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2호 김응구⁄ 2023.12.26 10:17:11
올겨울, 올 몰트 맥주 전쟁이 시작됐다. 지난 11월 중순 롯데칠성음료가 ‘크러시(KRUSH)’를 출시하면서 하이트맥주 ‘켈리(Kelly)’와의 한판 승부를 예고했다.
‘all malt’라는 단어 그대로 올 몰트 맥주는 100% 보리 맥주라는 뜻이다. 맥주의 3대 원료인 맥아(麥芽·malt), 홉(hop), 물 이외에 그 어떤 첨가물도 사용하지 않는다. 보통 일반 맥주를 발효시킬 땐 부원료로 전분, 쌀, 옥수수, 오렌지 등의 재료를 섞어 다양한 맛을 내는 데 반해 올 몰트 맥주는 순수 맥아만 사용한다.
1516년 4월 23일 독일 바이에른 공국 빌헬름 4세(Wilhelm IV)가 맥주 원료를 보리, 홉, 물만으로 제한한 법령인 ‘맥주순수령(Reinheitsgebot)’을 반포했는데, 이에 충실한 맥주가 바로 올 몰트다.
내년에도 국내 맥주회사들은 1%의 시장점유율을 위해 치열하게 다투겠지만, 여기에 올 몰트 경쟁까지 더해지며 그 어느 때보다 ‘맛있는 전쟁’이 더욱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시 불 지핀 롯데칠성음료, 올 몰트 맥주 ‘크러시’ 출시
롯데칠성음료는 지난 11월 중순 국내 주류시장에 맥주 신제품 ‘크러시(KRUSH)’를 선보였다.
몰트 100%를 사용한 올 몰트 맥주다. 회사 측은 분리 추출한 유러피언 홉에 ‘홉 버스팅(hop busting)’ 기법을 적용해 시원함과 청량함을 더욱 살렸다고 설명했다. 홉 버스팅은 일반적인 맥주 양조법과 달리 홉의 투입 시점을 늦춘다. 이 경우 홉에 의한 아로마가 가볍고 청량한 특징이 있다.
롯데칠성음료가 2014년 4월 출시한 ‘클라우드(Kloud)’ 역시 100% 올 몰트 라거 맥주다. 첫 출시 당시 100% 맥즙(麥汁) 발효 원액에 물을 타지 않은 ‘오리지널 그래비티 공법’을 적용했다고 홍보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지금까지 마니아층이 탄탄히 형성돼 있는 맥주다.
2021년에는 출시 7주년을 맞아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올 몰트 맥주라는 클라우드의 정체성과 오리지널 그래비티 공법을 강조하고자 ‘오리지널’ 문구를 전면에 배치하고, 맥주의 주원료인 보리를 상징하는 패턴으로 패키지 디자인을 완성했다.
‘크러시’를 좀 더 얘기하자면, 브랜드명은 ‘반하다’·‘부수다’는 뜻의 영어 단어 ‘Crush’에 ‘클라우드’의 알파벳 ‘K’를 더해 만들었다. ‘낡은 관습을 부수고, 새로움으로 매혹한다’라는 뜻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이 맥주는 우리가 흔히 마시는 페일 라거(pale lager) 계열이다. 홉의 쓴맛과 맥아의 단맛을 줄인 대중적인 맥주인데,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국내외 맥주 대부분이 페일 라거 계열에 속한다. 알코올도수는 4.5도. 500㎖ 병 제품과 20ℓ 용량의 생맥주 케그(keg) 두 가지 형태이며, 현재 음식점·주점 등에서 한창 판매 중이다.
롯데칠성음료는 올 몰트 맥주를 출시하면서 타깃을 젊은 층으로 맞췄다. “최근 들어 개인의 취향과 표현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를 위해 좀 더 차별화한 맥주가 필요했다”는 게 크러시의 출시 배경이다.
그런 만큼 디자인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기존 국내 맥주에선 볼 수 없었던 숄더리스(shoulder-less) 병 디자인을 도입하고 패키지 겉면은 빙산(氷山)을 모티브로 해 젊은 층의 시선을 확 잡아끌도록 했다. 또 병 색깔은 투명하게 해 시각적인 청량감을 극대화했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차별화된 소비가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 된 때에 기존 국산 맥주의 틀을 깬 ‘크러시’가 젊은 세대의 새로운 자기표현 수단으로 자리 잡기 바란다”면서 “새롭게 선보이는 ‘크러시’를 알리기 위해 젊은 세대가 반할만한 적극적인 마케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롯데칠성음료가 젊은 층에 진심으로 다가가기 위한 노력은 광고 모델 선정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회사는 출시 며칠 후인 11월 21일 ‘크러시’의 모델로 4세대 아이돌 ‘에스파(aespa)’의 리더 카리나를 발탁했다고 알렸다.
