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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밸류업인가②] ‘유례없는 시장 반응 속도’ 밸류업의 현재

지난해 상장법인 자사주 취득 및 소각 금액 2.3배, 2.9배 증가...최근 7년간 최대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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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90호 김예은⁄ 2025.02.24 17:04:55

KB국민은행 여의도 딜링룸 전경. 사진=KB국민은행

선진 주식시장 도약을 목표로 지난해 2월부터 시작된 ‘한국 자본시장 밸류업’ 정책은 그간 한국 주식시장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선결 조건으로 거론돼 온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란 한국 상장기업 주식의 가치평가(valuation) 수준이 유사한 외국 상장기업에 비해 낮게 형성되는 현상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2000년대 초부터 관찰되기 시작해 최근까지 이어져 왔다.

 

자본시장연구원 김준석·강소현 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국내 상장기업의 주가장부가치비율(PBR, Price-to-Book)은 선진국의 52%, 신흥국의 58%에 불과하며, 이는 분석 대상 45개국 중 41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흔히 밸류업 정책과 함께 논의되는 PBR(주가-장부가 비율)은 회사가 가진 자산을 시장에 내다 팔았을 때 되받을 수 있는 청산 가치에 비해 현재 주가의 수준이 높은지 낮은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PBR이 1보다 작다는 것은 현재 주가가 회사의 청산가치보다 더 낮게 저평가가 되고 있다는 의미다.


블룸버그가 산출한 2014년부터 2023년까지 최근 10년간 주요국 상장기업의 10년 평균 PBR 수치에 따르면 한국의 PBR은 평균 1.04배로, 선진국 평균 2.5, 신흥국 평균 1.58을 비롯해 대만 2.07, 인도 3.32, 미국 3.64 등 주요국 평균에 비해 34~58%가량 낮은 수준이다.


실제로 코스피 시가총액 10위권 내의 우량기업들인 삼성전자(1.12), 현대차(0.57), 기아(0.8), KB금융(0.55) 등의 주가는 장부가와 유사하거나 심각하게 낮은 수준이다. 2월 19일 기준 코스피 종가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국내 코스피 상장사 가운데 69%가 PBR이 1보다 낮은 저평가 기업으로 구분된다.


두 연구원은 회귀분석을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미흡한 주주환원 수준, 저조한 수익성과 성장성이 가장 유력한 원인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또한 취약한 기업지배구조, 회계 불투명성, 낮은 기관투자자 비중 역시 기업가치평가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밸류업 정책 추진을 통해 타깃한 개선안도 이들 연구원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한 '낮은 주주환원 수준’과 ‘저조한 수익성과 성장성'이라는 두 가지 축을 골자로 한다.

 

밸류업 정책, 자본시장 3대 축 가운데 '기업' 변화 촉구

 

20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증시 인프라 개선 관련 열린 토론'이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5월,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 등은 자본시장을 통한 기업 경쟁력 제고 및 국민과 기업의 상생 고리를 강화하기 위해 한국 자본시장 밸류업 정책을 본격화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자본시장 선진화의 방안으로 그간 '투자 인프라' 개선 차원에서 불법 공매도 근절, 불공정거래 대응을 비롯해 ‘투자자’ 관점에선 국민과 외국인 투자자의 자본시장 접근성을 개선하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고 밝혔다. 공매도 전면 금지 이후 단행해 온 공매도 제도 및 시스템 보완을 비롯해 투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외환시장 접근성 제고, 영문 공시 의무화, 외국인 ID 폐지, ISA 세제 혜택 확대 등 세제개편,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자본시장을 형성하는 3대 축 중 '인프라'와 '투자자' 요소 개선에 초점을 맞춰왔던 정부는 지난해 도입한 밸류업 정책을 통해서 자본시장의 주요 축을 형성하는 '기업'의 변화 촉구에 또 다른 방점을 두기 시작했다.
정부는 국내 증시의 저평가 주요 요인이 기업이 효과적으로 자본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에 있다고 봤다.

 

특히 지난 10년간 한국 주식시장 ROE(return on equity, 기업이 자기자본을 활용해 1년간 얼마를 벌어들였는가를 나타내는 수익성 지표)가 8.0%로 영국(9.6%)과 미국(14.9%) 등 선진국 평균인 11.6%와 대만(13.6%)과 인도(13.8%) 등 신흥국 평균 11.1%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기업의 자본 생산성이 낮음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나아가 주주환원과 연계된 배당 성향 역시 주요국에 비해 낮은(연 평균 26.0%) 수준을 비춰볼 때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자본 활용도 역시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기업 차원에서 '주주가치 기업경영'을 확립하는 것이 자본시장 선진화의 필요조건임을 강조했다. 이어 이를 위한 법과 제도 정비는 물론, 우선적으로 시행 가능한 개선책부터 시장에 적용했다.


정부는 지난해 2월 26일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1차 세미나를 통해 밸류업 정책의 구체적 방안을 공개한 이후, 5월 2일 ‘기업가치 제고 계획 가이드라인’ 공표, 9월 24일 ‘코리아 밸류업 지수’ 발표 등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왔다.


먼저, 정부는 기업들이 자발적인 밸류업 공시를 통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투자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이 자본비용·자본수익성, 지배구조 등을 다각적으로 파악하고 기업가치가 적정한 수준인지 평가하고, 자본효율성 등을 개선하기 위한 중장기(3년 이상) 계획과 목표 수준 도달 시점 등을 구체적으로 설정해 이행하도록 했다.


