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8호 한원석⁄ 2024.03.25 08:38:38
지난 3월 6일부터 8일까지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국내 최대의 배터리 전시회 ‘인터배터리 2024’와 전기차(EV) 산업 전시회 ‘EV 트렌드 코리아 2024’가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리며 사흘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는 ‘인터배터리 2024’에 약 12만 명, ‘EV 트렌드 코리아 2024에는 약 4만8000여 명의 국내외 관람객이 방문했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에서 배터리 관련 새로운 기술과 제품 등 최신 트렌드를 한 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어 참관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배터리와 EV는 대한민국 미래먹거리로 꼽히는 대표적인 산업이다. 특히 다양한 전자제품과 EV는 물론, 미래 교통체계로 각광받는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에 이르기까지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이차전지는 글로벌 경제 패권 경쟁의 가장 큰 무기가 될 만큼 중요한 전략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이차전지 전문 시장조사 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팩 기준 이차전지 시장규모는 지난해 1210억 달러(약 161조 원)에서 2030년 4000억 달러(약 535조 원), 2035년 6160억 달러(약 823조 원)로 가파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중국의 물량 공세에도 2021년 기존 전 세계 EV용(ESS포함) 배터리 생산능력의 21%를 생산하며 세계 2위의 배터리 생산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닌 배터리 완성품 제조업체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양극재‧음극재 등과 같은 소재부문에서도 뛰어난 실적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국내 배터리 3사는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모두 5위권에 올랐다. LG에너지솔루션은 24%의 점유율로 2위를, SK온을 거느린 SK이노베이션은 7%의 점유율로 4위를, 삼성SDI는 5%의 점유율로 5위를 기록했다. 여기에 금양도 원통형 배터리로 도전장을 내밀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주식 시장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3월 20일 종가기준 LG에너지솔루션이 시가총액(시총) 95조3550억 원으로 3위, 삼성SDI가 31조1500억원 으로 10위, SK온을 거느린 SK이노베이션이 11조4600억 원으로 32위, 금양이 7조1400억 원으로 56위를 차지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파우치형 셀투팩‘ 첫 공개… 에너지밀도 높이고 무게·비용 줄여
LG에너지솔루션은 ‘인터배터리 2024’에 참가한 업체 가운데 가장 큰 540㎡ 규모의 부스에서 전기차부터 에너지저장시스템(ESS), 정보기술(IT) 기기까지 다양하게 쓰일 수 있는 배터리와 최신 기술을 선보였다.
이번 행사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최초로 공개된 파우치형 ‘셀투팩(CTP·Cell to Pack)’이다. 셀투팩은 기존 배터리 구성에서 모듈 단계를 제거하고 팩에 직접 셀을 조립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밀도를 높이고 배터리 무게와 비용은 줄이는 기술로, 파우치 셀의 가벼운 무게 특성을 가져가면서도 팩 강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셀 유닛 사이에는 열전이 지연 구조를 적용해 안전성을 높이고 제조원가도 절감한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이와 관련해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6일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완성차 업체와 파우치형 CTP 공급 계약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기존 리튬코발트산화물(LCO) 중심 노트북 배터리보다 가격경쟁력이 높으면서도 고전압 구동이 가능한 미드니켈(NCM613) 소재를 적용한 노트북용 배터리 ‘미드니켈 퓨어 NCM(니켈·코발트·망간)’도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또한 LG 측은 무선 헤드폰 등에 탑재되는 곡선형 파우치 배터리, 블루투스 이어폰 등에 쓰이는 초소형 배터리 등 다양한 IT 기기용 배터리도 선보였다.
