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언론과 관련해 최근 심상치 않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친 이재명’ 유튜버들을 잇달아 방문해 장시간 인터뷰하고 이들을 띄워주며 결속을 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을 찾아 1시간 30분 동안 인터뷰했고, 14일에는 ‘이동형TV’, 그리고 18일에는 ‘새날’ 유튜브에 출연했다.
지난 12·3 불법 비상계엄 이후 이 대표는 국내 기성 언론(리거시 미디어)과 인터뷰한 적이 없다. 미국 워싱턴포스트 신문과의 인터뷰가 14일 게재된 것을 포함하면, 계엄 뒤 이 대표는 해외 언론 또는 국내 친명 유튜브와만 인터뷰한 셈이다.
계엄 사태의 중심에 섰던 그인 만큼 기성 언론들의 인터뷰 요구가 없었을 리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대표가 의도적으로 이들 기성 언론과의 인터뷰를 회피해왔다고 볼 수 있다.
위급 상황에서 첫 전화도 유튜버와만
김어준 진행자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밝힌 ‘계엄 충격 뒤 첫 행동’도 눈에 띈다. 계엄 소식을 접하고 급하게 국회로 가면서 이 대표가 처음 전화를 건 대상이 바로 김어준이었고 그에게 이 대표는 “지금 바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해 국민에게 여의도 국회로 와달라고 해야 한다”고 긴급 요청했다는 것이다.
한국 정치인의 일반적 행태를 생각한다면 극히 이례적이다. 계엄군이 자신을 잡아갈 것이라고 걱정되는 상황에서 보통 정치인이라면 언론에 전화를 건다고 하더라도 주요 방송-신문사 기자에게 먼저 전화할 듯 싶다. 하지만 이 대표는 그렇지 않았다. 그 자신이 유튜브 생방송을 하면서 김어준-이동형 등 유튜버들에게만 먼저 전화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별난 동향에 당장 비판이 나왔다. 한국일보는 지난 16일 [김어준에 이동형까지… ‘친야 유튜브’ 살뜰히 챙기는 이재명, 왜] 기사에서 “일각에선 이 대표가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 지형에만 기대다 보면, 외연 확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중략) 이 대표의 유튜브 선호에는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도 일정 부분 반영된 것이란 시각도 있다. (중략) 정치적으로 편향된 유튜브를 자꾸 찾는 건 오히려 정치 양극화에 더욱 기여하는 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이 기사에 이어 18일 사설에선 [듣기 좋은 말만 듣겠단 윤석열·이재명 ‘우리편 유튜브’ 편애]라는 제목 아래 “윤 대통령은 정권을 비판한 언론과 노골적으로 불화했고, 이 대표도 여러 차례 언론 불신을 드러냈다. 두 사람(윤-이)의 유튜브 편애는 결국 듣기 좋은 말만 듣고 자기 지지층만 상대하겠다는 발상이다. 이러니 상대 진영을 악마화하는 폭력적인 정치 문화가 득세하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윤-이 똑같다'는 또다른 양비론?
윤 대통령의 경우 극우 유튜브를 애청만 했지, 직접 해당 유튜브에 출연해 자신의 생각을 소상히 밝히는 등의 대화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돌아보면, 윤-이를 직접 비교하는 이 사설의 논조에는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도 하지만, 한국일보는 어쨌든 기사와 사설 모두를 통해 ‘유튜브를 편애하고 기성 언론을 외면하는’ 이재명을 비판했다.
그간 이 대표는 여러 기회를 이용해 한국 기성 언론과 대립해 왔다. 자신의 첫 책인 ‘오직 민주주의,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들다’(2014년)에서도 “저는 정말 믿을 건 시민의 힘밖에 없었어요”라며 언론과의 제휴보다는 시민과의 연대를 강조했다.
그리고 2021년 11월 대선 유세 현장(대전 중앙시장) 연설에서는 “비록 소수일지라도 작은 실천을 해내는 우리 국민들이 이 나라의 운명을 바꿉니다.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이 비록 소수일지라도 여러분이 열 명을 설득하고, 그 열 명이 열 명을 설득하고, 다시 그 열 명이 열 명을 설득하는 그런 실천이 일상화되면 무슨 일보, 이 가짜 뉴스 마구 쓰는 거 왜 못 이기겠습니까, 여러분!”이라고 호소했다. ‘무슨 일보, 이 가짜 뉴스 마구 쓰는 거’라는 말에서 그의 인식이 드러난다.
'멀리 하니 비판부터' 정당한가?
기성 언론 입장에선 ‘기성 언론 말을 잘 안 듣는’ 윤-이 두 사람이 모두 미울 수 있다. 하지만 그간 기성 언론들이 윤-이 두 사람 중 어느 쪽을 “우리 편”이라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생각하며 기사들을 써 왔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예컨대 핵심 정치인 중 하나가 목에 칼을 맞아 1mm 간격으로 타살 위기를 모면했고, 그 테러 현장을 경찰이 바로 물 청소해 치워 없애 버리는 극히 비상식적인 행동을 보였는데도 불구하고 과연 기성 언론들은 그에 대한 취재를 제대로 했나?
이 대표는 18일 ‘새날’ 인터뷰에서 이런 말도 했다. “저는 제 주변 사람들에게 저를 멀리 하라고 조언합니다. 왜냐면 그들이 저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주변인을 먼저 치기 때문에 피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이런 그이므로 기자들을 자기 주변에 모이라고 부르고, 잘 대해줄 리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잘 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특히 정치인들을 기자들을 잘도 모신다. 대중에게 전달되는 모습을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게 언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재명은 이러한 한국 정치판의 오랜 관행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기자-언론 입장에선 그가 전혀 친숙하지 않고 마뜩치 않을 게 분명하다.
조기 대선이 유력시되는 가운데, 지지율 최고인 정치인이 ‘기성 언론보다는 유튜브 먼저’ 노선을 택한 것, 그리고 민주당이 ‘블루파크’라는 이름의 자체 유튜브 생방송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 모두 심상치 않은 흐름이다. 기성 언론이라는 유통(도-소매 대량 소통) 경로를 피하고, 시민과 직접 소통하는 직통 채널을 선택한 셈이다.
언론 지형 바꿀 '이재명 발' 큰 싸움 다가오는 중?
이 대표는 이동형TV 인터뷰 때 이런 말까지 했다. “언론이 게이트키핑(문지기) 역할을 하는데 우리 쪽에 유리한 정보는 왜곡-조작하고, 저쪽은 미화해서 (전파가 제대로 안 됐다). 기성 언론이 그런 일을 하다 보니 세뇌된 측면이 있는데, 지금은 SNS와 유튜브(가 있지 않느냐)”고.
이에 대해 사후에 이 대표 측 관계자는 “소위 말하는 보수 언론이 그런 행태를 했었다는 것이며 기성 언론 전반에 대한 불신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국일보는 보도했다. 그러나 ‘기성 보수 언론보다는 유튜브’라는 자세를 이 대표가 분명히 취함에 따라, 앞으로 대선 정국이 펼쳐진다면 기성 언론과 이재명 대표 사이에는 또 다른 대립 전선이 강하게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전통-엘리트의 힘을 기반으로 하는 ‘기성 언론’ 대 시민의 자발성을 기반으로 하는 ‘유튜브-SNS’의 한판 대결이 목전에 다가온 셈이다. 누가 이기느냐에 따라 앞으로 한국의 언론 지형, 그리고 한국의 앞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