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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절규’ 너머 뭉크의 세계를 들여다보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비욘드 더 스크림(Beyond the Scream)’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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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73호 김금영⁄ 2024.06.03 11:32:16

전시의 시작점엔 뭉크의 자화상이 자리한다. 사진=김금영 기자

흔히들 ‘뭉크’라 하면 절망에 울부짖는 인물을 담은 대표작 ‘절규’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를 넘어 뭉크의 예술세계를 다각도로 들여다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전시명부터 ‘비욘드 더 스크림(Beyond the Scream)’이다.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전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5월 22일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뭉크 미술의 최고 권위를 가진 노르웨이 뭉크미술관을 포함해 미국, 멕시코, 스위스 등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23곳의 소장처에서 온 140여 점의 작품을 14개 섹션으로 나눠 소개하는 자리로, 대규모를 자랑한다.

1889년부터 1892년 뭉크카 프랑스에서 머물렀던 시기에서는 불타오르는 사랑의 절정을 상징하는 '키스'가 인상적이다. 사진=김금영 기자

전시를 기획한 디터 부흐하르트 큐레이터는 “대단한 예술가의 작품을 소개할 수 있어 기쁘다. 특히 이번 뭉크 전시는 아시아 최대 규모다. 너무도 잘 알려진 뭉크의 걸작인 절규를 비롯해 그의 개인적 경험을 다룬 작품들을 이번 전시에서 폭넓게 살펴볼 수 있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개인 소장가들의 숨겨진 보석과 같은 뭉크의 작품들도 공개한다”며 “프랑스 파리 외 이렇게 많은 대중이 예술에 대한 열정을 갖고 알고 싶어 하는 곳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번 전시를 꼭 한국에서 선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노르웨이의 화가이자 판화가인 에드바르 뭉크는(1863~1944)는 표현주의의 선구자이자, 유럽 현대 미술의 대표 주자로, 인간의 삶과 죽음, 사랑, 불안과 고독 등 인간의 심오한 감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으로 알려졌다. 특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왜곡된 형태와 강렬한 색감으로 무수히 많은 작품을 남겼고, 그의 독창적인 표현기법은 회화뿐 아니라 연극, 영화 등 독일 표현주의 예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전시는 1896년부터 1897년까지 파리에 체류하며 집중한 석판화, 목판화 작업을 통해 회화 기법의 실험을 거친 뭉크의 예술세계에도 다가간다. 사진=김금영 기자

뭉크는 평생에 걸쳐 작품의 형태, 재료 및 색상에 있어 관행적 예술 규범을 무시했다. 기존의 색 배열을 과감하게 탈피했고, 표면을 긁어내거나 작품을 눈과 비에 노출시키는 등 파격적인 실험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 통해 명백히 미완성적이며 습작처럼 보이는 회화를 선보였고, 판화에 에디션 넘버와 서명이 보함된 판본을 체계적으로 제작하는 것도 거부했다. 때로는 사진이나 무성영화의 요소를 그의 유화나 드로잉에 도입했고, 이를 통해 전통적인 매체나 기술의 경계를 무너뜨리려 했다.

이처럼 동시대 부르주아와 보수적인 미술 비평가들을 도발해 그 시대엔 문제아 취급을 받았고, 나치 독일에 의해 퇴폐 미술로 낙인이 찍혀 작품이 압수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시선을 사로잡는 강한 호소력을 지닌 작품들을 남긴 작가로, 현대미술의 대체 불가능한 상징이 됐다.

한 섹션을 할애해 소개하는 생의 프리즈는 사랑, 고통, 우울,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상징적이고 강렬한 표현을 발전시킨 뭉크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사진=김금영 기자

이번 전시는 이런 뭉크의 예술적인 공헌을 돌아보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전 세계 어디에서도 전시된 적 없는 작품 4점이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관람객을 만난다. ‘뱀파이어’(1895) 파스텔 버전, ‘표현적으로 그린 헨리크 입센의 유령 세트 디자인’(1906~1907), 표현주의 풍경화 ‘해안의 겨울’(1915), ‘옐로야의 봄날’(1915) 등 4점이다.