또한 LG에너지솔루션은 4680 원통형 배터리의 올해 8월 양산 계획을 재확인하며 국내에서 가장 먼저 4680 배터리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고체 배터리(ABS) 양산 시점을 2030년으로 잡았는데, 이는 삼성SDI가 내놓은 2027년보다 3년이나 늦다. 전고체 배터리는 액체 전해질 대신 고체 전해질을 사용해 화재의 위험성이 적고 주행거리가 길어 배터리 업계에서 주목하는 차세대 배터리다. 이에 대해 김동명 사장은 “미래 기술이다 보니 완성도가 높고 실제 적용할 수 있는 제품을 준비하고 있다”며 “좀 시간이 걸려도 제대로 된 것을 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LG에너지솔루션 최고기술책임자(CTO)인 김제영 전무도 3월 7일 ‘더 배터리 콘퍼런스’ 기조 발표에서 전고체 배터리와 리튬황 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 전략을 소개하며 “제대로 된 연구와 개발을 하고자 하는 니즈가 있기 때문이고, 그만큼 난이도가 높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전무는 “(전고체 배터리) 연구‧개발(R&D)을 제대로 하려면 여러 기술적 챌린지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전해질과 음극”이라면서 “어떤 수용성 있는 음극을 사용할지, 전고체 전해질의 핵심인 이종의 고체 간 리튬이온 전달을 어떻게 저항을 줄이면서 할 수 있을지 등을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SDI, ‘꿈의 배터리’ 전고체 배터리 로드맵 첫 공개… 2027년 양산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 분야의 ‘초격차 기술’을 앞세워 업계 최고 에너지 밀도인 900Wh/L ABS의 구체적인 양산 준비 로드맵을 ‘인터배터리 2024’에서 공개했다. 지난해 3월 파일럿 라인인 ‘S라인’을 준공한 삼성SDI는 올해부터 2026년까지 고객과 협의를 거쳐 A·B·C샘플을 제작해 제공하고, 이어 2027년부터는 ABS 양산을 본격 시작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1단계로 셀 대형화와 생산 공정 결정, 배터리 검증, 자재 생산 규모 확장을, 2단계로 성능 개선과 양산라인 셋업, 팩·EV 검증, 전고체 자재 대량 양산 등을 거칠 예정이다. 지난해 말 신설된 ABS사업화추진팀이 전고체 배터리 사업 컨트롤타워를 맡아 모든 과정을 총괄한다. 삼성SDI 측은 “2027년 양산을 시작하겠다는 추상적 목표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목표에 도달하겠다는 세부 계획까지 갖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취지”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고주영 삼성SDI 부사장은 ‘더 배터리 콘퍼런스’에서 삼성SDI의 EV 배터리 개발에 대해 “자동차 업체들과 3~4년에 걸친 공동 개발을 진행해야 (전고체 배터리를) 자동차에 탑재할 수 있다”며 “올해 첫 A샘플부터 시작해 2027년 양산을 위해 협업을 진행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삼성SDI는 높은 에너지 밀도에 빠른 충전 속도까지 갖춘 46파이(지름 46㎜) 원통형 배터리의 양산 준비를 올해 12월까지 완료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실제 양산 돌입은 고객사와 협의가 필요하지만, 언제든 양산을 시작할 수 있는 상태를 연말까지 갖추겠다는 취지다. 또한 실물 크기의 차량 하부구조 목업에 자사 주력 폼팩터(형태)인 각형 배터리를 탑재한 셀투팩도 선보였다.
최윤호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은 46파이 원통형 배터리 양산에 대해 “양산 준비는 됐다. 고객에 따라 양산 시기를 조절해 진행하겠다”면서 “2025년 초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최 사장은 “올해 투자 규모를 지난해보다 늘릴 계획”이라며 울산 생산시설 투자와 관련해 “양극재 공장 착공에 이어 다른 공장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삼성SDI는 이번 전시회에서 높은 에너지 밀도와 빠른 충전 속도를 갖춘 하이니켈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46파이 배터리 양산 준비를 올해 12월까지 완료한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언제든 양산을 시작할 수 있는 상태를 연말까지 갖춘다는 취지다.
최 사장은 “전고체 배터리를 포함한 차세대 다양한 폼팩터의 제품 양산을 위한 준비를 차질 없이 진행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초격차 기술력을 통해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피드 온’ 내세운 SK온, 급속충전 시간 18→15분 단축
SK온은 ‘스피드 온’을 주제로 부스를 구성하고 급속충전 시간을 줄인 ‘어드밴스드 SF(Super Fast) 배터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 배터리는 지난 2021년 선보인 기존 SF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는 9% 높이면서도 급속충전 시간은 유지한 제품이다. 배터리 용량 10%에서 80%까지 18분 만에 충전이 가능하면서도 1회 충전 시 주행거리가 최장 501㎞ 수준으로 기존 제품보다 늘어났다.
SK온은 어드밴스드 SF 배터리를 탑재한 기아의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V9를 배터리 제품과 함께 부스에 전시해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와 함께 급속충전 시간을 18분에서 15분으로 단축한 SF+, 겨울철 저온에서 주행거리가 줄어드는 기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개선한 '윈터 프로 LFP' 등 차세대 배터리도 공개했다.
