서 독립운동했던 도산 안창호 선생처럼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

<문화경제 한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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