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민 지음 / 운주사 펴냄 / 544쪽 / 3만 5000원
불발(佛鉢)은 부처의 공양 그릇(발우)이다. 석가모니 부처는 깨달음을 얻는 그날부터 바로 공양 그릇(바리때)를 들고 동냥에 의존하며 살았다고 한다. 세상에 대한 물적 욕심을 버리고 남들의 자선에 의존하여 배고픔을 해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자발적 금욕주의’의 시작이라고 표현할 만도 하다.
한국에서 낮은 수준의 종교적 행위에서는 ‘믿으면 잘 산다’ ‘신이 잘먹고 잘살게 해준다’는 둥 신앙과 경제를 연결하는 통념이 지배하고 있지만, 불교의 출발점에 불발이 있다는 점, 즉 세상의 자선심이 사라지면 부처가 죽을 수밖에 구도로 출발됐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불발 이야기는 불교의 초기 경전부터 시작된다. 불타의 대각(큰 깨달음) 후 첫 번째 공양과 이에 사용된 발우에 관한 이야기가 별도의 장(章)으로 배정되기도 했다. 이후 승려의 바리때는 불교의 상징이 되며, 관련된 이야기는 끝없이 생산, 변조된다.
이 책은 이러한 불발에 대해 경전에 기록된 내용에서부터 이후 불교가 전파되고 발전하는 과정 속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다채롭고 흥미로운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 담긴 풍부한 의미들을 추적했다.
불교 경전에 따르면 불발은 사천왕이 부처에게 바친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줄어드는 법이 없는 법기(法器)였고, 법을 담는 그릇이기도 했다.
간다라에서는 불발을 불사리(佛舍利)와 마찬가지로 불탑에 안치하여 예배하였다. 사천왕이 부처에게 발우를 바치는 모습 또는 불제자가 불발에 예배하는 모습은 간다라 불교 미술의 소재 중 하나가 되었다.
불법(佛法)이 살아 있는 정법(正法)의 시대에는 발우도 살아 있지만, 정법이 사라진 말법(末法)의 시대가 되면 불발이 깨어지면서 계법(戒法)과 세상도 황폐해진다고 간다라 사람들은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