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4호 김응구⁄ 2024.07.09 13:13:23
정동(貞洞)이 있는 중구는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색이 아름답고 모양은 친근하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다. 젊든 늙었든 모두에게 어울리는 동네다. 무엇보다 근대문화시설이 곳곳에 이어져 있고, 거기엔 구구절절 사연도 많다. 밤이면 또 어찌나 예쁜지. 중구는 정동이 있어 참 좋겠다.
서울 중구(구청장 김길성)가 5월 24~25일 이틀간 덕수궁과 정동 일대에서 ‘정동야행(夜行)’을 열었다. 지난해는 가을에 밤길을 오갔지만, 올해는 봄밤을 택했다. 그래서 ‘로맨틱 정동, 봄으로 피어나다’라는 부제(副題)를 붙였다.
정동야행은 중구를 대표하는 축제다. 곳곳에 자리한 근대문화시설들은 이때 다 같이 문을 연다. 특히 몇몇 곳은 이때에만 개방하니 멋모르고 찾은 사람들에겐 ‘눈호강’ 그 이상이다.
근대문화시설, 돌담길, ‘광화문 연가’… 참 예쁜 정동
정동야행은 2015년 시작됐다. 국내 최초의 문화재 야행이다. 해마다 서울시민과 외국인 관광객 20만여 명이 찾는 대규모 축제다. 2018년까지 매년 5월과 10월에 열렸고, 이듬해부터 서울시가 맡아 운영하다 지난해 10월부터 다시 중구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올해엔 서른여섯 개 역사문화시설이 정동야행에 참여했다. 문화재, 박물관, 전시관, 대사관, 미술관, 종교시설, 공연장, 공공기관 등 다양하다. 이들은 야간 개방, 공연, 전시, 특강 등으로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들어 맸다.
정동길은 덕수궁 돌담길에서 시작해 서울시립미술관, 정동제일교회, 국립정동극장, 이화여고, 경향신문사로 이어지는 길이다. 군데군데 근대사의 굴곡이 고스란히 남아있지만, 그런 이미지와 달리 ‘연인의 길’로도 유명하다. 한때 덕수궁 돌담길을 거닐던 연인은 헤어진다는 속설이 있었는데, 실제 얼마나 많은 커플이 이별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가수 이문세의 노래 ‘광화문연가’에 등장하는 ‘눈 덮인 교회당’이 정동제일교회라는 이야기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동이 ‘연인의 길’인 건 이곳에 녹아있는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1396년 태조(太祖) 이성계는 둘째 부인인 신덕왕후(神德王后)가 세상을 떠나자, 능을 경복궁에서 보이는 황화방(皇華坊) 언덕에 조성하고 이를 ‘정릉(貞陵)’이라 이름 지었다. 당시 도성 안에는 능을 들일 수 없었는데도 지금의 정동 일대에 들인 것이다. 그만큼 이성계는 진심으로 신덕왕후를 사랑했다.
그런 정릉을 태조가 죽고 나자 이방원이 도성 밖으로 이장해버렸다. 이 때문에 정릉은 지금의 성북구 정릉동으로 옮겨졌다. 원래의 자리에는 없어도 지명은 그대로 남아 정동이 됐다.
재언하지만 정동은 대한민국 근대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고종(高宗)이 일제의 눈을 피해 덕수궁에서 나와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했을 때 다녔던 거리 ‘고종의 길’이 있고, 아관파천(俄館播遷·1896)의 현장 러시아공사관은 복원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을사늑약(乙巳勒約·1905)이 체결됐던 장소인 덕수궁 중명전(重明殿)과 미국·영국·캐나다 대사관도 그대로 남아있다.
신식 교육 기관 배재학당(1885), 사립 여성 교육 기관 이화학당(1886), 서양식 개신교회 정동제일교회(1887), 서양식 건축물 덕수궁 석조전(石造殿·1910). 정동길을 대표하는 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앞에 ‘최초’라는 단어가 더 붙는다
‘정동야행’ 2015년 시작… 해마다 20만 명 찾아
24일 오후 6시 정동제일교회 앞마당. 크고 웅장한 북소리가 정동을 두드린다. 오프닝 공연 ‘진격의 북소리’다. 정동야행의 시작이다.
7시 덕수궁 중화전(中和殿) 앞 무대. 김길성 중구청장이 정동야행의 개막을 선언한다. 동시에 고궁 음악회가 이어진다. 국립창극단의 김준수와 클래식 연주자들로 구성된 ‘클럽M’은 전통음악과 클래식을 버무린 선율을 정동 일대에 흘려보냈다.
슬며시 자리를 빠져나와 돌담길을 걷다 보니 새콤한 커피 향이 발길을 정동극장 쪽으로 잡아끌었다. 이곳 야외마당에선 ‘정동다향(茶香)’이 한창 열리는 중이다. 커피와 음악을 함께 즐기는 힐링 콘서트다. 처음 보는 공연, 조금은 신선했다. 다음 날에는 커피 대신 차(茶)와 음악을 주제로 공연을 이어갔다.
