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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림의 현대사진산책+] 함께 짜는 매트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미술가들’전 이 이란, 인 시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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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83호 천수림(사진비평)⁄ 2024.11.04 11:35:21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전시 전경. 사진=천수림

예술이 사회 변화를 촉진할 수 있을까. 말레이시아 작가 이 이란(YEE I-Lann)은 잘 알려지지 않은 동아시아 역사를 매개로 고착된 집단적 기억의 문제와 오늘날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중국 작가 인 시우전(尹秀珍)은 예술이 사회 변화를 이룰 수 있는 매개임을 믿는 작가다. 오염된 물을 되돌릴 수 있을까? 인류세를 사는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사안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두 작가는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전(9월 3일~2025년 3월 3일)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이란, ‘측정 프로젝트’

이 이란, '측정 프로젝트: 챕터 1-7'. 디지털잉크젯프린트, 가변크기. 2021-2022. 사진=천수림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에 기반을 둔 다학제적 예술가 이 이란은 사진미디어, 직조 장인들과의 협업, 필름, 일상적인 오브제 등을 사용해 말레이시아 식민지 과거에 대한 역사를 다뤄왔다.

작가는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전에 참여 중이다.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은 가부장제, 국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재생산됐던 ‘아시아’라는 지리·정치학적 장소에서 ‘몸’에 기입된 문화 타자성의 경험을 드러내면서 근대성에 의문을 제기했던 작품들을 소개한다. 특히 자연과 문화, 사고와 감각, 예술과 삶을 분리하지 않고 통합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여성문화의 오랜 특질에 주목한다.

이번에 소개된 이 이란의 사진 시리즈 ‘측정 프로젝트: 챕터 1-7’은 전통 매트인 ‘티카르(Tikar)’를 제작하는 말레이시아 팔라우 지방의 토착민인 여성의 직조 커뮤니티에서 영감을 받았다. 오마달이라 불리는 이들은 동남아시아 전통매트인 티카르를 제작할 때 마치 한편의 연극이나 무용을 하듯 구성된 방식을 따른다. 팔라우 오마달 전통에서는 센티미터, 인치 등의 서구 측정법보다는 토착 여성 직조공의 발걸음을 이용해 티카르의 크기를 측정한다. 티카르는 공동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이다. 사람들이 매트 위에 모여서 대화하고, 음식을 나누는 데 사용된다.

이 이란, '측정 프로젝트: 챕터 1-7'. 디지털잉크젯프린트, 가변크기. 2021-2022. 사진=천수림

이 작업은 작가가 쿠알라룸푸르에서 보르네오 섬의 사바로 이주하면서 토착민 여성 직공들과 협업 프로젝트를 전개하며 시작됐다. 이 이란은 풀라우 오마달의 사마 디라우트 커뮤니티의 직공들이 맨발로 매트의 치수를 계산하는 측정 시스템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런 전통적인 측정법은 신체적인 수행성으로 이루어진다는 평등주의, 페미니즘, 비위계적 질서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여성 직조공들은 티카르를 측정하기 위해 첫 번째 발걸음을 내디딜 때 ‘삶!’(알롬·Allom)이라고 외친 후 다음 발걸음에는 ‘죽음!’(아마타이·Amatai)이라고 외친다. 이렇게 치수를 재는 과정은 티카르의 가장자리를 따라 계속된다. 마지막은 항상 ‘알롬!’으로 끝을 맺어야 하는 규칙을 지킨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 매트의 반복되는 모티브는 종종 지역사회의 유산을 반영하는 해양 패턴이나 추상적인 풍경을 담고 있다.

‘측정 프로젝트’는 총 7개의 챕터로 구성돼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즉 티카르와 메자(Meja·탁자)를 둘러싼 인물들의 다양한 퍼포먼스를 볼 수 있다. 작가는 직공, 영화 제작자, 무용수, 동료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 및 친구들과 협업했다.

