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3호 김응구⁄ 2024.01.10 12:00:16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2022년 6월 열린 반 클라이번(Van Cliburn)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당시 마린 알솝(Marin Alsop) 지휘자는 임윤찬의 마지막 타건(打鍵) 후 모든 것이 정지했을 때 아주 잠깐 눈물을 훔쳤다. 그걸 본 대중도 벅찬 감동에 연신 손을 눈가에 가져다 댔다. ‘스타 탄생’의 순간이다.
그로부터 꼭 한 달 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선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의 91회 정기연주회가 열렸다. 열일곱 임윤찬은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위해 그 자리에 섰다. 그때는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2019) 최연소 우승자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욕심이 났다.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는 얼마나 대단한 곳인가, 찾아가 보고 싶었다. 아트홀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찾아갔다. 단원을 모두 불러모을 순 없으니 이를 대표해 이탐구 부지휘자와 정승원 단무장(행정경영 총괄)을 함께 만났다.
협연 후 한 달 만에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 이게 보통의 인연인가? 당연히 임윤찬 얘기부터 꺼냈다.
- 반 클라이번 콩쿠르 한 달 전에 임윤찬과 협연을 했어요. 대단한 인연입니다.
이탐구 부지휘자 “이런 말씀 외람되지만, 저희가 키웠다고 생각합니다(웃음). 그 콩쿠르 대회에서 연주한 곡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었거든요. 한 달 전 저희와 협연한 곡도 바로 그거였어요. 그때도 연주를 어마어마하게 잘했죠. 한 달 뒤 콩쿠르에 나간다고 하길래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줬어요. 그리곤 기적을 이뤄냈죠. 저희 역시 말도 못 할 정도로 기뻤어요.”
- 실제로 봤을 땐 어떤 인상이었나요.
이탐구 부지휘자 “저희가 그때 오전 10시에 리허설을 시작한다 했는데 시간이 9시 56분인데도 안 오는 거예요. 마음이 급해서 어디냐고 전화했죠. 그때는 어머니가 매니저 역할을 했어요. 그랬더니 지하주차장에서 아직 자고 있다는 거예요. 빨리 깨워서 올라가겠다고 하곤 바로 왔어요. 자다 깼으니 머리도 부스스하고 그렇잖아요. 사춘기 소년티도 그대로고요. 그러고선 바로 피아노를 치는데 완전히 달라져 있더라고요. 그 잠깐 사이에. 성난 적토마 같았어요. 오로지 음악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봤거든요. 차분하다, 겸손하다, 뭐 이런 느낌을 받기도 전에 딱 음악에만 집중하는 그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어요.”
- 루틴 같은 건 없었나요? 연습이든 실전이든, 시작하기 전에 본인만의 제스처라든지.
이탐구 부지휘자 “피아노를 만져보거나 따로 살짝 연습해보거나 하는 건 전혀 없었어요. 그냥 앉자마자 바로 연주하더라고요.”
-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의 태생에 대해 잠깐 얘기하죠. 처음 창단된 게 1997년이에요. 지금의 기초지방자치단체, 그러니까 자치구가 재정립돼 본격 시작한 게 1995년이거든요. 그러고 2년 후에 만들어진 겁니다.
정승원 단무장 “강남구 민선 1기 구청장이 지난해 작고한 권문용 구청장이에요. 그분이 서현석 초대 지휘자와 인연이 있었어요. 트럼펫을 전공한 서현석 지휘자는 윈드 앙상블(wind ensemble)을 조직해 공연을 한두 번 했었다고 해요. 하지만 권문용 구청장은 윈드 앙상블보다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싶어 했답니다. 그런 끝에 1997년에 창단했어요.”
- 이후에는 비교적 순탄하게 성장한 건가요?
