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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윤협 작가, 점과 선으로 캔버스에 작곡하는 도시의 야경

롯데뮤지엄, 올해 첫 기획전 ‘녹턴시티(Nocturne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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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68호 김금영⁄ 2024.03.12 14:34:16

윤협 작가. 사진=김금영 기자

전시는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듯 비행기 안에서 창밖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됐다. 어둑어둑한 전시장에서 빛을 발하는 야경은 포근하면서 아늑해 보이고, 때로는 화려함 뒤 쓸쓸함을 머금은 것 같은 다양한 얼굴들을 동시에 드러냈다. 야경은 한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서울을 비롯해 파리, 뉴욕 등 전 세계 곳곳의 도시를 아울렀다.

롯데뮤지엄이 올해 첫 기획 전시로 윤협 작가의 개인전 ‘녹턴시티(Nocturne City)’를 5월 26일까지 연다. 서울 출생으로 뉴욕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윤협 작가는 2014년 랙앤본(rag&bone)의 벽화작업으로 예술계와 대중의 주목을 동시에 받으며 다수의 전시, 협업, 프로젝트를 활발히 진행해 왔다, 대표적으로 유니버설 뮤직그룹, 바비브라운, 유니클로, 베어브릭, 허프, FTC, 나이키 SB 등과의 협업이 있고, 그의 작업은 나이키 오레곤 본사와 크리스찬 디올 뉴욕, 디파니앤코 등에 설치돼 있다. 이번엔 그의 작업이 한국을 찾았다.

전시의 시작을 여는 '제이에프케이 공항에 착륙'. 사진=김금영 기자

특히 이번 자리는 2018년 개관전 댄 플래빈을 시작으로, 케니 샤프, 알렉스 카츠, JR, 마틴 마르지엘라 등 해외 거장 작가의 대규모 전시를 주로 선보여 온 롯데뮤지엄이 선보이는 한국 작가 전시라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또 서브컬처를 기반으로 작업세계를 넓혀온 젊은 작가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구혜진 롯데뮤지엄 수석 큐레이터는 “롯데뮤지엄은 해외 거장을 비롯해 유망주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해 왔는데, 한국 작가 전시에 대한 갈증도 많았다”며 “이번 윤협 작가 개인전을 계기로 국내 작가들에게도 초점을 맞추려 한다. 이미 유명한 원로 작가의 작품세계는 다른 미술관에서도 많이 조명하고 있어서 롯데뮤지엄은 새롭게 떠오르는, 발전 가능성이 많은 젊은 작가들을 찾고 있다. 또한 이들의 작업을 단지 국내에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롯데뮤지엄에서의 전시를 계기로 한국 작가들이 해외에서 주목받는 기회를 제공, 지원하려 한다”고 말했다.

“도시의 밤은 내면과 더욱 가까이 만나는 시간”

최신작인 '베어 마운틴에서 돌아오는 길'. 사진=김금영 기자

그 본격적인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윤협 작가의 예술적 궤적을 돌아보는 초기작부터 신작, 회화, 조각, 영상, 드로잉 등 총 230여 점의 작품을 한자리에 선보인다. 눈에 띄는 건 도시의 야경들이다. 전시의 시작을 여는 ‘제이에프케이 공항에 착륙’은 작가가 뉴욕 존 에프 케네디 국제공항에 착륙하기 전 비행기 창문으로 내려다본 도시의 불빛을 다양한 색의 점과 선의 상호작용을 활용해 재해석한 작품이다.

현재 작가가 활발히 활동하는 장소이기도 한 뉴욕은 그의 작업 속에서 많이 발견된다. 작가는 “뉴욕은 다양한 사람이 모여 여러 문화와 언어가 혼재하는 대표적인 도시 중 하나이자, 개인적으로도 많은 시간을 보낸, 내겐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라며 “비행기에서 뉴욕이 지닌 이 다양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느낀 감정들을 뉴욕을 밝히는 불빛들로 압축해 표현했다”고 말했다.

'뉴욕의 밤' 작품 앞에 선 윤협 작가. 사진=김금영 기자

최신작인 ‘베어 마운틴에서 돌아오는 길’도 눈길을 끈다. 다섯 가지 화면이 모여 하나의 스토리를 구성하는 작품으로, 베어 마운틴 정상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작가가 브루클린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시간의 흐름 순으로 표현했다. 첫 화면에선 해가 질 무렵 주황빛으로 물들었던 하늘이 다음 화면으로 넘어갈수록 점점 검푸른 어둠이 짙게 깔리고, 완연한 어둠이 찾아오자 도시의 불빛들은 이 어둠을 밝히기 시작한다. 여기엔 작업을 위해 마음을 가다듬었던 작가의 이야기가 담겼다.

