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1호 김금영⁄ 2025.03.06 16:16:03
전시장 곳곳을 채운 작품들. 하지만 이 전시를 구성하는 건 작품만이 아니다. 작품을 감상할 때마다 은은하게 코끝을 맴도는, 각각의 공간을 에워싼 향기들이 비로소 이 전시를 완성시키고 있었다.
시각·후각 예술의 조화
쿠팡과 미술관이 만났다. 쿠팡의 럭셔리 뷰티 서비스 알럭스(R.LUX)가 서울미술관과 협업전 ‘아트 오브 럭셔리(Art of Luxury)’를 마련한 것. 알럭스가 소개하는 럭셔리(명품) 뷰티 브랜드들이 추구해온 본질적 가치를 예술이라는 관점으로 새롭게 재조명하는 자리다.
‘향’은 이번 전시를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주요 매체다. 알럭스에 소개된 다양한 향수 브랜드 중 엄선한 브랜드의 향을 전시장 곳곳에서 맡아볼 수 있도록 발향기를 천장 일부에 설치해 놓고, 향수의 정보도 제공하는 브랜드존을 구성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작품과의 연관성에 신경 썼다. 전시는 세부적으로 ‘머터리얼 럭셔리(Material Luxury)’, ‘인스파이어링 럭셔리(Inspiring Luxury)’, ‘스피리추얼 럭셔리(Spiritual Luxury)’, ‘타임리스 럭셔리(Timeless Luxury)’까지 총 4개의 테마로 구성됐는데, 각각의 분위기와 주제에 맞는 작품 선정 및 향이 조화롭게 배치됐다. 또한 전시장에 향이 너무 세게 퍼져 이질감을 주지 않도록 은은하게 공간을 채우도록 했다.
전시 작품은 서울미술관의 소장품으로 구성됐다. 총 18개 작가의 작품 26점을 소개한다. 쿠팡 관계자는 “서울미술관 소장품 테마와 주제에 맞는 향을 찾기 위해 함께 아이디어를 나누는 과정을 거쳤다”며 “럭셔리 가치의 역사를 크게 물질적·정신적 측면에서 접근하는데, 여기서 또 세부 테마를 마련해 총 4개의 섹션을 감상할 수 있도록 꾸렸다”고 설명했다.
첫 시작은 ‘머터리얼 럭셔리’ 섹션이 연다. 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더라도 이름을 들어보거나 작품 이미지가 익숙할 정도로 유명한 해외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며 첫 섹션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쿠사마 야요이의 거대한 ‘호박(Pumpkin)’ 조각, 입술의 형상을 소파로 제작한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팝아트 거장 로버트 인디애나, 앤디 워홀의 작품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핑크빛으로 화사하게 시작해 노란 호박, 새빨간 입술 등 알록달록하면서도 화려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공간이다. 쿠팡 관계자는 “물질적 럭셔리의 가치를 예술적으로 재해석한 공간으로, 럭셔리의 본질적 요소와 예술성의 조화를 탐구한다”고 소개했다.
이 섹션 한켠을 ‘엑스니힐로(EX NIHILO)’ 브랜드존이 채운다. 엑스니힐로는 프랑스 하이 퍼퓨머리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이번 전시를 통해 ‘스파이키 뮤즈(SPIKY MUSE)’ 향수를 전시한다. 해당 향수는 엑스니힐로의 신상품으로, 봄과 어울리는 딸기와 장미의 조화가 마치 전시장에 꽃을 피운 듯 달콤한 향을 내뿜는다. 또한 딸기와 장미의 붉은빛으로 이뤄진 브랜드존은 전시장에 함께 설치된 살바도르 달리의 빨간 입술 작품과도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이어지는 인스파이어링 럭셔리 섹션은 심플하고 차분한 분위기로 반전된다. 쿠팡이 마련한 공간으로, 이곳에선 알럭스를 소개하는 미디어 아트를 선보인다. 전체적으로 검은색 테마의 세련된 공간에 큰 거울을 설치했고, 음악도 함께 깔린다.
쿠팡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뿐 아니라 향을 맡고, 귀로 음악을 듣는 등 관람객의 오감을 자극하고자 했다”며 “다양한 거울이 설치돼 관람객 사이 특히 포토스팟으로 꼽히는 공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곳엔 ‘메모파리(MEMO PARIS)’ 브랜드의 ‘아부다비(ABU DHABI)’ 향수가 소개된다.
