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5호 한원석⁄ 2024.01.25 17:02:25
경제성장률이 1%에 머무는 ‘저성장 시대’를 맞아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고 있는데, 이러한 시도 중의 하나가 바로 ‘사내 스타트업 육성’이다. 그동안 사내 스타트업은 삼성전자와 같은 IT(정보통신) 기업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실제로 네이버가 삼성SDS의 사내 벤처로 출발한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하지만 최근 기업들은 업종을 불문하고 사내 스타트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보수적으로 여겨졌던 금융권도 예외는 아니다. 1금융권 대표 기업 중 하나인 신한은행은 지난해 12월 사내 벤처·신사업 아이디어 공모전 ‘유니커스(UNIQUERS)’를 통해 탄생한 벤처팀 ‘아르티브’를 독립법인으로 분사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유니커스’에서 대상을 수상한 ‘아르티브’는 미술품 시장의 정보 비대칭, 접근성 문제 해결을 위해 데이터 기반 미술작가·작품 정보 제공 서비스 ‘아트픽하소’를 개발 중이다. ‘아르티브’를 만든 김준기‧손우진 공동대표(40)를 만나 창업 과정과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 들어봤다.
- 늦었지만 독립법인 분사를 축하한다. 금융권은 취업준비생들에게 선망받는 직군에 속하는 데 두 사람 다 신한은행에 근무했었다. 안정적인 은행을 벗어나 창업할 생각을 어떻게 했나?
“우리(김준기‧손우진 공동대표)는 모두 2010년 신한은행 입행 동기이면서 같은 대학 같은 과(산업공학) 동기이기도 하다. 은행을 다니며 디지털 금융공학 석사 과정을 같이 수료하기도 했다. 대학 재학시절 신한은행 마케팅 공모전에 같이 참여해 수상하면서 신한은행과 인연을 맺고 회사에도 같이 들어오게 됐다. 그런 경험들이 있다 보니 이제 은행에 들어와서도 행내에 있는 각종 공모전에도 몇 번 참여했다. 기존 공모전에는 선발되더라도 상금을 주고 끝나는 식이었다. 몇 번 해보니 상금만 받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한동안은 (공모전에 응모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니커스’ 공모전을 통과하면 진짜로 현장에 나가서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고 하니, 지금 아니면 은행 생활에서 앞으로 경험해 보지 못할 기회인 것 같아 ‘마지막으로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이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됐다. 이런 기회를 준 회사(은행)에 감사드린다.”
- 신한은행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벗어나는데 두려움은 없었나?
“퇴사 이후 3년 이내에 은행에 복귀할 수 있는 조건이 있다. 물론 사업을 통해서 굉장히 높은 수익의 좋은 성과를 내면 좋겠지만, 만약에 잘 안 돼서 (은행에) 복귀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그 시점에서 (다른 사람과) 차별점을 가질 수 있느냐를 따졌을 때, 두 사람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 금전적인 손해를 볼 수 있겠지만 더 길게 봤을 때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경험이고 우리가 성장하는데 있어 밑거름이 된다고 봤다.
이 프로그램(유니커스)에 지원했을 당시 경기가 좋아서 투자도 얼마든지 받을 수 있었고, 시장 상황도 좋아서 스타트업이 잘 될 수 있는 여건이었다. 하지만 막상 분사할 시점이 되니 경기 상황이 좀 안 좋아져서 스타트업 운영이 조금 불안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 학창시절부터 스타트업 창업을 꿈꿨나?
“학창 시절에는 ‘스타트업’이라는 개념이 잘 알려지지 않았고, 벤처 기업도 별로 없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스타트업을) 생각한 적은 없지만 은행 가서도 이런 공모나 아이디어는 (두 사람이) 계속 같이 해보려고 했다.”
- 스타트업을 하겠다고 하니 가족 반응은 어땠나?
“두 사람 다 가정이 있기 때문에 설득에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순조롭게 됐다(웃음).”
- 아르티브 창업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신한은행과 KT가 전략적 파트너십 협약의 일환으로 2022년부터 함께 진행하고 있는 공동 프로젝트인 ‘유니커스’를 통해서다. 2022년 5월 유니커스에 선발된 뒤, 액셀레이팅하는 업체에서 강의와 함께 멘토를 붙여 코칭을 해줬다. 이렇게 한 달 정도 교육을 받고 같은해 8월 열린 IR 대회에서 최종 5팀 가운데서 1위로 뽑혔다. 이후 사업 아이템을 구체화할 수 있는 추가 시간을 얻고 지난해 6월말 최종적으로 분사 결정이 났다.
기존에 사내에 없었던 제도여서 내부적으로 검토를 하고 분사에 대한 규정도 만들고 협의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이 기간 중 앱도 개발하고, 사용자 테스트도 해보고, 시장 조사도 했다. 앱 개발의 경우 어떤 데이터를 가공할 것인지와 안에 들어가는 구조 등 전반적인 흐름 자체는 우리가 설계했고, 이 설계안을 갖고 외주사가 앱으로 구현했다. 지난해 12월 13일부로 퇴직 처리되고 바로 다음날 법인을 설립했다.”
- ‘아트픽하소’라는 이름이 재미있다. 창업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었나?
“미술품 조각투자 관련 메뉴를 일시적으로 신한은행 앱에 넣은 적이 있다. 은행 재직 시절 일하던 부서에서 관련 업무를 하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 이전에는 몇억 몇천만 원짜리 그림만 상상했지만, 접해보니 조금 저렴하지만 성장 가능성이 높은 작가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다 보니 ‘내가 미술품을 직접 사보자’는 생각을 했다.
