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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석고부터 비누·말하는 조각까지…여성 조각가 16인이 풀어낸 조형세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 창작산실 협력전시 ‘집(ZIP)’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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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77호 김금영⁄ 2024.08.06 15:26:16

아르코미술관 '집(ZIP)'전 1층 전시장 전경. 사진=김금영 기자

첨단 기술의 발전이 눈부신 현재, 예술계에서도 이를 활용하는 사례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이 가운데 재료, 물성, 조형이라는 재료의 기본 요소로 돌아가 조각을 다시금 들여다보는 자리가 마련돼 눈길을 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정병국) 아르코미술관(관장 임근혜)이 창작산실 협력전시 ‘집(ZIP)’을 마련했다. 시각예술 창작산실 사업은 시각예술 분야의 발전에 기여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화예술진흥기금사업 중 하나로, 올해는 집 기획전이 주인공이 됐다.

이번 전시는 아르코미술관이 협력하고, 조각가 최태훈, 미술사연구자 강민지, 독립큐레이터 방수지로 구성된 기획단이 연출했다. 특히 최태훈은 본인 또한 조각가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들과 소통하며 전시를 기획했다.

이립의 '할로우'(2024)는 브레이킹 동작 중 하나인 ‘할로우 백’을 시도하는 비걸의 모습을 참고해 물구나무에 가까운 자세로 선 여성의 모습을 조형한 작품이다. 사진=김금영 기자

그는 “이번 전시엔 1930년대생 80대 원로 김윤신부터 1990년대생 20대 신진 박소연까지, 다양한 세대에 걸친 동시대 여성 조각가 16인의 작품을 아우른다”며 “전시명 집은 ‘집 파일(ZIP File, 압축파일)’처럼 조각가 16인의 조형 실험 감각을 한자리에 모아 다양한 세대의 조각가들을 ‘지퍼(zipper)’처럼 연결하는 은유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참여 작가들의 작업실을 2회 이상씩 방문했다. 전시 준비기간 동안 참여 작가들은 기획단과 소통하면서 그들이 재료를 다루는 방식, 작품에 드러내고자 한 조형과 물성에 대한 계획, 경험 등을 상세히 전해줬다”며 “나 또한 작가이다 보니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참여 작가들의 작업실에서 그들이 사용하는 재료를 직접 보고, 기법뿐 아니라 재료의 물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등 다양한 것들을 물어봤다. 답변을 들으며 나도 배운 부분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한국 미술사에서 조각의 물성과 질료적 특성에 주목하는 관점은 1970년대부터 시도돼 왔지만, 이를 한국 여성 조각가에게 집중해보는 일은 아직도 가능성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며 “이번 전시는 그 가능성을 조명하면서 조각가 16인 그리고 그들의 조각을 동시대 맥락 속에서 펼치고자 한다”고 말했다.

80대 원로부터 20대 신진까지 조각을 탐구하는 여정

신미경 작업의 주재료는 비누다. 물에 녹아 없어지는 이 비누로, 오랜 시간을 상징하는 고전적 유물을 만들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사진=김금영 기자

전시장 1층엔 김주현, 이립, 김태연, 신미경, 노시은, 노진아, 박윤자, 정문경 작가의 작품이 설치됐다. 작은 단위가 일련의 법칙으로 결합하면서 발생하는 형태와 구조를 조각적으로 연구해온 김주현은 ‘확장된 뫼비우스의 띠-구형’(2024)을 통해 점, 선, 면을 기본으로 재료를 쌓아 올리거나 이어 붙여 나가는 형태를 공간에 펼친다.

이립의 ‘할로우’(2024)는 브레이킹 동작 중 하나인 ‘할로우 백’을 시도하는 비걸의 모습을 참고해 물구나무에 가까운 자세로 선 여성의 모습을 조형한 작품이다. 인체의 단련된 근육과 힘의 분산으로 중력을 이겨내야 거꾸로 설 수 있는 것처럼, 이립은 나뭇가지들을 끈으로 묶고, 구조물 위에 석고 기반의 점토를 덧붙여 인체의 동세를 표현하며 안정적으로 스스로 설 수 있도록 할로우를 창조했다.