검은색의 차분했던 분위기는 이어지는 스피리추얼 럭셔리 섹션에서 순백의 공간으로 치환된다. 앞서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됐다면, 이곳에선 박서보, 이우환, 도상봉 등 국내 거장들의 작품들과 현대 도예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서울미술관의 희귀 소장품들을 ‘스페셜 마스터피스’로 소개해 눈길을 끈다. 쿠팡 관계자는 “럭셔리는 단순히 물질적 가치만 갖고 있지 않다. 이 섹션은 정신적 가치와 럭셔리가 융합되는 공간으로, 고유의 철학과 예술성이 깃든 작품을 전시한다”고 말했다.
전시의 마지막은 타임리스 럭셔리 섹션이 장식한다. 이곳엔 조선 백자 달 항아리와 ‘아쿠아 디 파르파(AQUA DI PARMA)’ 브랜드의 ‘콜로니아 일 프로푸모’ 향수가 전시된다. 그 어떤 기교와 장식 없이 담백하면서도 기품 있는 백자의 형태는 시대를 초월한 럭셔리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준다.
쿠팡 관계자는 “조선 백자는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지녔다. 그리고 아쿠아 디 파르마는 이탈리아 장인 정신을 기반으로,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가치를 추구하는 브랜드다. 시대를 초월하는 아름다움과 감동을 추구, 전한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어 함께 소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양한 경험 원하는 사람들에게 공감각적 체험 제공
이번 전시는 쿠팡이 미술관 측에 협업 제안을 하면서 이뤄졌다. 쿠팡이 지난해 10월 론칭한 알럭스를 보다 사람들에게 친근감 있게 소개하고, 동시에 알럭스가 추구하는 럭셔리의 다면적 본질과 그 속에 담긴 진정한 가치를 알리고자 마련한 자리다.
알럭스는 ‘럭셔리(Luxury)’와 쿠팡의 대표 서비스인 ‘로켓배송(Rocket)’의 합성어다. 최신 트렌드에 기반한 다양한 상품 큐레이션과 하루 안에 도착하는 배송 혜택을 결합, 새로운 쇼핑 경험을 제안하는 럭셔리 뷰티 서비스다. 알럭스는 고급 이미지를 내세운 전용 앱을 비롯해 브랜드 정체성을 강조한 콘텐츠를 다양하게 선보여 왔는데 이번에 전시로 그 폭을 넓힌 것.
쿠팡 관계자는 “현대미술과의 만남은 쿠팡에게도 새로운 시도였다. 미술이 지닌 아름다움과 알럭스가 다루는 다양한 럭셔리 브랜드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아우르며 고객에게 보다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다”며 “또한 미술에 관심이 많은 관람객이 자연스럽게 알럭스도 접하도록 이끄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시는 다양한 체험 요소도 곁들여 흥미를 자극한다. 4층 전시 공간엔 브랜드 팝업 공간을 마련해 전시 관람 이후 전시에 소개된 브랜드 향수를 직접 시향, 착향해 볼 수 있도록 했다. 첫 스타트는 메모파리가 끊었다. 이후 새로운 브랜드 팝업을 꾸준히 선보일 예정이다.
또한 알럭스 제품 구매 고객 중 추첨을 통해 선발한 고객을 대상으로 향수 마스터 클래스도 2월 세 차례 진행했다. 향수 마스터 클래스는 전시에 선보인 브랜드의 담당 직원이 브랜드의 역사 등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주고, 대표 향수를 시향해보는 시간으로 구성됐다. 여기에 참가자가 향 조합을 직접 만들어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향수를 재해석하는 기회도 제공했다.
전시 내 브랜드존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추가 교체해 전시 기간 내내 다양한 브랜드를 접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쿠팡 관계자는 “알럭스에 현재 입점돼 있는 유명 브랜드를 비롯해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유망 브랜드 또한 다양하게 소개하고자 한다”며 “3월 중순 이후 또 새로운 브랜드를 순차적으로 소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다양한 체험을 원하는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서울미술관에 따르면 이번 전시 오픈 이후 평년 대비 관람객이 2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쿠팡 관계자는 “남녀노소 다양하게 전시를 찾고 있다. 지난 구정 연휴엔 특히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았고, 평일엔 평균적으로 여성 관람객이 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럭셔리와 럭셔리가 만난 이번 전시는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로 주목받고 있다. 서울미술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과 럭셔리의 만남을 통해 예술의 지평을 넓히는 의미 있는 시도”라며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석파정의 공간에서 더 많은 관람객이 예술을 친근하게 경험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쿠팡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시각을 중심으로 이뤄진 미술관 작품과 후각 예술이라 할 수 있는 향이 만나는 자리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며 “시각 예술과 후각 예술이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공감각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데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이런 신선하고 다양한 시도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서울미술관에서 6월 1일까지.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