롯데칠성음료는 지금 젊은 감각의 올 몰트 맥주 ‘크러시’로 2024년을 맞이하고 있다.
깊은 올 몰트 역사의 하이트진로, ‘켈리’가 바통 이어받아
하이트진로의 올 몰트 맥주는 사실 ‘맥스(Max)’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2006년 대한민국 최초 올 몰트 맥주로 선보인 이후 올해까지 17년간 누적 판매량 51억 병을 달성했을 만큼 메가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특히 독일, 영국, 체코, 뉴질랜드 등에서 가져온 홉으로 그간 13번의 스페셜 홉 버전을 내놓으며 소비자 욕구를 충족시켜왔다. 그 시간 동안 마니아도 꾸준히 늘었다. “다른 맥주들은 한두 개씩 섞어서 사는데 ‘맥스’는 박스 단위로 구매한다”는 소비자도 적지 않았다.
그런 맥스가 지난 6월 ‘헌정 영상’을 공식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공개하며 17년 여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대형마트·편의점 등에서 판매하는 가정 채널용 캔·페트 제품은 5월 생산품을 마지막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주점 등의 유흥 채널용 생맥주는 올해 연말까지만 판매한다.
하이트진로의 이 같은 결정은 지난 4월 출시한 ‘켈리’에 더 힘을 실어주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맥스’와 ‘켈리’ 모두 올 몰트 맥주여서 타깃 소비자층이 겹친다. 새로운 소비자를 끌어들이려면 신제품에 더 주력해야 한다는 판단이 섰을 것으로 보인다.
켈리는 2019년 3월 ‘테라’ 출시 후 4년 만의 신제품이다. 브랜드 이름을 분석해보면 올 몰트 맥주임이 더욱 확실해진다. 켈리는 ‘킵 내추얼리(keep natually)’를 줄인 조어(造語)다. ‘인위적인 것을 최소화하고 자연적인 원료·공법·맛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김인규 하이트진로 대표는 켈리 출시를 앞두고 “테라가 출시 초기부터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국내 주류업계 판도를 뒤집었지만, 코로나와 세계적인 경기불황 같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맥주 시장 1위 탈환 노력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며 “시장과 소비자는 항상 변화하고 혁신을 강하게 요구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테라로 다져진 안정적인 위치 대신 과감하고 새롭게 도전하면서 변화를 이끌어가는 쉽지 않은 길을 택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켈리 앞에는 ‘라거의 반전’이란 슬로건이 붙는다. 기존 라거와는 완전히 다른 원료와 공법을 적용했다는 의미다. 이 ‘완전히 다른 원료’라는 건 올 몰트에 반(反)하는 원료라는 말이 아니다. 켈리만의 맥아를 찾고자 전 세계를 뒤진 끝에 손에 얻은 덴마크 프리미엄 맥아를 뜻한다. 덴마크 맥아는 1년 내내 북대서양 유틀란드(Jütland) 반도의 해풍을 맞으며 자란다. 여기에 일반 맥아보다 24시간 더 발아(發芽)시켜 그 부드러움을 배가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숙성 과정도 두 번을 거쳤다. 7℃에서 1차로 숙성한 다음 –1.5℃에서 한 번 더 숙성시켜 강렬한 탄산감을 더했다. 알코올도수는 4.5도.
패키지도 차별화했다. 국내 맥주 최초로 앰버(amber) 컬러를 적용했다. 병 디자인 역시 제품 속성인 부드러움을 나타내고자 어깨 곡선을 한껏 강조했으며, 병 밑으로 내려갈수록 좁아지는 직선으로 강렬한 탄산감을 표현했다.
광고 모델로는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 손석구를 내세웠다. 발탁 당시 하이트진로 측은 ‘반전 라거’ 콘셉트의 극대화를 기대하며 손석구를 모델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국내 맥주 소비자의 입맛이 꽤 까다로워졌다. 그만큼 눈높이도 높아졌다. 못 마셔본 맥주가 점점 늘어나고, 맥주 정보는 넘칠 대로 넘쳐난다. 그러니 당연한 현상이다. 올 몰트에 대한 수요도 그 같은 이유로 꾸준히 늘고 있다.
앞서 말한 대로 내년 국내 맥주 시장은 무척 흥미로울 전망이다. 하이트진로의 ‘테라’와 ‘켈리’, 롯데칠성음료의 ‘클라우드’와 ‘크러시’, 그리고 오비맥주의 ‘카스’와 ‘한맥’이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시장점유율 시각으로 보면 국내 맥주 시장은 하이트진로의 ‘쌍두마차’가 오비맥주를 얼마큼 뒤쫓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허나, 시각을 조금 바꿔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의 올 몰트가 오비의 아성을 얼마큼 무너뜨릴지, 여섯 개의 맥주를 번갈아 마시며 지켜보는 것도 충분한 흥밋거리가 될 수 있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