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어떻게 장소를 드러내는가. 김성환은 오랫동안 하와이를 근대와 식민에 관한 구체적인 지리적 장소이자, 제도와 앎의 관계에 관한 핵심적인 개념으로 상정해왔다. 카호올라베 섬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의 해군의 군사훈련의 장소로 쓰이다가 한국전쟁 이후엔 한반도 가상 포격 훈련장으로도 쓰인 곳이다. 타이완의 작가 린슈카이는 ‘도시 릭샤 프로젝트의 섬 여행일기’를 통해 ‘섬’이라는 공간의 일상성에 주목해 함께 떠나길 권유한다.
김성환 개인전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
땅에도 눈이 있을까. 서울시립미술관(2024년 12월 19일~2025년 3월 30일)에서 진행 중인 김성환 작가의 개인전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그가 그에게 배웠다. 배웠다. 그에 의해 가르침을)’에 선보이는 작품 중에 ‘전 세대를 아우르는 저항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가와의 대화·나 마카 오 카 아이나’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나 마카 오 카 아이나는 조안 랜더와 푸히파우가 만든 독립영화 제작팀이다. 이들은 하와이 문화, 역사, 언어,예술, 환경, 주권 등의 주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다. 나 마카 오 카 아이나는 하와이어로 ‘땅의 눈’을 의미한다. 그 땅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팀의 이름으로 적합해 보인다.
김성환은 하와이로 삶의 터전을 옮겨 하와이 땅의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얼키설키 들려주고 있다. 그가 들려주는 과거의 이야기는 오래된 사진이 땅의 눈이자 출입문 역할을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7년부터 천착해온 다중 연구 연작 ‘표해록’(2017~)을 중심으로 평면, 디자인, 영상, 퍼포먼스 등의 작품이 펼쳐진다. 김성환은 표해록 연작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와 이주 역사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다뤄왔다. 표해록은 구한말 근대화와 식민이라는 역사적 시간을 태평양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진 한인 이민자의 삶을 다루며, 역사 기록에서 누락되고 소외됐던 이들의 역사를 추적해 왔다.
이 작품은 2021년 광주비엔날레 커미션 작업을 통해 대중에 처음 공개됐다. 이후 하와이 트리엔날레(2022), 부산비엔날레(2022), 그리고 반아베미술관(2023)의 개인전을 계기로 변주되고 확장돼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영상, 설치, 출판물 등 다양한 매체를 엮은 세 번째 챕터라 할 수 있다.
‘몸 콤플렉스’(2024)는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하와이를 터전으로 삼았던 역사적 인물을 재구성한 사진설치 작품이다. 마치 요즘 스포츠 스타들의 사진을 실물 크기로 만들어 세운 등신대를 연상시킨다.
1900년대 초 도산 안창호를 따라 하와이로 이주했던 아내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이혜련과 큰 아들인 안필립, 조선의 전통춤을 가르쳤던 배한라와 그의 제자 메리 조 프레실리, 목사이자 독립운동가 현순의 둘째 아들이자 한국계 미국인 조각가 현폴, 1970년대 하와이의 문화, 언어, 역사 등을 기록하고 보존한 나 마카 오 카 아이나의 조안 랜더와 푸히파우, 자료를 보존하고 보급해 온 산시아 미알라 시바 내쉬 등의 인물 앞에 세운다. 국적과 인종이 달랐던 이 인물들은 동시대를 살았던 이들로 하와이의 과거를 소환한다.
작가는 이 공간을 일컬어 “두 개 이상의 언어가 들어와 만들어질 수 있는 번역의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 표현은 전시 부제인 ‘그가 그에게 배웠다. 배웠다. 그에 의해 가르침을’과도 일맥상통한다. 하와이 사람들은 이들이 ‘어디서 왔나요, 어디에 속했나요?(노 헤아 마이 오에·No hea mai 'oe)?’라고 묻지만 자신들의 문화 속으로 스며들도록 만든다. 몸 컴플렉스는 자신이 속한 앎(인종적, 민족적, 젠더적)의 경계를 넘어서 역사적 풍경지도를 직조해낸다.
표해록의 일부인 ‘활성화된 사진 틀’은 다섯 점으로 구성된 사진 연작이다. 이 중 조지 헬름과 테릴리 케코올라니 두 인물로 구성된 사진 두 점은 하와이 제도에 위치한 카호올라베 섬으로 데려간다. 우리에게는 ‘표적도’라 불리는 이 섬은 1941년 일본의 푸울로아(Puʻuloa·진주만) 공격 후에는 미국 해군의 포격 연습장이나 군사 훈련장이 됐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한반도 가상 포격 훈련장으로도 쓰인다. 이 섬은 한반도 역사와도 겹치는 장소다.
