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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크루즈 디에즈의 ‘빛과 색채’ 그리고 관람객의 눈동자가 만날 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크루즈 디에즈 – RGB, 세기의 컬러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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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74호 김금영⁄ 2024.06.12 09:50:35

'크루즈 디에즈 – RGB, 세기의 컬러들'전 현장. 사진=김금영 기자

“예술과 삶은 하나이기 때문에 분리될 수 없다.”

17세에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한 뒤 젊은 시절 일러스트레이터로 활약, 색에 대한 관심을 확장하며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반까지 활동한 현대미술의 선두주자 카를로스 크루즈 디에즈의 말이다. 그는 실제로 자신이 삶에서 바라보는 모든 현상을 예술로 봤다. 그 또한 어린 시절 집에 돌아가던 길, 세상을 오렌지빛으로 물들이는 석양을 보고 색에 대한 큰 충격을 받은 것이 예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시작이었다.

크루즈 디에즈의 '색 포화'(1965/2024) 공간. 사진=김금영 기자

특히 크루즈 디에즈는 우리의 눈에 비치는 색에 주목했다. 작가는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서울 올림픽 공원에 작품을 설치하며 한국과 인연을 맺은 바 있는데, 이번엔 그가 바라본 빨강, 초록, 파랑의 세상이 ‘크루즈 디에즈 – RGB, 세기의 컬러들’전에 펼쳐졌다.

예술의전당(사장 장형준)과 반디트라소 라틴커뮤니케이션(대표 안진옥)이 공동 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퐁피두센터와 크루즈 디에즈 재단의 협력으로 진행되고 있는 글로벌 전시 프로젝트의 일환이기도 하다. 퐁피두센터와 크루즈 디에즈 재단은 크루즈 디에즈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지난해부터 작가의 생애와 예술적 업적을 새롭게 조명하기 위해 여러 행사와 전시를 추진해왔다.

공간엔 빨간색, 녹색, 파란색의 빛만 사용됐지만, 각각의 색이 겹치는 공간에서는 본래는 없는 보라색, 노란색 등이 보이기도 한다. 사진=김금영 기자

한국을 찾은 이번 전시는 작가가 평생 진행했던 색에 대한 8가지 연구(색 추가, 물리적 색상, 색채 유도, 색 간섭, 색상 투과, 색 포화, 색도계, 공간의 색) 중 연구를 관통하는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에 집중하며 빛의 원리까지 다가간다.

예술의전당 시각예술부 장윤진 큐레이터는 “빛과 색채의 거장으로 불리는 크루즈 디에즈는 탐험가이자 연구가이기도 했다. ‘왜 똑같은 방식으로 그림을 그려야 하는가’에 대한 그의 고민은 기존에 형태를 장식하는 요소로 쓰였던 색을 형태에서 해방시키고, 순수하게 색을 감상하는 메커니즘으로 발전했다”며 “이번 전시는 크루즈 디에즈의 빛과 색의 상호 작용에 대한 연구를 통해 현대미술에 새로운 차원을 제시한 예술의 여정을 따라간다”고 말했다.

'평면작품'(1959~2014/2024) 섹션. 사진=김금영 기자

전시장에서 처음 마주하게 되는 공간엔 오로지 공간과 빛이 존재하는데 그럼에도 공간이 꽉 찬 듯 빛의 존재감이 상당하다. 이 공간은 크루즈 디에즈의 ‘색 포화’(1965/2024)에 대한 연구를 다뤘다. 빛의 삼원색인 빨간색, 녹색, 파란색의 인공조명을 벽으로 분리된 공간에 각각 켜뒀다. 눈엔 단순히 세 가지 색만 보일 것 같지만, 막상 눈앞에 펼쳐지는 색의 세상은 매우 다채롭다.

빛이 비치는 벽을 바라볼수록 흰색이 보이기도 하고, 각각의 색이 겹치는 공간에서는 본래는 없는 보라색, 노란색 등이 보이기도 한다. 이는 관람객의 눈동자가 예술에 개입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평면 화면들은 색 포화와 같이 빨간색, 녹색, 파란색 세 가지 원색만을 품고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장윤진 큐레이터는 “색 포화는 미국에서 컬러 TV가 처음 나온 시기 크루즈 디에즈가 선보였는데, 당시 색을 이용한 작업 자체가 흔하지 않을 때라 굉장히 센세이셔널했다”며 “어떤 색을 바라볼 때 눈에 남는 잔상 효과와 색에 눈이 순응하는 과정까지 모두 고려한 작업”이라고 소개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눈은 태양광과 같이 빛의 파장에 따른 넓은 색 영역을 볼 수 있도록 설계돼 순수한 원색만을 보는 경우가 없는데, 색 포화는 빨간색, 녹색, 파란색 단일 원색으로만 이뤄진 공간으로 구성됐다.

'공간의 색'은 빨간색, 녹색, 파란색 사이 검은색 가느다란 선을 하나 배치해뒀는데, 이 검은색 선을 중심으로 무지갯빛 스펙트럼이 감도는 듯한 광경이 눈에 포착된다. 사진=김금영 기자

이 공간에서 다양한 색상을 동시에 받게 되는 망막은 장애를 일으키는데, 이 과정에서 색상이 희미해지고 눈을 통해 기존의 색과는 다른 색이 창조되는 듯한 예술적 경험을 하게 되는 것. 보색 효과에 따라 다른 색이 더 강렬하게 느껴지기도, 관람 위치와 방향에 따라 방은 계속해서 다채로운 색으로 변모한다.

