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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22, 문진우 작가 '남포동 블루스' 전시

부산을 상징하는 도시 공간, 도시의 모습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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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안용호⁄ 2025.02.22 08:45:23

85년 남포동 03. 사진 제공=스페이스 22

부산 남포동은 서울의 명동이나 인사동과 같이 부산을 상징하는 도시공간이다. 남포동 주변으로 광
복동 중앙동 창선동 동광동까지 붙어 있다. 상권이나 사람들의 동선이 연결되기 때문에 구분 짓기 보다는 통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남포동과 그 일대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정치 경제 문화 행정에서 부산의 중심이었다. 특히 한국전쟁 때는 부산으로 몰려든 피난민들로 님포동 국제시장 그 일대는 인산인해였었다.

 

한편으로 그 혼란의 시기는 피난 예술가들 활동으로 부산의 예술 문화가 꽃을 피웠던 시기였다. 그런 예술가들의 활동 주 무대가 이곳 남포동과 광복동 중앙동이었었다. 당시만 해도 다방이 오늘날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다. 차를 마시며 글을 쓰고 사람을 만나고 시화전도 열기도 했다. 대표적인 공간이 김동리의 소설 「밀다원 시대」에 등장하는 밀다원이었다.

 

이후 1980년대를 넘어오면서 양산박 시대가 그 뒤를 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방, 막걸리가 있는 노포, 음악감상실, 화랑 등이 남포동 광복동 거리의 중심이었고 낭만이 있었다. 전시장이 귀했던 시절이라 다방을 중심으로 전시들이 많이 이루어졌는데 작가의 졸업전을 한 것도 남포동의 다방이었다. 부산의 대표적인 영화관들도 남포동 중심으로 몰려 있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영화제로 자리 잡은 부산국제영화제도 남포동에서 출발했다. 

85년 남포동02. 사진 제공=스페이스22

작가는 "나에게 남포동은 대학 시절을 거치면서 연결되었다. 다녔던 대학과 가까웠기 때문에 뻔질나게드나들었었다. 첫 미팅을 한 곳도 남포동의 조그만 다방이었고 생맥주 몇 잔에 구토하고 생전 처음으로 필름이 끊어진 곳도 남포동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미화당백화점 주변과 미화당 백화점 뒤 고갈비 골목, 묵자 골목, 구둣방 골목, 현재의 비프 광장이 주 무대였었다. 주로 놀이터 장소로서 일종의 해방구 같은 장소였었다"고 추억을 더듬는다.


문진우 작가는 대학 졸업 후는 직장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자주 다니지는 못했다. 그나마 지금은 국제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된 K씨의 작업실이 광복동 입구라 사랑방으로 종종 들락거리곤 했었다. 작가가 남포동과 그 주변을 본격적으로 촬영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었다. 주말이면 카메라를 메고 농촌이나 어촌 시골로 다니면서 풍경을 찍다가 본격적으로 도시로 그 눈을 돌린 것도 이 시기였었다.

93년 남포동. 사진 제공=스페이스22

영화관 주변, 영화 포스터가 붙은 골목, 쇼윈도의 마네킹,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을 찍기 시작 했었다. 그 사진들로 1993년 첫 개인전 ‘불감시대’를 1996년 두 번째 개인전 ‘마네킹’을 열었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순했다.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물질이 정신을 지배하면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렇듯 나의 사진 인생에 큰 변화를 준 공간이 남포동이다.

 

작가는 "지금도 그 시기 그 공간에서 작업했던 사진들에 가장 많은 애착이 간다. 현재 주로 하는 작업은 변해가는 도시(부산을 중심으로)의 모습을 기록하는 일들이다. 이 일의 첫 출발이 된 작업도 ‘남포동 불루스’이다"라고 전시의 의미를 전했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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