정승원 단무장 “그렇게 창단했지만 1997년에서 1999년까지는 체계가 잘 잡혀있진 않았어요. 단원들 4대 보험이라든지 급여가 책정되지 않은 상태였죠. 그러다 2000년 1월 강남구의회에서 강남구립교향악단 설치와 관련한 조례가 통과되면서 그때부터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게 됐어요. 한마디로 관리가 잘 되는 오케스트라로 거듭난 거죠. 그렇게 운영하다 2009년 6월 강남문화재단이 설립되면서 오케스트라는 재단으로 흡수됐어요. 현재 강남문화재단 소속 예술단으로 활동 중입니다.”
- 심포니오케스트라, 그러니까 교향악단(交響樂團)이에요. 그럼 당연히 단장(團長)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는 공석인 걸로 알고 있어요.
정승원 단무장 “예전 강남구청 소속이었을 땐 구청 행정관리국장이 단장을 맡았었어요. 대부분 그래요. 시립교향악단들도 보통 부시장이 단장을 맡곤 해요. 우리 같은 경우는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가 단장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공석인 거죠. 그래서 이탐구 부지휘자님이 예술감독 대행을 하고 있고요.”
- 단원은 총 몇 명으로 구성돼 있나요?
정승원 단무장 “정원은 74명이고요, 현재 인원은 72명이에요. 물론 74명 모두 강남문화재단 소속이에요.”
- 간혹 퇴단하는 단원도 있죠? 그럼 오디션을 통해 새로 뽑나요?
정승원 단무장 “그렇죠. 공개 오디션을 해요. 한 명, 한 명 이력들이 상당합니다. 그런 분들이 지원하니 경쟁률도 엄청 치열해요.”
- 창단된 지 30년 가까이 돼가는데 그런 만큼 관객들 수준도 예전과 많이 달라진 걸 느낄 듯해요. 맞나요?
정승원 단무장 “관객 수가 엄청 많거나 하진 않지만, 해마다 관객 수준이 점점 올라가는 건 잘 느껴져요. 소수이긴 해도 마니아층도 있고요.”
이탐구 부지휘자 “어떻게 보면 단점이자 장점일 수 있는데, 우리 공연에는 주로 왔던 관람객이 또 찾는 경우가 많아요. 근데 그분들 수준은 굉장히 깊어져요. 처음에는 모차르트, 베토벤, 이렇게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모르는 작곡가나 연주가가 없는, 아주 전문가 마니아층이 생겨요. 강남문화재단 홈페이지에 남기는 후기들을 보면 어떤 건 굉장히 매서워요.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오래 관람한 것에 대한 자부심도 만만찮죠.”
- 요새 여기저기서 컬래버레이션이 한창이죠. 다른 분야와 컬래버하는 예도 있을까요?
정승원 단무장 “재작년에 발레와 컬래버한 사례가 있어요. 저희가 발레 음악을 연주하면 무대에선 잠깐잠깐 발레 공연을 했어요. 오페라도 마찬가지였고요. 연극단과 즐겼던 공연도 생각나네요. 아이들을 위한 자리도 만들었어요. 샌드아트(sand art)를 커다란 화면에 띄우면 거기에 맞춰 연주하는 식이죠. 반응이 참 좋았어요.”
- 아이들을 위한 자리는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정승원 단무장 “찾아가는 공연도 많이 해요. 저희가 강남구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단체잖아요.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런 공연은 국공립 예술단체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관내 초·중·고등학교에 찾아가서 연주하는 ‘스쿨 클래식’이 좋은 예죠. 지휘자가 쉽게 해설하면서 학생들 눈높이에 맞는 공연을 해요. 어린이집에도 갑니다. 사실 미취학 아동들은 이런 음악을 접할 기회가 잘 없잖아요. 그런 아이들에게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공연인 거죠. 이것도 1년에 한 20회 정도는 해요.”
- 꽤 많이 하네요. 근데 어린이집 같은 경우는 시설 규모가 크지 않아 단원이 모두 들어갈 수 없잖아요.
