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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尹 재판 촬영 불가' 속뜻은? … ‘법 왜곡 죄’ 있었다면 노회찬 그렇게 떠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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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최영태⁄ 2025.04.15 15:08:09

유럽의 정의의 여신상은 두 눈을 가리고 추상같은 처벌의 의미로 칼을 들고 있지만, 한국 대법원의 여신상은 두 눈을 뜬 채 법전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판사가 누구야?”란 질문을, 한국인들이 요즘처럼 많이 한 적이 있었나 싶다.

판사의 개인적 성향에 따라 판결이 좌우로 크게 왔다 갔다 한다면, 그건 ‘법이 지배하는’(rule of law) 나라가 아니라 ‘판사가 지배하는’(rule by judge) 나라가 된다.

한국의 판사는 선출직이 아니다.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따라서 지금의 한국처럼 ‘판사가 지배하는’ 양상이 계속된다면, 한국은 민주-법치 국가가 아니라, 판사치(治) 국가가 돼버린다.

 

2016년부터 본격 논의되기 시작한 '법 왜곡 죄'


그래서 요즘 왕성하게 논의되는 게 ‘법 왜곡 죄’의 신설이다. 독일 형법 제339조에는 ‘특정인에 유리 또는 불리를 주기 위해 고의로 법을 왜곡해 적용한 법관은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규정이 있다. 바로 판-검사에 대한 법 왜곡 죄 조항이다.

독일에 이러한 형법 조항이 생긴 것은, 히틀러 나치 당시에 부역했던 법관들, 그리고 동독 치하에서 독재 정부에 부역했던 법관들을 처벌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지금도 처벌은 계속 이뤄지고 있다.

눈을 가리고 심판하는 유럽 신화의 '정의의 여신' 디케가 불에 녹아 내리는 이미지.

조국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14일 유튜브 채널 ‘매불쇼’에서 “2016년부터 한국에서 법 왜곡 죄 신설에 대한 논의가 계속돼 왔다”며 “독일의 경우 2007~2017년 사이 10년간 판-검사에 대한 법 왜곡 죄 기소가 72건 있었고, 이 중 52건에 대해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고 말했다. 사법 기관에 대한 신뢰 정도가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은 독일에서도 매년 7건 정도의 법 왜곡 죄 기소가 있고, 네 건 중 세 건 정도에 대해 처벌이 내려졌다니 놀라운 수준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의 법 왜곡 죄 논의는 2016년부터 시작됐다고 신 의원은 말했다. 2016년이 어떤 해인가? 3년 전인 2013년에는 고 노회찬 의원에 대한 의원직 상실형 선고가 있었고, 2016년의 2년 뒤에는 노 의원이 세상을 떠났다.

 

"도둑놈이야" 외친 사람만 처벌하는 한국 사법 체계


2013년 노 의원은 이른바 ‘삼성 X파일’ 즉 삼성그룹으로부터 ‘명절 떡값’을 받은 검사들의 명단을 밝혔다. 국회에서 검사들의 실명을 밝혔고,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국회에서의 발언은 면책 특권이 적용됐지만, 당시 대법원은 “떡값 검사 명단을 인터넷에 올린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라며 노 의원에게 의원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징역 4월(집행유예 1년)과 자격정지 1년을 확정했다.

연설하는 고 노회찬 의원. 그는 "도둑놈 잡으라고 외쳤더니 도둑놈은 안 잡고 소리 지른 사람을 시끄럽다고 잡아넣는다"는 말을 남겼다. (사진=노회찬 공식 웹사이트)

이에 고 노 의원은 “대법원의 판단 결과는 뇌물을 준 사람과 뇌물을 심부름한 사람, 뇌물을 받은 검사 어느 한 명도 처벌하지 않고 정황을 보도한 기자 2명과 수사를 촉구한 당시 법사위 국회의원만 처벌받는 경우가 됐다”며 “‘도둑이야’라고 소리를 치니까 도둑인지 아닌지, 얼마만큼 훔쳤는지를 조사하지 않고 한밤중에 주택에서 소리 친 사람을 처벌하는 꼴이 됐다”고 비판했다.

필자가 전에 쓴 칼럼 [한국 헌법은 왜 ‘양심 따라 판결’ 시키나? 양심에 털 났으면 어쩌려고?](3월 12일)에서도 언급했듯, 독일과 유럽 여러 나라들의 판결문 첫 문장은 ‘인민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the people)’으로 시작하는 게 관례다. 판사 개인의 의견으로 판결한 게 아니라 보통사람의 상식에 따라 판결했다는 정신을 살리기 위해서다.

독일 연방법원 판결문 첫 페이지의 'Im Namen des Volkes', 즉 '인민의 이름으로'라 표시된 부분. 

이런 판결문의 형식뿐 아니라, 판결 과정에서도 독일 법원의 경우 전문 법조인은 아니지만 시민 대표가 참심원(심판에 참여하는 시민이라는 의미) 자격으로 참가함으로써 이른바 ‘사법의 민주화’가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

유럽 대륙 국가들의 참심원 제도와 비슷하게, 영국과 미국에서는 배심원 제도(일반인이 유-무죄를 결정)를 운영하고 있다. 더구나 미국에서는 지방 법원 판사를 주민 투표로 뽑은 주가 적지 않으니 판사 독단으로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한국과 비교하면 애시당초 적을 수밖에 없다.

이런 법치 선진국들과 비교한다면, 한국은 법관의 선발이나 승진, 실제 재판 과정의 민주화, 판결문 공개 등에서 완전 후진국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형사 첫 정식 재판을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왼쪽)이 14일 오후에 열리는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세기의 재판' 촬영 금지의 판결문 비공개의 속뜻은? 


현재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내란죄 재판이 지귀연 판사 주재로 진행 중이지만, 14일 첫 재판부터 촬영이 금지돼 편파 시비가 일고 있다. 촬영 불허만이 아니다. 최덕규 변리사의 책 ‘법! 말장난의 과학’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판결문 공개 비율이 미국은 100%, 일본은 70% 이상인 반면 대한민국은 5% 미만이란다. 필자가 훑어본 수백여 편의 판결문 중 95% 이상이 개판이었다.(232쪽)

한국의 판결문은 거의 전부 다가 비공개일 뿐 아니라 실제로 법 전문가가 읽어보면 “개판”이라는 탄식이 절로 나올 수준이라는 것이다. 주요 피고인에 대한 촬영이든 판결문이든, 비공개면 이렇게 ‘개판’이 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신장식 의원은 “법 왜곡 죄 입법에 대한 검토와 준비를 마쳤다”고 말했다. 앞으로 한국에도 법 왜곡 죄 조항이 만들어져 구중궁궐 같은 ‘판사의 지배’ 나라에 밝은 햇빛이 비춰질지 기대를 하게 된다.

관련태그
노회찬  법왜곡죄  지귀연  윤석열재판  촬영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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