이 모든 과정은 관람객이 있어야 가능하다. 방과 색은 그대로 있지만, 관람객의 눈동자를 통해 계속해서 색다른 모습을 보이는, 그야말로 관람객과의 상호작용이 있어야 완성되는 작업이다.

관람객의 눈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작업

영상 작업 '색 간섭 환경'(1974/2024) 섹션. 사진=김금영 기자

색 포화에 이어 ‘평면작품’(1959~2014/2024) 섹션이 기다린다. “색은 표면에 있지 않다. 공간에 있다”고 말한 크루즈 디에즈의 8가지 연구 중 세 가지 시리즈 ‘색 추가’, ‘색채 유도’, ‘공간의 색’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도 평면 화면들은 색 포화와 같이 빨간색, 녹색, 파란색 세 가지 원색만을 품고 있다. 그러나 표면에 반사된 색상들은 빛으로서 공간을 통해 관람객의 눈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사라지거나 색이 뒤섞여 새로운 색으로 인식된다.

예컨대 ‘공간의 색’은 빨간색, 녹색, 파란색 사이 검은색 가느다란 선을 하나 배치해뒀는데, 이 검은색 선을 중심으로 무지갯빛 스펙트럼이 감도는 듯한 광경이 눈에 포착된다. 또 이 빛깔들은 평면에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파도의 물결이 치듯 움직이는 듯한 착각도 든다.

예술의전당 시각예술부 장윤진 큐레이터가 자신만의 색채를 고안해볼 수 있는 경험 프로그램 섹션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장윤진 큐레이터는 “크루즈 디에크는 색 자체를 종이, 잉크 등 제한된 형식에서 해방시키려는 시도를 계속했다”며 “종이 위에서 물감을 직접 섞는 것이 아닌, 여러 색의 선들을 일정한 규칙으로 반복해서 배치하거나 여러 각도로 겹쳐놓는 그의 평면작품은 옵아트(Optical Art: 착시현상을 일으켜 환상을 보이게 하는 과학적 예술 장르)와 키네틱 아트(Kinetic Art: 작품 자체가 움직이거나 움직이는 예술 장르)의 영역을 넘나들며 실제로 작품엔 존재하지 않는 색상과 패턴을 창출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에겐 현상 자체가 예술이었다”고 말했다.

평면에 이어 영상 작업 ‘색 간섭 환경’(1974/2024)이 이어진다. 전시 공간 네 면 전체에 빛을 투사하는 설치작품으로, 수직선의 빛이 일정한 간격으로 움직이는데, 이에 따라 전시장 내부에 정지해 있는 오브제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또 관람객의 그림자도 자연스럽게 벽에 비치면서 실시간으로 작품과 교감하면서 색채 현상의 무대에 배우로서의 역할을 부여한다.

크루즈 디에즈의 예술 여정이 소개된 공간. 사진=김금영 기자

마지막은 자신만의 색채를 고안해볼 수 있는 경험 프로그램 섹션이 장식한다. 크루즈 디에즈가 1995년 직접 고안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통해 관람객은 전시장에 비치된 태블릿에서 프로그램의 배경에 깔린 여러 선과 그 위에 올라가는 도형을 조작해볼 수 있다. 프로그램 안의 모든 선들의 색은 변경이 가능하며, 도형의 종류, 크기, 위치, 각도 또한 변경 가능하다. 관람객의 손가락에 따라 변화하는 착시 현상들과 빛의 색으로 직접 색채학의 원리를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색채학과 빛의 이론을 기반으로 하는 크루즈 디에즈의 작품은, 단순 과학적 실험 이상으로, 관람객에게 색채학의 원리를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예술적 경험을 제공한다. 관련해 전시 연계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예술과 과학을 융합한 ‘사이언스 아트 랩’은 소수정예 미술관 교육 브랜드 ‘미술관이야기’와 함께한다. 작품 앞에서의 아트스토리텔링과 전시 연계 실습 수업을 통해 어린이의 시선에 맞춰 빛과 색의 움직임을 탐구한다. 7월엔 과학공학 크리에이터 유튜버, 컬러리스트, 아동미술 인플루언서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다양한 시각으로 전시를 경험할 수 있는 특별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크루즈 디에즈에 관한 내용이 상영되는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장윤진 큐레이터는 “예술의 목적 중 하나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한 크루즈 디에즈는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색에 주목했고 이를 판화, 설치작품 등 다양한 형식으로 확장했다. 즉 결과가 아닌 과정 자체를 작품에서 느끼도록 했고, 철학과 이념을 벗어나 직관적이면서도 다채롭게 풀어내는 그의 예술 세계는 여전히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며 “이번 전시가 일상에 대한 다채로운 시각을 가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크루즈 디에즈 스튜디오의 대표이자 작가의 아들인 카를로스 크루즈 디에즈 주니어는 “나의 아버지는 두 번의 중요한 기념비적 작품인 1988년 서울의 ‘물리적 색채 양면 조각’과 2022년 용인시의 ‘나선형 색채 유도’를 제작하며 매우 즐거워했다”며 “한국인이 이번 전시를 통해 20세기 색채의 선구자인 크루즈 디에즈의 예술 세계에 더 흠뻑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9월 18일까지.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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