막상 미술품을 구매하려 했더니 초보 컬렉터들한테는 미술시장 정보도 별로 없었고 접근도 쉽지 않았다. 옥션에서 사려니 비싸고, 갤러리에 전시하는 걸 찾아가려고 했더니 이미 VIP들이 선점하고 있는 등의 불편함을 직접 느꼈다. 우리 같은 3040세대 컬렉터들이 미술시장에 많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면서 ‘우리가 느꼈던 불편함을 해소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미술시장에 젊은 컬렉터들이 확대되는 것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사업) 아이템을 선정했다.”
- ‘아트픽하소’의 서비스 모델에 대해 설명해달라.
“아트픽하소’의 주요 서비스는 ▲개인별 미술작품 취향을 분석해 유망 작가를 추천하는 ‘맞춤 작가 추천’ ▲작가 SNS 및 자체 앱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일간‧주간‧월간 인기작가를 선정하는 ‘작가 인기도 차트’ ▲작가의 새로운 전시정보나 경매일정을 안내하는 ‘실시간 정보 알림’ ▲작가 팔로워들 간 자유롭게 의견을 공유하는 ‘커뮤니티’ 등이 있다.
지금은 테스트 버전이고 곧 정식 버전을 개발할 예정이다. 테스트 버전에서는 인스타그램 팔로어 데이터만 갖고 인기작가 추천을 했는데, 정식 버전에서는 사용자 취향을 반영하는 등 다양화할 계획이다.
또한 단순히 앱에서만 판매하는데 그치지 않고, 정식 버전에서는 작품 구매까지 연결하려고 한다. 오프라인 공간도 필요한 미술 작품 특성상 외부 갤러리와 협업을 한다든지 신한은행에 공간이 있다면 여기서 작가 기획전 등 오프라인 전시도 할 예정이다. 그렇게 연을 맺은 작가들과 아트상품 같은 것도 기획해서 3040 컬렉터들이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미술을 즐길 수 있도록 해보려고 한다.”
- AI(인공지능)를 활용해 작품 추천과 작가 발굴에 나설 계획인가?
“컬렉터들이 기존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거나 최근에 관심이 늘어나는 작품들을 보다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려고 한다. 미술작품 홍보가 갤러리에 의존하다 보니 비교적 홍보력이 약한 중소 갤러리에 소속된 작가들 같은 경우에 직접 홈페이지나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작가와 관련해 이슈가 있거나 컬렉터들의 관심을 많이 받게 되면, 해당 작가 관련 SNS 팔로어나 ‘좋아요’, 댓글 등의 수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언론 언급량이나 앱 자체 검색량 등의 데이터를 종합해 이를 기반으로 ‘이 작가의 팔로워가 최근 10% 늘어나며 다른 작가보다 상승 폭이 커 인기를 끌고 있으니 관심을 가져봐라’는 식으로 추천하는 알고리즘을 만들 것이다. 유망한 신진 작가를 발굴해서 추천하는 서비스도 같이 진행할 예정이다.”
- 수익 모델은 어떻게 되나?
“향후 많은 수익 모델이 있을 수 있다. 플랫폼 기반 거래 중개 수수료가 1차 수익 모델이 될 것이다. 전속작가를 보유한 갤러리들과 협업하는 경우 아트딜러로 접근할 수도 있고, 작가와 직접 일하는 경우에는 일반적인 갤러리의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 향후 계획과 구체적 사업 방향이 있다면?
“최근 ‘K-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국내 미술시장은 우리나라의 문화 성숙도에 비해서 규모가 작은 실정이다. 처음 미술시장에 진입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으로서 우리만 살아남는 게 아닌 시장 자체가 커지길 바란다.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든 해서 국내 미술시장의 파이를 키워 나가는데 일조하고 싶다.
그동안 대형 갤러리 소속 작가들, 인플루언서나 연예인들이 갖고 있는 작품의 작가들로 인기 쏠림 현상이 있다. 반면 예술성 있으면서 좋은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 중에 마케팅이나 홍보가 안 돼서 생업이 어려워 붓을 꺾는 작가도 존재한다. 기존에 이런 작가들을 알려주고 추천하는 플랫폼이 미흡했다고 생각한다. (빈센트 반) 고흐처럼 실력은 있지만 인정받지 못한 작가를 널리 알리고 싶다. (이 과정에서) 국내 작가를 해외에도 소개하는 플랫폼의 역할도 하고 싶다.”
- 평소 생활신조는 무엇인가?
“항상 새로운 일을 추구하는 것이다. 남들이 다 하고 싶어하는 일을 잘 하는 것보다 남들이 안 하거나 못하는 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불확실성이란 리스크가 있지만 막상 그렇게 하면 (생각보다 리스크가) 크지 않았다(김준기).
실천하지 않고 생각만 해서는 이뤄지는 것이 없다.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면 작은 것이라도 하나씩 실행을 해야 실패를 하더라도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일단 실행에 옮기자’라는 게 요즘 목표다(손우진).”
-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해달라.
“우리 인생의 전환점이 공모전 발표 때였다. 앞으로 개인이 갖고 있는 실력이 더욱더 중요해지는 사회가 될 텐데, 대학 도서관에만 있지 말고 도전정신을 갖고 어떤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돈이 없더라도 (정부 등에서) 정책적으로 지원해주는 기회들이 많이 있다. 그런 기회들을 찾아 (창업 아이디어를) 검증해 볼 시간을 가지면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젊을수록 한 살이라도 어릴수록 이런(스타트업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빠르게 접해보는 게 좋다. 실패해도 복구하기 쉽다는 이유도 있고, 1년에 한 개씩만 해도 취업하기 전까지 10개 가까이 프로젝트를 진행해 볼 수가 있을 텐데 학교에서 배우는 수업보다 이런 경험에서 얻은 결과물이 훨씬 더 클 것이라 생각한다.”
<문화경제 한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