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호⁄ 2025.04.30 20:49:59
<마나 모아나Mana Moana>는 폴리네시아어로 ‘마나mana’는 모든 존재에 깃든 신성한 힘을, ‘모아나moana’는 경계 없는 거대한 바다를 뜻한다. 이번 전시는 이 두 단어를 결합함으로써 오세아니아 예술 전반을 관통하는 세계관—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경외와 바다의 신성함—을 응축해 전달하고자 한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재홍)은 4월 30일(수)부터 9월 14일(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2에서 프랑스 케브랑리-자크시라크박물관(관장 에마뉘엘 카자레루)과 공동으로 특별전 <마나 모아나-신성한 바다의 예술, 오세아니아>를 개최한다.
전시에 선보이는 18세기~20세기의 유산 171건과 현대 작가 작품 8점은 전통성과 현대성이 공존하는 예술의 다층적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줄 것이다. 아울러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전시 구성은 오세아니아의 유산이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숨 쉬는 가치임을 전할 것이다.
이번 특별전은 ‘바다’라는 공간, 그리고 항해와 정착의 과정(1부)에서 시작해 멜라네시아(2부)와 폴리네시아(3부)의 이야기를 차례로 펼쳐나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통에서 현대까지 이어지는 섬 문화와 문화 정체성(4부)을 조망하며,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공감의 메시지로 마무리한다.
카누를 타고 떠나는... 물의 영토
제1부 물의 영토에서는 먼저 카누를 만난다. 오세아니아는 태평양을 중심으로 한 섬들의 세계다. 바다는 이곳 사람들에게 단순한 지리적 경계가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고 연결하는 공간이자 삶의 기반이다. 1부에서는 바다를 길로 삼아 이동하고 정착한 오세아니아인들의 항해와 세계관을 조명한다. 수천 년에 걸친 이동의 역사 속에서 탄생한 정교한 항해술, 카누 제작 기술, 신화 속 창세 이야기들을 소개하며 ‘모아나’로 상징되는 신성한 바다에 대한 인식을 살펴본다.
경사지게 놓인 카누는 항해와 정착의 순간을 보여주며, 신화와 상징을 새겨 항해의 안전, 전쟁의 승리 등을 기원했던 다양한 카누 장식은 바다 위의 섬처럼 펼쳐져 오세아니아의 지리적 특징을 감각적으로 전달하고 문화적 상상력으로 인도할 것이다. 이 공간은 오세아니아 예술과 철학을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물에서 이동하는 수단은 카누라는 배 한 척이었지만, 그 카누 안에는 오랫동안 이어왔던 항해 기술, 카누 앞머리와 뒷부분에 달리 장식들이 그들의 경험과 역사를 말해준다.
카누 옆에는 나무 막대로 된 차트가 보이는데 나무 막대는 해류가 흘러가는 바다 물길을 가리키고, 거기에 있는 조개더미는 섬들을 가리킨다. 즉 이 스틱 차트는 일종의 항해용 내비게이션이다.
카누를 젖는 노는 신성함의 상징으로 조상의 기억을 담은 신성한 물건이자 과거와 나를 연결해 주는 신령스러운 도구이다. 그래서 귀한 물건으로 보관한다.
삶이 깃든 터전, 섬을 만나다
2부에서는 수많은 흩어진 섬들, 멜라네시아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역은 다채로운 자연환경과 풍부한 문화 다양성을 지닌 곳이다. 이곳 공동체는 자연과 조상을 하나의 세계로 인식하며 공동체와 영적 질서의 상징으로 예술을 발전시켜 왔다. 제2부 ‘삶이 깃든 터전’에서는 멜라네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조상 숭배와 신성한 공간, 권력과 교환 의례 등 공동체 중심의 세계관을 선보인다.
대형 의례 공간인 ‘남자들의 집’, 소년들이 성년식을 치를 때 쓰는 조상의 얼굴, ‘므와이’ 가면, 전쟁의 시작과 끝을 함께 했던 신성한 힘을 가진 방패 등은 공동체의 정체성과 사회 구조를 시각화하며 예술이 단순한 미적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영적인 중심 역할을 해왔음을 드러낸다. 관람객은 이 공간에서 오세아니아 예술이 삶과 공동체, 신성함의 삼중 구조 속에서 복합적으로 작동해 왔음을 발견할 것이다.
악어 같은 동물 조각들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신화 속에서 씨족이 악어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동물 조각은 근원, 씨족의 혈통을 보여준다.
전쟁에 쓰였던 방패 안에는 수많은 동물의 형상이 숨어있다. 거북이, 교미하며 수컷의 머리를 먹는 박쥐 등이 있는데, 이 박쥐는 ‘머리 사냥’, 즉 정신이라 할 수 있는 적의 머리를 수급해서 자기 부족의 권력과 정신을 높이는 의미가 담겨 있다. 즉 방패는 공동체 간의 일종의 폭력이기도 한 전쟁이라는 매개체를 가지고 서로 교류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장승처럼 서 있는 것들은 장승이 아니고 북이다. 북은 축제의 시작을 알리고 사람을 모을 때 사용한다. 케브랑리박물관에는 높이가 7~8m에 달하는 것들도 많다.
돼지기름을 발라 반질반질하게 갈아놓은 돌, 조개껍질 등은 이들이 사용했던 화폐이다. 다양한 재료로 만든 화폐를 공동체 간의 선물로 교환하거나 또는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는 것으로 사용하면서 서로의 신뢰를 쌓았다.