노시은(왼쪽), 노진아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김태연의 ‘말린 어깨’(2023)는 본인의 신체를 캐스팅해 제작한 작업으로, 기념비 재료로 쓰이는 청동으로 머리가 없는 반신상 조각을 제작했다. 그는 육체가 몸의 틀이자, 내가 나임을 인식하게 하는 테두리이자 틀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신미경 작업의 주재료는 비누다. 물에 녹아 없어지는 비누로, 오랜 시간을 상징하는 고전적 유물을 만들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화석화된 시간’(2018)은 오래된 도자기를 비누로 복제하고, 동박과 은박을 입혀 그 표면을 부식시킨 작품으로, 전시 기간 중에도 계속해서 부식되며 실제 제작 시기를 가늠하기 어렵게 한다.

노시은은 부정형의 형태와 표현적 기법이 두드러지는 용접 조각 ‘카리스마’(2000)를 선보인다. 동, 구리 등 견고한 금속을 불에 달궈 유연한 상태로 만든 뒤 구상과 추상 사이 조형을 제작했다. 특히 산소 토치를 이용한 용접 자국과 금속을 녹인 흔적이 작업의 표면에 거칠게 드러난다.

노진아의 ‘히페리온의 속도’(2022)는 관람객과 대화하고, 움직임을 따라가는 조각이다.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현장에서 관람객이 음성으로 질문하면, 작품 자체의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대답을 추출하거나, 생성형 언어모델을 이용해 답한다. 또한 눈알은 관람객의 동선을 따라 움직인다. 거대한 두상은 흙으로 만들어진 형상을 레진으로 떠내 기계를 장착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으로, 첨단 기술이 쓰였으나 그 기저엔 전통적인 조각의 형태가 자리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정문경의 'Yfoog'(2016)는 거대한 크기가 압도적이다. 디즈니 캐릭터 ‘구피’ 봉제 인형을 확대하고 뒤집어 만든 결과물이다. 사진=김금영 기자

한국의 2세대 조각가인 박윤자는 추상화된 인간 형상을 테라코타, 세라믹, 유리를 이용해 표현한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는 신작 ‘F2057’, ‘F2058’, ‘F2059’(2024)는 작가가 평생 실험해 온 다양한 기법, 지금까지 수집한 재료들을 아상블라주처럼 결합한 작품으로, 그동안의 조형방식, 재료와 불의 관계 실험, 일상적인 관심사 등 작은 조각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정문경의 ‘Yfoog’(2016)는 거대한 크기가 압도적이다. 디즈니 캐릭터 ‘구피’ 봉제 인형을 확대하고 뒤집어 만든 결과물로, 작가는 공장에서 인형을 제작하는 것처럼 꼼꼼한 재단과 손바느질을 거쳐 오브제를 제작했다. 확대 및 뒤집기 과정에서 바느질 흔적과 정리되지 않은 솔기가 모두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본래의 귀여운 이미지가 낯설게 바뀌고 여기서 묘한 불편함이 생긴다. 작가는 이처럼 불편한 감정들에 대해서도 주목하며 다양한 담론을 형성한다.

조각의 물성과 질료적 특성에 주목

아르코미술관 '집(ZIP)'전 2층 전시장 전경. 사진=김금영 기자

2층 전시장에선 김윤신, 조혜진, 오묘초, 서혜연, 홍기하, 한애규, 정소영, 박소연 작가의 작품이 기다린다. 1세대 여성 조각가인 김윤신은 주로 단단한 재료를 이용해 조각한다. 재료를 자르고 벗겨내 생긴 특유의 물성과 비정형적 형태는 ‘서로 다른 둘이 만나 상호작용하며 하나를 이루고, 그 하나가 다시 둘로 나뉘어 각각 또 다른 하나가 된다’는 그의 ‘합이합일 분이분일’ 예술 철학을 잘 보여준다.

조혜진의 ‘오늘의 조각 연작’(2017, 2024)은 기존의 제품을 개선, 보완하고 이것이 향후 생산되기를 기대하며 작성한 실용신안문서를 읽고 문서에 기술된 형태를 상상하며 조형한 작품이다. 작가는 이면지, 점토, 나무막대 등 작업실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가벼운 재료들을 이용해 실용신안문서 내용을 보면서 실제로 본적 없는 물건을 조형적으로 상상해보는 시도를 했다.

