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2호 김금영⁄ 2024.05.27 10:11:44
과거 급진적인 발전을 추구하며 빽빽한 고층 빌딩이 하나둘씩 점점 경쟁하듯 천편일률적으로 늘어설 무렵, 먼 미래를 바라보고 ‘어떻게 하면 자연과 조화로운 건물을 만들지’ 건축에 지속가능성의 개념을 일찌감치 담은 건축가가 있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현재 열리고 있는 ‘미래긍정: 노먼 포스터, 포스터+파트너스’전은 영국 건축 거장 노먼 포스터와 포스터+파트너스(포스터 앤드 파트너스)의 여정에 주목하는 자리다.
1999년 건축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노먼 포스터는 독일 국회의사당, 미국 뉴욕 허스트 타워, 미국 캘리포니아 애플 신사옥, 홍콩 HSBC 건물 등을 설계했고, 현재는 내년 완공 예정인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자이드 국립 박물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1935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난 그는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건축과 도시계획을 전공하고, 예일대학교 수학하면서부터 본격적인 건축가로서의 행보를 밟았다. 특히 예일대학교에서 만난 영국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 훗날 포스터의 배우자가 되는 웬디 치즈먼, 자매 조지 월튼과 함께 1962년부터 팀4(Team4)를 결성해 그룹으로 활동하면서 릴라이언스 컨트롤스(1967)와 같은 당시의 첨단 기술에 기반한 혁신적인 프로젝트들을 다수 선보였다.
약 4년 동안의 팀 활동을 뒤로 하고, 노먼 포스터가 웬디 치즈먼과 설립한 포스터 연합(Foster Associates)이 바로 오늘날 2000명이 넘는 국제적 규모의 건축 스튜디오로 성장한 포스터+파트너스의 전신이다.
이번 전시는 노먼 포스터와 포스터+파트너스의 주요 미술관, 박물관을 비롯한 공공 프로젝트를 조명하고, 1960년대부터 이어져 온 지속가능성의 개념을 담은 철학과 미래 건축에 대한 사유를 소개한다.
앞서 서울시립미술관은 올해 전시 의제를 ‘건축’으로 설정한 바 있다. 2월 열린 올해 미술관의 청사진을 밝히는 간담회에서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은 “전시 의제 건축은 단순 ‘거주를 목적으로 한 물리적 공간의 구축’이라는 개념을 넘어서 인간과 사회 간의 관계성, 이주의 문제, 공동체와 지역 등 다양한 층위의 문제를 포괄한다”며 “특히 미술관의 건축은 예술작품과 전시 및 교육을 통한 다양한 예술 실천에 대한 대중의 경험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해당 의제를 반영해 한층 다각적 방식으로 기획한 전시를 선보이고, 지속가능한 건축 이야기를 진행하려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노먼 포스터 전시는 이 목적을 제대로 보여주는 자리다. 더불어 서울시립미술관이 세계적인 문화도시 서울의 대표적인 동시대 미술 중심 미술관으로서 다양한 공공 간 소통을 확장하고 동시대 미술의 형성에 기여해 온 해외 거장을 주목하기 위해 마련한 국제전이기도 하다. 또한, 앞서 지난해 프랑스 퐁피두센터에서 노먼 포스터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는데, 이번 서울시립미술관에서의 전시는 단순 순회전이 아니라, 새로 기획된 아시아 최대 규모 특별전이다.