이 이란, '측정 프로젝트: 챕터 1-7'. 디지털잉크젯프린트, 가변크기. 2021-2022. 사진=천수림

티카르가 공존과 순환, 대화와 연결, 위계 없는 공동의 삶을 상징한다면, 메자는 공간을 구분하고 인물들 간의 물리적, 사회적 거리를 설정하는 권력과 질서, 제도를 상징한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 매트의 반복되는 모티브는 종종 지역사회의 유산을 반영하는 해양 패턴이나 추상적인 풍경이 특징이다. 동남아시아 군도의 모든 민족은 매트를 만드는 전통과 매트의 이름을 갖고 있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100개의 매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는 우리에게 테이블이 없었다는 것을 언어적으로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라며 “우리의 테이블은 술탄을 위한 펠라민, 결혼식 단상 또는 빈랑을 위한 두랑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매트는 주로 여성을 통해 전해지는 이모티콘처럼 읽어낼 수 있는 언어이기도 하다. 이 이란의 직조 프로젝트에는 매트와 러그에서 드러나는 전통적인 공동체 정신과 상반되는 사물인 테이블과 책상을 납작하게 표현돼 있다. 이는 말레이시아가 그간 겪은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점령자들의 식민지 역사를 상기시키는 반복적인 모티브로 쓰인다.

그동안 말레이시아엔 중국의 카피탄, 인도의 체티아르, 영국의 당국자 등 다른 사람들과 함께 테이블이 들어왔다. 일종의 '테이블의 군대'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다양한 인물군상과 퍼포먼스를 통해 역사적 기억을 상기시킨다.

인 시우전, 워싱 리버(Washing River)

인시우전, '강을 씻기'. 퍼포먼스, 사진. 1995. 사진=천수림

당나라 시인 유유시의 ‘모래를 씻는 파도’는 아홉 편의 시로 구성됐다. 다섯 번째 시에는 이런 구절이 들어 있다. “주진강 양안에는 꽃이 가득하네. 봄바람이 불고 파도가 모래를 씻어내네. 처녀는 원앙 한 마리를 잘라 흐르는 강물에 던져 저녁노을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당 시인 유유시가 돌아와 오늘날의 강을 본다면 어떤 시를 쓸 것인가. 베이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중국 작가 인 시우전은 이에 화답하고 있다.

인 시우전은 조각과 설치 매체를 통해 집단의 기억과 사회적 이슈에 대응하는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작업하고 있다. 의류, 신발, 여행가방처럼 중고물건을 활용해 작업해왔다. 인이 조립한 재료는 기억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중국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한 도시화, 성장하는 글로벌 경제 속에서 공동체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다.

이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전에 출품된 '강을 씻기(워싱 리버, 1995)'는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다. 작가가 이 작업을 통해 유화에서 개념적인 조각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인시우전, '강을 씻기'. 퍼포먼스, 사진. 1995. 사진=천수림

이 작품은 관객 참여형 작품으로 청두의 푸난강에서 시작된다. 작가는 10세제곱미터의 오염된 물을 채취한 후 냉동시켰다. 이렇게 완성된 얼음벽돌을 강둑에 쌓은 후에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얼음조각을 닦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이틀 후 얼음은 모두 녹아 다시 강으로 흘러들어갔다.

인 시우전은 퍼포먼스 ‘워싱 리버(洗河, Washing River)’를 통해 환경 공해문제를 제시하고 어떻게 대응할지 사회적인 문제를 제시했다. 중국은 1980~1990년대에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많은 농촌 지역이 공장으로 가득한 산업 도시로 변모했다. 대표적인 도시가 청두다.

