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부회장에 선임된 지 10년 만에 회장으로 승진한 김남정 동원그룹 회장이 최근 동원그룹의 동일인으로 공식 지정됐다. 이에 물류·배터리 등 신사업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55년 만에 총수 교체한 동원그룹…바닥부터 경험 쌓은 김남정 회장
5월 16일 동원그룹은 전날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4년 대기업 집단 지정 결과’ 발표에서 동일인(그룹을 지배하는 총수)이 김재철 명예회장에서 김남정 회장으로 변경됐다고 밝혔다. 동원그룹의 동일인 변경은 창사 55년 이래 처음이다. 그룹 창업주인 김 명예회장은 창립 50주년인 2019년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그룹을 경영했던 김 회장은 올해 3월 이사회에서 회장 자리에 오른 바 있다.
동일인 변경에 따라 동원그룹은 ‘김남정 시대’를 본격 시작했다는 평가다. 특히 신사업 영역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실제로 김 회장은 대표 제품인 동원참치로 인해 ‘참치 회사’로 알려진 동원그룹을 식품뿐 아니라 소재, 물류 등을 영위하는 기업으로 브랜딩하는 데 일조해왔다.
이는 입사부터 다양한 분야를 거친 경험에서 비롯됐다. 김 회장은 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1998년 동원산업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부친의 경영 철학에 따라 참치 통조림 공장 생산직을 비롯해 서울 경동시장, 청과물시장 등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며 현장에서부터 경험을 쌓아 왔다.
영업 현장을 경험한 이후엔 동원F&B 마케팅전략팀장, 동원산업 경영지원실장, 동원시스템즈 경영지원실장, 미국 스타키스트(Starkist) 최고운영책임자(COO), 동원엔터프라이즈(현 동원산업 지주 부문) 부사장 등 계열사를 두루 거치며 경영 역량을 쌓았다.
2014년 부회장 승진 이후엔 특히 다양한 신사업을 추진하는 데 힘을 쏟았다. 10년 동안 10여 건의 인수‧합병(M&A)과 기술 투자를 진두지휘하며 수산, 식품, 소재, 물류로 이어지는 4대 사업 밸류체인(value chain)을 구축했다. 김 회장 주도로 최근 4년 동안 그룹의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투자액은 1조3000여억 원에 이른다.
‘2차전지 소재’ 사업 매출 700억 원 규모까지 확대 목표
구체적으로 동원그룹은 본래 강점이었던 식품 부문에서는 2015년 축산 도매 온라인몰 ‘금천’을 인수해 수산 식품에서 축산물 유통으로 식품 사업 영역을 넓혔다.
미래먹거리로 또 주목한 건 2차전지 소재다. 2차전지는 기술 발달로 수요가 늘면서 급격한 시장 성장이 예상되는 분야다. 배터리 업계는 2차전지 시장 규모가 2030년 4001억 달러(약 531조 원), 2035년 6160억 달러(약 815조 원)가 될 것으로 관측하기도 했다.
동원그룹은 2021년 계열사 동원시스템즈를 통해 원통형 배터리 캔 제조사 엠케이씨(MKC)를 인수해 2차전지 패키징으로 사업을 확장, 첨단 소재 기업으로 본격 도약했다. 1993년 포장재 사업을 시작한 동원시스템즈는 알루미늄, 캔, 연포장 등 식품 포장재 제조 기술을 활용해 2016년 2차전지 소재 사업에 뛰어들었다. 알루미늄을 얇고 고르게 펴는 기술과 참치캔 등을 제조하며 쌓아온 노하우를 기반으로 지속적인 투자와 R&D(연구개발), 기업 인수합병 등을 더해 양극박, 원통형 캔, 셀파우치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첨단 소재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3월엔 국내 최대 배터리 전시회 ‘인터배터리 2024’에 참가해 배터리 소재 관련 독자기술과 R&D 역량을 국내외 고객사에게 공개하기도 했다. 동원시스템즈가 지난 2022년 자체 기술을 통해 개발한 초고강도 양극박은 인장강도가 30㎏f/㎟로 기존 제품보다 약 15% 강해 안전성과 품질면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동원시스템즈는 이러한 초고강도 양극박을 고객사 니즈에 따라 맞춤형으로 생산해 주요 2차전지 제조업체로 공급을 늘려나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충남 아산시에 원통형 배터리 캔 공장을 증설해 연간 5억 개 이상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췄다.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 캔으로 꼽히는 46파이(지름 46㎜) 배터리도 오는 8월 양산을 앞두고 있다. 46파이 배터리 캔은 기존 21700(지름 21㎜, 높이 70㎜) 배터리 대비 용량이 5배 이상 높아 기존 제품을 대체할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동원시스템즈는 식품 연포장재 및 레토르트 파우치를 생산하며 쌓아온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체 개발한 셀파우치도 전시 공간을 따로 마련해 기술력을 선보인다. 파우치형 배터리는 원통형 캔, 각형 배터리와 비교해 에너지 보관 밀도가 크고, 자유롭게 구부리거나 접을 수 있어 폼펙터 경쟁에서 유리하다는 평가다. 동원시스템즈는 이러한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통해 올해 2차전지 소재 사업 매출을 700억 원 규모까지 확대시킨다는 목표다.
