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0호 김응구⁄ 2025.02.10 16:42:16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며칠 전 ‘유엔데이’ 공휴일 재지정을 제안했다. 느닷없는 말이 아닌, 그간의 행보를 보면 충분히 이해되는 안(案)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출산 직원 장려금 1억 원 지급에 이은 또 하나의 부영발(發) 소식에 세간의 관심이 대단하다.
‘유엔데이’ 北 탓에 1976년 공휴일 폐지
유엔데이는 국제연합(UN)이 창설·발족한 1945년 10월 24일을 기념하고자 제정한 기념일로, ‘국제연합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1950년부터 1975년까지 공휴일로 지정해 이날을 기념했다. 그러나 북한이 1975년까지 유엔 산하 여러 기구에 공식적으로 가입하자 이에 대한 항의 표시로 1976년 공휴일을 폐지했다.
이중근 회장은 2월 5일 부영태평빌딩에서 열린 부영그룹 시무식에서 “대한민국의 미래와 희망을 위해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6·25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희생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유엔데이 공휴일 재지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 자리에서 “1975년까지 국내에 ‘국제연합일’(10월 24일)이라는 휴일이 있었지만, 사라진 지 50년이 다 돼 간다”며 “이를 정식 국가 공휴일로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중근 회장은 “6·25전쟁은 유엔군 60개국(16개국 전투지원·6개국 의료지원·38개국 물자지원)이 유엔 창설 후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하게 참전한 전쟁”이라며 “유엔군은 낯선 땅에서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웠고, 그 희생 위에 대한민국이 존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는 점점 유엔군의 희생을 망각하고 있다. 이에 동방예의지국의 면모를 갖춰 유엔데이를 공휴일로 재지정해 그 시대 정신을 후세에 계속해서 물려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현재 유엔참전유산은 전 세계에 두 곳이 있으며, 모두 우리나라에 조성됐다. 유엔 창설 70주년을 맞아 용산 전쟁기념관에 설치한 6·25 유엔 참전국 상징기념물과 부산 재한유엔기념공원(옛 유엔기념묘지)이다.
이중근 회장, 전쟁기념관 참전비 건립費 지원
이중근 회장이 ‘유엔데이’ 공휴일 재지정을 제안한 건 그의 가치관, 역사관, 군 생활과 무관하지 않다.
먼저, 그는 10년 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 조성한 6·25전쟁 참전국 참전비 건립비용을 지원했다.
전쟁기념관은 6·25전쟁 당시 우리를 도와준 참전용사들에게 감사를 표하고자 2015년 ‘평화의 광장’에 2.7m 높이의 참전국 참전비 23개(우리나라 포함)를 조성했다. 참전비는 각 국가의 참전일 순으로 정렬했다. 희생자 추모글이 한글·영문 그리고 참전국 언어로 표기돼 있고 월계관, 부대 마크, 참전 내용, 참전용사에 바치는 글도 새겨넣었다.
2022년 6월에는 대한민국육군협회와 함께 ‘리버티 워크(Liberty Walk) 서울’ 행사를 진행하며,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위한 후원금 10만 달러를 6·25재단에 전달하기도 했다. 리버티 워크는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들의 희생에 감사를 표하고자 여는 걷기 행사다. 당시 행사에선 주한미군과 가족 등 500여 명이 참여해 전쟁기념관에서 국립중앙박물관까지 약 4㎞를 걸었다.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리버티 워크’ 는 미국의 비영리 단체 ‘6.25재단’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국 군인들의 숭고한 희생을 알리기 위해 2018년부터 매년 6월 25일에 개최하는 걷기 행사다. 6.25재단은 한국전쟁에서 희생한 미국 군인들을 기념하고 보답하기 위해 설립됐다.
공군 출신인 이중근 회장은 1961년 당시 186㎝의 장신이어서 항공병학교에 불합격할 뻔했으나, 군 생활 5년 반 동안 매끼 식사 2인분을 지원받아 근무했고, 무사히 제대했다. 이후 그 고마움을 갚는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100억 원을 공군 하늘사랑장학재단에 기부했다.
이중근 회장은 총 다섯 권의 역사서를 집필하며 후대에 역사 바로 알리기를 실천하고 있다. 그 중 〈6·25전쟁 1129일〉은 올바른 역사를 알리고자 주관적인 해석을 배제하고, 전쟁 발발부터 정전협정까지 1129일간 일어난 사실 그대로 나열한 우정체(宇庭体) 방식으로 저술했다. 이 책은 국내외 기관과 해외 참전국에 1000만 부 넘게 무상으로 기증했다.
서울시 ‘감사의 정원’ 조성 계획 밝혀
때마침 서울시는 6·25전쟁 참전국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은 ‘감사의 정원’을 광화문 광장에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이중근 회장의 주장과 맞물리며 앞으로의 행보에 더욱 관심이 쏠리게끔 만들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3일 ‘감사의 정원’ 조성계획과 함께 설계 공모로 진행한 상징조형물 당선작 ‘감사의 빛 22’를 공개했다.
오세훈 시장은 “대한민국 국가와 국민의 정체성이 오롯이 담긴 광화문 광장에 감사의 정원을 만들어 이곳을 찾는 세계인에게 감동을 전하겠다”며 “당시 우방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번영은 결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감사의 빛 22’는 6·25전쟁 22개 참전국에서 채굴한 검은 화강암 돌보(洑)와 보 사이 유리 브리지 등으로 구성한 5.7~7m 높이의 조형물이다. 측면에는 참전국 고유 언어로 애송시·문학작품·글귀 등을 새겨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린다. 지하에는 우방국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상징공간이 들어선다. 이 공간에선 22개국 현지 모습을 영상·이미지 등으로 만날 수 있고 우방국 국기를 송출할 수도 있다.
서울시는 상징공간과 조형물을 연내 준공한다는 방침이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