작가는 “페인팅은 꾸준히 달리는 마라톤 작업과도 같다. 내면적 영감을 극대화시켜 캔버스에 그릴 때 높은 집중력과 치열함을 요구한다. 그림을 그릴수록 다양한 감정이 왔다 갔다 하며 작업실엔 열기가 가득찬다”며 “가끔 자전거를 타고 나가 복잡한 감정을 해소하는데, 특히 긴 여정이었던 200km의 여정을 담은 시리즈 연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해가 길지 않았던 어느 추운 겨울, 이미 해가 지고 있던 상황에서 점점 어두워지는 풍경은 적막함을 불러왔고, 이 적막함 속 자전거 바퀴 마찰음은 유독 크게 들렸다. 거기서 고요함과 고독함, 조금의 두려움이 내면에 오갔다”며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땐 자전거 페달을 돌릴 다리 힘도 다 빠진 상태였지만, 복잡했던 감정들이 해소되고 비워지면서 다음 작업을 위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뉴욕의 밤'은 무려 열 폭의 캔버스로 이어진 대규모 파노라마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사진=김금영 기자

관람객에게 처음으로 공개하는 ‘뉴욕의 밤’은 무려 열 폭의 캔버스로 이어진 대규모 파노라마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넓은 전시장 한 벽면을 가득 채우며 밀폐된 공간에 창을 내 야경을 직접 끌어온 듯 그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낸다.

뉴욕 맨해튼에서 뉴저지까지 이어지는 스카이라인(건물과 하늘이 만나는 경계선)을 묘사한 작품으로, 가로 길이만 16m에 달한다. 여기에도 명상의 시간이 있었다. 작가는 “산 정상을 넘어 집으로 돌아가다 조지 워싱턴 대교에서 잠시 쉬며 맨해튼의 야경을 바라봤는데, 하루하루가 바쁜 생존의 장에서 한 발치 물러서서 본 그 도시의 풍경은 평온해 보였고, 마치 세속을 떠나 대기권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듯한 기분까지 들게 했다”고 말했다.

그림 속엔 허드슨강 수면 위 반사되는 도시의 불빛이 보이는데 이는 모네의 ‘수련’ 연작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작가는 “대표 인상파 화가 모네의 수련 연작을 굉장히 좋아한다.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수련 작품을 봤는데 연못에 핀 수련을 표현한 모네의 색채를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서울 시티'(맨 왼쪽)와 '기사의 관점'(맨 오른쪽)은 서울의 야경을 그린 작품으로 공통적으로 롯데월드타워의 존재가 부각된다. 사진=김금영 기자

반가운 풍경도 등장한다. ‘기사의 관점’과 ‘서울 시티’는 서울의 야경을 그린 작품으로 공통적으로 롯데월드타워의 존재가 부각된다. 기사의 관점에 등장하는 롯데월드타워는 작가의 20년 동안의 작품세계를 선보이는 첫 미술관 전시 장소로서, 이제 작가에게도 특별한 상징적 장소가 됐다. 서울 시티는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본 서울의 야경을 담았다.

작가는 “서울은 내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과 청춘을 보낸 고향이지만, 2010년 뉴욕으로 떠나 오랜 시간 해외에서 생활하다 보니 2022년 말 전시를 위해 서울에 왔을 때 바라본 서울 풍경은 반가움과 동시에 조금의 낯섦도 있었다. 첨단시스템을 갖춘 느낌의 서울은 뉴욕보다 미래지향적이라는 느낌도 받았다”며 “한강 위 다리들, 멀리 보이는 남산타워, 하늘과 맞닿은 듯 높은 건물들을 바라보며 내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여러 감정을 마주했다. 동시에 현재 이 도시 안에 살아가고 있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그림을 그렸다”고 말했다.

윤협 작가는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해 왔다. 사진=김금영 기자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풍경 중 도시의 야경을 그리는 이유도 여기서 비롯된다. 작가는 “내게 도시는 다양한 에너지로 가득 찬 거대한 유기체”라며 “도시를 표현하는 것은 도시 속의 개성과 문화를 통해 직접 느낀 에너지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특히 낮의 소음이 가라앉고 어둡게 내려앉은 밤은 기억의 조각들을 상기시키고, 낮엔 보이지 않던 여러 개성이 더욱 선명하게 빛을 발하며 내면과 보다 깊게 닿을 수 있는 시간이다. 다양한 색과 내면의 모티브를 표현하기에 좋아 야경을 그려왔다”고 말했다. 전시명인 녹턴시티 또한 밤이라는 시간에 영감받은 예술을 뜻한다.