최은주 관장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책 수립과 연결 지으며 향후 미술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사유를 보여주는 해외 거장 건축가로 노먼 포스터를 선정했다. 전시를 위해 지난해 서울시립미술관 학예팀이 런던에 가서 노먼 포스트를 직접 만나 긴밀한 회의, 공동 연구 과정을 거쳤고 이번 전시가 그 값진 결실을 보여주는 자리”라며 “물리적인 나이를 떠나 여전히 현역 활동을 왕성하게 이어가는 노먼 포스터의 열정이 있어 이번 전시가 가능했다. 노먼 포스터와 포스터+파트너스의 비전을 통해 문화예술 공공 건축이 요구하는 동시대적 역할과 범위를 함께 고찰해 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친환경 건축의 선구자이자 발명가
전시는 건축 모형, 드로잉, 영상, 아카이브 등 300여 점으로 구성된 노먼 포스터와 포스터+파트너스의 대표 프로젝트 50건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 ‘미래긍정’은 노먼 포스터와 포스터+파트너스의 건축 철학을 함축하는 표현으로, 미래를 향한 이들의 지향점을 총 다섯 개의 섹션 구성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전시의 시작은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유’ 섹션이 연다. 현대 사회에서는 지속가능한 건축에 대한 고민이 주요 쟁점이 됐지만, 노먼 포스터는 이미 1960년대부터 건축과 그것을 둘러싼 광범위한 영역들을 설계함에 있어 지속가능성을 꾸준히 고민해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최소의 자원으로 최대의 결과를 구현하고자 했던 친환경 건축의 선구자이자 발명가인 노먼 포스터에게 접근하는 공간이다.
이 섹션에 소개되는 ‘프레드 올센을 위한 숲속 파빌리온’(1973)은 선박 회사 프레드 올센의 본사 이전을 위해 진행된 프로젝트로, 그늘진 숲 아래에서부터 차가운 공기층을 올려 자연 통풍을 유도했다. 1970년대 석유파동 이전부터 전기를 사용한 점은 선견 지명적인 접근이었다. 비슷한 시기 진행된 ‘고메라 지역 연구 프로젝트’(1975) 또한 태양광과 풍력을 사용한 자율 에너지 시스템, 지역 자원을 활용한 건물, 생태관광 발전에 필요한 시설을 만드는 등 수십 년 후 등장할 환경 운동을 예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포스터+파트너스의 케이티 해리스 시니어 파트너는 “지금은 익숙하지만 지속가능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부터 포스터는 지속가능에 대해 고민하고, 모든 작업에 이를 내포해 왔다”며 “콘크리트 인공적인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적인 공기 순환 방식을 고민하는 등 포스터는 공간 기획 단계부터 지속가능을 염두에 두고 유연하게 작업해 왔다”고 말했다.
두 번째 섹션은 ‘현재로 연결되고 확장되는 과거’다. 노먼 포스터는 과거를 과거에만 두지 않고 오랜 역사를 가진 건축물에 현대적 해석으로 조화를 더한 ‘레트로핏(retrofit)’ 접근을 통해 자신의 건축 언어를 극대화시켜 왔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런던 영국박물관의 대중정, 뉴욕의 허스트 타워, 독일 국회의사당 등이 있다.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카레 현대 미술센터 또한 1세기 고대 로마시대 신전과 인접해 있는데, 노먼 포스터와 포스터+파트너스는 총 9층으로 구성된 카레 현대 미술센터의 높이가 신전을 뛰어넘지 않도록 건물의 절반을 지하 층에 설계했고, 그럼에도 자연 채광이 지상과 지하 모두에 닿도록 했다.
이보배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이들에게 있어 레트로핏은 옛것에 단순히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조심스럽고 정교하게, 그러나 혁신적으로 역사를 재해석하고 현재와 교차, 결합하면서 물리적인 건축을 넘어 하나의 장소를 재창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건축
이 태도는 세 번째 섹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기술’로도 이어진다. 케이티 해리스 시니어 파트너 “포스터를 안 지 40년이 넘었는데, 그 긴 세월 동안 그는 퀄리티, 그리고 일관적인 변화의 태도를 자신의 건축 철학의 중심에 뒀다. 늘 안주해선 안 되고, 기술적 변화를 업데이트하며, 진화와 혁신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미국 애플 파크, 홍콩 상하이은행, 영국 블룸버그 본사, 아부다비 마스다르시티와 같은 랜드마크 건축엔 독보적인 외형만큼이나 최첨단으로 설계된 기술력이 응축돼 있다. 고도의 기술이 가미된 실험적이고 앞선 형태의 건축은 사회적 소명을 담은 총체적인 사고에 근간을 둔다.