이처럼 기업이 자본 활용 전략과 목표를 설정하고 공시를 통해 그 이행 결과를 소통하는 과정은 기존의 재무제표 정보 외에 기업의 전략적 자본 활용성을 또 다른 기업 평가의 기준 잣대로 부상시키겠다는 의미를 갖는다. 자본 활용도를 평가하는 체계를 기업 내외부에 확립하고, 투자할 가치가 있는 자본 활용성을 갖춘 기업인지를 투자자 관점에서 비교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잣대를 내세운 것이다.

 

밸류업 정책 추진 이후 시장에서는 주로 '배당 확대'에 초점을 맞춰왔다. 하지만 결국 정부가 목표로 하는 바는 상장기업이 중·장기적 관점에서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각 기업에 적합한 자본 활용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하며 기업의 자본 효율성을 강화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이 투하한 ‘자본의 수익률’ 개선과 ‘주주환원 확대’라는 양대 기업가치 성장 축이 중장기적 관점에서 주주가 요구하는 수익률에 부합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중·장기 자본효율성과 기업가치 제고에 초점을 두고 그 실현 과정에서 기업에 자율성을 부여했다. 강제성이 부여되지 않은 만큼 기업가치 제고와 주주환원을 유도하기 위한 각종 세제 지원안을 비롯해, 코리아 밸류업 지수와 ETF 개발 등을 통해 기업 유인책과 자금 유입 통로를 마련하고 있다.


이는 앞서 밸류업 정책을 도입하며 실효성 있는 효과를 거둔 일본의 밸류업 정책과 핵심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일본 역시 2023년까지 10년 평균 PBR이 블룸버그 집계 기준 1.4배로 머무는 대표적인 PBR 저평가 국가에 속했으나, 밸류업 정책 도입 이후 지난해부터 1.82로 높아지는 상승 추세로 전환한 바 있다. 또한 일본 증시는 밸류업 정책을 시행과 함께 34년 만에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기도 했다.

 

기업 '주주환원 정책' 강화 움직임...주요 금융지주의 평균 PBR 45% 증대

 

이 같은 개선책으로 먼저 시장에서 주목받은 정책은 바로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주주환원 정책' 강화와 이들을 중심으로 한 주주들의 시장 참여 증대였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미흡한 주주환원은 고질적인 문제로 지목돼 왔다. 과거 배당 투자 수요를 가진 많은 투자자들은 고배당주 투자를 위해 앞서 주주환원 문화가 확립된 미국에서 슈드라고 불리는 ‘SCHD ETF’ 상품 등을 찾아 투자해 왔다. 이처럼 미비한 주주환원은 투자자의 투자 유인을 낮추는 동시에, 잉여 현금흐름이 과잉투자로 이어지거나 지배주주의 사적이익을 위해 남용될 우려가 존재했다.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고 상장사의 기업 가치 제고를 유도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되자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이 단기간에 시장으로 유입됐다. 외국인 순매수액은 지난해 1월 3조 4830억 원에서 2월 7조 8580억 원으로,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또한 주주가치 제고에 관한 시장의 요구와 기업의 적극적 대응 수위가 높아지면서 지난해 12월 20일 기준 주권상장법인의 자사주 취득 및 소각 금액은 전년 대비 각각 약 2.3배, 2.9배 증가해 최근 7년간(2018~2024년) 최대 규모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기 밸류업 정책과 관련해서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도 없을 것이라는 비판적 여론도 있었으나 지난해 1월 24일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 계획이 시장에 공개된 직후, 이를 기점으로 국내 은행주의 시가배당률은 이례적인 속도로 낮아졌다.

 

자본시장연구원의 이상호 연구원은 이같은 현상을 기존 은행주의 주가가 ‘배당의 현저한 불확실성’ 등을 전제로 크게 할인되어 거래되고 있었을 가능성이 존재함을 방증하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밸류업 정책으로 관련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주가가 꾸준히 상승하고, 특히 은행주들을 중심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상당 부분 해소됐다는 것이다.

 

메리츠타워 전경. 사진=메리츠증권

 

특히 금융주들은 지난해 자사주 취득과 배당 확대 등 가장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전개하며 기업 정책과 보조를 맞췄고, 이는 즉각적인 기업가치 상승으로 이어졌다. 지난 한 해 주주가치 환원에 초점을 맞추며 부상한 메리츠금융지주와 KB금융은 각각 79%와 57%에 육박하는 주가 성장세를 기록했고, 메리츠금융지주를 비롯한 국내 4대 금융지주가 일제히 코스피 시가총액 2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동기간 해당 기업들의 PBR 역시 증가세를 기록했는데 지난해 9월 기준 시가총액 상위 5대 금융지주의 평균 PBR은 0.84로 2023년 말 기준 0.58 대비 45%가량 증가했다.


이처럼 1년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적극적인 시장 개선안 추진과 유효한 시장 반응을 확인한 밸류업 정책과 관련해 시장에서는 여러 평가가 공존한다. 

 

부정적 측면에서는 관련 공시를 기업의 자율성에 맡긴 만큼 여전히 밸류업 공시 참여 기업의 비중이 적고, 일부 기업들의 PBR이 개선된 것 외에는 시장 전체 평균 PBR의 개선은 요원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밸류업 정책 추진이란 첫걸음을 뗀 국내 시장이 장기적으로 일관적이고 유효한 시장 개선이라는 성과를 이루려면, 이런 문제점들이 지적되는 배경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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