조혜진의 '오늘의 조각 연작'(2017, 2024)은 기존의 제품을 개선, 보완하고 이것이 향후 생산되기를 기대하며 작성한 실용신안문서를 읽고 문서에 기술된 형태를 상상하며 조형한 작품이다. 사진=김금영 기자

오묘초는 유리, 세라믹, 알루미늄을 사용해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미래를 상상한 조각 작품 ‘탄생(Birth)’과 ‘미래 시제’를 선보인다. 재료로 쓰인 깨지기 쉬운 유리와 강한 스테인리스는 얼핏 상반된 성질로 접점이 없는 것 같지만, 1200도에 다다르면 끈적한 액체로 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정 조건(고온)에서 동일하게 액체 상태의 물성이 돼 융합할 수 있는 이 재료들을 녹여 빚은 형태로 작가는 자신이 포착한 미래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서혜연의 ‘Untitled(rip in)’는 신체 움직임을 실험한 작품이다. 작가는 자신의 키보다 큰 사이즈의 스펀지를 손으로 뜯어내면서 내부를 파고 들어가며 움직임을 시각화했다. 이를 통해 유기적 형태가 조각으로 어떻게 드러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오묘초는 유리, 세라믹, 알루미늄을 사용해 기술의 발전기 가져올 미래를 상상한 조각 작품을 선보인다. 사진=김금영 기자

환경에 반응하고 불화하는 조각을 만들어온 홍기하는 이번 전시에서도 돌, 석고를 다루며 전통적인 재료가 가지는 조형 언어의 가능성과 유효성을 연구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엄마와 아이(Mother and Child)’(2022)는 깨뜨린 대리석 조각을 틀에 넣고 석고물을 부어 굳힌 작품이다. 석고물이 대리석 조각을 감싸면서 매끈하게 굳은 면과 돌과 석고가 전혀 붙지 않은 면을 날렵하게 대조하면서 완벽한 하나로 융합할 수 없는 관계를 시각화했다.

한애규는 흙을 빚어 고온에 구워내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전시에 선보인 신작 ‘천 년 동안 잠자던 바다여신은 왜 깨어났을까’(2024)는 여신상 형태의 조각이다. 둥글고 풍성하게 부풀려진 바다 여신의 형태 위에 푸른빛 유약을 붓으로 거칠고 둥글게 발라, 소용돌이치는 파도와 함께 휘몰아치는 모습으로 여신의 분노와 위엄을 표현했다.

정소영의 ‘응결’(2023)은 더운 날 물잔 바깥 바닥에 고인 물자국에서 비롯됐다. 작가는 시간이 지나면 모두 증발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이 물자국의 형태와 부피를 알루미늄으로 주조함으로써 응결되고 증발하는 일시적인 현상을 영구적인 상태로 전환해 전시장 바닥에 설치했다. 그리고 벽면엔 ‘좌표’(2024)가 이어진다. 판의 표면에 은거울 용액을 뿌리고 산발적인 화학반응을 일으켜 각기 다른 투명도와 반사율을 지닌 판으로 만들었다. 좌표는 왜곡 반사된 전시 공간을 비추기도, 작품 뒤의 벽을 투명하게 투과하기도 하면서 전시 공간 속 경계를 흐리게 한다.

홍기하(앞), 정소영의 작품의 설치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박소연은 알루미늄 판을 두들겨 재료에 직접적인 변형을 가하는 ‘단조 기법’을 통해 ‘알-트’(2024)를 제작했다. 작품명은 ‘알루미늄을 치다’는 뜻의 ‘aluminum thump’의 머리글자와 키보드 ‘alt’ 키의 ‘전환, 대체’의 의미에서 따왔다. 작가는 철보다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알루미늄의 특성을 활용해 집요하게 두드렸고, 각각의 두들김은 표면의 굴곡과 패턴으로 치환돼 작품에 고스란히 남았다.

아르코미술관 임근혜 관장은 “해마다 창작산실 사업 선정팀을 1팀 이상씩 소개하다 코로나19로 잠시 쉬었다가 올해 다시금 재개했다”며 “최근 예술계도 디지털적인 방점을 찍고, 비물질적인 재료를 많이 다루는 시대에 재료의 물성과 감각을 다시금 돌아보는 이번 전시는 조각에 대해 깊이 탐구하는 여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아르코미술관에서 9월 8일까지.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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