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은⁄ 2025.07.08 16:52:43
미래에셋증권 정우창 수석연구원은 최근 인도 주식시장의 장기 성장 가능성과 구조적 변화를 분석하며, “글로벌 투자 포트폴리오의 핵심 축이 인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뭄바이 현지에서 수십 개 기업을 직접 탐방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통적 거시경제 분석을 넘어선 ‘바텀업 접근법’을 강조하며 인도 시장의 본질적 변화를 관찰했다고 설명했다.
정 연구원은 현재 인도를 “1960년대와 2020년대가 공존하는 두 개의 시간”으로 규정한다. 뭄바이 도심에서는 여전히 전통 재래시장이 활발히 운영되는 반면, 인근에는 첨단 쇼핑몰인 ‘지오 월드 센터’가 들어서 성업 중일 정도로 인프라와 소비 환경의 양극화가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의 인도에 집중할 것인지, 현대화되고 있는 인도에 주목할 것인지가 투자 전략의 출발점”이라고 평가했다.
인도 경제를 움직이는 세 가지 성장 동력
정 수석연구원은 인도의 구조적 성장 배경으로 세 가지 요인을 제시했다.
먼저, 인도 정부의 제조업 육성 정책인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가 산업 지형을 바꾸고 있다는 평가다. 인도는 전통적인 섬유 산업 중심에서 벗어나 자동차, 전자,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제조업으로의 전환이 본격화되고 있으며, 이는 수입품을 국산화하는 ‘수입 대체 전략’을 통해 무역수지를 개선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그는 비즈니스 규제가 완화되고 해외 자본 유입이 용이해지면서 현지 기업 경영진들도 사업 환경이 유의미하게 개선됐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요인은 14억 명에 달하는 세계 1위 규모의 인구와 이 중 상위 1%에 해당하는 고급 인재 집단이다. 정 연구원은 인도 경제의 핵심 성장 동력은 14억 인구 전체가 아니라, 약 1400만 명의 최상위 인재들이라고 분석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과거 실리콘밸리나 유럽 등 해외로 유출됐으나, 최근에는 인도 국내 시장의 성장성이 부각되며 자국 내 기업으로의 회귀 현상이 뚜렷하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인도 최고 명문대학인 IIT(인도 공과대학) 졸업생의 해외 진출 비율은 20년 전 50%에서 최근에는 2만 1000명 중 200명으로 줄었다. 그는 이들이 주요 기업에 합류하면서 매출과 수익성 면에서 인도 기업들은 미국 기업을 능가하는 실적을 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 번째 요인은 빠르게 진행되는 디지털 전환이다.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디지털화가 진행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로, 생산가능인구의 약 84%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전자상거래, 배달 서비스, 핀테크 등 디지털 기반 산업의 고성장을 이끄는 배경이 되고 있다. 정 연구원은 출장 중 호텔에서 배달 앱을 통해 10분 만에 물건을 받은 경험을 소개하며, 이러한 변화가 인도인의 소비 패턴뿐 아니라 경제의 투명성과 속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도, 낮은 보급률이 최대 무기… 소비 성장 여력은 지금부터
인도의 소비재와 금융 시장은 낮은 보급률로 인해 성장 여지가 크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인도 시장 내 에어컨 보급률은 약 4%에 그치며, 자동차 보급률은 이보다 낮은 수준이다. 금융 상품 보유율은 약 10%에 불과하며, 은행 대출 경험이 있는 인구도 전체의 35~36%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향후 내수 소비와 금융 서비스 분야에서의 고성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인도가 2027년까지 세계 3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소비 시장은 2030년까지 연평균 12%의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리스크 요인에 대한 평가는
정 연구원은 인도 시장에 대한 대표적인 투자 리스크로 종교·사회적 갈등, 지정학적 긴장, 그리고 기업에 대한 낮은 이해도를 들었다. 그러나 그는 이들 요소가 실질적인 투자 장벽이 되지 않는다고 평가하고 있다.
종교 갈등 측면에서는 전체 인구의 약 80%가 힌두교, 20%가 이슬람교지만, 이러한 종교적 차이는 경제를 저해할 정도의 충돌로 비화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카스트 제도의 영향력 역시 점차 약화되고 있으며, 정 연구원은 낮은 카스트 출신인 모디 총리가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는 현실 자체가 이를 방증한다고 밝혔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해서는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오랜 갈등이 한국의 남북 관계와 유사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시장이 이 문제에 익숙하며, 관련 뉴스가 발생하더라도 증시는 1% 내외의 단기 조정 후 빠르게 회복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러한 국면을 오히려 “비중을 늘릴 기회”로 해석했다.