청두를 가로지르는 푸난강의 옛이름은 주오진강으로 청두 사람들에게는 어머니의 강으로 불렸다. 당나라 시인들은 이 강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며 '봄바람의 파도가 모래를 씻어내면 양쪽에 꽃이 피는 곳'이라고 묘사했다. 경제 성장을 우선시하면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외면당했다. 푸난강은 청두 폐수의 80%를 받아들이는 하수도로 전락하고 말았다. 1993년이 돼서야 푸난강의 심각성이 수면으로 떠오르며 종합적인 재생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인시우전, '강을 씻기'. 퍼포먼스, 사진. 1995. 사진=천수림

인의 ‘워싱 리버’는 이런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인은 푸난강의 오염문제를 얼음벽돌로 시각화함으로써 사회적 문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했으며 어떤 태도를 지니고 행동해야 할 지를 보여준다. 인은 한 인터뷰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쳐다보곤 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지만, 우리가 강의 오염된 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많은 질문을 하고 자발적으로 ‘얼음 청소에’ 참여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얼음 벽돌을 씻는 노동 과정과 조각이라는 승화된 행위를 통해 커뮤니티를 연결하고 사회를 개선하는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데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다크모포페스티벌(Dark Mofo festival) 특별전에 소개된 ‘워싱 리버’ 설치 영상(2014)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더웬트 강 옆 설리번스 코브의 호바트 해안가에서 진행한 퍼포먼스 워싱 리버(Washing River 2014)도 청두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이 얼음을 깨끗이 씻는 작업을 권했다. 오염된 강물을 162개의 대형 벽돌로 얼린다는 콘셉트와 강을 정화하는 의미로 대걸레와 깨끗한 물을 사용해 씻는 방식은 그대로 적용된다. 이 프로젝트는 1995년 중국 쓰촨성 청두의 푸난강 이후 네 번째 버전이다. 인의 작품은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환경문제에 직면한 중국과 전세계 산업화로 인한 강 오염 문제를 보는 데에 큰 차이가 없다. 각 지역에서 일어나는 환경파괴에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책임감과 희망을 건드린다.

<작가소개>

이 이란(Yee I-Lann, 말레이시아, b. 1971~)은 코타키나발루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사진을 작품의 주된 매체로 사용하며, 동남아시아의 권력, 식민주의 및 신식민주의의 변동하는 교차점을 탐구한다. 특히 ‘아래로부터의 역사’라는 반서사적 역사에 중점을 두며, 사회적 경험에서 역사적 기억의 영향에 주목한다. 최근에는 말레이시아 사바 주에서 바다와 육지 기반의 공동체와 협력해 토착적인 요소를 가지고 작업을 시작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이 이란:2015-2016’(야얄라박물관, 2016), ‘지그재그 아!’(마닐라 실버렌즈, 2016), ‘이 이란과 협업자들:보르네오의 심장’(사바국제컨벤션센터, 2021), ‘이 이란:우리가 다시 안을 때까지’(CHAT, 2021), ‘입천장에서’(뉴욕 실버렌즈, 2022), 주요 단체전으로는 아시아태평양현대미술트리엔날레(1999, 2021), 자카르타비엔날레(2015), 인촨비엔날레(2016), ‘여우비:동남아시아현대미술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도쿄국립신미술관, 모리미술관ㅍ2017), 아시아트리엔날레(2019), 아이치트리엔날레(2022), 광주비엔날레(2023) 등이 있다.

인 시우전(Yin Xiuzhen, 중국, b.1963~)은 1990년대 초반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현재 베이징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설치, 퍼포먼스, 도자기, 사진, 비디오, 페인팅, 조각 등 실험적이고 광범위한 매체를 아우르며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 기억, 인상, 문화와 시대의 흔적을 작품의 주된 요소로 삼는다. 뉴욕현대미술관, 그로닝거미술관, 쿤스트팔라스트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인시우전의 작품은 모리미술관, 뉴사우스웨일스주립미술관, 엠플러스(M+), 울렌스현대대미술센터 등에 소장돼 있다. 베니스비엔날레 중국관을 포함해 상파울로비엔날레, 시드니비엔날레, 상하이비엔날레, 시드니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요코하마트리엔날레, 모스크바현대미술비엔날레등에 참여했다.

글: 천수림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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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이 이란  인 시우전  전시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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