정승원 단무장 “물론 다 갈 순 없죠. 적은 수여도 될 수 있으면 다양한 악기군을 꾸려서 가요. 지휘자는 그에 맞춰 프로그램을 짜고요. 이런 오케스트라를 ‘챔버(Chamber) 오케스트라’라고 해요. 저희가 그 공연을 위해 조직했어요. 아이들이 정말 좋아합니다.”
- 거기서 꿈을 키우는 애들이 분명히 있을 거고, 그렇게 성장하면서 제2의 임윤찬, 조성진도 나오는 걸 테죠.
이탐구 부지휘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요 메들리 같은 것도 편곡해서 연주하면 다 같이 일어나서 ‘떼창’을 해요. 저 뒤에선 춤도 추고 지휘자를 따라 하기도 하고요(웃음).”
- 이제 한 해의 시작인데, 1년 동안 정기적으로 연주하는 프로그램은 무엇 무엇이 있나요.
이탐구 부지휘자 “우선 정기연주회가 1년에 6번 열려요. 2개월에 한 번씩이죠. 그다음에 ‘클래식 품격 콘서트’가 있어요. 매월 첫째 주 목요일에 하는데, 1월에는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1년에 11번 열리는 거죠. 아까 말씀드린 찾아가는 음악회는 시즌별로 신청받은 후 선정한 곳에 다녀와요. 그밖에 외부 초청 연주도 있어요. 이 부분이 좀 많은 편이에요. 서울 예술의전당이나 성남아트센터, 고양 아람누리 등의 기획공연을 자주 해요. 보통 이런 곳들은 오케스트라를 소유하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오케스트라 공연을 하고 싶으면 저희 같은 단체를 섭외해서 하죠. 저희가 강남에 있는 데다 기량이 뛰어나다고 소문나 많이 선호하는 편이에요.”
정승원 단무장 “올해는 신세계그룹이 서울 장충동에 개관한 ‘트리니티홀’에서의 공연도 예정돼 있어요.”
- 이번엔 제 개인적인 궁금증을 던져볼게요. 클래식을 어떻게 접근하는 게 좋을까요. 취향에 맞는 걸 골라 듣는데 ‘막귀’라 그런지 이해가 쉽지 않아요. 특히 공연장을 찾을 때 유념해야 할 게 있을까요?
이탐구 부지휘자 “제가 추천하는 방법이 좀 빤할 순 있는데, ‘프로그램 노트’라고 있거든요. 연주회 곡에 대한 해설을 적어놓은 안내지예요. 이걸 미리 읽어보면 도움이 돼요. 그리고 공연장에선 음악을 듣지만, 그 전에 작곡가에 대한 이해가 살짝 필요해요. 저는 어떤 한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의 배경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클래식 음악이라는 건 그 작곡가의 당시 시대 상황, 그때의 어떤 감정 등이 잘 녹여져 있어요. 그냥 역사와 같아요.”
- 비슷한 예가 될지 모르겠는데, 우리가 박물관을 가면 느끼는 시간 여행 같은 건가요?
이탐구 부지휘자 “그럴 수 있어요. 만약 선사시대 유물을 보기 위해 박물관을 찾았다면, 뭐 돌칼도 보고 공룡뼈도 보잖아요. 그러면서 당시의 역사를 이해하는 거죠. 미술관을 가서도 한 작품을 보고 해설을 보면 ‘이런 배경에서 그린 거였구나’, ‘이런 의미가 있는 거였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잖아요. 그런 것들이 굉장히 중요해요. 클래식 음악은 순식간에 들어가는 시간 예술이거든요. 그 순간을 놓치면 그냥 빠져나가는 예술이에요. 그러니까 영원히 남아 있지 않는 거죠. 그 당시의 음악을, 그 음악가를 연주하는 거니까 사실 예습이 좀 필요한 음악입니다.”
- 클래식이 시간 예술이라는 말에는 공감이 갑니다.