이존하 SK온 연구위원은 ‘더 배터리 콘퍼런스’ 기조발표에서 주행 거리와 에너지 밀도를 대폭 늘린 하이니켈 NCM 배터리 청사진을 공개했다. 이 연구위원은 급속충전 인프라 확충의 필요성과 지나친 급속충전 성능 강화에 수반되는 비용 상승 문제를 지적하면서 “5분 충전으로 300㎞ 주행이 가능한 수준이면 충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연구위원은 “배터리 초기 시장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였다면 공격적 확장기를 지나 이제는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통해 성장해야 할 시기”라며 “SK온은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통해 고객사의 수요에 민첩하게 대응하고 전방위적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SK온은 리튬이온의 이동속도를 향상시키는 실리콘 음극재 이중 코팅, 음극 내 흑연 입자의 수직 정렬을 통해 리튬이온 이동 경로를 단축해 주는 자기 배향 공법, 다중 코팅 관련 기술로 이 같은 발전을 선도한다는 방침이다.
이석희 SK온 사장은 6일 기자들과 만나 “LFP 배터리는 중저가 자동차를 대상으로 해서 시장이 일정 부분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개발이 완료됐고, 고객과 구체적인 협의가 완료되면 2026년쯤 양산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사장은 “중국이 LFP 배터리를 먼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서 많이 하고 있지만 북미 지역 시장 등을 고려하면 한국 배터리 회사들이 LFP 배터리를 해도 충분히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시장이 이제 블록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장은 신규 수주 계획에 대해 “지금 협의 중인 구체적인 고객의 이름을 거론하기는 이른 것 같다”면서도 “굉장히 협의를 많이 진행하고 있고 아마 이른 시간 내에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대해달라”고 말했다.
한편 SK온은 주력 분야가 아니었던 ESS도 처음 선보였다. ESS 모듈을 연결한 차세대 DC블록 모형을 비롯해 국내 처음으로 북미 ESS 화재안전 인증을 받은 열 확산 방지 솔루션, 셀 간 온도차를 최소화하고 충·방전 효율을 높인 수냉 방식 등 ESS 화재 안전 기술도 함께 소개했다.
금양, ‘꿈의 이차전지’ 4695 배터리 개발 성공
금양은 ‘꿈의 이차전지’라고 할 수 있는 ‘4695 배터리’를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고 3월 5일 밝혔다. ‘4695 배터리’는 지름 46㎜, 높이 95㎜인 원통형 배터리로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2170 배터리를 업그레이드 한 것이다. 이는 테슬라가 자사 전기차에 장착한 4680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가 높아 배터리 팩 생산성을 31%가량 향상하고, 배터리관리시스템(BMS) 제어 안정성을 강화한다는 게 금양 측의 설명이다. 완충 시간도 테슬라의 4680 대비 10분 빠른 20분으로 알려졌다.
금양 측은 “이차전지 사업을 위해 영입한 엔지니어 전문기술진이 자체 R&D 센터를 기반으로 한 연구개발을 통해 특화된 기술력의 산물”이라며 “하이니켈 단결정 소재 개발로 니켈 함량을 97%까지 높이는 등 에스엠랩을 인수하면서 원천기술을 확보해 4695 개발에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금양 측은 구체적인 양산 계획도 공개했다. 현재 부산시 기장에 약 5만4000평 부지를 확보해 지난해 9월부터 건설 중인 양산라인이 완공되는 올해 연말에 2170의 2억 셀(3.7GWh) 라인 설비의 설치 시운전을 마치고 2025년 1월부터 본격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또한 내년 6월부터 4695 배터리 1억 셀(12.5GWh) 양산을 시작하게 되면 2025년 말에는 2170 2억 셀 양산을 포함해 총 3억 셀(16.2GWh)의 원통형 전문 제조 단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금양 관계자는 “2170 관련해 이미 700만 셀의 시생산을 완료했다”며 “4695도 올해 1월말부터 시생산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장 공장 3억셀 양산은 전기차 한 대당 평균 배터리 용량을 75kWh로 잡았을 때, 총 21만6000대의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미국 미시간 디트로이트 경제개발청과 오하이오 경제개발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상무부는 물론 중국, 캐나다, 스웨덴 등의 국가기관과 글로벌 배터리 관련 기업들의 미팅 예약이 쇄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화경제 한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