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0호 김예은⁄ 2025.02.24 17:03:33
화폐경제는 우리의 욕망이 구성한 가치의 세계다. 그리고 인간의 욕망은 18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주창했듯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로 세계 경제를 움직이고 있다.
개인의 욕망에 따른 선택은 개인의 자유에 맡길 문제이다. 하지만, 욕망에 의한 자본의 방향이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지고 있느냐를 판단하는 것은 개인이 아닌 국가적 관점에서 논의될 문제다. 그리고 국가 산업 경쟁력과 장기 발전 측면에서 자본의 가치있는 방향성을 설정하기 위해 주식 시장의 '밸류업' 정책이 도입돼 국가정책으로 시행 중이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한국 주식 시장을 부양할 목표로 내놓은 '밸류업' 등의 증시 부양책은 단순히 국내 증시 지표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이는 결국, 국가의 건전한 자본 생산성을 확보해 국가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이 같은 관점에서 지난해부터 증시 시장을 달궈온 '밸류업 정책'의 필요성과 추진 방향, 보완점 등을 순차적으로 논의해 본다.
지난해 세계 6위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을 거둬드리며 선진국으로 도약하고 있는 국내 경제에서 미래 성장성을 발목잡고 있는 요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국가 미래 경쟁력을 저해하고 있는 생산요소 간의 불균형 문제다.
경제학의 경제 순환 모형에 따르면 가계는 생산요소시장에서 노동, 토지, 자본을 공급하는 주요 주체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산요소를 공급받는 기업은 양질의 생산요소를 바탕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해 그 대가를 가계에 돌려준다.
동시에 기업의 높은 산업 생산성은 국가의 경제 규모를 평가하는 국내총생산(GDP, 한 국가가 일정 기간 동안 생산한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 가치)의 크기를 결정짓는다.
이를 거꾸로 해석해 보면, 기업을 움직이는 근간에는 '노동, 토지, 자본'이 있으며, 더 양질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생산 요소를 가늠해 투입하는 것이 국가 경제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국내 경제 구조는 미래 성장성을 저해하는 기이한 산업 구조를 갖추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노동, 토지, 자본의 생산 요소 간 불균형 문제다. 특히 자본 투자를 저해하는 노동과 토지의 지나친 가치 평가가 사회 전체의 불균형과 장기 국가 생산성을 저해하는 문제로 지적된다.
노동·토지·자본 불균형이 가져온 문제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지난 17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 대기업의 평균 연봉(8만7130달러)이 일본(5만6987달러)의 1.5배, 유럽연합(8만536달러)의 1.1배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소득 대비 대기업 임금 수준도 한국이 1인당 GDP의 157%로 일본(121%), EU(135%)보다 높았다.
대기업의 과도한 임금 인상 탓에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급속히 벌어지고 있다. 2002년엔 중소기업 평균 임금이 대기업의 70%였지만, 2022년엔 58%로 내려앉았다.
여기서 주요한 문제는 노동 생산성과 비례하지 않는 임금 체계다. 국내는 능력에 비견되는 임금 체계보다는 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 인상되는 연공형 임금 체계를 비롯해 강성 노조의 임금 투쟁으로 생산성을 초과한 임금 인상이 지속되고 있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최근 20년간 EU 대기업의 임금 상승률은 85%에 그치고, 일본은 오히려 6.8% 줄어든 동안, 한국의 임금은 158%가 뛰었다.
이는 주요 생산 요소인 노동의 인건비 부담이 주요 경쟁국과 비견할 때 기업 경쟁력을 훼손하고 있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국내 산업 구조와 같이 수출 비중이 높은 국가가 생산요소의 고비용 문제에 발목잡혀 글로벌 경쟁을 위한 장기적 투자, 이를 위시한 장기 성장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것은 기업의 경쟁력 약화와 함께 국가 경제 발전의 저해 요소로 작용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주요 생산 요소이자 글로벌 자본 구조에서 가장 기이한 구조를 갖춘 국내 부동산의 자본 쏠림은 이같은 문제를 가장 심대하게 뒤흔들며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 가치는 역대 최고치의 상승세를 기록했다. 지난 2021년 7월 당시, 부동산 실거래가 상승률이 80~90%에 육박하는 폭등세를 이어가자, 정부는 한국부동산원, 통계청 등을 압박해 주택 가격 변동률 등의 주요 수치를 125차례가량 조작한 것으로 감사원 조사 결과 밝혀졌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착오에 따른 자산 가치의 폭등은 주거 문제와 더불어 부동산 양극화 심화라는 표면적인 문제를 야기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요소가 부동산 시장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가 경제에서 한정된 자본이 부동산에 치중되면, 결국 국가의 산업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1인당 GDP 높아져도, 가계 자산 80% 부동산에 묶여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일본·대만보다도 높은 수준인 3만6000달러대에 진입한 것으로 추산된다. 2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2024년 1인당 GDP는 전년보다 454달러(1.28%) 늘어난 3만6024달러로 추정된다.
