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일가 생활용품점 ‘다이소’가 건강기능식품(건기식)을 판매하려다 약사들의 반발에 부딪힌 이후 제약업계와 유통가에 심상치않은 후폭풍이 불고 있다. 소비자단체들은 약사들의 압력이 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한약사회 등이 제약사에 과도한 압박을 했는지 여부를 밝히겠다며 조사를 시작했다.
논란의 발단은 지난달 24일 다이소를 운영하는 아성다이소가 전국 200여개 매장에서 대웅제약, 일양식품, 종근당건강 등의 건기식 37종을 3000원과 5000원 두 가지 균일가로 판매하기 시작한 데서 기인했다.
종합 비타민제부터 뼈·관절 기능에 도움이 되는 칼슘제, 루테인 성분을 함유한 눈 영양제, 체중 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가르시니아, 혈류 개선을 위한 오메가3 등 다양한 영양제가 저가에 판매되기 시작하자, 약사들을 중심으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약사들 사이에서는 “다이소에서 판매하는 건기식 상품 가격이 약국판매 제품의 최대 5분의 1 수준이어서 매출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고, “다이소에서는 약사의 상담을 받을 수 없는 만큼 건기식을 과자처럼 무분별하게 섭취하는 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급기야 대한약사회는 지난달 28일 “제약사들이 약국에 납품하지 않던 저가 제품을 생활용품점에 입점시키고, 마치 그동안 약국이 폭리를 취한 것처럼 오인하게 홍보했다”며 강한 반대 입장을 밝혔고, 약사 커뮤니티 등에서는 해당 제약사들에 대한 ‘불매운동’을 하자는 주장이 거론됐다.
그러자 이날 일양약품은 다이소에서 전격 철수를 선언했다. 다이소에 이미 납품한 초도 물량만 소진 시까지 판매하고 추가 입고를 하지 않겠다는 것. 대웅제약과 종근당건강 등도 철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소비자단체 “약사단체가 소비자 권리 침해”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모처럼 저렴한 가격에 건기식을 구입할 수 있게 됐는데, 약사들의 반발로 무산됐다는 여론이 온오프라인에 빗발쳤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지난 7일 ‘건강기능식품 시장에서의 공정거래, 소비자 선택권에 악영향을 주는 약사회 주장 규탄한다’는 성명서를 내고 “건기식은 의약품이 아닌 만큼 소비자는 자유롭게 구매할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다이소에서 판매하는 건기식은 성분, 함량, 원산지에 차이가 있고 기존 제품이 36개월 분량인 것과 달리 1개월분 단위로 판매해 가격 부담을 줄였다”며 “특정 직군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가 판매를 반대하며 제약사에 대한 보이콧을 예고했고, 결국 한 제약사가 건기식 판매 철수를 발표하게 된 건 명백히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부당한 조치이며, 공정한 시장 질서를 해치고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지난 13일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대한약사회에 조사관 등을 보내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일양약품의 다이소 건기식 판매 철수 과정에서 대한약사회의 압박이 있었는지를 확인해보겠다는 것.
공정위는 대한약사회의 행위가 공정거래법상 사업자단체 금지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고 전격 현장조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자단체인 대한약사회가 제약사에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일양약품의 다이소 건기식 판매를 제한했다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이 될 수 있다는 것. 또, 대한약사회가 소속 약사들에게 다이소 납품 제약사를 대상으로 한 불매운동 등을 지시했을 경우에도 법 위반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편의점 업계도 건기식 판매 시작… 유통채널 더 늘어날듯
결국 이번 다이소 건기식 판매 이슈는 소비자 권익이 보다 중요하다는 쪽으로 인식이 모아지는 분위기다.
애초에 온라인 쇼핑몰을 통한 건기식 판매가 약 70%에 달하고, 오프라인에서도 약국보다 대형마트, 다단계를 통한 판매량이 우위인 상황에서 다이소, 편의점 등으로 건기식의 유통망이 다양화되는 건 피할 수 없는 대세라는 것.
실제로 편의점업체 CU는 지난 11일 건기식 판매를 본격 추진한다며, 동아제약 건강식품 ‘비타그란’ 4종과 ‘아일로 카무트 효소’ 1종의 판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CU 측에 따르면, 이번 건기식 판매 추진은 최근 수년간 건강식품 매출이 지속적으로 신장함에 따른 결정이며, 상반기 중 직영점 중심으로 테스트를 한 후, 주요 제약사들과 협의를 거쳐 보다 다양한 건기식을 판매할 계획이다.
한편, 약사단체 등 일각에서는 여전히 건기식의 유통망 다양화가 소비자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건기식이 의약품은 아니지만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한 만큼, 판매처는 소비자에게 제품의 성분과 부작용, 유의사항 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건기식 시장이 날로 확대되고, 가성비에 집중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다이소의 건기식 판매가 시장에 많은 파급력을 가져왔던 것 같다”면서 “다이소, 편의점 등 새로운 유통채널에서 건기식을 구매하는 소비자는 사전에 의사나 약사와 충분한 상담을 거치고, 상품 설명도 면밀히 확인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