점과 선, 캔버스 위에서 음표가 되다

윤협 작가는 9세부터 스케이트보드를 타기 시작하며 DIY(Do It Yourself) 문화를 기반으로 자신의 개성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방식을 스스로 개척해 왔다. 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이 도시의 야경을 표현할 때 점과 선을 사용한다. 여기엔 스케이트보드 문화 등을 통해 작업을 자유롭게 전개해온 작가의 인생이 영향을 미쳤다. 작가는 9세부터 스케이트보드를 타기 시작하며 DIY(Do It Yourself) 문화를 기반으로 자신의 개성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방식을 스스로 개척해 왔다. 1995년 이태원 스케이트보드샵에서 강한 인상을 받고, 그때부터 해외 스케이트보드 매거진의 로고나 페이지를 콜라주, 드로잉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창작을 처음 시작했을 때 예술이라는 거대한 개념으로 접근하기보다 작은 노트 한 권에 그리던 낙서가 현재에까지 이르렀다. 자연스럽게 나의 예술을 표현하기 위한 여러 방편을 고민하다가 큰 그림 아래 보니 공통점이 보이더라. 그건 단순함이었다”며 “과거 스케이트보드 문화를 경험하면서 그래피티 예술도 많이 접했는데 당시 스프레이나 페인팅 마커 등 심플한 도구를 사용했다. 2004년 무대 위 즉흥으로 그림을 그렸을 때도 거창하고 화려한 재주나 기교가 아닌 자연스러운 점과 선이 나왔고, 이를 더 많이 그려나가면서 진화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구점에서 장난감과 프라모델을 수집하던 추억을 상기하며 윤협 작가가 만든 자신만의 캐릭터 '저글러' 조형물이 설치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작가의 자유로운 영혼은 음악과도 관련성이 많다. 작가는 어린 시절 피아노 학원을 운영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했다. 그는 “어렸을 때 낮 시간 동안 크게 울려 퍼지던 피아노 소리가 밤이 돼서 다 사라지고 정적이 찾아온 순간 딱 피아노 한 대가 연주될 때 느낀 밤 공기와 강렬한 분위기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클래식, 재즈, 힙합, 펑크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음악을 듣는 작가는 때로는 작업에 몰입하기 위해 음악을 듣는다고 한다. 이때 스케이트보드를 타듯 캔버스 위에 자유로운 곡선을 그리기도 하고, 구조를 유지하며 점과 선을 짧게 그려나가기도 한다. 즉 작가가 그리는 점과 선은 음표, 캔버스는 거대한 악보로 작가는 그림으로 하나의 곡을 작곡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작가가 그린 그림을 바라보다 보면 점과 선이 만들어내는 리듬감, 운율이 느껴지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버려진 종이박스 등 불완전한 재료를 활용해 작품으로 새 생명을 얻은 작가의 첫 휴머노이드 입체 작품 '캐러멜 보이'. 사진=김금영 기자

전시장에서도 초반엔 조용한 클래식, 재즈 운율이 흘러나오다가 스케이트보드 작업을 소개할 땐 리듬감 있는 힙합 음악으로 변주된다. 문구점에서 장난감과 프라모델을 수집하던 추억을 상기하며 작가가 만든 자신만의 캐릭터 ‘저글러’, 버려진 종이박스 등 불완전한 재료를 활용해 작품으로 새 생명을 얻은 작가의 첫 휴머노이드 입체 작품 ‘캐러멜 보이’ 등 작가의 작업세계를 폭넓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들도 마련됐다.

전시의 마지막은 ‘시티 포이트리(City Poetry)’가 장식한다. 작가의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공간이다. 멈춰있던 도시 야경의 시간은 이 공간에서 흘러가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이 공간에서 저마다의 감정을 품으며 야경을 기억하게 된다. 모든 것이 멈춘듯한 고요한 밤, 작가가 들려주는 녹턴을 통해 진정한 도시 낭만을 느낄 수 있다.

전시의 마지막은 '시티 포이트리(City Poetry)'가 장식한다. 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단편적인 그림만 보여주지 않고, 내 세계를 0부터 100까지 설명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내 개성을 오롯이 보여줄 수 있는 자리라 이번 전시가 더 소중하다”며 “많은 사람과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형태 롯데문화재단 대표는 “롯데뮤지엄의 올해 첫 전시를 윤협 작가가 연다. 작가의 뛰어난 작품성에 전시를 보면서 큰 감동을 느꼈다”며 “이 감동의 기운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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