조지 헬름과 테릴리 케코올라니는 카호올라베 섬을 포격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애썼던 이들이다. 이 섬은 태평양에서 가장 큰 포격을 당했던 곳이기도 하다. 작가는 1970년대 하와이의 ‘신해불이’ 운동을 기록한 에드 그리비의 사진, 하와이 독립운동가 하우나니-케이 트라스크의 글을 나란히 놓아 당시 하와이의 현실을 알린다.
작가는 “한 문화가 다른 문화의 은유일 수도 있고, 그 역 또한 같다”고 말했다. 하와이제도는 어떻게 한국 근대사의 장소가 됐을까. 작가는 오래된 근대 아카이브 사진을 번역해냄으로써 하와이 이주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의 문 앞으로 이끈다.
린슈카이 ‘도시 릭샤 프로젝트의 섬 여행일기’
타이완 출신 작가 린슈카이의 ‘도시 릭샤 프로젝트의 섬 여행일기(The Island Travel Notes project)’ 프로젝트는 작가의 전통 가족 산업과 이주 역사를 기반으로 한다.
타이난이라는 고대도시에서 자란 그는 타이난의 상징적인 체계와 문명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는 특히 도시 거주자들이 겪거나 경험할 수 있는 신체적, 정서적 이주의 은유이자, 노동 이주의 기억과 제주도 및 그린 아일랜드 같은 섬의 역사적 의의를 주제로 작업하고 있다.
표류를 주제로 한 2024 제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인 도시 릭샤 프로젝트의 섬 여행일기는 이 주제의 연장선상에 있다. 릭샤를 중심으로 한 사진과 각종 기물 설치 작업은 표류하는 한 인물을 상상하게 만든다. 작가는 설치작품과 함께 전시장 안을 직접 릭샤를 끌고 전시장 안팎과 제주도심 이곳저곳을 다니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설치 작품 앞에는 작가가 직접 쓴 한글, 영문 텍스트가 있다. “대만에서 온 저는 도시의 수레꾼입니다. 섬에서 여전히 자유를 느끼는지요? 여러분 마음의 소리를 한번 들어보고 싶어요. 우리 서로 이야기를 교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다음 여정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인력거꾼, 혹은 수레꾼으로 자처한 작가의 여정을 따라가 보자. 릭샤 운전사는 대도시에서 페리맨의 역할을 맡아 도시인의 다양한 풍경을 들려준다. 페리맨의 공간은 전시장 곳곳을 항해하듯이 제주로 확장돼, 섬의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주로 회화와 공간 설치에 중점을 두고 작업한 그는 나고 자란 타이난의 사원과 구불구불한 골목길, 종교적 토템으로 가득한 고대 도시 이야기를 들려줬다. 작가는 이 경험을 분해하고 재조립해 무의식의 상징을 길어올리는 작업을 해왔다. 이 상징들섬과 도시를 묘사하는 환상적인 건축물로 완성되기도 했다. 사라진 기억의 귀환은 어떻게 가능할까. 오래된 기록사진이 현대미술작가를 만나 새롭게 매핑된 섬은 현재의 풍경을 새롭게 보도록 만든다.
땅에도 눈이 있다면, 이 눈을 뜨도록 만드는 이들은 섬 여기 저기를 탐색하는 릭샤꾼들일 것이다. 작가는 릭샤를 끌고 제주를 유람하는 퍼포먼스 영상작품 ‘성시차부-제주유기 City Coachman-Jeju Travelogue)’(2024)에서 이렇게 묻는다. “당신의 일상기억 중 일부가 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작가가 일깨워주는 방식에 대한 여정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상의 기억은 언젠가는 역사가 될 것이기에.
< 작가 소개 >
김성환은 하와이와 뉴욕에 기반에 두고 국제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동시대 미술작가다. 그는 테이트 모던 ‘더 탱크스(The Tanks)’ 개관전(2012)과 뉴욕현대미술관(MoMA, 2021), 반아베미술관(2023) 등 세계 유수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베니스 비엔날레(2017)와 같은 국제적인 전시에 초대되며 주목을 받아왔다. 한국에서는 2005년 토탈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을 비롯해 2007년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아트선재센터(2014)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린슈카이는 타이완의 작가로 타이난에 거주 중이다. 2007 타이베이 국립예술대학교 미술학과 학사, 2012 타이베이 국립 예술대학 미술학과 M.F.A.를 졸업했다. 린슈카이는 회화와 설치에 중점을 두고 작업하고 있으며, 나고 자란 고대도시 타이난의 숨겨진 상징을 드러내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가오슝시립미술관, 타이베이시립미술관, 국립대만미술관, 한국의 국립아시아미술관, 일본 히로시마시 현대미술관 등 현대미술관의 주요 전시에 초대됐으며 독일, 미국, 네덜란드, 태국 등지에서 레지던시와 전시를 개최했다.
글: 천수림
이미지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제주비엔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