이는 지난해 10월 국제통화기금(IMF)이 추정한 한국의 1인당 GDP 3만6132달러와 비슷한 수준이다. IMF는 일본은 3만2859달러, 대만은 3만3234달러로 추정했다. 정부나 IMF 기준 모두 한국의 1인당 GDP는 일본·대만보다 3000달러 정도 더 높다는 얘기다.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 역시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제치면서 인구 5000만 명 이상 국가 중 6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높은 1인당 국민총소득을 거둠에도, 거둬들인 가계 소득의 대부분이 부동산과 같은 실물자산에 투입된다는 점이다.
통계청의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2024년 3월 말 기준 한 가구당 평균 자산은 5억4022만 원으로 조사됐는데, 그 중 부동산 등 실물자산 비중이 75.2%에 달했다. 금융투자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이는 미국(28.5%), 일본(37%), 영국(46.2%) 등 주요 선진국(2020~2021년 기준)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이다.
반면, 한국은 가계자산에서 금융자산 비중이 낮은 편이다. 2021년 기준 미국은 금융자산 비중이 71.5%에 달하고 일본(63.0%), 영국(53.8%) 등도 50%를 넘었으나 한국은 35.6% 비중을 차지하며 열위에 있었다. 이마저도 부동산 가치 증대로 오히려 부동산 자산 비중이 증가하며 금융자산 비중은 더 축소됐다.
부동산 부문으로의 과도한 자금 유입은 생산성과 고용 유발 효과가 낮은 주택 시장에 자금이 머물게함으로써 경제적 효율성을 저하시키는 문제를 야기시킨다. 부동산에 자금이 집중되면 생산성이 높은 다른 부문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어 경제의 장기적인 성장성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토지는 본원적 생산요소로 생산을 통해 수량을 조절할 수 없는 비탄력적 자원이다. 뿐만 아니라, 수확체감의 법칙에 따라, 다른 생산요소는 고정된 상태에서 토지의 투입량만 증가할 경우 생산요소의 한계생산성은 하락한다.
반면, 토지와 함께 대표적인 생산요소로 꼽히는 자본은 이와 다른 특성을 갖는다. 자본의 경우 토지와 마찬가지로 수확체감의 법칙을 따르지만, 기술 혁신이나 효율성 향상을 통해 한계생산성을 유지하거나 증가시킬 수 있는 여지가 크다. 특히, 기술 진보와 혁신에 따라 자본의 한계생산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크게 변할 수 있으며, 이를 토대로 확보한 기술 선도 격차는 국가의 산업 효율성과 생산성을 결정짓는 장기적이고 독보적 차별성을 야기한다.
미국 국립경제연구소(NBER) 역시 ‘신용, 토지 투기 및 장기적인 경제 성장’ 보고서를 통해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나 저금리 정책과 같은 부동산 관련 신용 확대 정책이 오히려 생산성 향상과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연구진은 제조업과 부동산 두 부문으로 구성된 경제 모델을 설계하고, 각 부문으로의 자금 유입이 장기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시뮬레이션했다.
연구 결과, 부동산 투기에 따라 해당 부문으로 과도하게 유입된 자금은 제조업 등 생산적인 부문에 대한 투자가 줄어드는 ‘구축 효과(crowding-out effect, 한 부문의 투자 증가가 다른 부문의 투자를 감소시키는 현상)’를 야기했다.
연구에 참여한 히라노 연구원은 “부동산 투기로 인해 생산적인 부문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면, 결국 경제 전체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성장률이 낮아지게 된다”며,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는 단기적으로는 경제가 활성화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경제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자본 선진화의 대표적 모델로 꼽히는 미국에서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는 부동산에 대한 그릇된 자본 쏠림 현상이 심화되었고, 결국 부동산 대출에 쏠린 자금이 기폭제가 되어 글로벌 경제 위기를 낳았다.
NBER 연구 결과에서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미국의 사례를 지적했다. 당시 미국은 부동산 대출이 급증하면서 주택 가격이 크게 올랐지만, 제조업 등 다른 부문에 대한 투자는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결국 이는 금융위기로 이어졌고, 이후 미국 경제의 장기 성장률도 낮아지는 요인이 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로 ‘금융 마찰(financial friction)’을 지목했다. 금융 마찰이란 자금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이나 계약 집행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자금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은행이 부동산담보 대출을 선호하면서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제조업 투자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스티글리츠는 “금융 마찰로 인해 자금이 부동산 부문으로 쏠리면, 단기적으로는 경제가 활성화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생산성 향상을 이끄는 제조업 등의 부문이 위축되면서 경제 성장이 둔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상처를 겪은 미국은 이후 자본 시장의 선진화 방책을 적극 추진했고, 자본이 뒷받침 된 기술 선진화로 현재 전 세계 경제에서 독보적 위상을 정립하고 있다.
금융중개 기능 발전, 생산성 높은 부문으로 신용 유입시켜
각국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이라 불리는 국제결제은행(BIS) 역시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했다. BIS는 지난해 정례 보고서를 통해 2000년대 초 이후 저금리 기조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대부분 신흥국에서 민간신용이 큰 폭 확대된 점을 짚으며 '부동산을 중심으로 신용이 옮겨가는 현상'에 주목했다.