정동야행 ‘N차’ 방문객들이 손꼽는 프로그램이라면 단연 대사관 투어다. 중구는 ‘축제의 베스트셀러’라는 표현을 썼다. 올해는 주한캐나다대사관과 주한영국대사관이 일반에 공개됐다. 개인적으로는 이화학당의 이화박물관을 가보고 싶었다. 허나, 대사관도 이화박물관도 들어가 보지 못했다. 사전 신청 후 추첨을 거쳐 관람 대상자를 선정했기 때문이다. 내년을 기대할 수밖에.
문화해설사가 따라붙으며 맛깔나게 얘기해주는 ‘다 같이 돌자 정동 한 바퀴’ 역시 반응이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사전 예약 시 10:1의 경쟁률을 보였다고 한다. 매시(每時) 정각, 매시 30분마다 운영했는데, 한국어 해설은 20회, 영어 해설은 4회, 일어와 중국어 해설은 2회씩 진행했다. 문화해설사는 배재학당 역사박물관부터 서울시립미술관, 정동제일교회, 이화박물관, 옛 러시아공사관, 중명전까지 걸으며 이들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줬다.
25일 오후 4시부터 30분 동안은 중명전에서 국가무형유산인 ‘서도소리’ 공연이 펼쳐졌다. 서도소리는 황해도와 평안도, 즉 서도(西道) 지방에서 불렀던 긴 잡가(雜歌)다. 이어 7시부터는 가야금 공연단이 ‘누룽지’라는 제목의 구수한 연주도 선보였다.
축제의 백미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였다. 정동제일교회 벧엘예배당에선 24일과 25일 오후 파이프 오르간 공연이 펼쳐졌다. 첫날은 6시, 둘째 날은 4시 반이었다. 이곳 파이프 오르간은 미국산이다. 벧엘예배당의 파이프 오르간이 유명한 이유는 또 있다. 바로 그 뒤 작은 공간 때문이다. 송풍실로 쓰인 이곳은 역사적으로도 매우 가치 있는 공간이다. 3·1운동 당시 이 좁은 곳에서 유관순 열사와 학우들은 일본 경찰들의 눈을 피해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등사(謄寫)했다.
교회와 성당서 울린 파이프 오르간… 축제의 백미
정동제일교회에서만 파이프 오르간이 울렸던 건 아니다.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도 이틀 동안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 이어졌다. 24일엔 오후 7시 반과 8시 반, 25일엔 오후 4시와 5시에 성당 문을 열었다. 이 중 24일 두 번째 연주를 들었다. 공연마다 주제가 있는 듯했는데 이번 것은 ‘모차르트의 작은 밤 음악회’라고 했다. 귀와 머리와 가슴이 동시에 울리는 경험을 처음 해봤다. 그 와중에 중구 관계자는 “저 파이프 오르간은 100년 된 영국제”라고 귀띔했다.
오르간 연주에 홀리는 중 ‘막귀’에도 착착 감기는 곡이 있었다. 대충 찾아보니 모차르트의 세레나데 13번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Eine Kleine Nacht Musik)’다. 많이들 들어봤을 세레나데는 ‘밤의 음악’이라는 뜻. 사랑하는 이의 집을 찾아가 2층 창 밑에서 불러주던 그 음악이다. 듣고 있자니 대개 그들의 세레나데는 5월 봄밤에 은밀히 피어나지 않았을까 싶었다.
두 곳의 파이프 오르간 연주는 정동야행의 ‘스테디셀러’다. 특히, 외국인에게 인기가 좋다. 청음이 좋은 이라면 미제와 영국제의 소리를 비교하며 듣는 재미도 쏠쏠하겠다. 마음이 바빠 연주 후 진행한 성당 투어에는 참여하지 못했는데, 두고두고 후회로 남을 것 같다.
정동야행을 준비한 중구 문화정책과 관계자는 “단순한 먹을거리, 즐길 거리 위주의 축제는 한계가 있다”고 얘기해줬다. “정동은 근대역사문화가 활짝 꽃피웠던 곳으로, 공간 자체가 ‘스토리’인 것이 차별화된 점”이라고도 했다. 은근한 자신감이 밉지 않았다.
정동야행은 여기저기 밝혀놓은 조명도 크게 한몫했다. 장밋빛 청사초롱은 돌담길을 붉게 물들였고, 정동공원에는 꽃 조명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덕수궁 돌담길 한번 걸어보지 않은 자 있을까. 언젠지 모를 그때의 추억과 맞물려 봄밤은 더욱 설렜다. 더욱 간지러웠다.
중구 측은 올해 축제에 약 13만 명이 다녀갔다고 알렸다. 지난해보다 3만 명 정도 늘었다.
김길성 중구청장은 “‘근대역사의 아픔은 잊지 말되 눈부신 발전을 이뤄낸 우리의 모습에 자부심을 갖자’는 게 정동야행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라며 “K-문화가 전 세계를 사로잡은 후 K-역사의 관심도 높아져 정동야행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정동야행은 스탬프 투어 형식으로 진행됐다. 스물한 곳의 역사문화 시설에서 방문 기념 도장을 찍어줬는데, 열 개만 받아도 기념품을 챙겨줬다. 개인적으론 찍지도, 그래서 받지도 않았다. 정동 그 자체가 선물인데 무얼 또 바랄까.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