두 점뿐인 뭉크의 대표작 ‘절규’(1895) 채색판화도 감상할 수 있다. 노르웨이 라이탄 패밀리 컬렉션이 소유한 작품으로, 판화 위에 다시 채색해 유화와 동일한 지위를 지닌다는 설명이다. 노르웨이 뭉크미술관이 소장한 ‘생의 프리즈’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뭉크가 평생에 걸쳐 완성한 핵심 프로젝트인 생의 프리즈 작업은 생명의 원천, 매력, 키스, 이별, 절망, 울음, 노년, 죽음을 주제로 한 생명의 순환을 바탕으로 한다.

 

‘절규’ 채색판화 비롯해 ‘생의 프리즈’ 등 전시

'절규' 채색 판화본은 뭉크가 직접 채색한 것으로, 작품에 독특한 인상을 부여한다. 사진=김금영 기자

전시는 ‘크리스티아니아에서의 초년: 자연주의, 인상주의 및 상징주의와의 만남’부터 ‘프랑스에서의 시절: 달빛, 키스, 생 클루의 밤까지’, ‘회화 기법의 실험, 스타일의 변화 및 해체: 모더니즘에 대한 독창적 기여’, ‘생의 프리즈’, ‘공포와 죽음’, ‘풍경’, ‘누드’, ‘마돈나’, ‘만남’, ‘두 사람, 외로운 이들과 다리 위의 소녀들’, ‘초상화’, ‘급진적 혁신가’, ‘목판화와 실험’, ‘말년과 뭉크의 자화상’까지 14개 섹션으로 구성된다.

뭉크의 자화상으로 시작하는 전시는 젊은 시절 그가 기록한 크리스티아니아(현 오슬로)와 주변 지역의 소박한 풍경, 사람들을 보여준다. 풍경에 인간의 감정을 투영한 ‘그물을 고치는 남자’ 등이 눈길을 끈다.

 

1889년부터 1892년 뭉크카 프랑스에서 머물렀던 시기에서는 불타오르는 사랑의 절정을 상징하는 ‘키스’가 인상적이다. 뭉크는 1880년대부터 그의 사망 직전까지 키스라는 주제에 전념했으며, 수많은 스케치, 드로잉, 10점의 판화, 12점 이상의 회화 작품에서 이를 다양하게 다뤘다. 1890년대 ‘뱀파이어 인어’(1893~1893)를 포함한 뭉크의 첫 상징주의 작품들의 탄생 과정도 엿볼 수 있다.

'누드'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들의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1892년부터 1895년까지 베를린에서의 시기를 지나 1896년부터 1897년까지 파리에 체류하며 집중한 석판화, 목판화 작업을 통해 회화 기법의 실험을 거친 뭉크의 예술세계에도 다가간다. 이 기간은 뭉크가 회화가 사진에 대한 실험에 몰두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예컨대 양면 회화 ‘난간 옆의 여인’과 ‘목소리’는 ‘로스쿠어’라 불리는, 환영적인 물감 층과 화판의 물리적 완전성을 공격하고 입체적 실체로서 작품의 파괴를 계산한 혁명적 처리방식의 핵심 사례로 소개된다.

 

한 섹션을 할애해 소개하는 생의 프리즈는 사랑, 고통, 우울,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상징적이고 강렬한 표현을 발전시킨 뭉크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유명한 절규 작품 또한 이 섹션에서 볼 수 있다. 전시된 작품 절규 채색 판화본은 뭉크가 직접 채색한 것으로, 작품에 독특한 인상을 부여한다는 설명이다.

'마돈나' 작품이 설치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또 다른 주요 작품 중 하나인 ‘불안’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놀란 눈을 한 채 정면으로 다가오는데, 마치 가면을 쓴 것 같은 얼굴들은 두려움과 내면의 압도적 강박을 관객에게 직면시킨다. 불안과 더불어 공포와 죽음 또한 뭉크가 천착했던 주제다. 이를 보여주는 ‘병든 아이’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 누이의 죽음을 겪고 자신 또한 결핵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겼던 뭉크의 삶에서 비롯됐다.

