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6호 김금영⁄ 2024.12.17 09:28:04
다사다난했던 2024년이 끝나가고 있다. 2025년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올해 유통가를 휩쓸었던 트렌드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내년 트렌드를 미리 전망해 본다.
GS25 ‘마감 할인’·신세계 ‘쓱데이’ 흥행 눈길
계속된 경기침체·고물가로 ‘짠테크’ 성행한 2024년
올해는 계속되는 경기침체와 고물가로 소비자가 지갑을 선뜻 열기 어려워하는 상황이 지속됐다. 실제로 12월 9일 통계청이 공개한 ‘2024년 3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3분기 가구당 평균소비성향은 69.4%로 전년 동기(70.7%) 대비 1.3%p 낮아졌다. 평균소비성향이 전년 대비 하락한 것은 코로나19 시기인 2022년 2분기 이후 9분기 만이다.
코로나19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의 기저효과를 기대했으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 무려 3년째 지속되면서 원자재 가격 상승, 글로벌 공급망 혼란, 금융 시장의 불안정 등에 장기간 영향을 미친 것.
이런 상황 속 유통업계에선 한동안 유행했던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가 지나가고 ‘요노(YONO, You Only Need One)’가 급부상하며 짠테크(짜다+재테크 합성어) 트렌드가 성행했다.
욜로는 ‘한 번 사는 인생, 즐기면서 쓰자’며 충동적인 지출을 선호한 반면, 요노는 ‘필요한 것 하나만 있으면 된다’를 모토로 꼭 필요한 곳에만 지출하는 실용성을 중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짠테크는 이런 요노의 특징을 반영해 할인 등을 활용, 지출을 줄이고 혜택을 적극적으로 챙기는 소비 방식을 뜻한다.
대표적으로 GS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GS25의 ‘마감 할인’ 상품 매출은 올해 1년간 5.3배 성장하며 고물가 시대 소비 노하우로 주목받았다. 지난해 11월 GS25가 선보인 마감 할인은 소비기한이 임박한 도시락, 샌드위치, 김밥, 주먹밥 등 프레시 푸드(Fresh Food)를 GS25 모바일 앱 ‘우리동네GS’에서 최대 45% 할인 판매하는 서비스다. 소비기한이 3시간 이하로 남은 FF 상품은 우리동네GS 앱에 마감 할인 상품으로 자동 등록되는데, 고객이 모바일 앱 마감 할인 메뉴에서 등록된 상품을 구매 후 정해진 매장에서 픽업으로 가져갈 수 있는 형태다.
GS리테일 측은 마감 할인 인기에 대해 “고물가 속 짠테크와 관련 있다”며 “짠테크는 최근 2030 연령 고객의 대표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았는데, 편의점의 주 고객이면서 모바일에 익숙한 이들이 마감 할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입소문을 내면서 매출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실제 데이터로도 확인된다. GS25가 올해 3월 마감 할인 이용 고객을 분석한 결과 20대 38%, 30대 34%로 나타나며, 2030이 70% 이상을 차지했다. 성별로는 남성 이용객이 여성보다 약 10%가량 많았다.
마감 할인으로 인해 충성·단골 고객이 늘어나는 효과도 있었다. GS25가 올해 11월 말까지 지난 1년간 마감 할인 상품 이용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회 이상 이용 고객 비중이 50%에 달했다. 마감 할인을 이용해 본 고객 2명 중 1명꼴로 2회 이상 이용했다는 뜻이다. 마감 할인을 가장 많이 이용한 고객은 총 522회를 구매했으며, 이는 1년 간 매일 약 1.5회씩 마감 할인을 이용한 것이다. GS25는 올해 연말까지 마감 할인 상품 누적 판매량이 50만 개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GS리테일 측은 “마감 할인은 고객에게 할인된 가격에 상품을 판매하고, 경영주에게 추가 매출을 제공하며, 폐기 상품을 줄여 환경 보호에도 기여하는 일석삼조의 착한 소비 상품”이라며 “고물가 영향으로 마감 할인 이용은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예측했다.
파격적인 할인 혜택을 내세운 행사들도 주목받았다. 대표적으로 신세계그룹 ‘쓱데이’가 있다. 쓱데이는 신세계그룹 연중 최대 규모 할인행사로, 11월 5회차를 진행했다. 이번 쓱데이는 주말 두 번을 포함해 역대 최장 기간인 열흘(11월 1~10일) 동안 진행했는데, 매출 2조 원을 넘기며 지난해 쓱데이보다 20% 증가, 당초 계획했던 1조 9000억 원을 초과 달성했다.
특히 11월 1~3일 사흘간 쓱데이를 연 이마트에서는 11월 2일 하루에만 사상 처음으로 하루 매출 1000억 원을 넘겼다. 이마트는 “쓱데이의 흥행에 힘입어 지난달 총매출액이 1조 4648억 원으로 지난해 11월에 비해 10.4% 증가했다”고 12월 10일 공시하기도 했다.
쓱데이에서 신세계백화점은 글로벌 인기 게임 ‘롤’을 모티브로 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아케인’ 팝업스토어 등 다양한 이벤트로 고객을 유치했다. 백화점 30.3%, 면세점 132%, 신세계푸드 59%, 스타벅스 58%, W컨셉 33% 등도 우수한 실적을 내며 전년 대비 큰 폭으로 성장했다.