이탐구 부지휘자 “낭만파음악, 현대음악 등 후대로 갈수록 조금 복잡해지는 경향이 없지 않아요.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니까 그런가 싶은데, 좀 단순한 음악부터 들어보는 걸 추천합니다. 고전음악이 좀 단순하거든요. 저희 공연 중에 클래식 품격 콘서트가 있다고 했잖아요. 그건 시대 순서에 맞게 작곡가별로 저희가 기획했어요. 매달 두 명의 작곡가를 매칭해서 무척 상세히 설명하며 연주하죠. 그런 만큼 올해 품격 콘서트는 기대를 많이 하셔도 좋을 듯싶습니다.”
- 한 달에 두 명의 작곡가니까, 1월 빼고 매달 공연하면 관객들은 모두 스물두 명의 작곡가를 만나는 거네요. 적지 않아요.
이탐구 부지휘자 “그 정도만 알아도 클래식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죠. 2월 품격 콘서트에서 다룰 작곡가는 쇼팽(Chopin)과 리스트(Liszt)예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이 둘의 아주 현란한 기교를 직접 확인하는 시간이죠. 그날 쇼팽과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거든요. 두 곡이 어떻게 다른지 집중 분석합니다. 이를 한자리에서 듣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해설도 아주 쉽게 준비했고요.”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의 올 첫 클래식 품격 콘서트는 2월 1일 오전 11시 신사동 광림아트센터에서 열린다. 박연민 피아니스트가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내림마장조 S.124, 피아니스트 최형록이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마단조 Op.11을 각각 연주한다. 해설은 온라인콘텐츠창작자 박종욱이 맡는다.
- 좀 오래됐긴 했지만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는 베토벤과 차이콥스키 음반 제작도 했어요.
정승원 단무장 “맞아요. 차이콥스키와 쇼스타코비치 곡은 1998년에서 2000년 사이에 열린 교향악축제 연주 실황을 녹음한 거예요.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4·5번,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5번 연주 실황이죠. 베토벤은 2002년부터 2006년까지 녹음했어요. 우리나라 교향악단으로는 처음이죠. 9개 교향곡 전 곡을 출반했어요. 브람스도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전 집 앨범을 출반했고요.”
- 차이콥스키와 쇼스타코비치는 실황이라고 하니 그런 줄 알겠는데, 베토벤 전 곡은 어디서 녹음한 건가요?
정승원 단무장 “경기도 분당의 요한성당에서 했어요. 그곳의 음향이 정말 좋거든요. 성당에 양해를 구해서 한 일주일씩 녹음한 게 베토벤과 브람스 교향곡이에요.”
- 그게 가능한가요? 그럼 녹음 장비를 다 들고 간 다음 현장에서 직접 녹음하는 건가요?
정승원 단무장 “성당은 천정이 무척 높죠. 잔향(殘響)도 꽤 좋아요. 그래서 당시 지휘자가 여러 곳을 다니며 물색했는데 그러고 찾은 장소가 바로 요한성당이에요. 지금은 신자들에게 폐가 되기도 해서 많이 자제한다고 들었어요.”
- 기회가 되면 품격 콘서트는 꼭 한 번 보고 싶어요.
이탐구 부지휘자 “언제든지 들러주세요.”
정승원 단무장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라디오에 내 귀를 홀리는 클래식이 흘러나온다. 세상 좋아졌으니 스마트폰 검색엔진 애플리케이션으로 무슨 곡인지 검색한다. 아, 이 노래였구나, 하나 알게 됐다. 궁금하니 작곡가를 알아본다. 그의 다른 곡도 들어본다. 빨려 들어간다. 클래식은, 이 순서가 가장 좋은 접근법일 듯하다.
우연이란 전제가 있으니 쉽지 않은 일이라고 손을 휘휘 젓는다면, 아무 생각 없이 유튜브에 임윤찬을 검색해보길 바란다. 그러곤 맨 위에서 세 번째, 반 클라이번 콩쿠르 대회 43분 22초짜리 영상을 보길 권한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