세대를 잇는 시간, 현재로 이어진 신화
폴리네시아 지역은 광활한 해역을 넘나드는 항해의 문화권이자, 조상과 신화적 시간에 대한 인식이 깊게 자리한 세계다. 폴리네시아 사람들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과거는 눈앞에 있는 것이며, 알 수 없는 미래는 등 뒤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시간 개념과는 정반대다. 그들에게 시간은 단선적이 아니라 순환적인 것으로 세대 간의 기억이 끊임없이 공유되는 흐름이다.
제3부 ‘세대를 잇는 공간’은 조상 숭배와 신화, 마나mana와 타푸tapu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시간과 존재에 대한 철학적 인식을 살펴보는 공간이다. 연옥으로 만든 목걸이 헤이 티키는 마오리족에게 혈통과 생명력의 상징이다. 폴리네시아 신화에 따르면 신이 맨 처음 만든 최초의 인간을 ‘티키’라고 부른다. 티키는 인간 최초의 형상이기도 하지만 신의 신성성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 티키는 풍요, 다산, 수호신을 상징해 몸에 항상 지니고 다녔다. 여성은 임신과 출산 때, 남성은 전쟁에 나설 때 착용하며 가보로 대대손손 물려주었다. 목걸이의 까만 부분은 머리카락인데, 타인의 머리카락을 갖고 있다는 건 그 사람의 신성함을 내가 보유하고 있다는 상징이다.
곤봉은 무기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권력을 드러내는 신성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전시된 새 부리 모양의 곤봉은 오세아니아 유물로 프랑스 국립박물관에 처음 소장된 1호 작품이다.
조각상, 제의용 장신구, 직물 또한 조상의 존재를 드러내고 예술은 신과 인간, 삶과 죽음을 잇는 매개체가 되었다. 여성이 제작하는 직물, 타파는 세대 간의 기억을 담는 문화적 실천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오세아니아 예술은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시간의 흐름이다.
폴리네시아 사회의 시간 개념은 독특하다. 과거를 앞에 있는 것, 미래는 우리 등 뒤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과거를 향해 과거를 바라보고 미래를 향해 뒷걸음친다”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만큼 과거는 중요한 나의 경험이자 원천이라고 생각했다.
섬... 그리고 사람들
오세아니아 예술의 정수는 ‘몸’과 ‘삶’에 스며든 장신구와 공예에 있다. 장신구는 자신을 꾸미는 도구이자, 신분과 정체성, 신과 자연과의 관계를 드러내는 비언어적 표현이다. 제4부 ‘섬... 그리고 사람들’에서는 오세아니아의 장신구와 공예를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 공동체의 미적, 상징적 관계를 탐구한다.
자개, 깃털, 고래 이빨 등 자연의 재료로 빚어진 현대의 장신구는 정교한 기술과 미감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착용하는 사람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과 관계성을 드러낸다. 관람객은 다양한 장신구와 공예품 사이에서 오세아니아 사람들의 삶에 대한 태도와 우주를 향한 감각을 발견할 것이다. 또한 이 공간은 ‘사람’이라는 렌즈를 통해 오세아니아의 철학을 다시금 응시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아울러 이번 전시를 찾을 어린이 동반 가족 관람객을 위해 세 가지 교육 콘텐츠가 선보인다. '티키가 들려주는 오세아니아 이야기' 그림책은 티키라는 주인공이 오세아니아 대륙 이곳저곳의 사람과 문화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관람 후 색칠을 하며 전시 내용을 돌아볼 수 있다. '어린이가 들려주는 오디오가이드'는 전시실 곳곳의 큐알코드를 인식하면 어린이 목소리로 오세아니아 이야기를 듣고, 재미있는 퀴즈도 풀어볼 수 있다. '어린이 가족을 위한 패널'은 별자리 돌림판을 돌려보며 가족과 함께 오세아니아 사람들이 중시했던 '존중', '연결', '정성' 등을 생각해 본다.
전시의 의미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오세아니아 예술이 지닌 역할과 의미는 다양하지만, 무엇보다도 환경 위기 시대에 자연과 인간의 이상적인 관계에 대한 성찰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바다를 신성하게 여기고 모든 존재를 동반자로 삼는 전통적 세계관은 기후 변화로 위기를 맞은 오늘날 인류 공동체에 지속 가능한 삶의 지혜를 일깨운다.
또한 신화와 조상을 예술로 되살리는 방식은 세계화 시대에 문화 다양성과 정체성 회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자기 문화에 뿌리를 두면서도 타 문화를 존중하는 열린 자세를 배우게 한다. 나아가 공동체 중심의 예술 제작은 예술이 개인의 표현을 넘어 사회적 연대와 책임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이번 특별전의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하면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다. 바다가 섬과 섬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하듯, 오세아니아의 예술은 과거와 현재, 인간과 자연, 서로 다른 문화를 이어주는 매개체다. 이러한 메시지는 오늘날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돌아보게 하며, 우리 모두에게 깊은 감동과 성찰을 제공한다.
관람객들은 단순히 이국적인 예술품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류가 공통으로 직면한 문제에 대한 예술적 통찰과 해결책을 모색하는 여정에 동참할 것이다. 오세아니아 예술은 과거의 조상과 현재의 우리를 연결하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새로운 해석을 발견하도록 돕는 일종의 도구임을 깨닫게 한다. 예술은 단절된 세계를 이어주는 언어다. 그리고 이 언어는 태평양의 목소리가 되어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