이번 쓱데이에서는 라이브 커머스를 통한 매출 향상도 두드러졌다. G마켓과 SSG닷컴은 대형 가전 브랜드와 협업해, 노트북과 세탁기, 냉장고 등 생활 가전을 할인된 가격에 선보였다. G마켓은 라이브 방송일 매출 기준 로봇청소기 로보락 제품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신세계그룹 측은 “2024년 쓱데이는 ‘쇼핑 경험의 다양화’와 ‘소비자 혜택 강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며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재집권·비상계엄 후폭풍 등 대내외 불확실성
다이소 ‘듀프’·CJ온스타일 ‘뉴밀리어’ 등 진화한 짠테크 성행 전망
올해에 이어 내년 또한 글로벌 경기 침체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여기에 미국 도널드 트럼프 재집권에 따른 통상 환경 변화와 최근 국내에 불거진 비상계엄, 탄핵소추안 가결 후폭풍도 경제 불확실성을 더 키운 상황이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2월 9일 이달 경제동향 자료를 발표하면서 “상품 소비의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짚었다.
국내 3대 신용평가사인 나이스신용평가는 최근 발간한 내년 소매유통 부문 전망 보고서를 통해 “가계부채 부담 증가와 소비 여력 감소 등으로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고 있다”며 소매유통업의 실적 저하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이에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짠테크 트렌드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다만 단순 가격만이 지표가 아니라 합리적인 소비에 자신만이 추구하는 가치와 행복까지 찾는 등 진화한 형태의 짠테크가 성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트렌드코리아 2025’가 제시한 ‘아보하’ 키워드에서도 읽힌다. ‘아주 보통의 하루’의 줄임말로, 남에게 과시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집중해 스스로의 행복에 집중한 소비 패턴을 찾아갈 것이라는 것.
글로벌 데이터 분석 기업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은 ‘2025 글로벌 소비자 트렌드 리포트’를 통해 내년 짠테크에서 한 단계 진화한 ‘다각형 소비’가 특히 한국에서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했다.
유로모니터는 “짠테크 등 일시적일 것 같았던 절약지향적 소비는 이제 소비자 행동에 완전히 뿌리내렸다”며 “스트레스 해소와 개인만족을 위한 충동구매는 줄고 소비경험, 제품의 장기적인 가치 등 모든 측면에서 고려된 계획 소비가 늘어날 것”이라고 다각형 소비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업과 브랜드는 소비자에게 가격 하나만이 아닌 소비 경험, 비용, 제품, 미래 가치 등 복합적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고 관측했다.
실제로 짠테크의 진화는 이미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최근 아성다이소의 흥행에서는 ‘듀프(dupe)’ 트렌드가 눈에 띈다. 저렴한 가격이라고 제품의 질까지 포기하는 게 아니라 유사한 기능을 가진 제품을 찾아 구매함으로써 만족감을 느끼는 현상이다.
4월 다이소가 선보인 손앤박 ‘아티 스프레드 컬러 밤’. 명품 브랜드 ‘샤넬 립앤치크밤’과 비슷한 퀄리티를 지녔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품절 사태를 겪었고, 현재도 인기를 끌고 있다. 뷰티용품뿐 아니라 스포츠웨어, 이지웨어, 홈웨어 등으로 확장한 패션 카테고리에 대한 반응도 좋다.
최근엔 크리스마스 용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다이소는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크리스마스 기획 코너’를 따로 마련해 장식용품·인테리어 소품 등을 판매하고 있는데 크리스마스 어드벤트 캘린더·노래하는 산타 장식·LED(발광다이오드) 랜턴 등이 인기다. 이중 특히 캐럴에 맞춰 춤을 추는 산타 인형은 오프라인 매장뿐 아니라 다이소 자사몰에서도 품절된 상태다. 각종 SNS 후기 등에는 “5000원 가격을 생각하면 상당한 퀄리티”, “어렵고 우울한 연말에 저렴한 가격으로 누릴 수 있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등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다이소에 따르면 노래하는 산타 장식이 포함된 크리스마스 인테리어 소품 매출은 전년 대비 약 36% 증가했고, 크리스마스 무드등과 LED 전구 제품 등이 포함된 크리스마스용 LED 용품 매출은 전년 대비 약 39% 증가했다.
CJ온스타일은 최근 1년간의 매출을 분석하면서 ‘뉴밀리어(Newmiliar: New+Familiar)’ 키워드를 내놓기도 했다. 경기 침체 장기화에 실용 소비가 확산됐는데, 무조건 저렴한 가격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익숙한(Familiar) 새로움(New)에 지갑을 여는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것.
CJ온스타일은 뉴밀리어 트렌드를 견인한 대표적 카테고리로 기술 혁신 도입이 용이한 ‘뷰티’와 ‘소형가전’을 소개했다. 콤팩트한 사이즈에 인테리어 효과도 극대화한 음식물처리기, 기존 마사지기 성능에 휴대성을 더한 제품 등이 대표적이었다.
CJ온스타일 측은 “고물가로 집밥 수요가 늘자 혁신적인 상품을 찾는 수요도 급증했다. 패션, 뷰티의 경우 기존 아이템에 스타일링을 더해주는 잡화 수요가 늘었다”며 “특히 신진 브랜드가 각광을 받는 등 경기 침체로 꼭 필요한 것만 실용 소비하는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그 어느 해보다 뉴밀리어 소비 경향이 눈에 띈다. 경기 침체 장기화에 ‘뻔한 것은 싫지만 지나친 혁신도 싫다’는 기조 아래 익숙한 새로움에 지갑을 여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생활에 제약이 생겼던 당시 억눌렸던 소비 욕구가 ‘보복심리’로 표출되며 소비 심리가 살아났던 바 있다. 하지만 내년 장기적인 경기 침체가 예상되는 가운데 이전처럼 폭발적인 보복심리가 이어지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무조건 저렴한 가격만 추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에 합리적인 가격을 바탕으로 그 안에서 만족할 수 있는 자신만의 가치를 찾는 듀프, 뉴밀리어 트렌드가 보다 성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