중동 지역에 위치한 자이드 국립 박물관이나 마스다르 시티 프로젝트는 해당 지역의 문화는 물론, 특정적인 기후 환경에 대한 다층적인 선행연구를 바탕으로 한다. 아부다비 지역의 극한 기후환경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에어컨이나 공조 시스템 없이 건물이 자체적으로 원활한 공기 순환을 유도하는 공기역학적 설계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과제에 기반한 결과다.
단일 건축물에 그치지 않고 사회, 경제, 환경 문제를 하나의 통합 과제로 아우르는 건축 철학은 ‘공공을 위한 장소 만들기’ 섹션에서 소개된다. 예컨대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은 자연채광 유입을 통해 에너지 효율성 확보는 물론이고, ‘공항’에 대한 인식 자체를 탈바꿈시킨 대표적 사례다.
런던 트라팔가 광장, 홍콩 서구룡 문화지구, 프랑스의 마르세유 구 항구 설계 등을 통해서는 열린 공간 안에서 서로가 어떻게 연결되고 관계를 확장해나갈 수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버려지거나 상실됐던 공간의 재생을 통해 새로운 공공장소를 조성하는 일은 많은 경우 단편적이거나 파편화되는 도시 구조에 일관성을 부여하고, 도시의 정체성을 강화한다. 이는 단일 건물의 디자인을 넘어 도시 삶의 전반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전시의 마지막은 이미 현재가 아닌 미래 시점에 닿아 있는 노먼 포스터와 포스터+파트너스의 건축을 보여주는 ‘미래건축’ 섹션이 장식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소개되는 지구 밖 행성에서의 삶을 상상하면서 유럽우주국(ESA),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협업한 달 거주지 프로젝트(2012), 화성 거주지 프로젝트(2015)는 모두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에 실행됐다. 관련해 케이티 해리스 시니어 파트너는 “달 표면 먼지 등을 건축 자재로 활용하기로 하고,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지구에서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방법, 더 적은 양의 자재를 사용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연구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재료 과학자, 시스템 분석가, 사회 인류학자, 수학자, 구조 및 환경 공학자, 건축가 등 다양한 팀으로 구성된 다학제적 연구와 삶의 가치를 위한 디자인 철학은 단순히 미래지향적이거나 기술예찬론으로 집중되는 것이 아닌, 사용자의 경험으로 향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인류가 삶을 영위하고 다양한 생명종이 공생하는 세계를 위한 새로운 방식에 대한 제안이다.
미술관 공용 공간에서 상영되는 1시간 18분 길이의 다큐멘터리 ‘노먼 포스터 – 건축의 무게’(2010)를 통해서는 노먼 포스터가 이야기하는 건축 프로젝트의 배경에 대해 들어볼 수 있다.
이 밖에 전시 기간 동안에는 다양한 대상을 아우르는 연계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전시실 내에서 진행되는 릴레이 형식의 프로그램 ‘SeMA-라톤: 프로젝트 50’, 건축 관련 전공 학생을 중심으로 한 워크숍 ‘미술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쉬운 글쓰기 워크숍 ‘건축용어 해설집 만들기’, 어린이·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 ‘날아라 거킨!’, 세계 환경의 날(6월 5일) 기념 이벤트 등이 순차적으로 열릴 예정이다.
노먼 포스터는 “서울에 처음 온 게 거의 30년 전인데, 지난해 방문했을 때 새삼스럽게 많은 것이 변했다고 느꼈고, 특히 서울이 품고 있는 문화생활이 인상 깊었다. 이런 도시, 그리고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나와 포스터+파트너스의 작업을 소개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전시 소감을 전했다.
최은주 관장은 “노먼 포스터와 포스터+파트너스를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이번 전시를 통해 이들의 주요 프로젝트를 만나볼 수 있다. 올 한 해 서울시립미술관이 전시 의제 ‘건축’과 기관 의제 ‘연결’을 다각도로 해석하는 여러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들이 준비돼 있으니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7월 21일까지.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