BIS의 조사 결과 가계부채가 증가하고 주택 수요가 느는 동안, 제조업을 비롯한 다른 업종에서 필요로 하는 자금이 건설·부동산업으로 쏠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BIS는 건설·부동산업은 생산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만큼, 해당 업종에 대한 과도한 대출 쏠림이 성장에 또 다른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건설업과 부동산업 대출 비중이 더 많이 증가한 국가일수록 총요소생산성과 노동생산성 감소는 더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BIS는 이런 신용 재배분이 과잉 투자를 의미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추후 관련 대출 증가 둔화 뒤에도 국가의 생산성과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지속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불균등한 신용 증가 완화, 주식시장 역할 확대, 핀테크를 통한 금융중개 기능 발전 등으로 생산성이 높은 부문으로 신용이 유입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며 무엇보다 금융중개 기능과 자본 시장의 선진화 정책을 추진한 이유를 알 수 있다. 결국 자본 시장의 고도화를 바탕으로 기업으로 향하는 자본 기반이 확충되면 기업은 적극적인 R&D 기술 투자가 이뤄지고, 고용이 늘어나며, 높은 기술 선도와 생산성을 확보해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자본시장, 매년 531조 원 이상 시장 유입돼 자본투자 선순환 고리
현재 미국 주식시장은 세계 시가총액의 61%를 차지할 정도로 주도적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 분석한 특별 리포트에서 미국경제의 생산성을 주도하는 요인으로 자본투자를 꼽은 바 있다.
금융자산 비중이 2021년 기준 71.5%에 달하는 미국인들은 특히 자본시장을 통해 주식, 펀드, ETF 등으로 투자하며 자산을 증대하고 있다. 또한 이같은 유동적 자본이 미국의 자본투자를 견고히 뒷받침하는 주요 재원이 되고 있다.
미국 투자회사협회에 따르면, 미국의 DC형 퇴직연금 제도인 401(k) 계좌에 총 9조 달러(약 1경2933조 원)에 달하는 자산이 예치돼 있다. 이는 퇴직연금(IRP)이나 개인형 퇴직연금과 유사한 제도로, 7000만명의 현직 및 은퇴자가 이 계좌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해당 연금자산을 통해 미국 자본시장에는 매년 약 4000억 달러(약 531조6800억원)의 현금이 자본시장에 유입되고 있으며, 연금 자산의 86%가 주식에 투자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 자본 선진화 방안으로 추진되고 있는 증시 밸류업 역시 장기 가치 창출 측면에서 주주가치를 제고하며, 국내 자본 시장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나아가, 국내 투자자 자금의 유치뿐만 아니라 외국 자본을 국내 자본시장으로 유치하겠다는 복안이 깔려 있다.
선진화된 자본시장을 통해 국내 기업으로 유입되는 높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투자와 자본생산성을 높이는 선순환의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 이번 정책의 골자다. 이러한 측면에서 밸류업 정책은 자본시장뿐 아니라 국내 기업 가치와 산업 생산성을 좌지우지할 궁극적인 경제 구조 변혁의 시작점인 것이다.
현재 선진화된 자본 시장의 선순환 구조를 확립하고 자본 투자에 가장 적극적인 미국이 인공지능(AI) 등 주요 기술 산업에서 선두의 위치를 점하고도 투자를 극대화하고 있다는 점은 경쟁국들의 기업 경쟁력과 생산성 확보에 위협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선진 자본을 통해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주요 국가에 비견할 때, 국내 시장에서도 노동 및 부동산 개혁과 함께 '선진화된 자본시장의 역할'과 변화가 무엇보다 주요한 때다.
지난해 2월 기업 밸류업 정책 추진을 발표한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 등도 밸류업 지원의 추진 배경으로 현재 국내 경제에서 나타나고 있는 생산성 감소와 인구구조 변화, 지정학적 갈등에 따른 시장 분절화(market fragmentation) 등의 상황에 따른 경제성장 둔화 추세에 대응하기 위한 경제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자본의 효율적 활용 및 생산성 향상'이 긴요한 시점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또한 국민들 입장에서도 근로소득 외에 자산소득을 통한 안정적 현금흐름 확보 필요성도 커진 상황에서 기업은 원활한 자금조달을 토대로 성장하고, 국민은 그 성과를 향유하고 재투자하는 선순환적 자본시장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한국거래소와 기획재정부 등은 국내 증시 밸류업을 위한 주주가치 증대뿐 아니라, 그간 시장의 국내 주식시장의 저해 요소로 꼽혀온 기업 공개(IPO)의 절차와 기존 상장 기업의 폐지, 나아가 공매도 거래 규제 체계까지 칼을 대고 나섰다.
전 세계 증시에서 독보적 우위로 부상하고 있는 미국 기술주 등의 투자 가치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과 더불어 이들의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는 선진화된 자본 시스템과 국내 시스템간의 간극도 눈여겨볼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