 

이런 뭉크의 시선에 보인 풍경 또한 그의 감정과 마음 상태를 투영하는 공간으로서 화면에 표현됐다. 디터 부흐하르트 큐레이터는 “뭉크는 1898년의 ‘겨울 풍경’을 포함해 몇몇 판화작품에서 겨울 풍경을 제시했는데, 이 목판화에서는 처음으로 그림의 구조가 철저하게 붕괴되는 조짐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뭉크의 다양한 작품이 전시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누드’와 ‘마돈나’, ‘만남’ 등도 주목되는 섹션이다. 뭉크는 여성의 나체를 통해 욕망, 질투, 증오, 심지어 살인과 같은 극한의 감정까지 표현했다. 또한, 치명적인 여성과 연약한 여성을 하나의 그림에 결합해 19세기 미술의 전형적인 여성상을 종합한 마돈나라는 주제를 실험적으로 다뤘으며, 여성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남녀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화면에 풀어내기도 했다.

 

뭉크의 자화상은 전시의 시작과 더불어 말미 또한 장식한다. 작업 초기와는 달라진 그의 자화상이 눈길을 끈다. ‘말년과 뭉크의 자화상’ 섹션에선 특히 1930년 제작된 유화 ‘흐트러진 시야’와 1940~1943년 작 ‘자화상’을 통해 생의 마지막 몇 년 동안 죽음을 느끼며 더욱 강렬해진 화면이 특징이다.

전시의 시작과 더불어 마지막 또한 뭉크의 자화상이 장식한다. 왼쪽엔 '흐트러진 시야'가 설치됐다. 사진=김금영 기자

전시 감수를 맡은 이미경 연세대 교수는 “흐트러진 시야 작품은 거의 실명에 가까운 질환을 앓았던 뭉크가 자신이 바라본 세상을 화면에 구상한 작품이다. 한쪽 눈은 거의 보이지 않았기에 검은 얼룩 등이 화면에서 발견되는데, 극한의 절망 속에서도 뭉크는 고통을 마주하는 걸 주저하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며 “이 작품을 눈여겨 보면 고통을 외면하거나 덮어버리지 않고 계속 작품을 통해 스스로 치유하고자 한 뭉크의 마음이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디터 부흐하르트 큐레이터는 “뭉크의 현대미술에 대한 기여도는 분명하다. 그의 상징적 이미지 표현과 작품을 표현하는 매체에 대한 급진성은 다양하고 섬세한 변형을 만들어냈고, 많은 현대미술 작가에게 영감을 줬다. 그의 영향은 게오르그 바젤리츠, 미리암 칸, 페트 도이그, 매를린 듀마 등과 같이 내면의 세계를 표현주의적 기법으로 표현한 작가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며 “이번 전시는 뭉크의 놀라운 이미지와 그의 천재적인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기법을 발견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디터 부흐하르트 큐레이터, 이미경 연세대 교수, 이유경 댄지거아트컨설팅 컨설턴트 겸 변호사. 사진=김금영 기자

이번 전시를 함께 기획한 이유경 댄지거아트컨설팅 컨설턴트 겸 변호사는 “단순히 유명 작가의 그림을 본 데에 만족하는 게 아니라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전시 속에 투영해 큐레이터와 만들어가는 전시를 준비하고 싶었다”며 “환경변화나 과학 기술 발전 등 빠르게 바뀌는 환경 속 매일 불안함을 느끼는 일상을 살아가는 한국 관객에게 좌절, 불안, 죽음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도 삶의 의지를 놓지 않은 뭉크의 작품을 보여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미경 연세대 교수는 “뭉크는 대단한 화가다. 그는 19세기를 ‘절규’로 정의했는데,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태양’이라는 작품을 통해 다가오는 20세기라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를 담았다. 두 세기 걸쳐 살면서 하나는 정의를 내리면서 비전까지 제시한 것”이라며 “이번 전시는 단지 대표작 절규에 머무르지 않고, 그 너머를 바라봤던 뭉크의 시선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1~2전시실에서 9월 19일까지.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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