‘글로벌 터미널 운영사’로 발걸음…은탑산업훈장도 수상
물류 분야에서도 발을 넓혀가고 있다. 2017년에는 종합물류기업 동부익스프레스를 인수해 물류 사업을 확대하고, 4월 초 부산 신항에 국내 최초의 자동화 항만을 개장하며 ‘글로벌 터미널 운영사(GTO)’로 거듭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최근 가장 관심이 쏠린 건 자동화 항만 분야다. 전 세계 항만 자동화장비 시장은 2019년 38억 달러에서 2027년 57억 달러 규모로 연평균 6.4% 성장이 예상되는 분야다. 이에 따라 항만 전반의 스마트화와 함께 항만장비의 자동화·지능화에 대처하기 위해 국내에서도 지난해 한국항만장비산업협회가 출범되기도 했다.
동원그룹의 항만 물류 계열사 DGT는 4월 5일 본격 개장한 국내 최초의 완전 자동화 항만인 서컨테이너부두 2-5단계의 운영사다. DGT는 컨테이너를 선박에서 내리는 하역부터 장치장에 옮겨 쌓는 이송, 적치에 이르는 전 과정을 자동으로 작업한다. 2-5단계 부두는 5만톤급 컨테이너부두 3개 선석으로 구성됐으며 전체 면적은 84만㎡, 안벽 길이는 1050m에 달한다. DGT는 서컨테이너 피더 부두(2025년)와 2-6단계(2026년)까지 개장하면 총 길이 2135m의 6개 선석과 140만㎡ 규모의 야드를 보유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완전 자동화 항만으로 거듭나게 된다.
DGT는 서컨테이너부두 2-5단계의 완전 자동화를 위해 최신 하역 장비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 기술을 도입했다. 특히 무인이송장비(AGV)와 컨테이너크레인(STS) 등 모든 하역 장비를 국산화하고, 디지털 기반의 자동화터미널운영시스템(TOS)에 의해 작동하도록 설계해 부산항의 글로벌 물류 경쟁력을 높이고 국가와 지역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DGT는 무인 운영이 가능해 24시간 내내 일정하고 안정적인 물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기존 항만 터미널 대비 생산성이 20%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 2위의 환적항이자 세계 7위의 컨테이너 항만인 부산항은 이러한 완전 자동화 항만까지 갖춰 동북아 최고의 물류 거점 항만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또한 AGV, 크레인 등 모든 장비를 국산화해 국내 스마트 항만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국산 하역 장비 도입은 약 8500억 원의 경제적 파급효과와 2400여 개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모든 하역장비들이 전기로 구동되기 때문에 탄소 배출량도 줄어들어 친환경적이다.
김 회장은 스마트 항만산업에 기여한 공로로 4월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4월 5일 해양수산부와 부산항만공사, DGT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부산항 신항에서 개최한 DGT 개장식에는 윤석열 대통령,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 박형준 부산시장, 박완수 경남도지사, 강준석 부산항만공사 사장과 항만물류업계 관계자 약 500여 명이 참석했다.
김 회장은 “동원그룹이 구축한 국내 최초의 완전 자동화 항만이 글로벌 물류 거점으로 거듭날 부산항 신항에서 본격 상업 운영하게 돼 자랑스럽다”며 “2026년 개장을 목표로 추진 중인 서컨테이너부두 2-6단계도 차질 없이 준비해 부산항 신항을 전 세계적인 스마트 항만으로 구축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의 신사업 진출은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비록 성사되진 못했으나 물류 부문에서 국내 최대 해운사 HMM, 식품 부문에서 한국맥도날도 인수전에 뛰어들었듯 본격 ‘김남정 시대’를 맞은 올해 신중하면서도 과감한 도전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남정 회장은 “지난 50년간 동원그룹을 이끌어온 김재철 명예회장의 업적과 경영 철학을 계승하고 과감한 투자로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해 나갈 것”이라며 “고객뿐 아니라 임직원, 관계사, 주주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는 기업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1969년 설립된 동원그룹은 사업 지주사인 동원산업 산하에 동원F&B, 동원시스템즈, 동원로엑스, 스타키스트 등 18개 자회사와 26개 손자회사 등을 보유한 기업집단으로 성장했다. 동원그룹의 매출액은 지난해 10조 원(단순 합산 기준)을 돌파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