또, 한국 투자자에게 생소한 기업들이 많다는 점은 인도 시장의 특성이며, 오히려 내수 중심의 성장 구조를 보여주는 근거가 된다고 설명했다. 정 연구원은 대표 사례로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Reliance Industries)를 들었다. 유통, 정유, 통신 사업을 아우르는 이 기업은 시가총액이 삼성전자의 80% 수준에 달하며, 지난 10년간 주가는 6배 이상 상승해 내수 기반 성장의 잠재력을 입증하고 있다.
증시 밸류에이션 높아도 기관은 비중을 늘린다… 2026 이익 모멘텀 기대 속 장기 투자자 중심의 자금 유입 지속
지난 5월 미래에셋증권 인도 법인이 개최한 ‘인베스트 인디아 글로벌 컨퍼런스(Invest India Global Conference)’는 54개 현지 기업과 200명 이상의 글로벌 투자자가 참가하며 인도 시장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정 수석연구원은 이 컨퍼런스를 통해 세 가지 주요 투자 축을 강조했다.
첫째, 소비 회복의 조짐이다.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인도의 소비는 고소득층을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다소 부진했지만, 최근 들어 회복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의류 기업인 레이몬드 라이프스타일(Raymond Lifestyle)은 18개월간 정체돼 있던 딜러 주문량이 지난 4월 무역 박람회 이후 다시 증가하고 있으며,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와 타이탄 컴퍼니도 매출과 이익률 모두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한몫하고 있다. 재정적자 감축 목표를 완화하면서 연소득 62만 5000루피 이하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소득세 감면과 통화 완화 정책이 소비 여력을 높이는 배경이 되고 있다. 또한 2027년으로 예정된 공무원 임금 인상이 약 7~8%의 인도 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내수 경기를 촉진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시됐다.
이어, 기관 투자자들의 전략 변화다. 현재 인도 증시의 선행 주가수익비율(P/E)은 약 20.5배로 결코 저렴한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기업 이익 모멘텀의 회복이 예상되는 2026년을 앞두고 기관들은 비중 확대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매월 적립식 펀드(SIP) 자금 유입이 꾸준하며, 국내 기관 역시 풍부한 현금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컨퍼런스 패널 토론에서는 연간 11~15% 수준의 이익 성장률 전망과 함께, 단기적인 밸류에이션보다 구조적 성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마지막으로, 개별 기업들의 성장 기회 측면이 이를 뒷받침한다. 레이몬드 라이프스타일은 강력한 브랜드 파워와 전국적인 유통망을 바탕으로 실적 반등 가능성이 높으나, 현재 주가는 업종 평균 대비 약 72% 낮은 수준이다. ASK 오토모티브는 브레이크 부품 분야에서 약 50%의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전기차 부품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다. 해당 종목의 밸류에이션은 업종 평균보다 약 33% 낮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아다니 에너지 솔루션은 기존 송전망 중심 사업에서 스마트미터 기반의 에너지 플랫폼으로 전환을 추진 중이며, 2031년까지 EBITDA를 현재의 3배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현재 주가는 과거 평균 대비 낮은 수준이다. 이러한 기업들의 재평가 과정에서 주가 부양 여력이 충분할 것이라는 평가다.
정우창 수석연구원은 인도 주식시장이 강한 펀더멘털을 기반으로 장기적인 상승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며, 단기 조정이 발생하더라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과거의 인도가 아닌, 2020년대의 인도에 투자해야 한다”며, 소비재나 디지털 관련 테마형 ETF를 통한 간접 투자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특히 “투자의 핵심은 변화의 방향이 아니라 변화의 속도(rate of change)”라고 강조하며, 인도 사회와 산업 구조의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하는 것이 향후 투자 성과를 좌우할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아이폰 최대 제조업체인 대만 폭스콘이 인도 내 전자기기 제조시설 확충을 위한 15억 달러 규모의 투자 계획을 확정했다. 김근아 하나증권 연구원은 이를 두고 "단순히 한 기업의 투자 소식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제조사들이 중국+1 전략의 핵심 거점으로 인도를 선택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판단된다"고 평가했다.
김 연구원은 이와 관련해 "인도의 차세대 주력산업으로 부상 중인 전자기기 생산 및 수출 역량을 제고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인도로의 공급망 이전 흐름이 지속될 수 있을지는 곧 발표될 미국과의 무역협상 결과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미국 상공회의소 설문에 따르면, 중국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의 38%가 대체 생산기지로 신흥 아시아를 고려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와 베트남은 이미 생산 거점으로서 경쟁력을 입증한 국가로, 신흥 아시아 중에서도 유력한 후보로 평가된다.
김 연구원은 "인도는 중국 우회 수출 리스크에서 자유롭고,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로 평가받고 있어 10%의 관세 협상도 기대해볼 수 있는 상황"이라며, 인도가 관세 협상에서 베트남보다 유리한 합의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해당 가정이 현실화될 경우, 인도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함에 따라 제조업 역량이 한층 강화되는 한편 경제 및 증시에 지속적인 성장 모멘텀을 제공하는 전환점으로 작용할 것이란 평가다.